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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31화 (231/300)

231화

바닥에 널브러진 엘렌.

인크레더블을 해제한 그녀는 본래의 체구로 돌아온 채로 거친 숨을 내뱉었다.

“좋은 승부였다.”

오른손을 내밀자 샐쭉한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좋기는 무슨.”

짧게 투덜거리면서 내 손을 마주잡았다.

“미스터 유, 그러고 보니 은근히 말을 편하게 하던데요.”

아.

주먹을 맞대다 보니 회귀 전 때가 생각나서 말이 편하게 나왔었다.

둘러대려고 해도 핑계가 없군.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 나도 편하게 할게.”

시원시원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엘렌은 구김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른 팀원들은 허무함이나 박탈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지만, 그녀만큼은 예외였다.

“너, 또 붙어 보자.”

기죽기는커녕 투지를 불태우는 모습.

그래.

내 기억 속의 엘렌과 똑같다.

회귀를 하고 나서도 바뀌지 않는 태도에 웃음이 픽, 나왔다.

“나 비웃는 건 아니지?”

“설마. 미국 랭킹 1위의 도전은 언제든지 환영이야.”

우리는 서로를 마주한 채, 한바탕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웃음기가 잦아들 때 즈음.

“미스터 유, 훌륭한 솜씨군. 믿기지가 않아.”

윌리엄 록펠러가 태연하게 다가왔다.

“어떻습니까?”

“인정하지. 전 세계를 뒤져 봐도 자네 이상의 플레이어는 없을 거다.”

“없을 거다, 가 아니라 없죠.”

난 단언했다.

회귀 전과는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엄청난 발전 속도.

전생의 기억을 바탕 삼아 미래에 밝혀질 히든 피스들을 일찍 손에 넣었고.

원 계획에 없던 기연들도 추가로 얻었다.

특히 [무지개의 휘광석]을 일찍 획득한 덕에 초월의 영역에 진입하기까지 했으니.

전생에서는 2040년 정도, 그러니까 플레이어가 되고 15년 뒤에야 이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니.

단언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는 접니다.”

“인정하지.”

윌리엄 록펠러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의 지속시간이 남은 상태에서 무리를 한 건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날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가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기에는 이 방법이 제일 확실했으니까.

“아까 말씀드린 제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만 시간을 주게.”

윌리엄은 처음으로 고민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골든 서클 팀과의 대련이 어지간히 충격인 듯했다.

윌리엄 록펠러가 말문이 막힌 건 회귀 전에도 본 적이 없었다.

-한데 왜 이리 복잡한 방법을 선택한 게냐?

-이자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전생에서는 윌리엄 록펠러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나빴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지.

멸망의 시대가 되어서야 생존을 위해 손을 잡았지만.

탑이 세계를 침식하기 전에는 장 우페이보다 더한 장애물이었다.

엔리케나 핑 레이처럼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인물도 아니고.

-장 우페이처럼 제거할 수도 없지.

-하면 어찌할 셈이냐?

-동업을 할거다.

윌리엄 록펠러는 우수하다.

그의 사업 수완과 투자 감각, 그리고 영향력은 전 세계를 쥐락펴락할 정도다.

전생에서 몇 번이고 겨룬 입장에서 하는 말이니 믿어도 된다.

만약 윌리엄 록펠러의 능력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다면…….

-미래는 크게 달라질 거야.

-저자가 그대의 제안을 따를지 의문이구나.

걱정하지 마라.

핑 레이라는 우수한(?) 교보재가 있으니.

사람의 성향에 맞춰 답을 제시하면, 얼마든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최고의 플레이어와 길드가 양립할 수 있다, 그 말 진심인가?”

“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록펠러 길드장님이 다르게 생각하면 안 되겠죠.”

“자네가 알지는 모르겠지만, 대부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네.”

“아군은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내 대답에 윌리엄 록펠러의 입가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건넨 인사에 이어 두 번째 악수.

더 많은 의미가 담긴 제스처였다.

* * *

*역천 길드 투자 제안

1. 록펠러 재단은 역천 길드에게 1,000,000,000달러를 투자한다.

2. 록펠러 재단은 역천 길드의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다.

3. 자문위원으로 엘렌 테일러를 파견한다.

…….

1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조가 넘어가는 금액이다.

회귀 전이면 모를까, 지금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엄청난 자금이다.

“절 돈으로 사려는 겁니까?”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투자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내 진심을 알아주게.”

“경영권은 못 드리는데요.”

“훗, 자네는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그럴 무대가 필요합니다만.”

“걱정하지 말게. 안 그래도 이번 대련 결과를 외부로 공표할 생각이니.”

“골드 문이 손해 아닙니까?”

“훗,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 셈이지.”

엘렌을 흘겨보니 표정에 변화가 없다.

이미 상의를 마쳤나 보군.

윌리엄 록펠러의 추진력은 엄청났다.

내 인생과 탑, 그리고 게이트 공략 때 활약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서 한 달 안에 방영하겠다고 하고.

유명 방송인들과 너튜버 등 여러 인물들을 섭외해 놓았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습니까?”

“원래는 자네를 세계의 정상으로 만들어 주겠단 제안으로 세팅해두었지.”

“제 용도라는 말이군요.”

“걱정하지 말게. 눈높이가 달라졌을 뿐, 해야 할 일은 동일하니까.”

