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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37화 (237/300)

237화

푸른 심장석은 냉기 마법의 촉매, 혹은 결계 유지에 사용되는 강력한 마력 코어다.

레전드 등급 촉매.

얼음 마녀로 유명한 켄트라가 얼어붙은 세계로 알려진 ‘니플헤임’의 정수를 가공해서 만든 마력 코어.

냉기에 재능이 있는 마법 계열 플레이어가 이걸 봤다면 두 눈이 돌아갔을지도 모르는 강력한 아이템이다.

-하나 그대하고는 관계가 없구나.

“그거야 두고 보면 알지.”

난 히죽 웃었다.

푸른 심장석. 기회가 되면 구하려고 했던 아이템이었는데 제 발로 걸어올 줄이야.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허리에 매여 있는 욕망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오랜 시간 동안 주머니 구석에 잠들어 있던 촉매, 태양석이 햇볕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의 힘을 담아 놓은 광물이라.

“25층에서 히든 보스 쓰러트리고 얻은 거잖아. 기억 안 나?”

-흐응, 듣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유적을 지키는 수호상, [바위로 만든 태양]을 쓰러트리고 얻은 강력한 촉매다.

푸른 심장석과 대칭을 이루는 아이템.

몇 달 전에 얻었지만 당장 쓸 곳이 마땅찮아서 보관만 해 두었다.

“이제야 빛을 보는군.”

흐흐.

웃음을 삼키고는 두 촉매를 양손에 꽉 쥐었다.

뼈가 시리는 한기.

그리고 피부를 녹일 것 같은 열기가 양손에서 느껴진다.

“모르스야, 거기에 있냐?”

“히히, 부르셨습니까요.”

차원 상인 모르스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망각의 장막을 구매하고 싶다.”

“아니, 고객님, 망각의 장막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보의 출처가 중요한가.”

“그건 아닙죠. 다만 망각의 장막은 가격이 좀…….”

“얼마인데?”

“50만 CP입니다요, 헤헤.”

생각보다는 싸군.

지구가 막 차원 경쟁에 휩쓸려서 그런지 가격이 낮게 책정되어 있다.

“두말하게 하지 마라. 아니면 다른 상인한테 구하는 수가 있으니.”

“아이고, 어느 안전이라고! 바로 드리겠습니다!”

모르스는 검은 천을 내밀었다.

[망각의 장막]

등급: 유니크 / 분류: 잡화

내구도: 5/5

1분 동안 모든 성좌들의 시선을 차단합니다.

망각의 장막은 플레이어 저격과 비슷한 ‘시스템’ 관련 소모 아이템이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내구도가 1씩 깎이니 총 5회 사용 가능한 셈.

『지혜의 탐구자가 당신을 굽어살핍니다.』

『하늘의 악이 관심을 보냅니다.』

『올림포스의 군신이 자신과 계약하면 장막을 얼마든지 주겠다고 회유합니다.』

하늘 위의 뭇별들이 장막을 보자마자 술렁거렸다.

망각의 장막을 구매했다는 건, 성좌들에게 대놓고 비밀을 만들겠다는 선언.

내가 무슨 짓을 할지 궁금해서 미치려고 하는군.

“안 돼.”

망각의 장막을 머리 위에 두르자, 성좌들의 시선이 차단되었다.

“여신님,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호오, 여의 힘을 빌어야 할 만한 일이라?

“이제부터 두 촉매를 충돌시킬 거다.”

-상극의 힘을 충돌시킨다.

“여신님이 내 극야와 동기화해서 반발력을 억제해 줘.”

나는 두 촉매의 반발력을 누를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후훗, 어렵지 않은 부탁이로구나. 그렇다면 여에게 어떤 공물을 바치겠느냐?

“이번에 신상 케이크가 나왔다던데.”

-계약은 성립되었도다.

근엄하게 말하는 닉스.

후, 심호흡과 함께 긴장감을 날렸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가 극야로 치환됩니다.]

전력 질주를 마친 직후의 탈력감.

극야의 힘은 마력과 달리, 다른 감각의 변화가 없었다.

-1분이라. 그 정도면 넉넉하구나.

내 그림자 안으로 스며드는 닉스.

그 순간, 닉스의 정수와 힘이 극야와 일체화되면서 형용하기 어려운 감각이 영혼을 일깨웠다.

콰아아아아!

발밑에서 새어 나온 극야가 하늘과 땅을 검게 물들인다.

포식 능력으로 쌓은 능력치를 모두 치환하면서 생긴 막대한 극야.

반경 수 킬로미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뒤덮은 극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이라도 된 것 같은 전능감!

나는 닉스가 보여 준 능력이 초월의 영역,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경지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데모닉 파워로 모든 스텟을 극야로 치환했을 때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내 기량이 못 미친다는 거겠지.

-동기화가 완벽하게 되었구나. 이제 시작해도 좋다.

닉스의 담담한 목소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잘 부탁합니다, 여신님.”

양손에 쥔 두 촉매를 있는 힘껏 세게 부딪쳤다.

태양석과 푸른 심장석이 마주하는 순간.

두근-두근-두근-두근-!

육감의 경고에 반응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0.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두 촉매.

실은 폭발이 아닌, 상극인 힘을 충돌시키면서 생긴 반발력이다.

데모닉 파워로 모든 능력치를 치환시킨 몸뚱이로는 0.01초도 버틸 수 없는 막대한 에너지.

닉스의 어둠이 반발하는 두 촉매를 휘감았다.

-제법이구나. 과연 태양의 힘과 명계의 추위를 담았다고 할 만해.

“여유 부려도 될 정도야?”

-후후훗, 그대는 여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밤의 여신님이죠.”

