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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51화 (251/300)

251화

검은 옷으로 전신을 동여맨 인물.

제 딴에는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방으로 들어왔겠지만.

내 기감은 이미 외부인의 존재를 감지했다.

“오래간만이다, 영.”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외자 이름은 인상적이잖아?”

진짜는 아니겠지만, 이라고 뒷말을 중얼거렸지만 블랙 네트워크의 전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앉아. 차나 한잔하지.”

“감사합니다.”

“사양할 줄 알고 준비 안 했는데.”

“…….”

내가 커피에 독이라도 타면 어쩌려고 무방비하게 받는다는 거야?

천 사이로 드러난 두 눈에서 묘한 빛이 번들거렸다.

“있어 봐, 준비해 줄게.”

기껏 손님이 왔는데 빈손으로 보내기는 그렇지.

길드하우스 1층에서 커피를 챙겨 왔다.

“찾지도 않았는데 먼저 접선하려는 이유가 뭐지?”

“마담께서 지부장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웬일이래.”

“이유는 마담께 직접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근데 내가 바빠서, 라스베이거스에는 못 갈 것 같다만.”

“마담은 이미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셨습니다.”

그 엉덩이 무거운 양반이?

마담은 블랙 마켓의 지배자다.

블랙 네트워크에서도 매우 높은 위치, 그러니까 ‘어둠의 인형사’ 다음가는 높으신 분이다.

그녀가 통보하다시피 한국으로 온다, 라.

“갈라테아의 도면 때문은 아닌 것 같군.”

블랙 네트워크의 주인인 어둠의 인형사가 갈구하는 아이템.

난 회귀 전의 지식을 활용, 갈라테아의 도면을 거래 조건으로 삼아 블랙 네트워크와 끈을 만들어 두었다.

시간을 넉넉하게 달라고 했으니 그 문제는 아닐 터.

“언제 도착하는데?”

“10분 뒤입니다.”

푸우웁!

막 입에 담은 커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반대편에 있던 영은 마력을 끌어내어 커피가 몸에 닿지 않게 막아냈다.

“진짜?”

“그렇습니다.”

약 좀 올렸다고 이렇게 되돌려 준다 그거지.

하여간 블랙 네트워크 놈들은 하나 같이 속이 검단 말이야.

난 극야의 힘으로 바닥에 튄 커피를 모두 닦아냈다.

부우웅-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영아, 무슨 일이야?”

-스승님을 뵙겠다는 분이 있어서요.

10분보다도 빠르군.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고 하자, 영이 날 붙들었다.

“왜, 깜짝 소식이 하나 더 있나?”

“그렇게 나가시려는 겁니까.”

막 훈련을 마친 상황.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이 몸에 적당히 달라붙었다.

손님을 맞이할 차림은 아니었다.

“예고 없이 왔잖아, 뭘 기대하는 거냐.”

“지부장님, 마담께 최소한의 예는 갖추어 주셨으면 합니다.”

“응, 아니야.”

상대가 마담이니까 이런 무례한 방문에도 얼굴을 봐 주는 거라고.

얘는 내 몸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아직 잘 모르네.

블랙 네트워크에 있으면서 귀가 어두운 건지, 아니면 자존심을 세우는 건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당혹감을 드러낸 영을 흘겨보고는 길드하우스 1층으로 내려갔다.

* * *

웅성웅성—

길드원들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삼삼오오 떠들었다.

-와, 진짜 예쁘다.

-길드장님 손님이래잖아.

-아니, 도대체 어디서 저런 분을 알게 되었대?

화제의 주인공은 붉은 드레스를 입은 묘령의 여인이었다.

마담.

블랙 마켓의 주인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이게 얼마 만의 재회인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난 쓴웃음을 삼켰다.

“어머, 제가 반갑지 않으신가 봐요?”

“뜻밖의 만남은 늘 파도를 불러오기 마련이죠.”

“시적인 표현에도 관심이 있으신 줄은 몰랐군요. 참고해야겠어요.”

마담은 입을 가리고는 살짝 웃었다.

시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마담은 거래하기가 만만찮은 상대다.

저번 만남에서 원하는 걸 얻어 낸 건 ‘회귀’라는 정보의 이점을 살린 덕분이다.

마담의 능력인 ‘기울어지지 않은 천칭’은 유무형을 가리지 않고 가치를 매기는 게 가능했다.

내가 갈라테아의 도면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건 회귀자이기 때문.

현시점에서는 이보다 더 큰 가치의 물건이나 정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생의 정보를 은근슬쩍 회귀와 엮으면서 ‘기울어지지 않은 천칭’을 이쪽으로 확 기울일 수 있었지.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마담이 왜 한국까지 왔는지 짐작도 안 간단 말이야.

-와, 스승님, 언제 저런 여자 친구를!

-영웅에게는 아리따운 여인이 따라오는군. 역시 사부답다.

-넌 시대착오적인 소리 하지 마. 그렇지, 카를라야?

-강해 보여.

-넌 또 이상한 곳에 불이 붙었어!

…….

지영이와 핑 레이, 그리고 카를라의 대화를 엿듣고 있으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 눌렀다.

“따로 보시죠.”

“좋아요.”

마담의 눈가에서 끈적거리는 무언가가 아른거린다.

지영이는 카를라를 붙들더니 꺄! 소리를 질렀고, 엘렌도 ‘흠’이라고 짧게 신음을 흘렸다.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카페 전체를 비우고는 마담의 반대편에 앉았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영이 그녀의 뒤에 서서 호위했다.

“너무 놀라신 거 아닌가요?”

“다음부터는 미리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어머나, 죄송해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실례를 저질렀네요.”

