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욱씬.
괴력을 사용한 오른팔이 파르르 떨린다.
“쉽지 않네.”
압도적인 힘 차이.
엘렌이 마력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시켰다지만, 정면으로는 내 상대가 안 됐다.
두 주먹이 충돌하는 순간.
힘에서 밀리는 걸 인지한 엘렌은 체내에 스며들었던 마나 일부를 격발하면서 밀어냈다.
그 결과.
괴력으로 강화된 힘 일부가 나한테로 돌아왔다.
짧은 순간에 맞받아칠 생각을 하고 실행까지 옮기다니.
역시나 엘렌이야.
“그건 내가 할 말 아닌가요?”
멀찍이서 들리는 목소리.
엘렌은 탈구된 어깨를 맞추면서 태연하게 대꾸했다.
너덜너덜해진 오른팔.
한계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왔고, 새빨간 피는 땅바닥을 물들였다.
[초재생]
우득, 우드득.
시간을 되돌리듯 바깥으로 나온 뼈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찢긴 근육과 살이 맞붙는다.
순식간에 회복된 상처.
저 괴물 같은 재생력은 여전하군.
“봤지? 미스터 유, 엄청난 사람이니까 방심하지 마.”
엘렌은 천연덕스럽게 팀원들을 훑어보았다.
-재생 능력 하나는 대단하구나.
“응. 거기에 정신력까지.”
인크레더블의 부가 능력인 초재생.
팔이나 다리가 잘려도 금세 회복되는 강력한 이능이나 고통까지 줄여 주진 않는다.
일반인이라면 팔을 잃을 수도 있는 중상을 입고도 고통스러운 내색 하나 안 하는 건 쉽지 않지.
엘렌의 초인적인 정신력을 옅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들 좋은 눈빛이 되었구나.
전투태세를 갖춘 골든 서클 팀원들.
그래.
이제야 싸울 맛이 나겠네.
[홀드 퍼슨]
마력을 꼬아 만든 밧줄이 두 다리를 붙든다.
백택군림각으로 주문 해제 가능한 수준.
그와 동시에, 살기를 담은 공격이 세 방향에서 쏟아졌다.
리치가 긴 창.
만병지왕이라고 불리는 검.
그리고 엘렌의 주먹.
서로의 동선과 겹치지 않는 기묘한 연격이다.
반격이나 공세에 대응할 시간을 안 주겠다는 말이군.
팔뚝에 마나를 주입.
나이트건트의 정수를 기반으로 빚어낸 가시들을 두른 후에 탐욕의 가호를 부여, 위력을 증대시켰다.
의념을 불어넣자 팔뚝 너머로 방출되는 가시들.
[쏜즈 미사일을 사용합니다.]
수백에 달하는 가시 미사일이 전방을 검게 물들인다.
채채채챙!
오러를 두른 창과 검이 움직이며 가시들을 쳐 낸다.
칼날 끝이 흔들린 건 그야말로 찰나.
0.1초 남짓한 시간이지만, 셋의 연계에서 빈틈을 만들기엔 충분했다.
잠깐, 여기서 그치기에는 조금 아쉽잖아.
골든 서클이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팀인데.
더 시험해 볼까?
발밑에서 솟구치는 검은 기운.
극야의 힘이 골든 서클 팀원들의 무기를 휘감는다.
정면에서는 극야의 출력으로 붙들 수조차 없는 강한 공격.
쏜즈 미사일을 방출해서 만든 빈틈으로 두 사람의 무기를 붙들었다.
“이 힘은?!”
“창이 옴짝달싹도 안 한다.”
유(流)가 강(强)을 제압하듯.
극야의 힘으로 측면을 파고들어 감싸니 두 플레이어의 병기가 운신의 폭을 잃었다.
-호오, 그대만의 새로운 운용 방법이구나.
그러게요. 이게 되네.
고수들과의 대결은 역시 깨달음을 얻기 좋았다.
회귀 후에도 강해질 구석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마다 어찌나 기쁘던지.
무너진 연계.
팀원 중 유일하게 붙들리지 않은 엘렌이 주먹을 빠르게 회수했다.
[백수제왕무 - 10초식]
[백택군림각을 사용합니다.]
지면 아래로 스며드는 수라마령심공의 내공.
쿠구구구궁!
미증유의 힘이 대지를 뒤흔든다.
발을 붙들던 마력은 항거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에 찢겨서 자취를 감추었다.
운신을 방해하는 디버프 스킬도 해제되었겠다.
땅을 차면서 연계가 흐트러진 세 사람의 간격 안으로 들어섰다.
[록 온]
[성질 부여 - 스턴]
[성질 변환 - 다연장 매직 미사일]
빗발치는 하얀 마력 탄.
엘렌 일행의 빈틈을 파고드는 순간 무수한 구체가 내 몸을 두들겼다.
메탈 반사 장갑을 뚫기에는 부족한 위력.
[피격 부위에 경직이 0.02초 동안 유지됩니다.]
[피격 부위에 경직이 0.03초 동안 유지됩니다.]
…….
마력 화살에 부여된 성질이 내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극야의 힘은 두 플레이어의 병기를 붙드는 데 모두 불어넣은 상황.
몸에 전해지는 피해가 없었지만 기껏 가져온 주도권을 고스란히 헌납해야 했다.
탱커 겸 딜러 1.
근거리 딜러 2.
원거리 딜러 1.
그리고 서포터 1.
저 멤버 구성은 여전하군.
대련이 시작되고 불과 몇 초 흐른 것뿐인데.
