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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44화 (244/300)

244화

제단 주위를 휘감은 먹구름이 촉수처럼 갈라진다.

시커먼 구름 사이로 아른거리는 사이한 빛.

길게 늘어난 구름이 [타기리온의 가지]들을 낚아챈다.

“크아아악!”

“사, 살려 주십쇼!”

쥐어짜 내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전장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타기리온 종파의 또 다른 특기, 소환.

그 소환이라는 게…… 실은 저주의 연장선이다.

저주는 매개체가 있으면 더욱 강해지는 법.

타기리온 종파는 정상적인 소환방법 대신 제물을 바쳐서 강대한 존재를 불러낸다.

‘가지’들을 으깬 먹구름이 꿈틀거리면서 하이 오크와 트롤들의 사체를 휘감는다.

피륙이 짓이겨지는 섬뜩한 소리.

[타기리온의 묘목]을 뺀 모든 전력을 삼킨 구름이 한 점으로 모였다.

두근- 두근-.

맥동하는 구름.

마치 심장처럼 펄떡거리는데, 그 진동에 맞춰 흡사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제단 주위가 흔들렸다.

“가지들이여, 너희의 희생을 발판 삼아 새로운 질서가 기록될 것이다.”

[타기리온의 묘목]이 양팔을 위로 뻗으면서 광소했다.

“지랄하고 있네.”

새로운 질서는 개뿔.

불리하면 아군이라도 예비 배터리처럼 갈아 버리면서 자기합리화하는 거다.

검은 알에 내재된 힘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홍윤수가 오른발에 휘감아 놓은 바람을 해방했다.

[드래곤 팽]

노도와도 같은 바람이 날을 세우면서 검은 알을 향해 쇄도한다.

산봉우리조차 깎아내리는 강력한 바람.

검은 알의 표면에서 사이한 빛이 솟구쳤다.

음울한 빛이 홍윤수의 의지로 짜낸 바람을 풀어헤친다.

한여름의 태풍이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고도의 마력 계산, 그리고 마력 간섭 능력을 필요로 하는 엄청난 기예.

“내 바람은 디스펠 매직으로 풀 수 없는데?!”

놀랄 만도 하지.

홍윤수가 지닌 능력은 마법과 궤를 달리하기에, 임의로 풀어헤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지이잉-!

10겹으로 압축시킨 진동 결계가 검은 구름, 아니 알을 타격했지만 흠집도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물리력은 어때?”

엘렌도 지면을 박차면서 돌진했지만, 하이 오크와 트롤들이 몸으로 벽을 세운 탓에 더 나아가지 못했다.

“쳇.”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상황.

“스승님,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은데요?”

지영이가 앓는 소리를 흘렸다.

타기리온의 가지 여럿을 흡수하면서 생성된 알.

알이 내뿜는 미증유의 힘에 랭커들조차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차원의 반대편에 선 힘.

허수 공간에 존재하는 괴물이 깨어나려고 하니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난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귀찮은 적들을 한 번에 줄여 줬잖아.”

타기리온의 가지.

닉스가 저주를 막아 줘서 그렇지, 원래는 굉장히 까다로운 적이다.

정신 계열 공격은 방어하기가 난감하거든.

나야 여러 정수를 포식하면서 저항력을 끌어올렸지만, 일행은 아니었다.

“태평하시네요.”

샐쭉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지영이를 보며 닉스가 웃음을 흘렸다.

-이미 예측한 일 아니더냐? 아니면 현 상황을 유도했거나.

난 슬쩍 고개를 숙이면서 긍정했다.

가속도가 붙는 진동음.

종언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처럼, 검은 알 내부에서 나오는 진동이 격렬해진다.

이쯤인가.

“영수 형님, 하이 오크와 트롤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끌어 줄 수 있겠습니까?”

“일행을 모두 동원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그럼 괴물들을 제단에서 먼 곳으로 유도해 주십쇼.”

“전장을 뒤로 물리자는 의미라면…….”

