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마안(魔眼).
올림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 혹은 마비노기온의 발로르의 사안(邪眼)으로 유명한 능력이다.
눈에 담기는 풍경을 일그러트리는 효과.
마안은 시야에 닿는 순간 발동하는 능력이 많아서 종류를 불문하고 강력한 이능으로 취급된다.
사이클롭스의 눈깔 빔은 굳이 따지자면 마안의 열화판.
그렇기에.
“만상침식으로 해 볼 만하지.”
나선 형태로 꼬인 사이클롭스의 마나가 실타래처럼 풀린다.
풀려나간 선홍색 마나를 탐욕의 가호로 꼬아 낸다.
역으로 돌린 마력 레이저를 그대로 방출.
사이클롭스가 쏘아 내던 마력과 얽히면서 역류를 일으켰다.
“건방진.”
허공에서 얽히던 선홍색 마력이 소용돌이치더니 쾅- 하고 폭발했다.
아파트 한 동을 산산조각 낼 정도의 파괴력.
사이클롭스들은 마력 역류에 저항하지 않고 힘을 과부하시켜서 탐욕의 가호로 꼬아 버린 마나를 폭발시켰다.
한 번 방출해 버린 마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눈에 마력을 쏟아붓는 방식이라 가능한 대처.
사이클롭스의 응용력까지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곤란하게 되었구나.
“아니, 거리는 충분히 좁혀졌어.”
사이클롭스의 마안이 폭발하면서 생겨난 작은 틈.
극야로 구현한 검으로 암영추혼검을 전개.
얽히고설킨 광선이 확장하면서 생긴 구체를 뚫어 내면서 앞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휘둥그레진 사이클롭스의 외눈.
제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다니. 너무 고맙잖아.
[백수제왕무 – 5초식]
[광서지를 사용합니다.]
손끝에 집약시킨 내공을 재빠르게 발출했다.
백수제왕무의 경지가 올랐기에, 전반부 초식으로도 강기를 전개할 수 있었다.
동일한 강기를 펼쳐도 후반부보다 위력이 모자라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사이클롭스의 눈두덩이에 커다란 구멍을 새겨 주기에는 말이야.
놈은 급히 눈꺼풀을 닫으려 했다.
지척까지 거리를 허용해 놓고 이제 와서?
놀고 있는 왼손으로 핏빛 갈취를 전개, 사이클롭스의 몸뚱이를 잡아당겼다.
무게만 수십 톤에 달하는 괴물.
덩치 차이가 압도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근력 차이는 보이는 것과 다르게 크지 않았다.
내 능력치는 거듭되는 포식으로 다이아몬드등급 플레이어를 넘긴 지 오래.
5층 크기의 괴물이 핏빛 갈취에 끌려서 내 쪽으로 당겨졌다.
자세가 무너지면서 더 커진 눈동자.
푸욱!
광서지가 사이클롭스의 동공을 꿰뚫었다.
“우으으…….”
사이클롭스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지면을 나뒹굴었다.
-몸을 꿈틀거리는구나.
“강기로 뇌를 파괴했어. 육체의 생명력이 원체 강해서 저러는 것뿐이야.”
S급 게이트에 출몰하는 괴물들은 다이아몬드등급, 그러니까 60층 대 난이도다.
플레이어 2년 차에 다이아몬드등급 괴물을 일격에 쓰러트리다니.
새삼 얼마나 강해졌는지 실감이 되었다.
“우오오오오! 형제여!”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군.”
광서지를 내지르느라 밸런스가 흐트러진 상황.
살기등등하게 다가오는 사이클롭스들을 무공으로 쳐내긴 어렵다.
[기가 임팩트를 사용합니다.]
[폭마기를 사용합니다.]
100미터를 전력으로 달린 직후에 느껴지는 피로감.
기가 임팩트를 사용한 직후, 나른한 감각이 몸을 가볍게 눌렀다.
대량의 체력을 소모하는 기술.
호흡 한 번이면 기가 임팩트를 전개하는 데 사용한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반면에 스킬의 여파는 엄청났다.
노란빛 위로 검붉은 기파가 휘감기면서 반경 30미터를 초토화시켰다.
“그아아앗!”
