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연계 공격을 무너트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그건…….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거다.”
왈칵, 피를 토해 내면서도 히죽 웃었다.
-참으로 무모하구나.
힐난조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무모하기는.
더 효과적인 거지.
엘렌의 공격을 추진력 삼아 왼쪽으로 튕겨 나면서 발을 세게 휘둘렀다.
이 위치에서는 무공을 쓸 수 없다.
체술도 제 위력을 내지 못하지만 정해진 동작과 내공을 완벽하게 운용해야 전개 가능한 무공보다야 낫지.
암흑 투기로 발을 두르고는 있는 힘껏 창을 걷어찼다.
격렬하게 부딪치는 오러와 암흑 투기.
예리한 창날이 메탈 반사 장갑에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능력치야 페널티를 받은 상태에서도 내가 위지만, 일점에 힘을 집중하는 창보다는 예리함이 떨어지기 때문.
오히려 좋아.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접촉면을 타고 창날에 들러붙는 검붉은 마력.
바알의 힘이 쌍둥이가 쥔 창을 스멀스멀 침식해 들어간다.
신왕급 성좌의 가호라고 해도 1레벨.
다이아몬드 등급 플레이어의 의념이 깃든 오러가 깃든 병기를 제 색으로 물들이는 건 어렵지만.
암흑 투기로 힘을 상쇄시킨 덕에 무리 없이 오염시킬 수 있었다.
“잠깐 네 창 좀 같이 써도 되겠지?”
“내 창에 무슨 짓을!”
탐욕의 가호는 모든 것을 ‘삼키는’ 힘.
밤 그 자체인 극야의 힘을 빼고 어떤 것이든 침식할 수 있다.
침식시킨 창에 암흑 투기를 불어넣자, 줄다리기를 하듯 창대에서 암흑 투기와 오러가 맞붙었다.
당연하게도.
창을 든 쌍둥이, 존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무기를 놓으면 되잖아.”
“도발하지 마라!”
난 진심으로 충고해 주는 건데.
금과옥조 같은 발언을 무시하다니, 통재로다.
창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동안 엘렌과 다른 쌍둥이가 움직였다.
동선이 길어진 쌍둥이(검)은 크게 우회해서 내 등을 노렸고.
엘렌은 방금 전에 뻗은 주먹을 뒤로 젖혔다가 다시 내질렀다.
공격 방향이 훤히 보이는 정권.
직선적인 만큼 강하고 빠르다.
나는 다리와 맞붙어 있는 창을 그대로 걷어찼다.
태애앵!
홱 틀어진 창의 궤도.
창끝은 엘렌의 주먹을 향했다.
“이이제이라고, 우리나라 속담인데 아시려나?”
느물거리는 웃음을 짓자 엘렌의 눈썹이 크게 휘었다.
어이쿠, 조금 화났나 보군.
쌍둥이(창)가 힘을 주며 창을 컨트롤하려고 했지만 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창에 남겨 둔 탐욕의 가호.
거기에 암흑 투기를 섞어 둔 게 창끝을 물들여서 사용자의 제어를 벗어났다.
그 순간. 엘렌이 꽉 쥐었던 손을 풀어내고는 창날 옆으로 스치듯 지나가더니 창대를 붙잡았다.
카카카칵!
오러 + 암흑 투기가 실린 힘.
[인크레더블]로 강화된 엘렌의 힘으로도 붙들기 힘든 찌르기였다.
마찰열로 인해 피어나는 매캐한 연기.
엘렌은 내 힘을 더한 창격을 가까스로 막아 냈다.
훤히 드러난 틈. 무방비가 된 두 사람을 밀어붙일 기회였지만.
[신속]
[벼락 베기]
섬뜩한 뇌기가 등 뒤로 쏟아진다.
뒤로 우회한 쌍둥이(검)의 일격.
맞아 주기에는 위험하군.
등 쪽으로 쏜즈 미사일을 생성, 그대로 방출했다.
“어디서 잔꾀를!”
