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향신료 제도의 영웅, 인류의 악몽 오크를 압도하다.』
『플레이어 1년 차에 플래티넘으로 승급! 역대급 속도의 주인공은 누구?』
『유진호의 폭풍 같은 행보에 전 세계가 주목…….』
『역천 길드는 어떤 곳? 길드 마스터인 유진호를 비롯하여 신예 및 랭커가 모이는 이유!』
『역천 길드, 국내 3대 길드를 위협하는 신흥 강자로 떠올라…….』
진호가 승급전을 치른 직후.
국내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마구 쏟아 냈다.
개중에는 부정적인 논조를 드러내는 언론도 있었다.
『유진호의 독주, 기존 길드 체계에 경종을 울리다.』
『나날이 늘어나는 게이트의 위협을 외면하는 역천 길드, 과격한 행보가 과연 옳은 것인가?』
『화랑 길드, 역천에 협조를 제안…….』
└ 학생, 헛소리 말고 글 내려.
└ 커버할 걸 커버해야지.
└ 이러니까 주작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욕설이 댓글 중 90%를 차지했다.
간혹 진호를 비난하거나 3대 길드를 옹호하는 댓글이 가뭄에 콩 나듯 달리기도 했지만.
└ 네, 다음 알바.
그다지 공감을 받지는 못했다.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미스터 유, 이미 등급을 넘어선 어나더 레벨이라던데요.”
“46층에서 오크를 상대했을 때 보여 준 전투력을 분석해 보면 다이아몬드급 플레이어 이상이라고 합니다.”
“곧 랭커가 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요.”
“확정적이죠. 진호 유가 랭커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게이트 사태 이후 강한 플레이어야말로 국력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 변신 능력에 소환수까지. 정말이지, 능력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군요.”
미국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해설자 및 분석진이 입을 모아 진호의 능력을 찬양했다.
윌리엄 록펠러는 쏟아지는 찬사를 보더니 혀를 차며 짧게 한탄했다.
“내가 할 일이 없어졌군.”
진호를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로 세워주겠다는 계약.
본가에서 지원까지 받아낼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진호는 스스로의 힘으로 최고의 여론을 만들어냈다.
“마스터, 좀 더 분발하셔야겠어요.”
“엘렌. 설마 약 올리려고 온 건 아니겠지?”
“호호호, 비슷하긴 하네요. 미스터 유가 제안을 하나 했답니다.”
“이 상황에서 제안이라, 궁금하군.”
“별거 아니에요. 한국에서 같이 훈련하자던데요?”
“다른 의미로 서프라이즈잖아.”
전 세계의 이목이 진호에게 쏠려 있을 때 엘렌이 움직인다?
윌리엄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진호와 골드 문 사이의 커넥션을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
이 제안을 받으면 확실하게 한배를 타는 셈이다.
‘미스터 유, 과감하군.’
현시대의 플레이어 서열을 위협하는 신성.
골드 문이 진호와 긴밀한 관계라는 것을 암시하는 순간, 양쪽 모두 견제를 받을 게 분명했다.
“상무의 의견은?”
“보내 주세요.”
윌리엄 록펠러는 쓴웃음을 삼켰다.
지난번 대련 이후, 엘렌은 진호의 곁에 가고 싶어서 안달 나 있었다.
사랑 같은 감정이 아니다.
호승심.
엘렌의 본질은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 투쟁의 화신이다.
그 부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윌리엄이기에, 엘렌을 정상의 자리에 앉혀 주겠다고 제안해서 골드 문으로 데려왔다.
진호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지킬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눈빛만 봐도 알지. 우리가 파트너로 지낸 지도 꽤 되었잖나.”
“그 말씀은…….”
“하나만 약속하게.”
“무엇이든 말씀만 하세요. 마스터.”
“세계의 정상은 어려워도 그다음 정도는 설 각오.”
윌리엄 록펠러는 진호의 압도적인 무력을 보고도 엘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엘렌 테일러라는 플레이어를 놓칠 수 없었다.
‘어중간한 숫자로는 절대적인 강자를 이길 수 없다.’
진호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
다행스럽게도,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는 길드를 소규모로 운영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이다.
“엘렌 상무, 그럴 자신이 있겠나?”
“마스터, 당신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좋아. 길드 업무는 당분간 다른 사람에게 돌려놓도록 하지.”
“팀원들도 같이 넘어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뜻대로 해. 어차피 리더가 없으면 탑 공략도 불가능할 거 아닌가.”
“마스터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엘렌의 목소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 * *
플래티넘 승급전을 치르고 이틀이 지났다.
승급도 했겠다, 허접 소리가 안 나오게 길드원들과 친목(?)도 다질 겸 길드 하우스에서 몸을 풀던 중.
“오래간만이에요, 미스터 유!”
방문객이 찾아왔다.
싱글거리는 엘렌.
그녀의 뒤에는 골드 문의 최정예인 골든 서클 팀원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다.
“마지막으로 본 게 며칠 전인데, 오래간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나.”
“에이, 미스터 유와 보낸 뜨거운 시간이 워낙 강렬해서.”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군.
난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초대장을 보낸 게 언제라고. 빨리도 왔어.”
뒤를 힐끔거리자 엘렌이 헤헤, 하고 멋쩍게 웃었다.
“마스터께서 팀원들도 같이 가라고 하셨거든.”
“내가 초대한 건 너 한 명인데?”
