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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57화 (257/300)

257화

꼴깍─

엔리케가 침을 삼켰다.

눈가에 아른거리는 기묘한 열망.

“왜, 저거 가지고 싶냐?”

“아니거든요! 내가 애도 아니고, 로봇 같은 거 하나도 안 좋아해요.”

“그래? 남자의 로망은 로봇이라고 생각한다만.”

이왕이면 합체까지 해야 로망이지만.

타이탄한테 그 부분까지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겠지.

“사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여 드리겠소.”

“타이탄 상대로는 힘들걸?”

“고철 로봇 따위, 나한테 맡겨 주시오!”

자신만만하게 나서는 핑 레이.

하여간 저 파멸의 조동아리는 여전하다.

핑 레이는 손에 쥔 봉을 가볍게 툭, 하고 바닥에 쳤다.

거센 바람과 함께 늘어나는 신형.

고유 능력 분신.

거기에 풍둔을 더해 30이 넘는 핑 레이가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 간다!”

성벽을 박차면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핑 레이들.

「겁도 없이 덤비는군. 덩치도 작은 것이!」

“난쟁이가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있겠냐!”

[풍둔 - 북풍대회류(北風大回流)]

[천화봉법 - 대진봉(大振棒)]

봉을 휘감은 내기가 거센 바람과 만나면서 증폭된다.

30으로 늘어난 핑 레이가 봉을 쭉 내미는 순간, 무수한 회오리가 솟구치면서 대기를 일그러트렸다.

-호오, 무공을 선법과 결합시키다니, 제법이로구나.

“손오공이 재미있는 기술을 알려 줬네.”

지영이 성좌의 가호와 ‘보호’라는 개념을 끌어와서 전생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힘을 깨쳤듯.

핑 레이도 회귀 전과는 전혀 다른 전투 스타일을 선보였다.

죽음의 손 시절에는 무공 일변도였는데.

그때보다 얼마나 더 강해질지 궁금해지는 모습이다.

천리안 계약이 귀찮긴 해도 알선한 보람이 있군.

「이 공격, 좀 위험하잖아.」

타이탄은 칼날 끝을 땅으로 향했다.

지면에 꽂히는 대검.

칼을 휘감고 있던 오러 블레이드가 타이탄의 전신을 감싸는 방패 형태로 전개되었다.

요동치던 회오리들이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 순풍으로 변했다.

“말도 안 돼!”

핑 레이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름대로 회심의 공격을 펼친 모양인데, 뜻대로 안 된 듯했다.

아무렴. 타이탄은 일반적인 병기가 아니거든.

「너, 위험하니 먼저 없애겠다.」

지면을 박차면서 뛰어오르는 강철의 거신.

성벽 높이가 50미터라지만, 타이탄은 30미터에 달하기에 가볍게 도약하는 것만으로 요새를 훤히 내려다볼 정도가 되었다.

“도와줄까?”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악무는 핑 레이.

분신들의 손에 들린 봉이 일제히 하늘 위로 향했다.

[뇌둔 - 만뢰(萬雷)]

[천화봉법 - 유하지봉(柔河之棒)]

잔상과 함께 갈라지는 봉 끝.

흔들리는 봉의 움직임에 맞춰 번개가 쪼개진다.

봉의 변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만 갈래의 번개를 유도.

뇌전에 실린 힘이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제어하면서 타이탄의 몸뚱이를 노렸다.

와, 손오공 녀석 엄청난 걸 알려 주었군.

동 레벨대에서는 핑 레이를 이길 만한 플레이어가 없을 것이다.

타이탄만 아니라면 말이야.

검에 실린 오러 블레이드가 한층 더 격렬하게 솟구쳤다.

인근의 공기마저 휘감는 오러 블레이드의 폭풍.

봉의 흐름에 맞춰 사방에서 조여 오던 번개가 푸른 기류에 휘말려서 모조리 지워졌다.

초식의 정교함과 깨달음마저 뭉개버리는 압도적인 출력 차이.

핑 레이의 눈가 위로 어둠이 드리웠다.

