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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72화 (272/300)

272화

딸랑- 딸랑-

정문에 달린 방울이 좌우로 흔들린다.

존 도는 문밖으로 나선 진호의 등 뒤를 빤히 바라봤다.

“어떠셨나요?”

“네가 왜 한국 지부장이라는 기행을 저질렀는지 알 만하구나.”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심계와 자신감. 가까이 두면 나쁘지 않을 인물이다.”

“보스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실 줄은 몰랐는걸요.”

마담.

프리실라는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블랙 네트워크와 진호 사이에 다리를 놓은 것은 그녀다.

존 도의 고평가는 이 협상을 이끌어 낸 마담의 안목과 판단력을 간접적으로 치하한 셈.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지그시 눈을 감은 존 도.

혹시라도 발소리가 들릴까, 마담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존 도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움직임.

카페는 금세 침묵으로 물들었다.

‘허 참. 어디서 이런 자가 튀어나온 건지…… 놀랍구나.’

블랙 네트워크의 수장.

존 도는 한평생 동안 많은 이들을 만났다.

야심만만한 정치인.

재물에 눈이 먼 사업가.

스스로의 정의에 빠져 있는 몽상가.

그 외에도 온갖 인간 군상들을 만났다.

법망이 닿지 않는 암흑가를 이어 준 블랙 네트워크.

존 도가 전 세계를 아우른 조직을 만들기까지 부딪쳤던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진호는 그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특이한 인물이었다.

존 도는 1시간 전에 훑어본 자료를 천천히 떠올렸다.

[유진호]

나이 : 24

성별 : 남

탑 초대 시기 : 2025.10.9

경제력 : 낮음

가정환경

-한국에서 서민층에 해당하는 집안에서 자람. 부모님이 사고로 일찍 사망해서 할아버지와…….

진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 자료.

한 사람의 인격과 판단력, 그리고 성격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무를 자르면 나이테가 나오듯.

과거 행적을 보면 그 사람의 행동 원리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존 도가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저 대범함은 타고난 건가?’

그는 아까 나눈 대화와 자료를 대조하며 쉼 없이 생각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진호의 인생.

부모를 일찍 여읜 것이 인생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겠지만, 제3세계의 난민에 비하면 평온한 삶이다.

‘마치 노련한 정치인을 마주한 것 같으니 말이야.’

허허허-

존 도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오랜 시간을 명상했지만, 진호를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뿐이랴.

‘내 속내를 읽는 것 같구먼.’

마인드 리딩.

흔치 않지만, 플레이어 중에는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고유 능력자도 있다.

존 도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랬으면 스킬 사용 정도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마인드 리딩 대비책으로 정신 방벽 스킬을 몇 개나 익혀두었다.

만약 진호가 생각을 읽으려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신호가 왔을 것이다.

하지만.

날카롭게 세운 정신 방벽은 어떤 이상 징후도 느끼지 못했다.

‘나를 상대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다, 라.’

출처를 알 수 없는 폭넓은 정보.

블랙 네트워크의 깊숙한 사정도 제법 알고 있는 듯했다.

무력은 어떠한가.

골드 문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진호가 단신으로 골든 서클 팀을 이겼다는 정보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구를 통틀어서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

‘왜 클리포트에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 없지만.’

진호가 대화 내내 숨기려고 했던 사실.

클리포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은 대화 끄트머리에서야 읽어낼 수 있었다.

핵심을 간파했음에도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것은 블랙 네트워크에 손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프리실라. 그 아이의 안목은 언제나 감탄스럽구나.’

존 도는 다시 한번 미소를 지었다.

블랙 네트워크는 암흑가의 지나친 팽창을 막는 저지선이다.

세계평화 같은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존 도의 목적은 무법지대의 조율자가 되어서 호의호식하는 것.

범죄단체가 너무 날뛰면 이익에 반하기에 일정한 선을 넘지 않도록 조정했다.

너무 더럽지도.

그렇다고 깨끗하지도 않은 회색.

존 도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이다.

‘유진호. 그 친구라면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 같구먼.’

오른손에 들린 [갈라테아의 도면].

무공 사용자에게는 초절정 비급이나 영약에 비할 정도의 엄청난 아이템이다.

인형사의 전투력은 조종하는 인형의 능력에 비례했다.

갈라테아의 도면을 해독하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인형을 제작할 수 있을 터.

‘흘흘, 기대가 돼.’

존 도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얼마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길드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뜸 본론을 꺼냈다.

토마스 분석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마스터, 갑자기요?”

“예, 클리포트의 꼬리를 잡아서요.”

“클리포트라면…… 비무장지대에서 쓰러트리셨던 엘드리치 드래곤 말입니까?!”

“종파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습니다.”

깊게 설명할 수는 없다.

클리포트에 대한 정보는 제한되어 있다.

탑 상층부에 접근하지 않는 이상, 내막을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블랙 네트워크에 그 정보를 공유한 것은 더 새어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다.

지금처럼 길드원들한테 이야기하면 비밀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

이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말실수라는 건 거창한 사건보다 사소한 상황에서 자주 나오기 때문.

비밀을 여럿에게 공유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엘드리치 드래곤 같은 괴물이 또 나타날 수도 있다니.”

“놈은 불완전한 상태라고 하지 않았나?”

“온전한 모습으로 소환되었으면 말 그대로 재난이야.”

꿀꺽-

옐로우 스톰 출신 플레이어 하나가 침을 삼켰다.