충격파에 짓눌려서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는 사이클롭스들.
용의 날개를 양쪽으로 펴고 쏜즈 미사일을 전개했다.
날카로운 가시 수백 개가 사이클롭스의 커다란 눈동자에 꽂힌다.
쿵, 나머지 사이클롭스들도 바닥에 고꾸라졌다.
“후배님, 벌써 한판 벌였나?”
막 게이트에 진입한 신준석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놈들이 공격하는데 별 수 있습니까.”
나는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 * *
길드원들과 골든 서클 팀이 진입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게이트 공략에 나섰다.
“오늘 공략을 끝냅니다.”
S급 게이트?
한 곳에 오랫동안 발이 묶일 생각은 없다.
게이트에 있으면 르네와 아르메 루즈가 어떤 수작을 부리더라도 즉각적으로 반응하기가 어렵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곳.
나름대로 연락책을 구축해 두었지만 게이트 안에선 정보 전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선봉은 내가 서지.”
자신만만하게 나선 신준석.
단독으로 사이클롭스들에게 달려들었지만, 쏟아지는 광선 세례와 투석에 거리를 좁히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뭐야, 후배님은 쉽게 하던데, 왜 난 이렇게 고생을!”
신묘한 경신법으로도 시선이 닿고 0.5초 만에 도달하는 선홍빛 광선을 완전히 회피하는 건 쉽지 않았다.
“팀장, 우리도 합류합니까?”
“기다려보게, 나 혼자 어떻게든…… 이크!”
신준석은 비명을 질렀다.
집중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마안의 광선이 도복에 그을음을 만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열기가 몸을 뜨뜻하게 만들어주었을 테니.
“가만두지 않겠다.”
호신강기를 두른 채, 신준석이 무작정 돌진했다.
약 1분 후.
사이클롭스 세 마리가 나란히 뻗었다.
“흐핫! 하하하! 나도 해냈다!”
“정말이지, 비효율적으로 싸우셨군요. 선배님.”
호신강기로 공격을 막아 내는 건 효율이 엄청 나쁘다.
내공을 한 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전신으로 펼쳐야 하니 적의 공세를 상쇄시키는 것보다 훨씬 연비가 안 좋다.
전투 한 번으로 내공을 4할 가까이 소모해버리면 이겨도 이긴 게 아니잖아.
“후배님은 얼마나 걸렸나?”
“5초요.”
게이트에 진입하고 사이클롭스 3마리를 발견, 접근해서 쓰러트리기까지의 시간이다.
“제길, 더 분발해야겠군.”
사이클롭스는 육체 능력과 눈깔에 모든 능력이 치우친 괴물이다.
약점인 눈을 빼면 맷집도 엄청나서 4성급 마법으로도 쓰러트리기 어렵다.
내가 작정하고 솔라 익스플로전을 전개해도 버틸걸?
신준석이 의욕을 불태우는 동안 길드원들 모두 전투 준비를 마쳤다.
“지휘는 영수 형님께 맡기겠습니다.”
“동감, 미스터 킴의 능력은 신뢰할 만하지.”
엘렌도 지휘권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이 양반은 반쯤 역천 길드원이 된 것 같구먼.
명예 길드원이라도 시켜줘야 하나.
“그러면 부탁드립니다.”
“예, 맡겨주십쇼.”
영수 형님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급 규모의 게이트.
초입 부분 외에는 밝혀지지 않아서 정보도 거의 없지만.
난 호기롭게 공략을 선언했다.
-그대의 힘이라면 충분하지.
“아니, 내 길드원들의 힘을 믿는 거야.”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내 능력이 뛰어나도 여기저기에서 뛰쳐나오는 사이클롭스들을 상대할 자신은 없다.
믿는 건 동료들의 능력이다.
“1팀 전진. 3팀과 4팀은 양쪽 날개를 전개. 2팀은 지원.”
“3팀 10보 후퇴. 2팀이 전진.”
“전 팀 후퇴 후 5초 후에 반격 개시.”
영수 형님의 지휘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각 길드원과 골든 서클 팀원들의 전력을 모조리 꿰고 있기에 가능한 지휘.
