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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88화 (288/300)

288화

파리로 향하는 길.

쭉 뻗은 도로를 타고 목적지로 직행하는데도, 몇 번이나 괴물들의 습격을 받았다.

“콰우우웅!”

코끼리와 흡사한 외모를 띤 이면 세계의 괴물이 요란한 소리를 퍼트렸다.

대형 버스보다도 더 커다란 몸뚱이.

10마리가 나란히 서서 길을 막으니, 바늘 하나 지나갈 틈도 보이지 않는다.

“스승님 벌써 23번째 습격이에요.”

“벌써 그렇게 됐냐?”

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아르스 게티아 - 내장 스킬 : 바르바토스의 철퇴를 사용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흑색 철퇴.

암흑 마나 기반 스킬들은 세계 단절의 효과를 받지 않아서 파괴력이 줄어들지 않는다.

피륙이 뭉개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앞을 막아섰던 괴물들은 잘 다져진 고기가 되어 버렸다.

[다크 마만트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 희귀]

[포식한 정수 :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퀘이크가 추가됩니다.]

[퀘이크]

등급 : ★★

분류 : 액티브

강한 힘으로 지면에 충격을 준다.

포식으로 사체를 가루로 만들어서 길을 활짝 열었다.

“사부, 우리에게도 나설 기회를 주시오.”

“아서라, 힘쓸 곳은 넘치니까 아끼고 있어.”

진짜 싸움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파리에 있는 르네 데이비스.

그의 수족, 아르메 루즈 플레이어들과 클리포트 잔당까지.

전생의 기억만큼 막강한 전력을 구사하지는 못하겠지.

그럼에도.

“저놈들을 정리하는 건 나 혼자로 충분하다.”

넘쳐 나는 마나.

체력도 쌩쌩하고 회복 속도도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빠르다.

온갖 패시브와 비활성화 정수로 떡칠했고, 포식 덕에 스텟도 등급을 넘어선 지 오래.

“지금은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해.”

핑 레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큭- 하고 짧게 신음을 흘렸다.

걱정하지 마라.

네 힘이 필요할 때는 곧 올 거니까.

파리에서 동쪽에 있는 대도시, 라임스 근처를 지나칠 즈음에는 도로가 완전히 파괴되어서 더 이동할 수 없었다.

“미스터 유, 여기서부터는 차량을 못 쓰겠어.”

엘렌은 도로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두 나라의 국경선을 기준으로 2/3 정도 이동한 상황.

차량으로 여기까지 이동한 덕에 체력 소모를 덜었다.

“서포터와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을 업고 이동해야지.”

“이미 해가 지고 있어. 괜찮을까?”

“내 눈을 믿어.”

진리안.

사이클롭스 킹의 정수를 기반 삼아 빚어낸 마안(魔眼)이다.

마안 분류 기준으로 치면 하(下)급이지만, 적의 습격을 대비하는 데는 최적의 능력을 보유했다.

신체 능력이 모자란 플레이어들을 등에 업은 채, 엉망이 된 도로를 따라 전진했다.

“와, 스승님의 등에 업히다니. 오늘 일은 일기에 써야겠다.”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까지 하냐.”

“세계에서 제일 잘나가는 플레이어 등에 업히는 게 보통 일인가요?”

지영이는 신난 듯이 재잘거렸다.

“내가 널 왜 업었는지 잊어버리면 안 된다.”

“아무렴요.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결계를 전개할게요.”

파리와 가까워질수록 괴물들의 습격도 잦아졌다.

르네 데이비스가 일행을 인지했다는 뜻.

뭐, 알면 어떻게 할 거야?

[아발란체를 사용합니다.]

[솔라 익스플로전을 사용합니다.]

[이클립스를 사용합니다.]

상반된 성질의 반발력을 극대화.

전술 병기급 위력의 폭발에 휩쓸린 괴물들은 사체도 남기지 못하고 증발했다.

-그대여, 정수가 아쉽지는 않느냐?

