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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80화 (280/300)

280화

[만상침식의 가호]

등급 : EX

랭크 : 1

‘오염된 왕좌의 주인’을 본떠 만든 성좌, 바엘의 권능이다.

시야에 비친 현상에 간섭할 수 있다.

내 ‘시야’를 매개로 발현되는 가호.

바엘의 눈동자를 포식해서 그런지 가호도 마안의 성질을 띠었다.

“놈도 지쳤을 테니 더 몰아붙이세요.”

찢어질 것 같은 고성.

나디아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외쳤다.

“여신님, 극야를 거둬 줘.”

“후훗, 새로 얻은 능력을 한번 보여 주려무나.”

어둠이 걷히고.

형형색색의 에너지 탄이 망막을 가득 채운다.

나디아 카셀을 필두로 한 ‘아르메 루즈’ 플레이어들의 공세.

블랙 네트워크가 쏟아부었던 포격보다 한 수 위다.

이놈들, 철저하게 준비했네.

[만상침식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눈동자에 집중된 신력.

삼라만상에 개입하는 가짜 성좌의 권능이 ‘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발현되었다.

보인다.

천안(千眼)으로 본 것보다 더 깊은 세계의 섭리가.

시야를 가득 메운 마탄들의 구조까지도 이해가 되었다.

지끈-

“윽.”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에서 전달되는 정보가 원체 많다 보니 과부하가 되면서 두통을 유발했다.

“그대여, 괜찮으냐?”

“참을 만해.”

만상침식의 가호를 처음 사용해서 놀란 것뿐.

이 정도 통증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정보를 빠르게 소화하면서 마법에 개입했다.

실타래처럼 얽힌 마나를 풀어냈다.

[허무계 이계 신전]이 마법들을 해주한 것과 비슷한 원리다.

날아오던 마법들이 하나둘 지워진다.

어떤 소음도 없이.

지우개로 낙서를 쓱 밀어 버리듯.

심장이 더 힘차게 뛰면서 마나를 쭉쭉 밀어 낸다.

이미 구현된 마법을 지우는 건 만상침식의 가호만으로 되지 않는다.

만성침식은 자물쇠를 푸는 열쇠.

문을 열려면 힘을 줘야 하는 것처럼 마나 공급이 필요했다.

쏟아지는 마법 공세가 원체 많다 보니 마나가 물밀 듯이 빠져나간다.

보는 것만으로 마법에 개입해서 해제시키는 기현상.

나디아가 눈을 부릅떴다.

“이보세요, 결계를 왜 저쪽으로 유지한 겁니까?”

“아, 아닙니다. 저건 연성진의 효과가 아니라 저 인간이 벌인 일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나디아가 부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적에 가까운 능력.

왜.

니들이 하던 짓을 역으로 당해보니 황당하지?

크크, 나는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또 그 웃음이로구나.”

하아- 닉스의 한숨이 내 조소 위에 덧씌워졌다.

나디아를 포함한 붉은 군대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면서 블랙 네트워크가 진형을 빠르게 수습했다.

“단번에 밀어붙이자꾸나.”

“그게 영 가성비가 안 좋아서.”

보는 것만으로 마법을 지워 내는 건 치트급 능력이다.

문제는 마법을 해제 과정에서 소모되는 마나가 엄청나다는 것.

붉은 군대의 공세를 몇 초 막아 냈다고 혼원룡의 심장에 쌓은 마나가 1/4 가량 소모되었다.

“이미 다른 수를 생각한 모양이구나.”

“뭐, 될지는 모르지만.”

바엘은 판데모니엄의 수장인 바알을 본떠 만든 가짜 성좌다.

만상침식과 탐욕의 가호에도 공통점이 있다.

다른 무언가를 변질시킨다는 것.

그렇다면.

[만상침식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먼저 재배열 된 마나에 간섭.

내 마나로 해체하는 대신 탐욕의 가호를 발동시킨다.

탐욕의 가호로 침식하는 건 눈동자.

정확히는 만상침식의 가호 위에 바알이 부여한 힘을 드리웠다.

비슷한 근원을 지닌 가호가 얽히기 시작한다.

두 가호의 기원이 흡사하다 한들, 원칙적으로는 다른 성좌의 힘이다.

자칫하면 폭발을 일으킬 만큼 위험한 시도.

“꽤나 위험한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구나.”

닉스는 곧바로 내 의도를 알아챘다.

걱정하지 마라.

난 이래 봬도 시간 관련 성좌들의 정수를 모조리 포식, 회귀라는 기적까지 이끌어 낸 몸이다.