빗발치는 가시 공격에 흐트러지는 검격.
[어둠의 육체를 사용합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다섯 배로 늘어난 극야의 출력.
새벽을 연상시키는 진한 어둠이 근방을 집어삼킨다.
엘렌, 그리고 쌍둥이(창)의 움직임이 멈춘 상황.
결정타를 먹이기에 적합한 타이밍이다.
-과연. 5분을 버티는 게 아니라 그 전에 승부를 낼 생각이로구나.
닉스의 중얼거림에 엘렌의 눈가 위로 불꽃이 튀었다.
모든 능력치 40% 감소?
이 정도 페널티는 있어야 할 만하지.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의 지속시간이 끝나면 상대가 안 될 테니까.
칼날 형태로 변한 극야.
내공을 불어넣자, 검은 기류가 칼 주위를 휘감았다.
채앵! 번개를 휘감은 쌍둥이의 검이 암영추혼검의 예기를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 났다.
“제이드!”
“신호를 기다렸습니다.”
엘렌의 외침을 신호탄 삼아 강렬한 빛이 정수리 위로 내리꽂혔다.
빛과 같은 속도.
[육감]이 위험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마법에 노출되어 버렸다.
[성질 부여 - 광휘]
[브릴리언트 레디언스]
일반적인 마법 계열 유저는 다룰 수 없는 성(聖) 속성.
성질 부여로 빛 계열 파괴 마법에 속성까지 부여하면서 위력을 증대시켰다.
본래는 범위 전체에 타격을 주는 광역 파괴 마법이지만.
성질 부여로 살아 있는 생물에게 무해한 마법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대를 많이 연구한 모양이구나.
난 쓴웃음을 지었다.
대(對)극야용 마법이라. 엘렌 녀석, 아주 작정을 했네.
이번 대련이 사전에 논의된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 오래전부터 준비한 게 분명했다.
회피가 불가능한 빛 속성 마법.
[어둠의 육체]로 극야와 일체화한 상황에서 마주하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쌍둥이(검)를 노리는 대신 극야의 힘을 크게 두르면서 쏟아지는 빛을 막아 냈다.
극야와 동화되면서 늘어난 출력이 아니었으면 내가 밀렸겠어.
아이러니하구먼.
빛이 사그라질 때 즈음에는 골든 서클 팀원들이 재정비를 마친 상태로 나를 노려보았다.
상대할 맛이 있어.
“한 방씩 주고받았으니, 이제는 내 차례다.”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의 지속시간은 아직 4분 30초나 남았다.
그 안에 승부를 낼 수 있을까.
-만용은 화를 부르거늘.
닉스의 한탄 섞인 음색이 나를 더 자극시켰다.
* * *
챙! 채채챙!
날카로운 음색이 쉬지 않고 훈련장 공기를 자극한다.
0.1초 단위로 이어지는 공방.
숨을 한번 들이마실 시간에 수십 번이나 되는 공격이 양측을 오갔다.
“어떻게 이 타이밍을?!”
“우리 남매만 알고 있는 건데!”
쌍둥이가 경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너희랑 부대낀 것만 해도 몇 번인데. 이걸 모르겠냐.
장검과 창의 연계를 가볍게 흩트려 놓으면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디버프를 걸어 줄 서포터는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의 페널티 때문에 손가락만 빨고 있는 상황.
변수 창출에 힘을 줄 마법 계열 플레이어, 제이드는 연이은 난전에 대단위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브릴리언트 레디언스에 성 속성을 부여하는 아이디어야 꽤 신선했지만.
내가 [어둠의 육체]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든.
자잘한 마법은 메탈 반사 장갑과 암흑 투기로 상쇄시켰다.
성질 부여가 까다롭긴 해도 판도를 뒤엎을 정도의 영향을 주진 못했다.
“하아아압!!”
[포효를 사용합니다.]
[반경 20미터 안에 있는 존재는 근력과 민첩이 10% 감소합니다.]
[지속 시간은 20초입니다.]
