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데모닉 파워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후우-
크게 심호흡하며 고개를 위로 젖혔다.
초토화된 요새.
솔라 익스플로전과 아발란체의 반발력을 극대화시키니 목책 따위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인근 수 킬로미터를 감싼 요새가 말 그대로 삭제되었다.
-참으로 무자비한 공격이로구나.
“오우거들을 다 쓸어 버리지도 못했는걸.”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요새 안쪽을 슬쩍 가리켰다.
수백에 달하는 오우거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일행을 노려보고 있다.
“아무래도 요새를 부수는 건 정석적인 공략이 아닌 모양이야.”
솔라 익스플로전과 아발란체의 연계 공격.
원래대로라면 충돌과 함께 발생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져야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요새 방벽은 두 마법의 반발력을 극대화시켜서 만들어 낸 파괴의 에너지를 모조리 흡수했다.
결과적으로 요새가 제 기능을 잃어버렸지만.
주둔 중이던 오우거들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다.
-아까 말한 트윈 헤드 오우거의 수작인 모양이구나.
“게이트의 영향도 있을걸.”
트윈 헤드 오우거 따위가 내 마법을 버텨낼 리 없지.
소득이 전무 한 건 아니었다.
요새 위에서 바위를 던지던 오우거들이 폭발에 휩쓸려서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했고.
지름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크레이터가 요새 주위를 크게 둘렀다.
한계 이상으로 쏟아지는 열기에 녹아 버린 대지가 기포를 펑펑 터트렸으니.
오우거의 도약력으로도 저 크레이터를 뛰어넘는 건 쉽지 않았다.
“후배님,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기게.”
크고 작은 크레이터를 건너뛰는 오우거들.
강풍이 채찍처럼 늘어 나면서 오우거들의 몸뚱이를 후려쳤다.
“네놈들은 우리 몫이다.”
“후배님, 잠시 구경이나 하고 있게.”
두 랭커의 눈에서 기이한 열망이 꿈틀거렸다.
“의욕 넘치는 건 좋지만 지휘에서 벗어 나지는 말아 주십쇼.”
총지휘 담당은 영수 형님이다.
멋대로 나가는 건 선배님들이라고 해도 곤란하다고.
무극, 옐로우 스톰, 그리고 내가 모은 길드원들이 세 꼭짓점을 이루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포지션.
크레이터를 뛰어서 산발적으로 넘어오던 오우거들은 회전하듯 움직이는 길드원들의 연계 공격에 갈려 나갔다.
숫자가 많으면 뭘 하나.
한 번에 달려드는 숫자가 적으면 의미가 없었다.
“쿠어어어! 인간 놈들!”
“쿠어! 쿠어! 죽인다.”
최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머리 둘 달린 오우거.
10미터 크기의 괴물은 왼손으로 붙든 지팡이를 크게 휘둘렀다.
[절대영도]
저저저적-
냉기가 들끓던 용암을 식힌다.
-제법이지 않느냐. 그대와 마법 대결을 벌이고도 마법을 펼칠 여력이 있다니.
“아티팩트 빨이야.”
트윈 헤드 오우거의 마력은 바닥이 난 지 오래다.
정확히는 요새의 결계를 유지하느라 강제로 소모되었다고 봐야지.
솔라 익스플로전과 아발란체의 연계 공격을 막은 것 치고는 싸게 먹힌 셈.
본신의 마나를 대부분 소진한 탓에 마법의 위력도 형편없었다.
“쿠어어어! 여길 건너가라! 전사들이여!”
오우거들은 크레이터를 도약하는 대신 발판을 밟으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조금 곤란하게 되었구나.
“곤란하긴, 제 꾀에 스스로 넘어간 꼴이지.”
절대영도의 냉기가 굳힌 땅은 경차 하나가 지나갈 정도의 넓이에 불과했다.
“저 좁은 길을 건너온다고 노력하는 거 봐봐.”
오우거의 덩치는 2층 건물에 비견될 만큼 커다랬다.
건물 여러 개가 줄지어 징검다리를 건너는 꼴.
트윈 헤드 오우거가 만든 발판은 오우거들을 살아있는 과녁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 차례군.”
[퍼펙트 스톰]
홍윤수의 발에 휘감긴 바람이 해방되었다.
