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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33화 (233/300)

233화

[선법 - 토룡출수를 습득했습니다.]

후욱, 몸 안에 자리 잡는 선법의 힘을 갈무리했다.

대지에 영향을 끼치는 토둔.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뇌둔보다 익히긴 쉬웠다.

난이도만 놓고 보면 뇌망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은데 더 빠르게 습득했으니.

「너, 정말 필멸자 맞아?」

“그렇다만.”

「미친. 세기의 천재인 나도 선법을 이렇게나 빨리 익히진 못했다고!!!」

백지에 나타나는 느낌표 여러 개.

손오공의 당혹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예상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지 속성이 감지됩니다.]

[대지모신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제우스 신전에서 포식했던 가이아의 정수.

뇌둔을 익힐 때 제우스의 정수가 반응해서 속성 제어에 도움을 주었듯, 이번에는 대지모신의 가호가 힘을 보탰다.

시험 삼아 발로 땅을 누르면서 선기를 흘려보냈다.

[토둔 - 토룡출하를 사용합니다.]

백택군림각을 사용한 것처럼 지축이 요란하게 흔들린다.

포효하는 용의 형상.

지면을 타고 올라온 토룡이 입을 쫙 벌린 채 무시무시한 기세로 전진했다.

박력 하나는 엄청나군.

토룡의 몸뚱이를 구성하는 선기를 움직이자, 머리가 좌우로 움직였다.

한번 펼치면 제한적으로나마 컨트롤이 가능한 기예.

토룡이 돌진하는 속도가 원체 빠르다 보니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어렵겠지만.

전투에서 변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유용한 옵션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

토룡이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이런 식으로 운용하면 지상에서 접근하는 걸 막을 수 있다.

그 외에도 활용 방법이야 무궁무진하니 실전에서 더 응용해 봐야지.

이번에는 토룡의 제어를 느슨하게 하고 정면으로 쏘아 보냈다.

콰드드드득!

훈련장 벽을 들이받은 토룡.

골드 문 서포터 여럿이 전개한 결계를 물어뜯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옅어지는 푸른 막. 한계 이상의 충격에 노출되자 건물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었다.

“버, 버텨!”

“마나를 추가로 주입한다.”

“이 위력은 대체……!”

웅성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솔라 익스플로전을 상회하는 위력.

광범위하게 폭발 에너지를 퍼트리는 게 아닌, 토룡을 중심으로 파괴력을 일점 집중한 덕이다.

-제법이지 않느냐, 그 선법.

“선기를 추가로 부여할 수도 있어.”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한.

출수한 토룡의 움직임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도 있고, 선기를 더 불어넣어서 위력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마법처럼 재배열 과정을 타인이 알아채기도 힘들고.

발현 자체는 평소처럼 걷기만 해도 가능하니 변수 창출에도 유리했다.

-한데, 저 선법에서 자매의 향이 느껴지는구나.

“대지모신 가이아의 정수가 선법에 힘을 실어 주더라고.”

-자매의 정수는 또 언제 취하였는고.

“운이 좋았다.”

-회귀자인 그대에게 운이 의미가 있을까 모르겠구나.

나는 빙그레 웃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정말로 운이 좋았는걸.

연신 결계를 물어뜯던 토룡도 힘이 다했는지 전진을 멈췄다.

잦아드는 진동. 비상사태(?)에 달려온 골드 문 소속 서포터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으음, 좀 심했나.

-그대는 양심이라는 게 있느냐?

“웬 양심 타령이야.”

-조금이 아니라 많이 심했느니라.

“새 능력을 시험해 볼 기회를 어떻게 참아.”

토룡출수.

진(眞)여의주에 깃든 선기를 7할가량 소모해야 구현이 가능한 선법이다.

여의주의 공능으로 마나 / 암흑 마나 = 내공 = 선기로 치환할 수 있다지만.

치환이 바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서 남발할 수 없는 선법이다.

그렇게나 많은 기운을 소모하는 선법이니 위력을 시험해 보고 싶잖아?

「무슨 수를 쓴 거냐!」

“왜. 알려 준 대로 한 건데?”

「토룡출수를 막 익히자마자 자유자재로 다루다니. 이건 불가능해!」

“내가 좀 잘나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너, 혹시 신혈을 이은 거냐?」

“토종 한국인이다.”

「거짓말. 필멸자 따위가 그렇게 쉽게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라고!」

포식의 비밀을 모르는 한.

손오공이 정답에 다가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가이아의 정수가 토둔에 개입해서 힘을 보태 줄 것까지는 예상 못 했지.

“쓸 만한데. 다른 것도 알려 줘.”

「당분간은 불가능하다.」

“뭐야. 쪼잔하게 그러기냐?”

「정말이다. 이 선법은 꽤 난이도가 있어서 책에 할당된 용량을 전부 써야 했다.」

“선법을 더 익히려고 했는데. 곤란하군.”

「미안하다. 이건 내 예상 밖이다. 토룡출수를 익히는 데만 1개월 넘게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손오공은 의외로 순순히 사과했다.

내가 토룡출수를 완벽하게 익힌 게 그만큼 충격이었나.

“맨입으로 끝내진 않겠지?”

「큭, 이번 일의 책임은 꼭 지겠다.」

글자가 괴악해져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일그러졌다.

손오공의 심기를 그대로 반영한 글씨체.

나한테 선법을 알려 주기로 맹세했으니,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너무 그러지 말라고. 뛰어난 제자를 둔 것을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제기랄. 다음에는 더 어려운 선법을 전수해 주마!」

저 문장을 끝으로 책이 자동으로 닫혔다.