비슷한 기원을 띤 가호를 엮어 내는 것쯤.

두 눈에 드리운 탐욕의 가호가 만상침식에 스며들었다.

닉스가 호오,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이제 밑 준비는 끝났군.

만상침식으로 읽어낸 투사체의 마나에 탐욕의 가호를 불어넣는다.

마법을 해제하는 게 실타래를 푸는 것이라면.

탐욕의 가호는 실 자체를 내 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날아들던 [다크 미사일]의 마력 구조에 탐욕의 힘이 스며들면서 위력이 증대된다.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용자의 의지대로 날아드는 공격.

그 의지를 지워내고 탐욕의 가호로 내 생각을 덧씌운다.

방향을 돌려서 원주인에게로 날아가는 암흑 화살.

“컥!”

다크 미사일을 사출한 마법 계열 플레이어가 마른 비명을 토했다.

방출한 마법을 역으로 돌리는 기예라.

쓸 만하잖아?

시야에 들어온 마법에 모조리 간섭, 나디아 카셀이 있는 방향으로 되돌렸다.

“허무계의 효과로 무효화시키세요.”

“안 됩니다. 암흑 마나 기반 마법은 결계의 효과로 중화시킬 수 없습니다.”

하랍 세라펠의 가지가 다급하게 말했다.

칫, 혀를 찬 나디아.

“요격하세요.”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이 재배열을 끝낸 마법들을 일제히 방출했다.

원래는 다음 공세로 준비한 것.

만상침식과 탐욕의 가호가 변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럼 되받아친 마법과 원류의 위력 차이도 확인할까.

허공에서 격돌한 마력 구체들이 상쇄된다.

총 마력은 비슷한 양.

자신들의 공격을 되돌려 받았고, 마법을 준비한 시간도 비슷했으니까 위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

아니.

없었어야 했다.

“말도 안…….”

누군가의 비명이 마법끼리 격돌하면서 발생한 상쇄음에 가로막혀 삼켜진다.

빗발친 포격을 뚫고 아래로 떨어지는 마법 공세.

내가 되돌린 마법들이다.

탐욕의 가호로 침식시킨 건 내 의지대로 강화가 가능하다.

[메탈 반사 장갑]으로 전신을 보호할 때면 늘 탐욕의 가호를 드리워서 방어력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올렸듯.

만상침식으로 재배열된 마나 구조에 개입.

탐욕의 가호로 방향을 돌리면서 파괴력까지 극대화시킨 것이다.

[핀 팽 컨트롤]

[전기 사출]

송곳니를 닮은 길쭉한 물건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가시에 아른거리는 분홍색빛.

고농도로 압축된 마나탄이 쏘아지면서 되돌아온 마법들을 모두 막아 냈다.

“이걸 꺼내게 하다니, 대단하군요.”

나디아 카셀은 이를 갈며 핀 팽 위에 올라탔다.

그래.

저 칼날들이야말로 나디아의 진정한 능력, 핀 팽이다.

원격조종이 가능한 보주.

혹은 엔리케가 지닌 [킴바야 유물]과 비슷한 물건이라고 봐야지.

출력은 핀 팽이 수십 배나 위이니 어디까지나 ‘운용 구조’가 닮았다고 해야겠지만.

나디아가 핀 팽에 탄 채, 하늘 위로 천천히 올라오고 있을 때.

“전원, 유 이사를 도와라.”

노신사의 음성이 전장의 소음을 걷어 냈다.

존 도.

언제나 느긋한 태도를 유지하던 영감이 목소리를 크게 키운 것이다.

재정비를 마친 블랙 네트워크 플레이어들이 역공을 개시했다.

하랍 세라펠과 가아그셰블라의 가지들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바엘의 눈이 역소환 된 탓에 연성진의 기능이!”

“연옥 수호병을 더 부를 수 없습니다.”

바엘의 눈동자가 역소환되면서 연성진에도 큰 타격이 갔다.

크크.

더 이상 너희 마음대로는 안 될 거다.

“내가 저자를 맡겠습니다. 나머지 떨거지들을 부탁하죠.”

한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지시하는 나디아 카셀.

이전과는 다른 흉험한 살기가 그녀의 등 뒤에서 솟구쳤다.

“좋아, 대장끼리 붙어 보자, 그거지?”

“건방을 떠는 것도 거기까지입니다. 동양인.”

한 줄기 고함을 신호탄 삼아 나디아의 신형이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 * *

오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진호.

나디아는 이를 악다물었다.

‘건방지군요.’

