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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83화 (283/300)

283화

함부르크.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이번 만남의 주최인 드라이스트레가 길드 본부가 있는 곳이다.

-이국적인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바다는 이제 질리지 않아?”

-후훗, 자연의 광대함은 언제 봐도 좋으니라.

꼭 어르신처럼 말씀하시네.

닉스 정도면 보통 어르신이 아니지.

해안 도로를 타고 쭉 나아가던 중, 지영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근데 스승님, 왜 드, 드라이기?”

“드라이스트레가.”

“그 길드는 항만에 길드 하우스를 둔 거에요?”

“서울 같은 곳이 아니라?”

“네. 독일에서 나름 규모가 있는 길드라고 들었는데, 이러면 인원 충원이나 게이트 공략에서 불이익이 있잖아요.”

“길드 명을 직역하면 3개의 배거든.”

지영이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아른거린다.

“길드의 모기업이 배 건조 산업에서 잘 나가.”

“아, 그래서 배구나.”

“게이트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북쪽이라는 위치가 큰 문제도 아니었으니. 그때만 보면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지.”

엘렌이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아, 상무님 말씀이 맞네요.”

“엘렌이라고 불러.”

“네? 그건…….”

“내가 너희 길드 상무도 아니잖아, 편하게 해.”

“그래도 되나요?”

“나이는 더 많으니까 편하게 할게.”

이미 말 놓고 있지만, 이라며 뒷말을 붙이는 엘렌.

“카를라의 친구잖아.”

“아, 헤헤.”

지영이가 헤프게 웃었다.

엘렌 녀석, 지금도 카를라를 신경 쓰고 있나 보군.

미련을 못 버린 것 같다만.

그 마음 빨리 접는 게 좋을 거다.

회귀 전에 네가 가장 후회했던 일이 카를라를 놓아준 거니까.

내 곁에 둬야 카를라의 미래도 전생과 달라질 테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해안가를 쭉 달리던 차량은 절벽 위에 지어진 콘도 앞에서 멈춰 섰다.

“엘렌 상무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렷한 턱선과 수염이 인상적인 중년 사내가 우리를 마중 나왔다.

“슈테판. 이게 얼마 만이에요?”

“반년만이군요. 그보다 다른 손님도 소개해주시죠.”

“정말. 난 이제 반갑지도 않은 거죠?”

“그럴 리가요. 다만, 귀빈을 앞에 두고 옛이야기를 하긴 적합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엘렌은 입술을 비죽이고는 옆으로 비켜섰다.

“미스터 유. 한국의 플레이어랍니다.”

슈테판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향신료 제도의 영웅! 그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반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이드리히 길드장님.”

“편하게 슈테판이라고 불러 주십쇼.”

슈테판 하이드리히.

드라이스트레가 길드의 마스터는 기꺼워하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호 유 길드장님.”

“이쪽이야말로.”

우리는 각자가 얻을 이익을 떠올리며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았다.

* * *

슈테판 하이드리히는 나랑 엘린을 길드장 집무실로 안내했다.

“다른 분들께는 객실을 배정했습니다.”

“드라이스트레가 길드 하우스에는 그런 공간도 있습니까?”

“원래 관광호텔로 사용되던 건물이라서 말이죠.”

“슈테판 길드장님은 길드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시거든.”

엘렌이 거들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해안가에 본부를 둔 페널티를 극복하려고 복지를 아끼지 않았을 거다.

“어쨌든 엘렌 상무님의 제안, 감사드립니다.”

나는 쓴웃음을 삼켰다.

엘렌과 내가 드라이스트레가에 방문한 표면적인 이유는 게이트 폐쇄 협조다.

“최근 아르메 루즈의 활동이 줄어들어서 곤란하던 참이었거든요.”

아르메 루즈.

르네 데이비스가 이끄는 길드다.

“그쪽은 프랑스 쪽 랭커인데 독일에도 영향이 있는 겁니까?”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우리나라의 플레이어 전력이 프랑스에 비해 모자라니까요.”

바벨탑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EU(유럽연합)을 주도하던 나라는 독일이었다.

하지만.

탑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바벨탑에서 나온 자원들은 마나 엔진과 마도 공학, 일명 4차 산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프랑스가 르네 데이비스라는 걸출한 플레이어를 보유한 것과 달리, 독일에는 뛰어난 플레이어가 거의 없었다.

“혹, 정부에서 거부감을 드러내진 않았습니까?”

“하하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향신료 제도의 영웅님.”

“……너무 기니 유 길드장이라고 하셔도 됩니다.”

“아, 실례. 유 길드장님이 저희 길드의 초청에 응해주셨다 하니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드라이스트레가 길드가 우리를 초청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 정부야 김우성 협회장한테 미리 언질을 둔 덕에 무리 없이 넘어갔고.

독일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이었는데, 아무래도 기우였나보다.

-아무렴. 여의 계약자가 방문하였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니라.

근데 왜 여신님이 으쓱하세요?

“공략해야 할 게이트를 알려주시죠.”

“남부의 대도시 슈투트가르트. 그곳에 열린 S급 게이트입니다.”

“해당 게이트의 정보는 어느 정도나 있습니까?”

“초입만입니다. 저희 길드의 역량으로는 그 이상 진입하기도 힘들더군요.”

슈테판은 입가에 쓴웃음을 머금으며 태블릿을 내밀었다.

[거인의 후예]

등급 : S

면적 : 대형(도시 하나 규모로 추정)

출몰 괴물 : 사이클롭스

*사이클롭스

평균 신장 10미터 크기의 외눈 거인.