“호호호, 미스터 유한테 거절당하면 서울 구경이나 하고 가라지.”
골든 서클 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팀이자, 골드 문의 지원을 아낌없이 받은 만큼 훈련 대상으로 적합했다.
나는 고민하는 척 뜸을 들인 후에.
“한국 방문을 환영합니다. 골든 서클 팀원분들.”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반겨 주었다.
“어머, 카를라야! 못 보던 사이에 얼굴이 반쪽 되었네.”
“상무님, 전 괜찮아요.”
“저, 저. 엘렌 테일러 님! 팬이에요! 사인해 주세요!”
“어머나. 지영이라고 했었지? 늘 카를라를 챙겨 줘서 고마웠는데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어.”
“야호!”
시끌벅적해진 길드원들.
엘렌이 길드에 방문한 게 하루이틀도 아니기에, 금세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골든 서클 팀원들이 어색한 분위기로 서 있었으나 엘렌의 중재 덕에 조금씩 적응해 갔다.
-그대가 저 여인을 별 이유 없이 호출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만.
“안 그래도 말해 주려고 했어.”
-미래에 무슨 일이 있느냐?
“경기도 북부, 그리고 강원도의 붕괴.”
한국과 북한을 가르는 경계선.
비무장지대, 일명 DMZ에서 대규모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할 예정이다.
-그 시기는 언제더냐?
“2026년 10월.”
-목전이로구나. 방어선을 구축하기에도 버거운 시간이로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지.”
-흐응, 그대는 미래를 알고 있을 터, 그 이점을 포기하고 전진하겠다는 말이더냐?
“음, 그게…… 수상해서.”
DMZ에서 일어난 대규모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
게이트가 한계 이상으로 마나를 수용하면 외부로 발산시키는 게 게이트 브레이크다.
문제는 DMZ쪽 움직임은 협회에서도 전혀 읽어 내지 못했다는 것.
전생에서는 예측 못 한 게이트 브레이크로 남한과 북한,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
“누군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개입, 이라.
“멸망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야 알아챈 사실이지.”
고신족들의 개입.
게이트는 여러 세계를 비추는 그림자, 혹은 멸망해 버린 곳의 잔재다.
탑과 차원이 연결되면서 벌어진 현상이기도 하고.
고신족들은 모종의 방법으로 지구에 나타난 게이트들을 이용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구나.
“응. 짐작이지만, 해 볼 가치는 충분해.”
골든 서클.
미국에서 가장 수준 높은 탑 공략 팀이 증원으로 붙었다.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전력 보강도 마쳤겠다.
이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다.
주머니에 들어 있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한수창 팀장님. 요즘 협회 분위는 어떻습니까?”
* * *
길드 하우스 1층.
토마스가 직원들 복지차원으로 만든 카페에 앉았다.
오래간만에 즐기는 여유.
현신한 닉스가 우아하게 찻잔을 들었다.
아이스티 가지고 저렇게 분위기를 내는 것도 재주네, 재주야.
“그대여. 이 카페에도 민트초코 케이크를 들여놓는 게 어떻겠느냐?”
미친 소리!
폐부에서 끓어오르는 욕지거리를 감내하느라 입술을 꾹 다물었다.
괜히 여신님을 골려 주려고 장난치는 게 아니었어.
금단의 문을 열어 버린 것 같아서 두려움과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왜 말이 없느냐. 계약자여.”
“그게 말이지…….”
“진호 길드장님!”
때마침 구원투수가 찾아왔다.
멀찍이서 걸어오는 한수창 팀장. 옆구리에 낀 서류가방이 두툼해서 건들기만 해도 터질 것만 같다.
“뭔 짐이 그렇게 많습니까?”
“요새 업무가 많아져서 말입니다. 허허.”
눈가에 드리운 다크서클.
볼 때마다 사람이 말라 가는 것 같은데.
“저랑 만나면 늘 그 말 하시는 거 알고 계시나요?”
“부정은 못 하겠군요. 참, 저 승진했습니다.”
한수창은 새로 판 명함을 내밀었다.
“부장님? 축하드립니다.”
“협회는 공무직이라서 월급은 큰 차이가 없지만요.”
“승진 기념으로 뭣 좀 얻어먹으려고 했더만 바로 발을 빼시네.”
“벼룩의 간이라도 괜찮으시면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됐습니다.”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었을 때, 한수창이 먼저 입술을 떼었다.
“진호 길드장님께서 문의하신 DMZ 내부 게이트 공략, 긍정적인 답이 돌아올 것 같습니다.”
“의외네요. 군대에서 반대가 심할 줄 알았는데.”
“여론이 무서운 거죠.”
“그건 여론도 있겠지만 협회의 수완 아니겠습니까?”
“저희가 한 일은 강풍에 돛을 펼친 것뿐입니다.”
내 유명세와 국내 치안을 엮어서 정부에 어필했다는 말을 돌려서 잘도 하네.
한수창 팀, 아니 부장 선에서 처리하기에는 큰 건수.
“협회장님께도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쇼.”
“굉장히 기뻐하실 겁니다.”
한수창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플레이어 협회가 내 수족처럼 움직이는 상황.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도 했지만 회귀 직후부터 신뢰를 쌓은 결과물이었다.
협회장님.
나도 당신을 살리기 위해 힘 좀 썼으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DMZ에서 벌어진 대규모 게이트 브레이크.
원 역사에서는 김우성 협회장이 사망한 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