국내 플레이어 중 0.01%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들조차 긴장하게 만든 괴물.

엘드리치 드래곤이라는 이름은 그만한 무게감을 지녔다.

“스승님, 저도 같이 갈 거예요.”

지영이가 질근 입술을 깨문 채 앞으로 나섰다.

흔들림 없는 눈빛.

어떤 흥정조차 거부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표정에 아른거린다.

-지영이는 진심인 것 같구나. 혼에서 느껴지는 파장이 예사롭지 않아.

해설 안 해 주셔도 알거든요?

마피아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부수느라 1달가량 잠적을 감췄을 때.

다시는 홀로 위험한 짓 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게 떠올랐다.

지영이의 굳은 표정을 보니 그때가 떠올랐지만…….

“안 된다.”

“약속하셨잖아요.”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다.”

“위험하지 않으면 더더욱 저희를 데리고 가셔야죠. 우린 동료잖아요.”

정곡을 찌르는군.

나는 길드원들을 쭉 훑어보았다.

엘드리치 드래곤이 언급되었을 때만 해도 두려운 기색이 감돌았다.

지금은 달랐다.

한층 뜨거워진 공기.

지영이의 외침에 엘드리치 드래곤을 마주했을 때 느낀 두려움을 모조리 떨쳐 내고 투지를 불태웠다.

이런.

겁주려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되면 단독 행동이 힘들어지잖아.

-후후훗, 난감하게 되었구나.

남이 곤란해 하는 걸 보면서 웃지 마쇼.

클리포트에 대한 정보.

그리고 블랙 네트워크와의 관계.

현시점에서는 밝히기 부적절한 것들 뿐이다.

길드원들한테 적당히 둘러댈 생각이었는데 지영이의 말이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그대는 너무 수하들을 아끼는 경향이 있도다.

-내가 아낀다고?

-지영이를 비롯한 이들을 왜 불러 모은 게냐.

-그거야 미래를 대비해서…….

-바로 맞췄구나. 그대의 개입이 없었어도 정점에 가까운 위치까지 올랐던 이들이니라.

난 닉스의 말에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래.

옐로우 스톰이나 무극 팀원들은 그렇다 쳐도.

지영이를 포함한 길드원들은 미래에 하이 랭커, 혹은 군주의 자리까지 올라간 이들이다.

내가 회귀 후 빠르게 전성기의 실력을 되찾아가듯.

이들도 나를 만남으로써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강해지고 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느 쪽이든, 전생보다 더 빠르게 완성되어가는 건 맞았다.

“스승님?”

“아, 미안.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길드원들은 언제까지나 품속에 둘 아이가 아니다.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모은 전우들.

이미 둔황 사막에서 혈전을 겪으면서 선을 한번 넘기까지 했다.

그 누가 적이든.

칼날을 추켜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단련되었다는 것이다.

“엘렌 상무.”

“왜, 결심이 섰나?”

여태 관망 중이던 엘렌에게 시선을 옮겼다.

“당신네 길드. 블랙 네트워크와 선을 두고 있지?”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런 걸 물어보니 당황스럽지만…… 대답을 유예할 분위기가 아니네.”

엘렌은 한숨을 살짝 쉬었다.

“마스터가 연락을 주고받으실 거야. 자세히는 몰라.”

“이번에 클리포트의 꼬리를 잡은 게 블랙 네트워크다. 난 그 의뢰를 받은 거고.”

선후관계가 역전되었지만.

내가 블랙 네트워크의 신입 이사가 되었다는 말을 다 해 줄 수는 없었다.

“아저씨는 그놈들을 혼자 상대하려고 했어?”

“드러난 건 말단에 불과해. 그러니 홀로 움직이겠다.”

“사부, 지영이가 말했듯 우린 동료요. 그 짐을 혼자 지려고 하지 마시오.”

엔리케와 핑 레이도 목소리를 높였다.

평소엔 지영이랑 으르렁거리면서 싸우기 바쁜 녀석들인데.

한 목소리를 내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엘렌. 부탁 하나만 하자.”

“내 권한 내에서라면 뭐든지.”

“클리포트의 흔적을 발견하면 블랙 네트워크에 공유할 거다.”

“그걸 역천 길드에 전해 달라?”

“응, 놈들을 찾아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거든.”

암흑가에 스며든 클리포트 종파.

놈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하루 이틀 가지고 끝날 일이 아니다.

“길드원들의 힘이 필요할 때가 되면 연락할 테니.”

“알겠어. 그 정도야.”

흔쾌히 대답하는 엘렌.

두 랭커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습니까?”

“후배님이 나름 양보했으니 받아들여야지.”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십쇼. 예슬이를 구해 준 은혜를 아직 다 못 갚았으니.”

신준석과 홍윤수가 팀을 대표해서 말했다.

이제 마지막 고비군.

지영이와 눈을 마주치니, 습기가 눈가에 아른거렸다.

엄청 잘못한 것 같잖아.

“조금만 기다려줘.”

“……다음에는 스승님 옆에 서 있을 거예요.”

휴.

나는 한숨을 삼켰다.

다가올 전쟁을 대비해서 모은 동료들.

여태까지는 길드원들을 챙겨줘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해 왔다.

닉스의 지적이 없었더라면 그럴듯한 변명으로 설득할 생각만 했겠지.

-여신님, 고마워.

누구도 듣지 못하게 전음으로 마음을 표현하며 빙그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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