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나는 오장우에게 다가갔다.
“숫자가 늘어났군요?”
“우리 길드의 진심을 보여 줘야지.”
허 참.
이제는 기 싸움하려는 의도를 숨기지도 않는다.
어제 보여준 퍼포먼스에 그렇게나 충격을 받은 건가.
“지금까지 파악한 오우거 요새 내부 구조다.”
“이걸 주는 이유가 뭡니까?”
“두 길드가 총력을 동원했으니, 아무 조건 없이 공략하긴 시시하지 않나.”
“진형을 나누자는 말이군요.”
“요새 근처에 있는 오우거들의 시선도 분산시킬 겸 말이야.”
말이 좋아서 시선 분산이지. 게이트 공략을 두고 타임 어택을 하자는 말이다.
인원을 2배로 늘린 이유가 너무 뻔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좋습니다.”
몸을 홱 돌려서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스승님, 화랑 길드에서 무력 시위라도 한대요?”
“비슷하지, 우리랑 싸우는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둔황 사막에서도 그랬잖아요.”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잖아.”
화랑 길드가 둔황 사막에서 벌어진 혈전의 진상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공동 공략 같은 걸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에서야 함정을 팔리는없으니.
“분석관님, 모두 집합시켜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후, 길드원들이 앞에 모였다.
“우린 이제부터 화랑 길드와 공략 타임 어택을 할 겁니다.”
“예상했던 전개 중 하나구먼. 후배님.”
“다른 꿍꿍이가 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십니까?”
홍윤수의 질문에 토마스 밀러가 입술을 떼었다.
“게이트 내부에 함정이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어제 게이트를 공략하는 동안 토마스 밀러도 손 놓고 있지 않았다.
토마스의 고유 능력은 분석에 특화되어 있다.
게이트 곳곳에 시선을 퍼트려서 화랑 길드의 함정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잘 썼습니다. 엔리케.”
“토마스 아저씨. 흠집 난 거 있으면 청구할 거야.”
엔리케가 투덜거리면서 [캄비야 유물]을 품속에 넣었다.
초전 이후, 나는 성유물을 토마스에게 잠시 빌려 달라고 이야기했다.
캄비야 유물은 공격에만 특화된 성유물이 아니다.
사용자와 시각을 공유. 정찰에도 탁월한 효과를 지닌 오파츠다.
토마스 분석관은 메카닉 능력자가 아니라서 엔리케처럼 수십 개로 분화시키진 못 했다.
그럼에도.
“시야가 높아지니 좋더군요.”
고유 능력을 십분 활용해서 대수림을 훑었다.
“지도에 틀린 점은 있습니까?”
“깊이까지는 확인하지 못 했습니다만. 제가 본 것과 일치합니다.”
“화랑이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데 피할 이유가 없죠.”
“동감입니다. 이번 기회에 오장우의 코를 눌러줄 수 있겠군요.”
홍윤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 *
총지휘는 늘 그렇듯이 영수 형님에게 맡겼다.
“길드장님도 계신 데 제가 굳이…….”
“새삼 약한 척하지 마세요. 형님. 가장 적임자니까 맡기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탐색은 분석관님이 맡아 주세요.”
“후, 제가 역천 길드 게이트 공략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군요.”
토마스가 긴장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석 능력자를 가만두고 놀리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야.
토마스가 전투 능력이 거의 전무하긴 해도 [분석] 능력의 희소성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레벨을 올려 줘야 한다.
우리 분석관의 능력을 일깨울 방법은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게이트 공략 시작 전.
오장우가 지도를 다시 한번 펼쳤다.
“어제 공략한 곳이 여기인데, 그곳을 기준 삼아 좌우로 갈라져야 하지.”
“선택권을 우리한테 먼저 주는 겁니까?”
“그 정도는 선배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선배는 무슨.
두 눈에 아른거리는 열등감이 잡힐 듯 훤히 보이는 데 퍽이나 신용이 가겠다.
나는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쪽은 요새 정문으로 향하는 길이다만.”
“어차피 싸울 적인데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까?”
