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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86화 (286/300)

286화

알자스-로렌.

독일 서부와 맞닿아있는 행정 지역이자, 오랜 세월 동안 두 국가가 소유권을 두고 분쟁했던 곳이다.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소설, ‘마지막 편지’의 배경.

-용케도 적절한 장소를 골랐구나.

“학교 다닐 때 교과서대로 공부한 덕이지.”

회귀 전, 이 땅에 방문했을 땐 잿더미만 남아 있었다.

인류의 여섯 군주 중 하나이자 배반자.

르네 데이비스가 행동을 개시한 게 프랑스였으니 이계의 군세에 저항할 틈도 없었다.

난 뒤를 힐끗거렸다.

영국의 하이 랭커였던 영수 형님.

전생에서는 영국으로 이주한 뒤, 뒤늦게 재조명된 지휘 능력으로 유럽 전선을 지켜 냈다.

이젠 내가 스카우트를 했으니 같은 일이 벌어지면 막아 낼 사람도 없었다.

AS는 확실하게 해 주마.

그 원흉을 제거하면 되잖아?

“마스터, 질문이 있어요.”

카를라가 불쑥 다가왔다.

“무슨 질문?”

“여기는 프랑스의 영역. 적지잖아요.”

“잠재적으로는.”

“무장을 모두 갖추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놈들이랑 싸우러 온 거 아니다.”

“그럼 왜 적지에 온 거죠?”

“일종의 자극이지.”

“싸울 줄 알았는데.”

카를라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바탕 할 줄 알았나?

뭐, 르네 데이비스가 자극을 받아서 움직인다면 그것대로 좋겠지.

아니, 오히려 놈이 나서 주기를 바랐다.

-그대가 보기엔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10% 미만.”

-시시한 사내로고.

닉스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이번 알자스-로렌행의 대외적인 목표는 게이트 폐쇄다.

EU는 1차 대침식 직후 유럽 곳곳에서 생성된 게이트들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부처를 설립했다.

유럽 플레이어 연합, 일명 EPU다.

플레이어 전력이 낮은 국가를 지원하는 취지.

해당 부처가 신설된 뒤, 프랑스가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은 적은 없었다.

르네 데이비스라는 불세출의 랭커.

유럽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플레이어이자 프랑스의 방패로 불리는 자 덕에 고위험군 게이트도 성공적으로 폐쇄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쪽 게이트를 공략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호오, 빈틈을 이용하였구나.

“자존심깨나 상할 거다.”

하필이면 알자스-로렌 지역에 생긴 게이트다.

독일과 수백 년 동안 소유권을 다퉈온 땅.

주민들의 성과 이름이 독일식을 따를 정도로 역사적으로 복잡한 곳이다.

뻔한 도발.

자, 어떻게 나올 거냐?

드라이스트레가 길드의 깃발을 차량 위에 달아 놓으니 이목을 쉽게 끌었다.

“독일 길드잖아.”

“프랑스에 열린 게이트를 독일 길드가?”

“제길, 우리나라 플레이어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의 눈빛이 꽤나 뜨겁다.

얼마 정도 지났을까.

목적지인 언덕 위 교회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꽤나 시끌벅적하구나.

“그러게. 저건 아르메 루즈의 문장인데.”

진입로를 막아선 플레이어들.

아르메 루즈의 문장을 가슴팍에 단 이들이 흉흉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잠깐 멈추죠.”

차량을 세우고는 밖으로 나왔다.

내 쪽으로 향해 쏟아지는 진득한 살기.

마치 전장 한복판 같다.

일반인이라면 심정지가 올 정도로 강렬한 악의를 앞에 두고도 픽, 하고 웃었다.

냉혈을 발동할 것도 없다.

스스스슷!

백수제왕무 6성에 다다르면서 한층 더 깊어진 의념.

심검(心劍)까진 아니지만 내 의지를 내공에 담아서 허공에 방출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수라마령심공으로 빚어낸 내공이 아르메 루즈 플레이어들의 살기를 몰아낸다.

“건방 떨기는.”

앞으로 발을 내디디며 의념을 확장시킨다.

“흐읏.”

“뭐, 뭐냐. 이 떨림은?!”

뒷걸음질 치는 아르메 루즈 플레이어 집단.

내가 한 발자국 나아가면.

수십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이 발을 뒤로 뺐다.

“이런, 향신료 제도의 영웅을 여기서 뵙는군요.”

후우우웅-

내 의념을 실어낸 내공이 물에 술 탄 것처럼 흩어진다.

아무렇지 않게 대기 중에 얽히고설킨 양측의 의념을 풀어내 버린 존재.

르네 데이비스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구신지?”

“르네 데이비스입니다. 나름 유명하다 생각했는데 더 분발해야겠네요.”

내 도발을 가볍게 넘기는 르네.

폭발 직전이었던 분위기가 단번에 풀어졌다.

오호라.

그런 거였군.

-왜 그리 웃느냐?

-르네 녀석, 세례를 받았다.

난 확신했다.

장담컨대, 현시점에서 나보다 강한 플레이어는 지구상에 없다.

데모닉 파워나 융합기공(불완전)처럼 회귀 전의 지식으로 독식한 각종 기연들.

포식할 때마다 늘어나는 스텟.

무공, 선법, 마법, 체술, 암흑 마법, 극야의 힘과 같은 다양한 기예.

그리고 심득까지.

내 의념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려면 최소 2배 이상 강해야 한다.

-저치가 그대보다 약하다고 확신하느냐?

-당연하다.

-후훗, 여의 계약자라면 응당 그런 마음가짐을 품어야 하느니라.

아무렴.

르네 녀석이 나보다 잘날 리 없으니 사술의 힘을 빌렸겠지!

“그런데 프랑스의 랭커께서 여긴 어쩐 일입니까?”