강철조차도 찢어발기는 맹렬한 폭풍.
냉기로 만든 발판 위에 올라탄 오우거들이 바람 앞에서 속절없이 흔들렸다.
정면으로 맞서다가 몸뚱이가 분해 되던지.
아니면 바람을 피하다가 펄펄 끓는 용암에 빠지던지.
치명적인 양자택일에 오우거들이 허둥댔다.
“길드장님, 화랑 길드가 이동속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쪽의 움직임을 알아챘나 보네요.”
“약 30분, 그 이상 시간을 끌면 화랑과 경쟁해야 합니다.”
“충분합니다.”
나는 영수 형님에게 다가갔다.
“저 녀석은 제가 처리할 테니 오우거들 좀 막아주세요.”
“알겠습니다.”
트윈 헤드 오우거는 강적이다.
마나를 대부분 소모한 탓에 마법 능력이 봉인 당했지만.
어마어마한 근력과 속도, 그리고 방어력은 다이아몬드 등급 플레이어조차 압도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 같은 적을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
지속적인 소모전으로 체력을 깎거나.
“아니면 힘으로 압도하거나.”
-두 번째 방법이 그대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로구나.
닉스가 빙그레 웃었다.
“쿠어어어! 인간!!”
“쿠어어! 용서 안 한다!”
머리 둘은 분노의 일갈과 함께 지팡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붕 떠오른 트윈 헤드 오우거의 몸뚱이.
오른손에 쥔 도끼가 하늘 위를 가리켰다가 궤적을 그리며 아래로 쏟아진다.
팔뚝 위로 도드라지게 튀어나온 두꺼운 혈관. 태산조차 가를 것 같은 거력이 도끼에 실렸다.
푸른빛으로 물드는 날.
톱니처럼 잘게 생긴 오러 여럿이 맹렬하게 회전한다.
[진동 결계 x 10]
지영이는 ‘방패’라는 이미지 구현 없이 허공에 구현할 수 있는 최대 숫자를 펼쳤다.
더 많이 겹칠수록 방어력이 상승하는 진동 결계.
콰지직! 오러 톱날이 회전하면서 결계를 하나하나 분쇄했다.
트윈 헤드 오우거의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연거푸 펼쳐지는 결계를 부수느라 도약 때의 파괴력이 대부분 상쇄되었다.
“이 녀석, 힘이 뭐 이리 세요?”
“지영아, 받아 내지 말고 저쪽으로 밀쳐 내.”
“끄응,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고요!”
투덜거리면서도 지영이가 결계를 발판 삼아 허공으로 도약했다.
다른 곳에 결계를 치느라 트윈 헤드 오우거를 붙들던 힘이 약해졌다.
“쿠어어어, 죽인다!”
“쿠어! 찢는다. 먹는다.”
흉험한 살기와 함께 아래로 떨어지는 트윈 헤드 오우거.
지영이가 양손에 결계를 덧대어 충돌시켰다.
대기를 진동시키는 충격파.
트윈 헤드 오우거의 피부 거죽을 뚫긴 부족했지만.
“쿠어어어어어어-!”
수십 톤 무게의 괴물을 튕겨낼 정도의 힘이 있었다.
엉뚱한 곳으로 떨어진 트윈 헤드 오우거.
놈의 몸뚱이에 걸린 수목이 우지끈, 부러지면서 소란이 일어났다.
“영수 형님, 저놈은 제 몫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일행에서 잠시 이탈, 트윈 헤드 오우거가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흙과 나뭇가지로 범벅이 된 놈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충격파에 휩쓸리면서 받은 충격이 꽤 컸을 텐데 그 흔한 찰과상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쿠어어어어어!”
“그만 짖어라. 시끄러우니까.”
축지를 발동.
트윈 헤드 오우거의 턱밑으로 이동해서 봉황각을 펼쳤다.
다리에서 솟아나는 불꽃.
수라마령심공으로 일으킨 암화(暗火)가 턱뼈를 으스러트렸다.
이제 떠들지는 못하겠지?
“쿠어어어! 아프다!”
아.
머리가 하나 더 있었지.
“닥치게 하려면 조금 더 힘내야겠네.”
오른발을 거두면서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 * *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이동한 화랑 길드.
요새 후문으로 가는 길은 산세가 험한 대신 오우거의 출몰 빈도가 정면보다 적었다.