“그건 아니고. 저 괴물은 제가 맡으려고요.”

아무렇지 않게 던진 폭탄 발언.

일행의 눈빛이 나한테 쏟아졌다.

* * *

“쿠륵! 쿠륵!”

“구어어어!”

괴물들의 숨소리가 BGM처럼 깔린 전장.

엘렌은 그 소음을 잠재울 만큼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

“미스터 유, 당신의 능력이야 잘 알고 있지만 너무 무모해.”

“내가 위험할 거 같으면 도와줘.”

엘렌은 허, 하고 한숨을 뱉었다.

신준석도 같은 생각인지 당황한 기색으로 입을 떼었다.

“음, 후배님의 도량이 대단한 건 알지만…….”

“그러니 절 믿어 주십쇼.”

하이 오크와 트롤.

1/3으로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방심할 수 없는 숫자다.

검은 알 속에 담긴 존재가 날뛰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난 지영이를 힐끗 봤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사전에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지영이는 내 눈빛에 담긴 의미를 읽어 냈다.

“스승님이 위험해지기 전에 오크들을 다 해치울게요!”

그녀의 말을 신호탄 삼아 다른 길드원들도 내 의견에 동조했다.

“아저씨, 죽기 전에는 도와줄게.”

“사부, 허무하게 가지 마시오.”

길드원들이 나서니 엘렌과 두 랭커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척하면 척이라니까.

난 웃으면서 일행 옆으로 슬쩍 빠졌다.

[진형 - 언월진이 발동됩니다.]

반 정도 차오른 달처럼 선 일행.

천천히 뒤로 물러나자, 하이 오크와 트롤들이 훤히 드러난 틈으로 돌진했다.

진 자체가 시선을 끌어당기는 효과가 있기에, 제단으로 접근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꼭 홀로 상대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

“화력을 조절 못 할 거 같아서.”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가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말끔해지는 정신.

이제는 익숙해진 감각에 취하기보다 즉시 마나를 재배열했다.

하이 오크와 트롤들이 제단 밖으로 나가니 자연스럽게 노인과 독대하게 되었다.

“크하하하! 어리석구나. 동료들을 위해 죽음을 자처하다니!”

단단히 착각하셨군.

내가 희생 같은 걸 할 사람으로 보이나.

노인이 뭐라고 지껄이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마력을 재배열했다.

[솔라 익스플로전을 사용합니다.]

[아발란체를 사용합니다.]

이글거리는 구체와 푸른 구슬이 대비를 이루며 허공에 떠 있다.

탐욕의 가호로 완성시킨 마법이 해방되지 않게 붙들어 놓았다.

이 자리에서 두 마법을 해방하면 검은 알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겠지.

방어력이 높지만, 한계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금방 부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검은 알에 깃든 소환수가 온전한 모습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전생에서 강북을 초토화시키고 김우성 협회장마저 쓰러트린 괴물.

놈의 정수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잖아?

얼마를 기다렸을까.

“깨어나라, 악마룡이여!”

저저저저저적!

검은 알이 부서지면서 커다란 형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클립스를 사용합니다.]

그 순간.

미리 준비해 놓은 두 주문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 * *

위이이이잉-!

이명이 두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이클립스.

상반된 힘의 반발력을 억누르거나 극대화시키는 스킬이다.

태양의 힘을 구현한 솔라 익스플로전.

니플헤임의 냉기를 담아 낸 기술, 아발란체.

대칭을 이루는 두 마법이 충돌하면 소멸하는 게 정상이지만.

나는 이클립스로 반발력을 극대화시켰다.

최대치로 끌어올린 파괴력.

[바르바토스의 철퇴]와 충돌시켰을 때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폭발이 제단을 덮쳤다.

“다음부터는 미리 경고하여라!”

이클립스로 두 마법을 충돌시킨 직후, 닉스가 앞에 서서 극야를 펼쳤다.

검은 알을 깨고 나온 괴물.