[백인장]과 [군단 지휘]의 버프 효과가 뛰어나기도 했지만.
영수 형님이 전장의 흐름을 완벽하게 읽었기에 가능한 오더였다.
거인의 후예 게이트를 직선으로 돌파.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이클롭스의 숫자가 늘어났다.
20에서 30마리 사이.
일행과 골든 서클 팀원을 합친 숫자와 비슷한 숫자였다.
“3팀은 15보 전진. 남은 팀은 화력을 최대로.”
각 플레이어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낸 지휘 앞에서는 짚단처럼 쓰러졌다.
[사이클롭스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 100%]
[정수 등급 : 고대]
[스킬 – 거인의 팔이 추가됩니다.]
[거인의 팔]
등급 : ★★★
분류 : 액티브
거인의 힘을 양팔에 부여해서 크기를 3배로 만든다.
해당 스킬을 유지하는 동안 체력 소모가 100% 늘어나고, 근력이 200% 상승한다.
*지속 시간 : 60초
*재사용 시간 : 360초
사이클롭스의 정수를 모두 포식한 건 덤이고.
게이트에 진입한 지 한나절이 지났을 때.
“우리 영역을 시끄럽게 만든 침략자들이 너희인가?”
여태 마주한 사이클롭스보다 2배나 큰 거인이 바위산 위에 앉아서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산 양쪽에는 사이클롭스 50마리가 팔짱을 낀 채로 살기등등한 눈을 부라렸다.
“저놈은 맡겨주시죠.”
“길드장님을 믿겠습니다.”
영수 형님과 길드원들은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사이클롭스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대장끼리 싸워야지.”
“오만한 놈, 짐의 손으로 처벌해 주겠다.”
사이클롭스 킹이 몸을 일으켰다.
보스 몬스터가 뿜어 내는 강력한 존재감에 바위로 이루어진 산자락이 한바탕 바람에 휩쓸려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자동차 크기만 한 눈동자 위로 기이한 빛이 감돈다.
사이클롭스 킹은 일반적인 놈과 다르게 여러 눈빛을 사용할 수 있다.
트윈 헤드 오우거가 마법에 능숙한 것처럼.
그렇지만.
[아르스 게티아 - 내장 스킬 : 단탈리온의 환영을 사용합니다.]
사이클롭스는 오우거보다 마법 저항력이 낮다.
맷집은 뛰어나서 공격 마법을 쏟아부어도 터프하게 몸으로 받아낼 수 있지만.
“정신까지 보호하진 못하지.”
금단의 마도서로 펼친 암흑 마법이 사이클롭스 킹의 정신을 뒤흔든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공포.
사이클롭스 킹의 눈가에 아른거리던 마력이 픽 하고 꺼졌다.
“우오?”
허둥지둥거리는 거인 왕.
등 뒤의 날개를 퍼덕이며 놈에게 짓쳐 든다.
지이잉!
사이클롭스 킹은 허둥거리면서 무차별적으로 살인 광선을 내뿜었다.
바위산 사이에 기다란 고랑이 파인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라면 시체조차 남기지 못할 만한 위력.
명중률은 형편없지만 여기저기 튀는 마력 불꽃에 곧장 나아가기 어려웠다.
-저주를 건 의미가 없구나.
“없긴, 다른 눈깔 빔을 봉인했잖아.”
5초가 지나자 사이클롭스 킹의 눈가에 드리운 공포가 사라졌다.
놈이 제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지척까지 다가간 상황.
“짐에게 사술을 사용하다니.”
“이해 못 하면 매번 사술이란다.”
사이클롭스 킹의 주먹이 날아든다.
집채만 한, 아니 그보다 더 큰 주먹.
언덕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지만.
[거인의 팔을 사용합니다.]
[폭마기를 사용합니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세 배로 커진 팔을 휘둘렀다.
쩌어어어엉!
커다란 충격음이 울리고.
사이클롭스 킹의 근육과 뼈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허공에 알알이 흩어진 핏방울.
사이클롭스 킹은 너무 큰 충격에 말문조차 막힌 듯 입을 뻥긋거렸다.
“이게 되네.”
잠시 후, 왕을 자칭하던 괴물의 몸뚱이가 지평선 너머로 기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