“때와 상황을 가려야지.”

쩝, 극대화된 마력 폭풍에 휘말려서 사라지는 괴물들을 보니 입맛이 썼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 즈음.

내리쬐는 햇볕조차 침범하지 못하는 도시, 파리가 일행의 시야에 들어왔다.

* * *

“저기, 미스터 유.”

“왜?”

“내가 아는 빛의 도시 파리가 맞는 거야?”

“지도상으로는.”

프랑스의 수도.

빛의 도시.

그 외에도 여러 별칭으로 불리는 유럽의 보석, 파리는…….

“근데 파리 대신 시커먼 벽이 있는 건데!”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던 구름과 마찬가지로,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다.

절규하는 엘렌.

“에펠탑도, 디즈니랜드도,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잖아!”

“말이 많군. 넌 주둥이로 싸우나?”

세르게이가 투덜거리자 엘렌의 눈동자에 불꽃이 아른거렸다.

“그래, 내 주둥이 맛 좀 볼래?”

“크크크크, 미국 랭킹 1위의 실력을 확인해보마.”

저 둘은 회귀 전에도 늘 으르렁거렸는데, 지금도 마찬가지구나.

물과 기름처럼 전혀 섞이지 않는 두 사람.

전생의 기억이 떠올라서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둘 다 엉뚱한 곳에 힘 빼려고 하지 마라.”

“미스터 유만 아니었어도.”

“흥, 나중에 붙어 보자.”

엘렌과 세르게이는 뜨거운 눈빛을 교환한 후에야 고개를 홱 돌렸다.

“파리는 추가 연성진으로 보완한 상태야.”

“저기, 아저씨. 타이탄의 왼팔을 소환해서 타격하면 뚫리지 않을까?”

엔리케가 손을 들었다.

마도 공학의 정수, 타이탄.

과거 드워프 종족과 겨루는 과정에서 멀쩡한 타이탄 한 기의 소유를 얻으면서 부쩍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한번 해 봐라.”

[메카닉 컨트롤]

[소환 - 타이탄의 오른팔]

공간을 가르면서 나타난 무쇠 팔.

엔리케는 고유 능력으로 불러 낸 타이탄의 팔을 육체와 동조, 전력으로 휘둘렀다.

전체를 구현한 게 아니라서 오러 블레이드까지는 펼칠 수 없지만.

타이탄의 질량과 마나 엔진에서 솟구치는 마력은 산봉우리 하나를 산산조각 낼 정도의 힘이 있다.

“가라!”

엔리케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불러 낸 타이탄의 팔.

흑색 장벽과 주먹이 충돌하는 순간 충돌 부위 전체가 일그러지면서 가시가 쏟아졌다.

콰지지직!

마도 공학의 정수로 빚어낸 강철의 거신.

수십 겹을 덧대고 방어 마법으로 강화한 팔뚝이 찢겨져 나간다.

“아, 안 돼! 내 타이탄이!”

엔리케는 비명과 함께 급히 타이탄의 팔을 회수했다.

“모두 봤다시피 저 벽은 공격으로 부술 수 있는 게 아니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말로 경고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주는 게 최고다.

“키야아, 어마어마하구먼. 저 방어벽!”

세르게이마저 경악 섞인 감탄을 거칠게 내뱉었다.

봐봐.

시청각 교육이 이래서 중요하다니까.

“후배님, 저 벽을 무너트릴 방법, 알고 있나?”

“세계 단절의 심층부는 다섯 방점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강한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

책임을 잘못 말하는 거 아니냐고?

이 상황에서 농담을 하겠나.

“방점이라는 게 벽 외부에 있나보구먼.”

“예, 저기에 기둥 보이죠?”

기다란 장벽 사이에 도드라진 흑색 기류.

“저 방점에 설치된 연성진을 모두 파괴하면.”

짜악!

“눈엣가시도 사라지겠죠.”

가볍게 박수를 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세계 단절의 심층부.