그녀를 저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

경애하는 주군인 르네 데이비스다.

“핀 팽, 저자를 떨어트리세요.”

나디아의 손짓에 맞춰 허공으로 솟구치는 핀 팽.

각 기의 출력은 골드 수준의 마법 계열 플레이어를 넘어섰다.

[핀 팽 x 33]

[포격 모드]

원통형 뿔에 맺힌 마력 탄이 직선으로 발사된다.

핀 팽이 전개하는 광경을 빤히 보는 진호.

‘이건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

나디아는 확신을 가졌다.

만상침식과 탐욕의 가호를 엮어낸 원리를 간파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주목한 부분은 투사체를 되돌렸다는 것.

핀 팽의 공격은 일직선으로 광선을 쏘아내는 방식이다.

방향을 되돌리려면 마력 전체를 왜곡시켜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했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핀 팽을 조작해서 광선의 방향을 재조정하면 그만.

[용의 날개]

[암흑 투기]

불길하게 타오르는 새빨간 날개가 진호의 온몸을 감쌌다.

핀 팽 수십 기가 화력을 쏟아부었지만 날개를 이루는 암흑 투기를 뚫지 못했다.

마력 광선과 시커먼 깃털이 부딪치면서 상쇄되는 순간, 금세 새로운 암흑 투기가 빈자리를 메웠다.

압도적인 출력 차이.

‘저 날개가 모두 오러라니.’

나디아는 용의 날개를 금세 분석했다.

마력 양.

그리고 위력에서도 밀린다.

‘패배할 싸움은 하지 않습니다.’

적은 허무계 이계 신전의 효과로 불러낸 바엘의 눈동자조차 쓰러트린 괴물.

나디아가 정면승부에서 이길 가능성은 0이다.

그녀의 목적은 진호의 발을 묶는 것.

블랙 네트워크가 태세를 정비했다고 한들, 세례를 받아 강화된 수하들보다는 한 수 아래다.

‘어둠의 인형사를 쓰러트리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나디아는 이 전투를 소모전 양상으로 이끌 계획이었다.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진호의 전투 능력.

그렇다고 해도 인간인 이상 한계는 명확했다.

마나와 스태미나, 그리고 내공도 무한하지는 않다.

남은 블랙 네트워크를 소탕한 후에 허무계 이계 신전의 보조와 함께 차륜전으로 전환하면 이길 수 있다.

[핀 팽 x 16]

[어금니 모드]

대기하던 핀 팽이 마력을 뿔 끝에 응집시켰다.

솟구치는 오러.

빔 포격을 쏟아붓는 동안 진호에게 접근, 핀 팽 16기가 일제히 움직여서 암흑 투기를 꿰뚫었다.

‘지금!’

나디아는 용의 날개 안으로 파고든 핀 팽을 정교하게 컨트롤했다.

[핀 팽 x 16]

[배리어 모드]

지이이잉!

핀 팽의 끝이 꼭짓점 역할을 하며 16각형 배리어를 만들었다.

원래 용도는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결계.

나디아는 역으로 진호를 배리어 안에 가둬서 힘을 방출시키지 못하게 막았다.

용의 날개 바깥에서 포격을 퍼붓던 핀 팽도 동일하게 움직였다.

나머지 33개도 용의 날개 주위를 돌면서 방어막을 전개.

물 샐 틈 없는 결계가 진호를 감쌌다.

‘이대로 시간을 끌겠습니다.’

핀 팽의 배리어 모드는 요새급의 방어력을 자랑한다.

골드등급 플레이어 50명을 직렬로 연결시켜서 방어막을 친 것과 마찬가지인 출력.

르네조차 핀 팽으로 방어막을 전개하면 3분가량이 걸린다.

‘마나 소모가 심하지만 최대 4번까지는…….’

그 순간.

“날 상대로 시간을 끌 수 있다고 생각했나?”

파지지지직!

방어막이 쭉 갈라진다.

5미터 길이로 솟구친 선명한 강기.

검은 도강(刀罡)이 나디아의 정수리 위로 떨어진다.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

‘빨리 복구해야 해.’

나디아는 침착하게 핀 팽들을 조종했다.

연동 중인 소형 마나 코어.

방어막의 균열을 메워서 강기가 가는 궤적을 가로막으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복구가 되지 않아.’

이물질이 끼어든 것처럼 한 번 찢어진 방어막의 회복 속도가 더뎠다.

르네 데이비스도 파훼하지 못한 강력한 기술.

나디아는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했다.

“어떻게!”

“이미 당해 본 수법이거든.”

시커먼 강기가 그대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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