* * *

90도 각도로 인사하는 아멜리아 테슬라.

“투자자님 덕분에 연구가 진척되었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 도울 건 없습니까?”

“으음, 당분간은 투자자님께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만 해도 바쁠 거예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십쇼.”

아멜리아는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얼마나 연구를 하는 게 좋으면 저렇게나 기뻐할까.

-흐으으응.

뭔데, 그 추임새는?

닉스를 슬쩍 노려보자,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대는 의외로 둔감하구나.

“왜 시비 거십니까.”

-후훗, 아무것도 아니니라.

쯧.

요즘 솜사탕 못 먹었다고 시위라도 하는 건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윌리엄 록펠러는 내가 머무는 호텔을 직접 찾아왔다.

“잊지 말게. 자네는 늘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난 흔들리지 않을 테니 록펠러 길드장님도 빨리 올라오시죠. 아니면 세계 최고의 길드를 빼앗길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만만하군.”

“아무렴요. 록펠러 가문과 거래를 하려면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죠.”

“그럼 동업자를 위해 한 가지만 충고하지.”

윌리엄 록펠러가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였다.

“르네 데이비스를 조심하게.”

융합기공의 원주인.

그리고 인류를 배반한 세 군주 중 한 명.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를 꾹 누른 채 태연하게 대꾸했다.

“새삼스럽게 그를 주의할 필요가 왜 있는지?”

“최근 두세 달 동안 성좌들의 후원이 늘어난 건 알고 있을 거다.”

“그거야 뭐.”

“특히 르네의 길드, 판데모니엄은 세를 불려 가는 속도가 남다르더군.”

판데모니엄.

72마신의 근거지이자, 악마들의 세계다.

르네 데이비스는 그 차원의 명칭을 그대로 딴 길드를 운영했다.

“주의해야 할 건 골드 문이지. 내가 아닌 것 같은데요?”

“르네 데이비스가 자네를 주시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지. 그 녀석은 이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니.”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 = 세계 최고의 길드.

윌리엄 록펠러는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저 개념을 분리했지만 르네 데이비스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

인류의 배신자.

르네 데이비스도 밟아 줄 때가 되긴 했지.

“그쪽에서 먼저 이를 드러내 주면 편하겠군요.”

“태평한 소리 하긴.”

윌리엄 록펠러는 그 말을 끝으로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경고만 해 주려고 온 겁니까?”

“내 시간은 비싸. 자네에게 할애해 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투자라네.”

“감사해서 콧물이 다 나겠네요.”

르네 데이비스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 라.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꽤 가치 있는 정보를 얻었다.

놈이 원하는 건 정상의 자리.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 장 우페이가 허무하게 죽었으니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르네 데이비스란 자도 성좌와 계약을 했겠구나.

“여신님도 아는 성좌다.”

-호오, 올림포스 쪽을 배후성으로 둔 게냐?

“바알.”

-그 혐오스러운 자를 섬기다니.

72마신의 우두머리.

악의 본산이라고 알려진 판데모니엄의 총수.

제우스나 오딘, 라처럼 신들의 사회와 ‘신화’를 대표하는 신왕급 성좌.

그리고.

튜토리얼에서 나한테 흥미를 느껴 배후성 계약 없이 가호를 내린 제멋대로인 존재다.

“미래를 바꾸는 게 꼭 긍정적이지는 않네.”

-이미 인류는 그대의 공헌 덕에 전생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고 있을 터. 왜 그리 생각하느냐?

“내 적들도 혜택을 보니까.”

르네 데이비스가 길드명을 판데모니엄으로 지은 이유는 간단했다.

전 길드원들을 72마신의 계약자로 만들겠다는 의지.

바벨탑 100층.

만신전의 성좌들이 지구를 주목하게 되면서 적의 세력을 팽창시킬 기회까지 주고 말았다.

-여의 계약자여, 조바심을 가지지 말거라. 그대가 말하지 않았느냐. 회귀라는 이적 덕분에 10년이 넘는 시간을 줄였노라고.

“그거야…….”

-인과라는 것은 찬란한 별빛 위에 이름을 기록한 자들도 마음대로 다루지 못하느니라.

닉스는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올림포스에서 시간을 주관하는 세 여신도.

미래를 내다보고 삼라만상의 지식을 모두 꿰찬 오딘도.

전지전능하다고 알려진 신왕 급 성좌들도 인과(因果)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이미 그대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본래에는 있을 수 없는 이적 아니겠느냐?

난 묵묵히 닉스의 말을 들었다.

-그러니 이 또한 인과의 결과이자 과정이며, 그대의 의지로 바꿀 기회가 있느니라.

바뀌어 가는 미래.

최근에는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걸 모두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였다.

변화의 흐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기 위해 움직일 뿐.

르네 데이비스가 세를 불려 간다는 소식은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닉스의 말을 인정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길드원들이 단체로 마중을 나왔다.

뉴욕 때처럼 취재진도 많았지만 협회에서 어느 정도 통제를 해 준 덕에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스승님!!!”

먼저 나를 반겨 준 건 늘 그랬듯, 지영이였다.

반갑게 인사하려는 찰나.

“저희 이제 플래티넘으로 승급했어요.”

“……벌써?”

나 없는 사이에 승급전을 치렀을 줄이야.

시간상으로는 맞긴 한데.

미국에서 체류하는 동안에는 탑을 오르지 않아서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스승님은 아직 골드시죠?”

“어, 그렇지.”

“우리 스승님, 허접이네.”

빠직.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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