사자후를 연상시키는 요란한 고함 소리.
난전 중이라서 [아르스 게티아]를 사용하진 못해도 쓸 만한 디버프 스킬이 더 있단 말이야.
유일한 위험 요소는 단 하나.
콰앙!
몇 배로 커진 주먹이 지면을 강타한다.
운류보를 조금이라도 늦게 펼쳤다간 저 주먹에 깔렸을 거다.
“한눈팔 시간이 있나 보네요, 미스터 유.”
“설마. ”
-거짓이 갈수록 느는구나. 여유를 둔 주제에.
“내가 언제 그랬다고.”
-공허의 거울을 사용하면 금방 승부를 낼 수 있지 않느냐.
또 정곡을 찌르는군.
공허의 거울.
아니어도 공허의 마주침을 사용하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승부다.
“그럼 시시하잖아.”
닉스에게 들릴 만큼 작게 말하고는 다시 공세로 돌아섰다.
모든 능력치가 감소했음에도.
주도권을 잃지 않고 골든 서클 팀을 몰아붙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에서 가장 강한 팀.
골든 서클하고는 전생에서도 지겹도록 부딪쳤으니까.
그때에 비하면 완성되지 않았기에 허점을 파고들기가 쉬웠다.
답안지를 보고도 문제를 푸는데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갈 길이 아직 머네.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에 걸린 지 4분이 막 지나가는 순간.
“아악!”
한 줄기 비명과 함께 검 하나가 팽그르르 돌았다.
검을 쥔 쌍둥이의 손이 피로 물들었다.
한계를 넘어선 공격을 버텨 내느라 찢긴 손바닥.
“감히 제인을!!!”
쌍둥이(창)가 흥분한 기색으로 달려든다.
고작 대련인데 열 올리기는.
전생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녀석들도 한참 노력해야겠다.
“존, 진정해!”
엘렌의 외침이 덧없이 허공을 맴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방금 전의 공격으로 무너진 상황.
먼저 이빨을 드러내면 불리한 상황에서 앞뒤 안 보고 달려들었다.
이러면 내가 감사하지.
[뇌둔의 술 - 뇌망을 사용합니다.]
암암리에 끌어 모은 선력을 정면으로 전개.
쌍둥이(창)의 돌진에 맞추려던 엘렌을 뇌전 그물로 붙들었다.
[발레리안식 창법]
[쾌진격]
잔상을 남기면서 빠르게 쏘아지는 창.
팽팽해진 시위를 놓았을 때 앞으로 나아가는 화살처럼 맹렬한 기세다.
하지만.
“어딜 노리는지 뻔하잖아.”
속도를 극한으로 올리면 뭘 하나.
종착역의 위치만 알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살기가 향하는 쪽으로 현무제암고를 펼치자, 벽을 만난 것처럼 창끝이 크게 휘었다.
“커헉!”
피를 토하며 반대쪽으로 튕겨 나는 쌍둥이(창).
“다음에는 살기에 페이크도 넣고 그래라.”
남은 건 엘렌과 원거리 딜러, 그리고 무기력해진 서포터다.
원거리 딜러는 [축지]를 사용하면 그만이니.
“보기 좋게 패배했네요.”
엘렌은 후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벌써 인정하는 건가?”
난 예전과 달리, 편하게 말을 했다.
주먹을 부딪치다 보니 회귀 전의 동료로 지냈던 시절이 떠올랐다.
굳이 말을 놓을 필요는 없었지만.
마음이 시키는 걸 눈치 보느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아는 엘렌이라는 사람.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아.”
“미스터 유, 날 잘 아는 것처럼 말하네요.”
“꽤 봤으니까.”
“좋아요. 나도 이렇게 얻어만 맞고 항복하는 건 성에 안 차니까요.”
그래.
인류의 정점이었던 여섯 군주 중 하나.
엘렌 테일러라면 응당 그렇게 나오셔야지.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의 지속시간을 20초 남긴 시점에서.
골든 서클 팀원들은 모두 제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