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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71화 (271/300)

271화

마약 카르텔.

삼합회.

마피아.

그 외에도 전 세계를 뒤져보면 사회의 질서를 피한 무법 지대의 주민이 바글바글하다.

블랙 네트워크는 세계 각지에 산재한 범죄 조직들을 이어주고 있다.

-범죄 조직의 정점 치고는 혼이 탁하지 않구나.

-여신님, 관심법이라도 익힌 거야?

-흐응, 그게 무엇이더냐.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거.

-일전에도 말하지 않았더냐. 영혼의 파장을 읽는 정도는 할 수 있노라고.

닉스는 흥미로운 눈으로 어둠의 인형사를 바라보았다.

블랙 네트워크의 보스.

어둠의 인형사는 세간에 알려진 악명과 달리 의외로 ‘중립’을 표방하는 인물이다.

-범죄 조직이나 테러 단체가 선을 넘지 못하게 조율하는 양반이야.

-그럼 범죄 조직의 수장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해 암약한다는 표현이 맞지 않겠느냐?

-제 잇속은 챙기지. 그렇게까지 깨끗한 건 아니고.

어둠의 인형사가 추구하는 건 균형.

어느 나라든, 법이 닿지 않는 공간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 어둠이 너무 커져서 대칭을 이루는 사회까지 파멸시키지 않게 조정하는 것.

블랙 네트워크는 그 과정에서 얻는 수입으로 운영된다.

-그러니까 악어랑 악어새 같은 사이다.

-적절한 예시로구나.

닉스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늙은이를 앞에 두고 오래 이야기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이런.

전음과 여신님의 영력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용케 눈치챘군.

-대화 내용을 알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난 빙그레 웃으면서 슬쩍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전음이나 영력으로 전달한 메시지.

동일한 능력을 다루거나 [의지] 전달에 간섭하는 스킬, 혹은 고유 능력이 있어야 상대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내 기색을 보고 읽어낸 거겠지.

“계약을 맺은 존재가 당신을 궁금해 하길래 말입니다.”

“그 소환수, 마담에게 이야기를 들었었지.”

-여는 소환수 따위가 아니니라.

도도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닉스.

미니 사이즈인 영체로 말하니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어찌 되었든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 터. 참고로 내 시간은 꽤 비싼 편이라네.”

“클리포트.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자네가 언론에 발표한 것보다는 조금 더 알고 있다만.”

“그럼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클리포트.

차원의 질서를 상징하는 나무, 세피로트와 대칭을 이루는 이면세계의 나무다.

실존하는 ‘세계’와 다르게 개념만 잡힌 거짓된 공간.

거울에 투영된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니듯, 클리포트의 나무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클리포트 추종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짐작 가십니까?”

“허수에 불과한 것을 진짜로 만들려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불어넣어야겠지.”

벌써 거기까지 짐작한 건가.

클리포트와 관련된 정보는 바벨탑 안에서 극비로 취급된다.

나야 회귀 전의 지식이 있으니 아는 거지만.

어둠의 인형사가 탑 안에 있는 클리포트 관련 정보를 얻진 못했을 것이다.

한정되어 있는 정보로 이만큼이나 추리할 줄이야.

이 양반이 괜히 블랙 네트워크의 수장으로 군림하는 게 아니다.

“맞습니다. 이 세계의 자원을 빼앗아서 클리포트에 채워 넣으려고 하는 거죠.”

“그 이야기 때문에 보자는 건 아니기를 바라지.”

“클리포트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악 계열 성좌들 아니겠나. 일전에 자네가 근절시켰던 이들처럼 말일세.”

“탑의 운영자들입니다.”

어둠의 인형사는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자연스러운 행동.

대화의 흐름이 끊어졌지만 컵에 손을 뻗는 타이밍이 원체 절묘해서 위화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저 필멸자가 꽤 당황한 듯하구나.

나도 닉스의 지적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넘어갈 뻔했으니까.

바벨탑의 운영진.

현시점에서는 운영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고신족들이 마각을 드러내는 건 2차 대침식 이후.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건 침식도가 100%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까 3차 침식 때다.

그전에는 고신족과 대립할 일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다.

생각이 복잡해졌을 거다.

탑의 운영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클리포트와 연관성을 제시했으니 내 정보의 신빙성 유무를 판단하기 어렵겠지.

“제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 책임지지 못 할 말은 하지 않았으리라 믿네.”

어둠의 인형사는 에둘러 경고했다.

내 신용.

그리고 블랙 네트워크와의 관계를 걸고 정보의 신빙성을 보장하라…….

손해 안 보려고 하는 건 여전하구먼.

“어찌 되었든 자네가 클리포트에 대해 남다른 지식을 보유했다는 건 이해했다네.”

“제 말을 신용해 주시니 감사하군요.”

“다만 이 늙은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

어둠의 인형사는 슬며시 웃었다.

감정 하나 드러나지 않은 공허한 눈빛.

두 번의 삶을 살아오면서 인간의 감정을 읽는 데 능숙해진 나조차도 어느 것 하나 파악할 수 없는 표정이다.

“자네가 이번 일에 개입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어르신께 정보를 전하는 것뿐입니다만.”

“허허, 정말 거기서 만족하고 물러난다면 내 이해하도록 함세.”

이 영감.

클리포트와 관련된 정보의 출처를 이런 식으로 돌려서 알아내 보시겠다?

나랑 클리포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듯했다.

클리포트를 적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회귀라는 이적까지 언급해야 한다.

그건 좀 곤란하다.

지영이를 포함한 길드원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을 블랙 네트워크의 수장에게 풀 수는 없지.