반 정도만 진짜군.

마담이 한국까지 온 걸 보면 급한 것도 맞지만, 도착 소식을 늦게 알린 건 내 반응을 떠보려는 속셈일 거다.

좋아. 당하고만 사는 건 성미에 안 맞거든.

나는 시초룡의 기운을 은은하게 끌어냈다.

정식으로 스킬을 얻은 건 아니지만, 기세를 방출하는 것 정도는 회귀 전의 경험 덕에 어렵지 않았다.

싸늘해지는 공기.

영이 둘 사이에 끼어들려고 앞발을 떼는 순간.

『가만히 있어라.』

언령(言令)의 힘이 녀석을 붙들었다.

블랙 마켓의 전령.

플래티넘, 아니 다이아몬드 등급에 이른 최상위 플레이어지만 내 언령을 쉽게 떨쳐 내지 못했다.

스킬을 쓰면 모를까.

민첩 스텟을 높게 찍은 것 같은데 순수한 근력으로는 내 언령을 떨쳐 내기 어려울걸?

내 살의를 정면으로 마주한 마담은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창백해진 얼굴.

영이 단검을 쥐는 순간.

“나서지 마, 영.”

“마담.”

“미스터 유의 진노는 합당해. 오히려 거래 항목으로 달아 주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야.”

기울어지지 않은 천칭.

마담의 능력으로 거래를 하게 되면 내 심리를 흔들어 놓으려는 ‘변수’도 값을 매길 수 있다.

그 부분까지 알아채다니.

역시 보통이 아니군.

하지만 너무 뛰어나서 역으로 내 심리를 읽지 못했다.

[기울어지지 않은 천칭]은 공평하지만, 한편으로는 공평하지 않다.

내가 그 허점을 이용해서 거래를 이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그럴 자신이 없나 보구나.

가만히 지켜보던 닉스가 뇌리에 직접 이야기했다.

응. 정답이다.

살기를 가라앉히자, 마담이 참았던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재미없으셨나요?”

시초룡의 기세까지 담아서 쏘아 낸 살기.

마담의 역량으로는 버티는 게 고작이었을 텐데 용케도 저런 말을 한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야.

“서프라이즈는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어머나, 다음부터는 참고할게요.”

“그나저나 마담께서 급히 올 만한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역시 미스터 유는 시원시원한 성격이군요. 그럼 본론을 바로 말씀드리죠.”

마담은 우아하게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커피 CF를 찍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우아한 모습.

-정신 차리거라. 미인계에 넘어가는 건 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인계에 넘어가기는요.

거, 사람을 너무 가볍게 보시네.

“클리포트에 대한 정보를 구매하고 싶어요.”

의외의 질문이다.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마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군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현재 블랙 네트워크는 두 계파로 갈라져 있어요.”

“어둠의 인형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아뇨, 마스터께서는 건재하지만…… 과격파가 대두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과격파라.

블랙 네트워크는 온갖 불법적인 단체를 엮어 놓은 국제조직이다.

개중에는 종교 극단주의처럼 맛이 간 놈들도 포함되어 있다.

어둠의 인형사는 그 미친개들을 적당히 조련하면서 세계에 더 큰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조율했다.

필요악인 셈이지.

문제는 마담이 언급한 과격파다.

테러, 반란, 사보타주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놈들을 가리킨다.

회귀 전에는 그 과격파의 수장으로 핑 레이가 군림했다.

녀석이 중국 암흑가를 장악한 게 2030년경이니, 과격파가 나타난 타이밍이 시기상으로 맞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군.

회귀 전과 달라진 미래.

뭐, 미래가 바뀐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블랙 네트워크 쪽은 예상하지 못했다.

어둠의 인형사는 강하다.

군주급에는 들지 못했지만 하이 랭커 중에서 손에 꼽히는 실력자로 불렸다.

멸망의 시대 때 아군이 되어 등을 맞대 봤기에 잘 알았다.

“그 영, 아니 어둠의 인형사가 좌시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과격파에 들어간 플레이어들은 정체불명의 힘을 다루더군요. 우린 그 힘의 배후가 클리포트라고 짐작하고 있답니다.”

“정보를 달라는 것이군요.”

마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 덕에 알려진 클리포트.

이 시기의 블랙 네트워크는 클리포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을 것이다.

바벨탑에 등장하는 NPC 집단이라고 생각했을 테니.

나는 현시점에서 풀어도 될 만한 정보 위주로 천천히 말했다.

진지해진 마담의 표정.

내 말을 하나도 안 놓치려는 듯 시종일관 집중했다.

“이 정도면 도움이 되었습니까?”

“좋아요, 마스터에게 큰 힘이 될 만한 이야기네요.”

“값은 나중에 받죠.”

난 마담에게 빚을 지워 놓았다.

블랙 네트워크는 아까도 말했듯, 필요악이다.

미친놈들이 더 날뛰지 못하게 가둬 놓는 울타리 같은 거지.

어떤 이유로 나비효과가 발생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시점에서 힘을 잃는 건 곤란했다.

블랙 네트워크가 몰락하면 범죄조직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연합을 맺을 거다.

통제가 가능한 악이 낫지.

“어머, 그래 주시겠어요?”

“선물을 한 가지 더 드리죠.”

“이미 많은 걸 받았는걸요. 감당이 될까 두렵네요.”

마담은 너스레를 떨었다.

“어둠의 인형사에게 시간 좀 내달라고 해 주십쇼.”

“그 말씀은…… 설마?”

“갈라테아의 도면, 조만간 얻어다 드릴 테니.”

난 가볍게 웃었다.

“이자는 톡톡히 받아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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