‘네 선택이니 후회하지 마라. 유진호.’
오장우는 출발할 때만 해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당초에 갈림길에서 요새 정문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한 건 진호였다.
역천 길드가 패배한다 한들, 뒷말이 나올 여지가 없었다.
오장우는 역천 길드가 우측으로 가는 것을 본 직후,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제1 전투 행군을 유지한다.”
“알겠습니다!”
부상을 도외시한 이동.
화랑 길드는 오우거들의 습격을 무시하면서 전진했다.
시간제한이 걸린 전투.
역천 길드가 요새 정면으로 가서 스스로 어그로를 끌어 주니 이만한 기회가 없었다.
협회에서 배당받은 후, 앓는 이처럼 여겨졌던 [오우거 요새]를 폐쇄해 버릴 찬스.
더불어 역천 길드와의 영향력 싸움에서 한 발자국 앞서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힐! 치유가 필요해!”
“포션으로 버텨. 지금은 치유에 쏟을 시간이 없다.”
치유와 마나 회복 포션.
그 외에도 이번 레이드를 위해 준비한 소모품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무리하면서 나아간 덕에 오우거 요새를 탐색했던 때보다 훨씬 빠르게 후문에 도달했다.
한데.
이미 ‘문’이라고 부를 만한 건 남아있지 않았다.
지면에 새겨진 수많은 크레이터.
푹 꺼진 땅에서는 용암이 들끓었고.
요새를 지켜야 할 오우거들은 용암 구덩이를 건너뛰면서 침입자들에게 내달렸다.
그 침입자란, 정문 근처에서 고전했어야 할 역천 길드였다.
“쿠어어어어!”
트윈 헤드 오우거가 괴성을 질렀다.
초인적인 육체와 마법 능력 모두 가진 보스 몬스터.
국내 랭킹 1위 플레이어인 오장우도 1대1로는 상대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괴물이다.
진호는 그 막강한 적을 상대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겨루었다.
[공허의 거울]
[원시종 - 티라노사우루스]
[신의 분노]
[우라즈 베르세르크]
[밤의 가호]
[드래곤 폼]
…….
온갖 버프를 두르는 걸로 모자라 공룡의 모습까지 취한 진호.
‘몇 초나 버틸 수 있을까?’
오장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었다가는 비명을 내뱉을 것만 같았다.
“캬오오오오!”
진호가 울부짖자 산천초목이 떨렸다.
몸에 난 솜털이 삐죽삐죽 선다.
본능적인 두려움.
포식자 앞에 선 초식동물의 기분이 이러할까.
콰득! 트윈 헤드 오우거의 팔이 진호의 입에 붙들리더니 섬뜩한 소리와 함께 뽑혀 나갔다.
지면을 나뒹구는 팔뚝에서 푸른 피가 솟구치고.
“쿠어어!”
트윈 헤드 오우거가 구슬픈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하라고 했지?”
남은 머리의 턱이 뿌득거리면서 산산조각 났다.
바닥을 질질 기고 있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괴물인가.
먼 옛날,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던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을 한 진호가 괴물인가.
화랑 길드원들은 순간적으로 누가 적인지 헷갈렸다.
오우거들의 공세를 뚫고 여기까지 나아왔지만.
막상 진호의 ‘진심’을 보니 모든 전의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길드장님, 어서 공격 명령을!”
임원 한 명이 가까스로 용기를 쥐어짰다.
“관두자.”
“예?”
“못 이겨. 저 괴물은.”
오장우는 후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유진호의 능력을 규정하려고 했던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각성 2년 차?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힘 차이.
진호가 모든 힘을 끌어낸 것을 보니 전의가 사라졌다.
‘구룡방의 정예를 몰살한 건 게이트 브레이크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 자리에서 진호를 공격하면 화랑 길드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동원 가능한 인원을 최대한 끌어모은 것이 도리어 화랑의 몰살로 이어지는 가능성을 만들어 버렸다.
“이번 승부는 우리의 패배다.”
“기, 길드장님!”
“국내 3대 길드에서 밀리지 않을 정도로만 힘내도 되잖아.”
열등감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후- 짧게 한숨을 쉰 오장우의 동공에는 트윈 헤드 오우거의 숨통을 끊고 포효하는 진호가 비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