폭발적인 힘을 지녔으나 민첩성이 낮은 게 약점.

눈에서 괴 광선을 발사해서 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보완함.

근 · 원거리 모두 대응이 가능한 괴물. 맷집도 튼튼해서 공략이 까다롭다.

*주의사항

초입부터 최소 셋 단위로 돌아다님.

더 깊숙이 들어갔을 땐 무리의 숫자가 늘어남. 최대 10마리가 동행하는 것이 확인되었음.

“여기까지가 확인된 정보입니다.”

“헤에, 사이클롭스면 나도 아직 못 만나 본 적이잖아.”

엘렌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체통 좀 지켜주시죠. 골드 문 상무님.

“공략은 언제부터 가능합니까?”

“방문 일자는 내일로 잡아 놨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략적인 브리핑을 들은 후 객실로 안내받았다.

“아오, 피곤하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눕히자 수마가 몰려들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피로감.

사하라 사막의 혈투를 포함, 알제리에서 원체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심신 모두 지쳤다.

-너무 무방비하게 있지는 말거라.

“여신님이 지켜 줄 거잖아.”

-여는 그대의 시중이 아니니라.

흥, 하고 고개를 홱 돌리는 닉스.

말은 저렇게 해도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면 막아 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확실하게 말해야지.

“르네 데이비스가 여기까지 손을 뻗긴 어려울 거야.”

-왜 그리 확신하느냐?

“나라가 다르기도 하고, 알제리에서 본 손해가 그만큼 컸거든.”

-흐응, 그대가 확신한다면 다 근거가 있을 터.

“문제는 독일의 전력이 생각보다 모자란다는 거야.”

난 미간을 찌푸렸다.

알제리에서 본 손해를 뒤로하고 행동을 개시한 르네 데이비스.

놈이 아무 근거 없이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알제리에 설치해 놓은 연성진을 프랑스에도 구축했을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전역이 이계화가 될 수도 있어.”

-그게 가능한 일이더냐?

“알제리의 연성진은 처음부터 그 목적이었으니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나라도 위험하겠구나.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0이 아닌 것만으로도 경계할 만하지, 참으로 옳은 판단이로다.

회귀 전보다 가속화된 미래의 사건들.

르네가 프랑스를 이계화한 건 멸망의 시대 이후이지만, 전생의 기억만을 믿고 낙관할 순 없다.

클리포트 종파가 영향을 끼친 시작점부터 달라졌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움직여야 대비할 수 있다.

“미래가 달라졌다고 해도, 완전히 쓸모없어진 건 아니야.”

오른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호오, 꽤나 자신만만하구나.

“시간대가 틀어졌어도 놈들의 근본은 같다.”

-외도에 빠진 이들이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정해져 있다는 뜻이로구나.

“맞아.”

하랍 세라펠의 연성진.

가아그셰블라의 혈석.

클리포트 종파가 움직이면 반드시 ‘징조’가 있다.

블랙 네트워크 이사가 되면서 세계 각지에 흩뿌린 정보망도 얻었겠다.

전생에 경험했던 클리포트의 수작질을 파악하기만 하면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르네 데이비스의 행동도 마찬가지.

“마담에게 지시해 놨으니,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칠거야.”

-참으로 용의주도한 남자로다.

다음 날.

일행은 슈테판 길드장의 안내를 받아 슈투트가르트에 나타난 게이트 앞에 섰다.

꿀꺽-

엔리케가 침을 삼켰다.

“아저씨, 우리 진짜 S급 공략하는 거야?”

“왜, 이제 와서 무서우면 밖에서 기다려도 돼.”

“흐, 흥! 누가 무섭대!?”

“그러면 먼저 들어가 보던가.”

“처음 입장하는 건 아저씨한테 양보할 거다!”

어울리지도 않게 긴장하기는.

나는 엔리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친 후에 게이트로 진입했다.

전신이 하늘에서 부유하는 감각.

붕 뜨는 느낌을 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발이 땅에 닿았다.

-온통 회색이로구나.

닉스의 감상평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고 작은 회색 바위들.

바위로 된 산자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은 · 엄폐가 거의 불가능한 지형.

바위틈 사이로 숨어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훤히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몸을 숨기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보다 덩치가 큰 거인에게 유리한 환경.

“또 나타났다. 난쟁이.”

“우리가 혼내 주자.”

게이트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

200미터 크기의 바위산 위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메아리친다.

사이클롭스 3마리는 바위를 들더니 있는 힘껏 던졌다.

[용의 날개를 사용합니다.]

최대치로 밀어 넣은 암흑 투기가 바위를 튕겨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산산조각 내버렸다.

사이클롭스들은 실망하지 않고 연달아 바위를 투척했다.

가만두면 일행이 진입할 때 피해를 입을 수 있겠어.

“너희가 시작한 일이다.”

[축지를 사용합니다.]

순식간에 좁혀지는 거리.

1킬로미터를 단번에 좁히지는 못했지만, 사이클롭스들에게 상당히 다가갔다.

경신법으로 바위를 차며 날아들자, 놈들의 눈동자가 빛났다.

“죽어라, 난쟁이.”

“태워 버리겠다.”

번쩍!

보라색 광선이 정면으로 쇄도한다.

사이클롭스의 마력을 눈에 집중, 파괴의 염을 부여하는 일종의 마안이다.

바위 투척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

후회할 텐데.

[만상침식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너희 눈깔 빔에 데면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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