이면 세계의 힘을 직접 끌어서 펼친 벽은 가해지는 충격을 100% 되돌린다.

정면으로 돌파하려다가는 도리어 상처만 입는 상황.

흑색 장벽이 피해를 반사시키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출력을 내면 돌파도 가능하다만.

[데모닉 파워]로 모든 스텟을 전환해야 그만한 위력이 나올까 말까다.

흑색 장벽을 파훼할 방법이 있는데 굳이 위험한 도박에 판돈을 걸 필요가 있나.

방점은 모두 다섯 개.

난 일행을 다섯 그룹으로 쪼갰다.

골든 서클 / 옐로우 스톰 / 무극 / 역천 / 나.

“잠깐, 난 뭘 하면 되나?”

“세르게이는 영수 형님이랑 여기서 대기.”

“예? 저도요?”

“전황을 살펴볼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파리는 넓다.

흑색 장벽이 공중까지 차단한 상황.

방점을 공략하려면 크게 돌아가야 하는데, 한 팀이라도 실패하면 시간을 크게 뺏기게 된다.

그러면 기껏 공략한 방점도 다시 복구된단 말이지.

“크흐흐흐, 내가 제일 중요하군!”

세르게이는 주먹으로 가슴팍을 탕탕 치며 호쾌하게 웃었다.

아니.

사실은 네가 팀 구성을 할 때 제일 애매한 포지션이라 따로 빼놓은 거야.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세르게이 녀석은 자존심 빼면 시체거든.

-그대도 마음고생이 많구나.

여신님이라도 알아주니 다행이야.

다섯으로 쪼개진 일행.

나는 출발점에서 가장 거리가 먼 방점으로 향했다.

* * *

바람길을 전개.

공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나아간다.

파리 전역을 뒤덮은 흑색 장벽.

방점으로 가려면 파리를 우회해서 가야 했다.

-괜찮겠느냐?

“대뜸 뭐가 괜찮아.”

-방점 공략을 다른 이에게 맡기지 않았더냐.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돼.”

회귀 전과 달리, 르네 데이비스는 세례를 받아서 경지를 끌어올렸다.

인류의 ‘군주’라는 위계(位階)는 이면 세계의 힘을 받은 존재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

반대로 말하면 회귀 전 동일한 시점의 르네보다 훨씬 강하다는 뜻이다.

“믿어야지. 내 동료, 그리고 부하들을.”

-후후훗, 조금은 성장했구나.

“여신님의 조언 덕분이야.”

엘렌과 세르게이, 그리고 지영이.

전생에는 등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아군이었다.

핑 레이와 엔리케처럼 감당하기 힘들었던 강적도 이제는 내 수하가 되었다.

르네가 세례를 받아서 강해졌다고?

이 정도의 전력으로 패배하는 게 더 이상하잖아.

전력으로 달리니 흑색 장벽을 금세 우회, 내가 맡기로 했던 방점에 도달했다.

“인간?”

“세계 단절을 무너트린 게 네놈이냐!”

“우리의 이상을 방해하는 자를 쓰러트려라.”

빌어먹을 클리포트 추종자들.

몇 번을 쓰러트려도 바퀴벌레처럼 계속 기어 나오네.

“여신님, 서포트 좀.”

-순리에서 벗어난 자들을 처단하는 것 또한 여신이 해야 할 일.

[공허 비추기를 사용합니다.]

[원시종 - 티라노사우루스 ‘렉시’를 구현합니다.]

[아크 리치 군주 ‘아크’를 구현합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두 실루엣.

닉스는 호문쿨루스의 육체로 현신, 렉시의 등 위에 올라탔다.

“아이야, 우리 함께 춤을 추자꾸나.”

“캬오오오!”

『주군이시여, 명을.』

“모두 나를 섬기게 만들어라.”

아크의 푸른 귀화가 거세게 타올랐다.

『지시대로.』

잠시 후.

공중으로 끊임없이 올라가던 검은 기둥 하나가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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