“정신 차려, 이 멍청아!”

[진동 결계 x 20]

[아이기스의 방패]

쩌어엉!

강한 반발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밀려난 타이탄.

대검에 두른 오러 블레이드가 충격 대부분을 흡수했지만 결계의 반발력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지영…….”

“우린 팀이잖아. 왜 혼자 하려고 해?”

“저 고철, 강해 보여.”

카를라는 한마디를 내뱉고는 무너진 자세로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타이탄 위로 이동했다.

「고작 인간의 무기에 당할 만큼 타이탄은 약하지 않다!」

“벨 수 있는지는 해 봐야 알아.”

낫을 중심으로 일그러지는 풍경.

서거거걱!

엘레멘티움을 극도로 제련한 뒤, 온갖 마법진으로 강화시킨 타이탄의 갑주가 종이처럼 찢겨 나갔다.

공간 간섭 능력으로 방어 마법을 무효화.

수십 겹을 덧대어 만든 타이탄의 외장조차 카를라의 낫을 버티진 못했다.

낫이 베고 지나간 부위는 극히 일부.

하지만.

“덩치가 큰 상대. 익숙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타이탄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빨리도 파악했군.”

-뭐가 어찌 된 것이더냐?

“저 낫으로 연결 부위를 잘라 낸 거다.”

인간으로 치면 급소, 혹은 사혈을 막았다고 해야겠지.

그 짧은 순간에 타이탄의 구조를 훑다니.

카를라의 능력은 강하다.

공간 간섭.

상대의 방어력조차 무시하는 강력한 공격이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벨 수 있는 범위가 지팡이 끝에 달린 날이라는 점.

타이탄의 관절을 정확하게 베어 낸 걸 보면 덩치가 큰 상대와의 전투도 꽤 익숙해졌다는 의미다.

[메카닉 컨트롤]

[강제 동조화]

[메카닉 컨트롤]

[역소환, 소환 - 타이탄의 오른팔]

무수한 마력 회로가 지면에 나뒹군 팔뚝 위를 뒤덮는다.

순식간에 타이탄의 오른팔을 제 것으로 만든 엔리케.

제어 권한을 획득한 팔을 능력으로 불러들였다가 다시 소환했다.

공중에 떠오른 오른팔.

검에 깃든 오러 블레이드가 거침없이 타이탄의 몸뚱이를 파고들었다.

“네 힘에 당해 봐라.”

본래는 오러 블레이드의 근원인 마력 코어가 없어서 펼칠 수 없는 힘.

타이탄이 핑 레이의 공격을 받아 내려고 최대치까지 출력을 끌어올린 탓에 마력이 남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외장이 쭉 찢어진 채 바닥으로 쓰러진 타이탄.

얘네, 못 보던 사이에 엄청 강해졌잖아?

“영수 형님, 처음 보는 적인데도 오더가 딱딱 떨어지네요.”

“훈련의 성과입니다.”

김영수의 목소리에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핑 레이의 공격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수 형님의 오더에 맞춰 행동했다.

절묘한 타이밍.

한순간이라도 공세의 흐름이 틀어졌으면 압도적인 스펙을 지닌 타이탄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을 거다.

「타이탄이 한낱 인간 따위한테 당했다고?!」

「칼툼의 기량이 모자라서다.」

「방심하지 마라. 상대가 인간종이라고 너무 얕봐서 발생한 일이다.」

남은 타이탄들이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크크크.

봐라, 내가 피땀(?) 흘려서 모은 애들이 이 정도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쩝, 하면서 엔리케가 입맛을 다셨다.

“아깝다. 저 타이탄의 소유권을 가져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드워프들이 회수하기 전에 어서 챙겨 놔라.”

“저건 드워프 소유잖아요. 상대 소유로 등록된 장비는 컨트롤을 뺏을 수 없어요.”

엔리케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메카닉] 능력자는 무기의 잠재능력을 끌어올린다.

이 꼬맹이가 아르헨티나에 살았을 땐 총기를 주력 무기로 사용했었지.