“정론이군, 그럼 무운을 빌지.”
오장우가 입술을 질근 깨물며 화랑 길드 쪽으로 향했다.
증원된 인원.
100명에 달하는 화랑 플레이어들이 나를 흘겨본다.
참 의외란 말이야.
오장우도 국내 1위라는 위치를 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윌리엄 록펠러처럼 꼭 아군으로 둬야 할 만큼 뛰어나지는 않기에 서열 정리를 할 생각이었지만.
회귀 전 오장우의 행보를 생각하면 수작질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정공법으로 나설 자가 아니라는 말이로구나.
“응, 근데 함정이 아니라니까 이상해서.”
-그대가 알고 있는 미래가 꼭 동일한 것은 아니니라.
“왜 그런 말을 해?”
-오장우라는 자. 열등감은 있으나 사특한 감정을 품지는 않더구나.
그래.
사람은 바뀔 수 있다.
장 우페이처럼 파멸의 방아쇠를 훨씬 빨리 당겨 버린 적도 있지만.
반면에 핑 레이와 같이 설득(육체적 대화)을 통해 마음을 돌이킨 인물도 있다.
홍윤수도 내가 미래를 바꾼 덕에 피로 젖은 길 대신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던가.
“먼저 선을 넘지 않으면 과하게 손 쓸 필요야 없지.”
난 가볍게 웃었다.
일행은 울창한 숲을 빠르게 나아갔다.
미리 오우거들을 정리해 둔 덕분에 발목이 잡힐 일은 거의 없었다.
“쿠어어어!”
간혹 오우거 무리가 기습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길드장님. 4시 방향, 1.5킬로미터 거리에서 오우거 13마리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7시 방향. 2.1킬로미터…….”
토마스 분석관의 눈을 벗어 나지는 못 했다.
핑 레이의 등에 업혀 있어서 볼품없긴 해도 적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모두 전진에만 신경 써요.”
난 오우거 무리가 나타날 때마다 일행에서 벗어났다.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공세에 일일이 대응하다 보면 발이 묶이기 마련.
공략 타임 어택.
운신이 자유로운 내가 발품을 더 파는 수밖에.
“둘 다 나와라.”
[공허 비추기를 사용합니다.]
[원시종 – 티라노사우루스 ‘렉시’를 불러냅니다.]
[아크 군주 리치 ‘아크’를 불러냅니다.]
“캬오오오!”
『죽음의 냄새가 충만하구나.』
“냄새 타령 하지 말고 저 놈들이나 정리해라.”
『주인님의 명대로.』
어제 공략에는 화랑 길드의 시선을 의식해서 꺼내지 않았던 비장의 수.
아크와 렉시를 전장에 풀어 놓았다.
“캬오!”
탈 플래티넘급 괴물인 오우거라 한들, 원시종의 정점에 선 렉시한테는 상대가 안 됐다.
날카로운 이빨이 두꺼운 근육을 종이처럼 찢어발기고.
쓰러진 오우거의 사체가 헬 나이트로 재생되었다.
헬 나이트들은 아크에게 종속된 존재.
공허 비추기로 역소환 후 다시 불러내면 그 전에 만들어 둔 헬 나이트들이 모두 파괴된다.
전력 보전이 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도둑놈 소리 듣겠지?
불어난 전력으로 다시 일행에게 합류했다.
헬 나이트가 늘어나니 오우거들의 습격을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네가 처리해라.”
『주인님께 봉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습격은 아크에게 전담시켰다.
헬 나이트를 50기까지 늘린 후에는 남은 시체를 포식.
[오우거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 고대]
[포식한 정수 :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기가임팩트가 추가됩니다.]
[기가임팩트]
등급 : ★★★
분류 : 액티브
체력을 대량으로 소모해서 근력에 비례한 피해를 전방에 퍼트린다.
충격 범위는 30미터다.
*타격 시 20% 확률로 대상을 밀어낸다.
근력 수치만큼의 충격파를 퍼트리는 스킬.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효과적이다.