“아, 몽환의 계곡 공략은 제가 직접 나서기로 했습니다. EPU에는 아직 전달이 안 된 모양이군요.”

르네 데이비스가 환하게 웃었다.

알자스-로렌이라는 지역의 특수성.

독일 길드인 드라이스트레가를 일에 끼워 넣은 덕에 도발 효과가 제대로 났다.

“저희가 헛걸음하게 되었네요.”

“미안합니다.”

난 헛걸음을 하지 않았고.

르네는 미안하지 않았다.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 모두 거짓을 말하는 상황.

-인류의 배반자. 참 얼굴 보기 힘들어.

내 전음에 르네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하찮은 재주를 믿고 제 영역 앞에 오다니, 겁이 없군요.

-네 부하인 나디아 카셀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그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죽였다.

-당신 따위가 나디아를 쓰러트렸다고요?

-못 믿겠으면 시험해 보던가.

언제라도 폭발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난 암암리에 끌어 올린 내공을 손가락에 집중시켰다.

펄럭이는 르네의 옷소매.

놈도 마나를 끌어 올려서 언제든지 방출할 준비를 마쳤다.

-운 좋은 줄 아십시오. 본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망가트릴 수 없으니 이번 한 번만 넘어가겠습니다.

르네는 먼저 손을 털었다.

응축시킨 마나가 바람결에 따라 사라진다.

핑계 하나 거창하게 대는군.

-수하의 복수는 안 해 주는 건가? 비정하기도 하군.

전음으로 다시 한번 자극했지만 묘한 웃음을 지을 뿐, 놈은 전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난 아쉬움을 삼켰다.

프랑스의 방패로 불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놈을 먼저 공격할 수는 없다.

르네 데이비스가 먼저 공격하도록 유도한 후 제거해야 했다.

그렇지만.

나디아 카셀을 언급했는데도 넘어올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조만간 다시 보게 될 겁니다.

놈은 고개를 홱 돌렸다.

* * *

르네 데이비스와의 만남.

전음을 주고받았을 때만 해도 곧 폭발할 것 같은 활화산처럼 끓어올랐지만.

막상 게이트 공략 건으로 부딪친 후에는 잠잠했다.

-그 살기등등한 텔레파시가 거짓 같구나.

“원래 그런 놈이야.”

르네는 화날수록 냉정해진다.

알자스-로렌 지역에서 마주했을 때 분기를 드러낸 건 어느 정도 연출이라는 것.

-하면 모두 기만이라는 게냐?

“실제로도 화가 났겠지. 그 감정을 끌어내서 연기한 거고.”

나 때문에 북아프리카에 퍼트린 클리포트 세력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화가 안 나면 그게 보살이지. 사람이겠나.

“녀석을 자극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거다.”

알자스-로렌 사태 이후에도 프랑스 영토 내부에 열린 게이트를 몇 번이나 공략대상으로 지목했다.

르네 데이비스가 무슨 짓을 꾸미든.

내 페이스에 말려들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조바심을 내든지.

미끼는 던져졌으니 기다려봐야지.

알자스-로렌에서 르네와 충돌한 지 보름째 되는 날.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이 서유럽을 강타했다.

* * *

[충격! 파리의 하늘에서 오로라가 관측되다.]

[백 년 만에 처음 겪는 폭우.]

[커다란 해일이 노르망디 해안가를 덮쳐…….]

프랑스 영토 곳곳에서 나타난 기상이변.

목격담이 기사로 올라올 때 즈음에는 이미 다음 단계가 시작되었다.

전조 없이 나타난 먹구름이 프랑스 전역을 검게 물들인다.

하늘을 시커멓게 만든 구름은 이내 지상으로 낙하하면서 국경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외부 세계와 분리된 프랑스.

휴대전화나 인터넷은 모조리 불통이 되었고.

TV 같은 정보 전달 매체도 전파를 잡지 못해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인공위성으로도 구름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

“코드 1.5.4. 수신 불가. 다시 접촉을 시도.”

“불가능합니다. 프랑스에서 어떤 신호도 방출되지 않습니다.”

“이쪽에서 송신하는 전파가 모조리 막힙니다.”

EU 소속 여러 국가가 각 나라의 대사관에 연락을 시도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프랑스를 휘감은 진한 어둠.

전파 송 · 수신은 불가능해도 사람이 직접 출입하는 건 가능했다.

문제는 구름 안으로 들어가는 것부터였다.

시커먼 안개 사이로 비쳐지는 이형(異形)의 괴물들.

“쿠어어어!”

“크락! 크라락!”

여태 발견된 적 없는 괴이한 존재들이 프랑스 영토 내로 진입하는 것을 막았다.

현대 병기는 무용지물.

호위 역으로 붙은 플레이어들도 맥을 못 추렸다.

각 개체의 전투력은 다이아몬드 등급 플레이어에 버금가는 수준.

숫자라도 적으면 모를까.

구름 너머로 아른거리는 괴물의 숫자는 천 단위를 넘어섰다.

“후퇴하라.”

“목숨을 건지고 싶으면 구름에서 멀어져!”

“제길, 어디서 저런 괴물이!”

프랑스 영토 전부를 뒤덮어버린 구름.

이계에서 넘어온 괴물이 얼마나 되는지를 세는 건 의미가 없었다.

구름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상황.

세계 단절.

하랍 세라펠의 [나무]급 추종자만이 전개가 가능한 강력한 연성진은 프랑스와 전 세계를 분리시켰다.

예고도 없이 벌어진 긴급사태.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EU 가맹국들은 프랑스에서 생긴 괴이한 현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

“이 문제는 저희가 해결해드리죠.”

향신료 제도의 영웅이자 최근 유럽의 해결사로 떠오른 플레이어.

진호가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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