-그러니 여를 믿어라. 밤은 모든 것을 품어 줄 수 있는 힘이 있나니.

닉스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넘쳐났다.

대단하군.

두 촉매의 반발력은 현재의 내 힘으로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태양석과 푸른 심장석을 충돌시켜서 진정한 힘을 일깨우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2배는 강해져야 했다.

마력 컨트롤 능력.

육체의 내구도.

그 외에도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두 촉매의 반발력을 온전하게 억누르는 게 가능하다.

단순히 힘으로 찍어 누르기만 하면 태양석과 푸른 심장석이 폭발해버리니까.

그 어려운 과정을.

닉스는 여유롭게 해냈다.

회귀 전, 여러 정수를 포식하며 별에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자격까지 얻었지만.

닉스가 보는 경지는 당시의 경험으로도 쉽게 엿볼 수 없었다.

천외천이라.

재미있어.

-누군 힘들게 반발력을 막고 있건만, 그대는 여유롭게 웃고 있구나.

“여유를 부리는 게 누구인데?”

-흥, 여의 위대함에 탄복하며 무릎을 조아릴지는 못할망정.

“예예. 정말로 위대하십니다, 여신님.”

-그 목소리에서 진심이 1그램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태양석과 푸른 심장석이 반발하는 에너지를 누르는데 이렇게 평온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30초 정도를 빛나던 두 촉매는 어느 순간 반발하는 대신 기름처럼 걸쭉해지더니 서로를 옭아맸다.

얼기설기 엮이는 푸른색과 붉은색.

첫 충돌에서 40초가량이 지나자 태양석과 푸른 심장석은 원래부터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붙었다.

-되었구나.

“애썼어, 여신님.”

-그대가 말한 대로 최대한 기운을 누르면서 유도했다만.

“완벽하게 됐어. 역시 위대한 밤의 여신은 달라도 다르네.”

-그대는 이제야 여의 위대함을 알아보는구나.

“아, 여신님의 위대함은 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땅을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가 없네.”

-흐응, 여를 능멸하려는 속셈은 아니느냐?

이런, 들켰네.

“잠깐만. 이거 잘 만들어졌는지 확인 좀 해 볼게.”

바로 화제를 돌리자, 천만다행으로 닉스의 관심사가 서로에게 얽혀진 촉매 쪽으로 향했다.

* * *

[극점]

등급: 초월

분류: 촉매

내구도: 1,000/1,000

항성의 열기와 지옥의 한기가 만나 하나로 뭉친 결정체입니다.

불 / 냉기 속성 마법의 촉매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촉매로 사용해도 내부의 기운을 소진하기에, 과하게 힘을 끌어내지 않으면 계속 사용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기원에 알맞은 설명이로구나.

닉스는 싱긋 웃었다.

정반대인 두 성질이 융합하면서 생긴 결정체.

“맞아. 증폭률도 더 늘어났고 어느 쪽으로도 촉매로 쓸 수 있지.”

태양석과 푸른 심장석, 두 역할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아이템.

그뿐이랴.

스스로 기운을 회복하기에 반영구적인 촉매다.

마법 계열 플레이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밝힐 정도로 강력한 옵션.

-이제는 좀 솔직해지거라.

“뭐가?”

-그대가 고작 촉매 따위를 얻으려고 이렇게 야단을 떨진 않았을 터.

“야단까지야.”

-그렇다면 왜 50만 CP나 들여서 성좌들의 시선을 가리웠느냐?

두 촉매를 융합하는 건 쉽지 않았다.

나도 [데모닉 파워]에 닉스의 힘까지 빌지 않았으면 시도조차 못 했을 정도로 위험한 방법.

성좌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탑에서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 미션을 치른 후에 즉시 융합을 시도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재주라도 생겼어?”

-여가 그대를 지켜본 지도 꽤 되었느니라. 무슨 생각을 하는 것쯤이야 훤히 보이도다.

“그 지적이 맞아. 포식해야지.”

태양의 힘과 지옥의 냉기.

그 자체로도 [정수]를 품고 있지만, 상극인 힘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기원’은 그보다 한 수 위인 정수를 빚어냈다.

코에 감도는 향긋한 냄새.

난 망설이지 않고 [극점]을 포식했다.

[극점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전설]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이클립스가 추가됩니다.]

[이클립스]

등급: ★★★★★

분류: 패시브

성질이 다른 파장을 융합, 혹은 반발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5성 치고는 간단한 설명.

닉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애쓴 것치고는 굉장히 빈약하구나.

“심플한 게 최고야. 원래.”

-융합기공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만.

“아, 그거랑은 좀 다르지.”

융합기공은 특정 스킬을 지정, 둘 이상을 엮어 내서 ‘이적’의 영역으로 이끌어 내는 스킬이다.

지정 스킬들의 궁합도 중요한 편.

반면에 이클립스는 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궁합’보다 역으로 상성이 안 맞는 에너지를 충돌시켜야 한다.

“활용하기에 따라 천차만별인 정수다.”

-과연. 어찌 활용하는지는 그대가 이제부터 보여 주겠다, 그 말이로구나.

“기대해 주라고.”

-후후훗, 그것도 그렇지만 어서 신상을 맛보러 가자꾸나.

이클립스의 설명이 단조로워서 그런지, 닉스는 금세 흥미를 떨쳐냈다.

고생한 만큼의 위력을 지닌 정수이니까 두고 보라고.

탑과 접속을 끊은 후.

난 약속대로 닉스에게 새로 나온 케이크를 선물해 주었다.

-초록색이라니. 굉장히 불길하구나.

“말이 심하시네. 이건 최근에 유행하는 민트초코 케이크라고.”

물론, 난 매우 싫어하는 맛이지만.

바라건대 여신님의 입맛에 꼭 맞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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