지금은 전용 무기와 분석을 시킨 [워 골렘]의 구조를 마력으로 구현하는 식으로 싸우는 중이다.

“탑 바깥이면 모를까. 여기서는 안 된다고요.”

“걱정하지 마. 사용자가 죽었는데도 타이탄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어? 그러고 보니…….”

드워프가 타이탄을 동원하는 건 양날의 칼이다.

타이탄이라는 병기는 특성상 ‘장비’ 취급을 받지 않는다.

파괴, 혹은 강탈이 가능하다는 것.

[메카닉 컨트롤]

[강제 동조화]

엔리케는 반파된 타이탄의 컨트롤을 빼앗아서 아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저, 저자가 무슨 짓을!」

「타이탄을 빼앗기면 미션을 성공해도 피해가 더 크다.」

「어서 빨리 타이탄을 돌려받아야 해!」

시종일관 느긋하던 드워프 플레이어들이 살기를 드러냈다.

“형님, 요새 방어를 맡겨도 되겠습니까?”

“맡겨만 주십쇼.”

든든하군.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성벽을 박찼다.

타이탄 9기.

드워프 플레이어 170명.

그리고 엘프 NPC 군대.

저 인원이 성벽에 달라붙으면 요새를 지키기 어렵다.

-그대의 동료들도 있는데 홀로 갈 필요가 있느냐?

“신뢰하니까 뛰어드는 거야.”

뒤를 안 보고 날뛰어도 된다는 믿음.

바람길을 밟으면서 타이탄 무리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 * *

페르나지 요새는 내구도가 꽤 높다.

일반적으로는 성벽을 무너트리기보다 성문, 혹은 벽 위를 올라타는 식으로 공략한다.

상대가 타이탄만 아니라면 정공법도 괜찮겠지.

타이탄의 마력 노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출력은 성벽조차 벨 수 있을 정도다.

30미터급이면 3급, 그러니까 타이탄 중에서 가장 낮은 등급이지만 플래티넘 등급이 싸울 만한 적은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

“내가 시선을 끌어 주는 수밖에.”

바람길로 거리를 좁히자, 타이탄의 등에 달린 대검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겁도 없구나. 동료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나약한 인간 주제에!」

쇄애애액!

대검에 깃든 오러 블레이드가 공기를 거침없이 베어 낸다.

오러 블레이드의 기세만으로 주위의 풍경이 일그러지는 막대한 출력.

응룡황권을 펼치는 동시에 왼손에 깃든 폭마기를 해방했다.

충돌 지점에서 솟구치는 요사스러운 빛.

이클립스로 극대화된 반발력이 타이탄의 오러 블레이드를 밀어냈다.

「아, 아니?!」

내공과 폭마기가 뒤섞이면서 생긴 강력한 반발력.

30미터에 달하는 거신은 그 충격을 모두 해소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정면 힘 싸움에서 타이탄을 밀어낸 것이다.

그 대가로 오른팔이 넝마가 되었지만, 성능 하나는 확실했다.

[초재생능력을 사용합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암영추혼검을 사용합니다.]

암흑 칼날 여러 개를 구현.

검기를 덧대면서 ‘극야’라는 성질로 엮어 낸다.

변칙적인 수로 만든 검강.

내공과 폭마기의 반발력에 밀려난 타이탄은 가슴팍을 훤히 드러낸 상태였다.

진한 강기가 타이탄의 심장, 그러니까 마력 코어가 있는 곳을 노리며 빠르게 쏘아졌다.

「우리를 물로 보는 거냐, 인간.」

동료 타이탄들의 개입으로 암영추혼검이 밀려났다.

난 오러 블레이드에서 솟구치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바람길을 전개해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쉽게는 안 되는군.”

타이탄 조종사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하나 정도 더 부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팀원들의 연계를 보고 충격이 꽤 큰 모양이다.

-여의 힘이 필요하지 않느냐?

“아니, 딱 좋아.”

타이탄 9기.

저놈들을 붙들어 놓기만 해도 승리가 확정된다.

“누가 먼저 지치는지 두고 보자고.”

두둑- 두두둑-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몸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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