난 미리 준비해둔 핑곗거리를 꺼냈다.

“블랙 네트워크의 이사직.”

“허허허. 마담, 우리 회사에 이사라는 직함이 있던가?”

“아뇨. 지금까지는 없었죠.”

마담의 대꾸에 어둠의 인형사가 흘흘, 하고 웃었다.

나는 의자 뒤에 등을 기댔다.

얼마쯤 지났을까.

차를 홀짝이던 어둠의 인형사가 입술을 떼었다.

“존 도. 앞으로는 나를 그리 부르게.”

신원 미상이라는 의미의 이름.

어둠의 인형사가 신뢰하는 이들에게 알려 주는 ‘진명’이다.

“알겠습니다.”

“블랙 네트워크의 신입 이사. 조직을 위해 힘써 주었으면 하는군.”

오른손을 내미는 존 도.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손을 마주 잡았다.

* * *

블랙 네트워크 이사직.

뜻하지 않은 이득을 얻었다.

-꽤 출세하였구나.

-이름뿐인 명예직이지만.

신설된 간부급 직함.

블랙 네트워크 안에서 영향력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어둠의 인형사.

아니, 존 도도 내 말에 담긴 뜻을 읽었을 터.

과거 마담에게서 얻어낸 ‘한국 지부장’보다 직위가 올라간 것뿐이다.

-하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더 늘어나잖아.

존 도와 직통 연락이 가능하다는 것도 나름대로의 장점이다.

블랙 네트워크.

전 세계 각지의 암흑가와 접점이 있는 조직을 원할 때마다 호출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이점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우리 신입 이사님의 의견을 듣고 싶군.”

“클리포트가 어디에 뿌리를 내렸는지 알려주시죠.”

“브라질, 알제리, 그리고 니제르라네.”

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전생과 달라진 클리포트의 세력 확장.

원 역사에서는 미국의 컬트 집단과 콩고 반군, 그리고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라고 멸시당하는 이들 사이에 스며들었다.

하기야.

클리포트가 지구에 발호하는 시기부터 틀어져 버렸는데 이 정도야 당연한 변수인가.

쓴웃음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클리포트의 주요 자원이 뭔지 아십니까?”

“마약은 아닌 것 같더군.”

“사람입니다.”

존 도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인적 자원이 필요하면 굳이 제3세계에 국한할 이유가 없을 터.”

“생각하신 게 맞습니다.”

존 도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인신 공양?”

“예, 마야 문명과 다르게 실효성까지 있죠.”

클리포트는 허수 공간에 머문다.

이면 세계에서 괴물이나 악마, 혹은 힘을 얻는 방법은 여럿 있으나 가장 쉬운 건 살아있는 제물이다.

흔히 인신 공양이나 제물 하면 악마를 떠올리지만 절반만 맞다.

악마들은 산 제물보다 영혼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거든.

“제3세계에서는 사람 목숨이 파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꼭 본 것처럼 말하는군.”

“간접경험이죠. 다큐 보면 많이 나옵니다.”

닉스가 힐끗거렸다.

-언제부터 그런 것을 보았다고.

-둘러댈 핑계는 있어야지.

다큐멘터리 볼 시간이 어디 있나.

샐쭉한 표정을 짓는 닉스를 무시하며 존 도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프리실라. 신입 이사의 발언, 어떻게 생각하느냐?”

“맞을 거예요. 알제리에서 행방불명 사건이 부쩍 늘었거든요.”

마담이 대꾸했다.

살짝 흔들리는 목소리.

존 도가 내 앞에서 그녀의 실명을 거론할 줄은 몰랐던 듯했다.

“덕분에 클리포트의 꼬리를 잡았구먼.”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신입 이사한테는 기대하는 게 많다네.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빚지는 건 싫어해서요. 이번에 힘을 실어드리죠.”

“자네, 블랙 네트워크의 행사에 손을 얹겠다는 의미인가?”

“나름대로 이사인데 밥그릇 건드는 놈들을 가만둬서 되겠습니까.”

존 도는 클리포트 일파를 블랙 네트워크의 힘만으로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을 에둘러 거절한 것은 ‘이사’직을 준 것에 대한 빚을 달아두겠다는 의미.

인신 공양이라는 정보의 가치가 크다고 한들 블랙 네트워크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직함을 받아 낼 수준은 아니다.

뭐, 빚을 달아두는 건 상관이 없지만.

이번에 나선 진짜 목적은 클리포트 일파를 없애는 것이다.

블랙 네트워크가 음지에 스며든 클리포트 일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전생에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었다.

“존 도. 알제리행 비행기를 수배해 주시죠.”

“클리포트 일파를 자네가 직접 상대할 생각인가?”

“예, 이미 엘드리치 드래곤을 쓰러트린 경험이 있으니까요.”

블랙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거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무거운 침묵이 카페 공기를 짓누른다.

나는 깍지를 낀 채 느긋하게 존 도의 대답을 기다렸다.

“알겠네. 하나, 조건을 걸지.”

“말씀하시죠.”

“자네의 보조로 프리실라가 따라갈 걸세.”

오호.

마담을 붙여 준다는 건 내 편의를 봐주면서도, 감시역을 겸한다는 뜻이다.

클리포트의 위험성이 과대 포장 된 것이라면 다른 것으로 이사직의 대가를 받아 가겠다는 말.

“당사자 의견은 안 물어보고요?”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시키신다면.”

마담은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좋군, 그럼 오늘 안에 마무리해야 할 일을 모두 끝내주게나.”

주어진 시간은 하루.

우리나라를 떠나는 순간부터 전장에 발을 딛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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