그리고 제단이 [이클립스]로 증폭된 에너지를 대부분 받아 냈는데도, 일부가 퍼져 나가면서 인근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한겨울의 갈대처럼 흔들리는 극야.

만약 닉스가 오리하르콘을 추가로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이클립스로 증폭시킨 파괴의 물결에 휩쓸렸을지도 모른다.

“다 여신님을 믿고 한 거지.”

“정말이지. 그대는 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굉음이 잦아들고, 흔들리던 극야도 안정을 되찾았다.

도시 하나를 통째로 파괴해 버릴 정도의 위력.

타기리온 종파가 세운 제단, 그리고 알에서 깨어난 괴물이 충격 대부분을 흡수(?)해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비무장지대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을 거다.

“모두 계획대로야.”

“그 계획이 조금이라도 어긋났다가는 큰일 날 뻔했도다.”

만약 그랬으면 세상에서 제일 허무하게 죽은 회귀자가 되었겠지.

난 가볍게 웃고는 제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데모닉 파워로 마력에 올인하고는 이클립스로 반발력을 극대화시켰다.

그럼에도 검은 알에서 깨어난 괴물을 쓰러트리지는 못했다.

쭉 튀어나온 주둥이.

등에는 박쥐의 피막을 닮은 커다란 날개가 붙어 있고.

길게 뻗은 꼬리가 지면 위에 긴 그림자를 만들었다.

전설에서 볼 법한 괴물.

“콰우우우우!!!”

엘드리치 드래곤이 입을 크게 벌린 채, 크게 포효했다.

[엘드리치 드래곤의 포효에 노출되었습니다.]

[항거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50% 하락합니다.]

[주문 시전 속도가 80% 감소합니다.]

[정신 내성이 40% 낮아집니다.]

…….

[냉혈 스킬이 발동됩니다. 냉정한 마음이 유지됩니다.]

냉혈 스킬.

그 외에도 여태까지 쌓아놓은 여러 정수들 덕분에 정신이 오염되는 것을 겨우 면했다.

“여의 가호를 받아들이거라.”

[밤의 축복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모든 정신 오염이 무효화됩니다.]

[극야의 회복 속도가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그뿐이랴.

닉스의 축복이 몸에 스며들자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삿된 기운이 완전히 소멸했다.

오리하르콘을 추가로 흡수하면서 생긴 효과다.

“이걸로도 안 죽네.”

쩝.

역시 강북 지역을 죽음의 땅으로 만든 괴물답다.

“저 존재, 드래곤이 맞긴 하느냐?”

“반절 정도는.”

드래곤 스톤.

용의 탄생석을 기반 삼아 무수한 영혼을 엮어서 만든 괴물이 엘드리치 드래곤이다.

차원의 대칭점에 선 허수 세계의 존재.

10대 마경의 주인에는 못 미치지만, 다이아몬드 등급 플레이어들이 떼로 몰려들어도 상대하기 힘든 강적이다.

하지만.

“콰우우우…….”

놈은 정상이 아니었다.

엘드리치 드래곤이 제대로 된 힘을 내려면 더 많은 제물이 필요했다.

소환 주체인 [타기리온의 묘목]은 우리를 쓰러트려서 부족한 힘을 충당할 생각이었겠지.

일행을 뒤로 물린 것도 그 이유다.

엘드리치 드래곤은 영혼을 삼켜서 힘을 더 얻으니까.

일행 중 하나라도 당하면 곤란했다.

거기에 [이클립스]로 선제공격을 했으니, 회귀 전 강북에서 나타났을 때와 비교하면 전투력이 1/10 정도로 깎인 셈이다.

“뭐, 그래도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엘드리치 드래곤의 살기가 영혼을 짓누르는 것 같다.

몇 겹이나 안전장치를 걸어 놨음에도 상대하기 어려운 강적.

“너는 어떤 정수를 내놓을 거냐?”

회귀 전에는 포식하지 못했던 괴물의 정수를 앞에 두니 미소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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