근접 계통 스킬 중에는 범위기가 마땅히 없었는데 잘 됐군.
앞으로 나아가기를 몇 시간 째.
나무들을 덧대어 만든 커다란 목책이 눈앞에 나타났다.
원시적인 형태의 나무 요새.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엄청 큰데요. 저걸 넘어갈 수 있을까요?”
지영이가 짧게 투덜거렸다.
30미터가 넘는 목책의 높이.
그래, 나무로 만든 벽이 커도 너무 컸다.
52층 미션 때 방어했던 요새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섣부르게 침공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요새로 접근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바위 비가 내렸다.
바위 하나하나가 1톤 트럭 크기 정도 되었다.
[진동 결계 x 5]
[진동 결계 x 5]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결계.
겹친 만큼 올라간 방어력으로 오우거들의 투척을 가볍게 튕겨냈다.
연이어 불어닥치는 바람.
홍윤수가 일으킨 돌풍은 바위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분석관님, 화랑 길드는 얼마나 왔습니까?”
“약 1시간 거리입니다.”
“그렇게나 빨리 왔어요?”
“이동 과정에서 부상자들이 속출했지만 전속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오우거들의 습격.
우리 쪽이야, 나라는 걸출한 플레이어가 있어서 쉽게 대응이 가능한 거지.
화랑에서는 10 ~ 20마리 규모로 몰려오는 오우거 무리를 홀로 상대할 만한 실력자가 거의 없다.
오장우나 화랑의 다른 랭커라면 가능하겠지.
문제는 나처럼 체력과 마나가 무한에 가깝지 않다는 것.
오우거들의 습격을 사전에 끊어 낸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던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일행에 거의 뒤처지지 않은 속도라면.
“꽤나 무리했나 보네요.”
“예, 벌써 전력의 30% 정도를 소모했습니다.”
토마스 분석관이 말하는 전력이란, 포션 같은 소모품이나 마나 같은 수치도 포함된 것이다.
-참으로 고생하는구나. 부질없게도.
“그러게나 말이야.”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데모닉 파워를 사용했다.
1시간이라.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군.
모든 능력치를 마력으로 치환하니 정신이 맑아졌다.
대단위 전투에서는 역시 마력 올인만 한 게 없지.
“또 그거 하시 게요?”
“오냐, 돌 안 굴러 오게 잘 막아줘.”
빈약해진 맷집 스텟.
낙엽 하나 잘못 맞아도 요단강 익스프레스 급행열차에 몸을 실을 정도다.
길드원들에게 방어를 부탁하고는 마나를 재배열했다.
충만하게 차오른 마나.
재배열 과정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솔라 익스플로전]
[아발란체]
이제는 사용에 익숙해진 두 마법을 충돌시켰다.
그와 동시에 이클립스를 사용.
냉기와 열기가 부딪치면서 생긴 반발력을 극대화시키자 강렬한 빛이 요새 한쪽을 하얗게 물들였다.
위이이이잉!
목책을 감싼 방어마법이 파괴의 빛 앞에서 일그러진다.
빛이 사그라진 후, 폭발 진원지에는 목책의 ㅁ 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위력에 비해 부족하군요.”
토마스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하고 4성급 마법 둘의 반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전 세계를 뒤져봐도 이만한 위력을 막을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다.
이건 단언할 수 있다.
-오우거는 마법에 재능이 없다 하지 않았더냐?
“소수이기는 해도 있어.”
트윈 헤드 오우거.
요새에 방어마법을 걸어 둘 만한 괴물은 놈뿐이다.
이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가 뭔지 쉽게 알았군.
“후배님, 그래도 요새 안에 침투할 정도는 만들어 주었구먼.”
“아직 시간은 꽤 남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마법의 지배자의 효과로 훨씬 더 빨라진 마나 재배열 속도.
멀티 캐스팅 덕분에 동시 전개도 가능하다.
“앞으로 여섯 번은 더 쓸 수 있습니다.”
그 공세를 모두 받아 내고도 오우거들이 무사할 수 있을까.
쉬지 않고 마나를 빠르게 재배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