윌리엄 록펠러가 세팅해 둔 것을 홀라당 먹게 되었네.

나쁠 건 없다.

변화하는 세계의 정세.

회귀 전과 달라진 역사의 흐름을 타는 것보다는 직접 움직이는 것이 더 현명했다.

-계약자여, 궁금한 것이 있구나.

“말해봐.”

-투자금은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느냐?

“레이언사. 그리고 내가 강해지는 데 써야지.”

돈은 많을수록 좋다!

티라노사우루스에 이어서 모아야 할 화석도 많고.

화석들을 긁어모으려면 1조도 모자라겠어.

“돈 쓸 생각 하니 즐겁네.”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진다고.

그 말이 공감되었다.

“매물은 저번처럼 내가 알아봐 주면 될까?”

“그럼 고맙지. 티라노사우루스 말고 다른 화석으로.”

엘렌은 대련 이후 말을 편하게 했다.

골든 서클 팀원들이야 불만이 꽤 있어 보이지만.

아니꼬우면 너희도 강해지든지.

화석 매매는 엘렌에게 맡기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플라자 호텔.

크리스마스 때마다 지겹도록 틀어 주는 영화, ‘나 혼자만 집에’의 실제 배경인 건물이다.

화려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이 넓은 공간에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윌리엄 록펠러가 손을 쓴 거지.”

유명 영화의 촬영지이자 뉴욕의 여러 호텔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소를 통으로 빌릴 줄이야.

록펠러 재단의 씀씀이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서자, 한 여인이 긴장한 기색을 띤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레이언사의 대표인 아멜리아 테슬라입니다.”

동명 기업과 겹치는 성씨.

그녀는 미국 발명가 중 하나인 니콜라 테슬라의 후손이다.

“유진호입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150센티가 될까 말까 할 만큼 단신에, 제법 신경을 쓴 것 같지만 입은 지 오래되어서 구김이 있는 정장이 눈에 들어온다.

패션 감각하고는 거리가 먼 연구자 스타일.

회귀 전의 모습보다 좀 앳되긴 하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앉으시죠.”

“넵, 가, 감사합니다.”

과도하게 목소리를 떠는군.

얼마나 긴장했으면 저러는지 모르겠네.

-다 그대가 험악하게 생겨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이 여신님 보소.

내가 험악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디서 선동과 날조를 하고 있어?

“저,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이번 투자와 관련된 이야기입니까?”

“네.”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니 아멜리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왜 저희 회사에 투자하려고 하시는 거죠?”

“투자 가치가 있으니까요.”

“레, 레이언사는 아직 제대로 된 결과물도 내지 못했어요. 후회하실지도 모르는데요.”

크큭.

난 웃음을 삼켰다.

예나 지금이나 멍청하다고 할 만큼 정직한 건 여전하구나.

“대표님의 논문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ㅈ, 제 논문을요?”

“공간증명론. 꽤 흥미롭더군요.”

레이언사에서 공간 이동 망을 전 세계에 구축하게 된 계기.

회사 대표인 아멜리아 테슬라의 논문이다.

“학계에서는 이단 취급을 받는걸요.”

“그럴 리가.”

“증명할 수 없으니까요. 아직 마나도 규명하지 못했는데 그런 가설이 가능하냐는 말이죠.”

필요 이상의 긴장으로 떨던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조금씩 단호하게 바뀌어 간다.

관심사가 나오니 금방 태도가 변하는군.

“이건 어떻습니까?”

[축지를 사용합니다.]

공간 사이를 접는 신기.

의자에 앉은 상태로 발을 두드리자, 순식간에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휘둥그레진 아멜리아의 눈동자.

“그, 그건!!!”

“축지라고 하는 스킬입니다.”

“블링크하고는 다른 이동 방식이에요. 마치 저희가 연구 중인 공간 이동 망처럼!”

공간 이동 망은 웜홀로 양쪽의 거리를 0으로 만드는 기술이다.

뭐, 축지는 그보다 한 단계 위에 속한 개념이지만.

스킬을 한 번 본 것만으로 거기까지 파악한 걸 보면 눈썰미가 대단했다.

“마력 유동이 거의 없었어요. 블링크처럼 왜곡 현상도…….”

아멜리아는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내 다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수없이 깜박이는 눈동자.

음, 영감을 얻은 건 좋지만 좀 무섭다.

-집념과 광기가 느껴지는구나.

나도 동감이야.

이대로 두면 대화가 진행되지 않겠어.

“대표님의 연구, 제가 좀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진짜요!?”

“예. 마침 공간 이동 이론 분석을 도와드릴 방법이…….”

“좋아요. 너무 좋아요!!”

아멜리아는 내 손을 홱 잡았다.

이게 아닌데.

처음에는 핑 레이처럼 성좌와의 계약으로 호감을 살 생각이었다.

공간 이동과 관련된 성좌.

전령과 여행, 그리고 도둑의 신인 헤르메스.

회귀 전에도 그녀에게 가호를 내려준 만큼, 연구 진척과 호감 모두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축지]를 보여 준 것만으로 이렇게나 격렬한 반응을 보일 줄이야.

-모든 것이 그대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로구나.

그러게.

너무 잘되어도 문제라니.

집념으로 물든 아멜리아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고개를 홱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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