골든 서클 팀과 무수한 수 싸움을 주고받았다.
지금까지는 백중세.
-너무 즐거워하는 것 아니더냐?
“아니거든.”
-입가에 감도는 미소라도 지우거라. 그 표정으로는 설득력이 없구나.
티 났나.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장 우페이를 쓰러트릴 때하고는 다른 상황. 서로의 수를 읽으면서 최대까지 기량을 끌어내는 대련이다.
그것도 엘렌의 팀을 상대로.
회귀 전에도 꽤 맞붙었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니 나도 모르게 흥이 차올랐다.
“꽤 버텨 주면 좋겠네.”
나는 닉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 * *
엘렌은 훗, 하고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난 대련보다 더 성장했어.’
두 달 전.
무인도에서 겨루었을 때에는 백중세였다.
스펙만 놓고 보면 엘렌이 한 수 위.
고유 능력 및 여러 스킬들을 활용하는 부분에서는 진호의 감각이 더 뛰어났다.
승부를 가른 건 [공허의 거울]이라는 결정적인 한 수였지만.
엘렌도 그 당시에는 비장의 스킬을 꺼내지 않았으니 참작의 여지가 있었다.
‘인정해야겠어. 나 혼자서는 5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장 우페이.
중국 1위 랭커로 엘렌과 함께 최강의 플레이어라고 손꼽히는 존재였다.
둔황 사막에서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지만.
진호와 다시 한번 주먹을 맞대보니 이해가 되었다.
‘크로크 차원의 오크 투사보다도 강해.’
다이아몬드 승급전에서 마주친 다른 차원의 플레이어.
오크 투사를 뛰어넘는 상대가 진호였다.
“팀장님 말하고는 다르잖아.”
“저런 괴물하고 동등하게 겨루었다고?”
“바벨탑의 초대를 받은 지 1년도 안 되었다는 게 사실인가.”
늘 유쾌하던 골든 서클 팀원들의 목소리에서 은은한 두려움이 번졌다.
스펙의 문제가 아니다.
몇 초 동안 서로의 손속이 얽혔을 때.
골든 서클 팀의 수를 모두 간파하고 역으로 공세까지 가한 진호의 역량에 놀란 것이다.
“이 멍청이들아,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낭랑한 목소리.
엘렌 테일러는 평소처럼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까딱하면 우리가 질 거라고.”
골든 서클 팀원들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들은 진호를 플레이어로 생각하지 않고 층계 미션 수행 중에 나타나는 보스 몬스터로 여겼다.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한 강적!
“최후의 진형으로 가자.”
모든 것을 퍼붓는 총력전.
엘렌의 지시가 떨어지자, 서포터 계열인 케이트가 지팡이를 위로 추켜세웠다.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
우웅!
지팡이 끝에 달린 수정이 환한 빛을 내뿜는다.
사용자의 마나를 모조리 소진, 그 대신 이적을 만드는 강력한 디버프 스킬.
화려한 빛이 진호를 휘감는다.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감소합니다.]
[이동할 수 있는 간격이 50미터로 제한됩니다.]
[지속 시간은 600초입니다.]
[사용자가 불어넣은 마나와 동일한 양을 소모하면 지속 시간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회피 및 저항 불가.
서포터 계열은 마나가 높은 편이기에, 진호처럼 근접(?) 계열한테는 페널티를 줄일 방법이 없었다.
……라고 엘렌이 낙관하는 순간, 진호의 몸에 달라붙은 빛이 옅어졌다.
“5분 안에 승부를 내야겠네.”
서포터의 지원을 바랄 수 없는 상황.
엘렌은 체내에 스며든 마력을 나선 형태로 꼬았다.
한층 더 부풀어 오르는 근육.
무인도 대련에서 사용하지 않은 그녀의 비장의 수다.
붉게 물든 엘렌의 몸뚱이.
트롤보다도 커진 신체가 기민하게 움직였다.
정면으로 달려드는 엘렌의 양옆으로 창과 검을 든 두 남녀가 갈라진다.
이란성 쌍둥이인 제시&존.
두 사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읽어 낼 만큼 호흡이 잘 맞았다.
원거리 딜러인 제이드는 성질 부여 재능으로 연이어 마법을 준비.
‘이건 미스터 유라고 해도 버티지 못할 거야.’
단번에 승기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주도권을 가져오면 결국 진호의 무릎을 꿇게 만들 수 있으리라.
엘렌은 끓어오르는 마력을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자이언트 피스트]
두 배로 부풀어 오른 팔뚝.
스킬 이름대로 거인의 팔에 버금가는 주먹이 쇄도한다.
바다를 가르고 산도 부술 수 있는 거력.
회피하면 쌍둥이가 진호의 틈을 파고들 것이다.
그 순간.
진호가 씩 웃었다.
“그때 못 본 걸 이제야 꺼내 드네.”
시큰한 느낌이 가슴을 흔든다.
‘이쪽의 수를 읽혔다?’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는 진호. 곧게 편 손바닥이 몇 배로 커진 주먹을 옆으로 흘려 냈다.
극야의 힘으로는 붙드는 게 고작이었던 유법.
대붕의 날갯짓에서 따 온 초식, 비익대붕장은 엘렌의 전력을 담은 주먹도 만질 수 없는 바람처럼 비껴 냈다.
거를 수 없는 힘의 파동.
엘렌은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오른팔을 옆으로 휘둘렀다.
“틀어진 궤도는 다시 돌리면 그만이야!”
팔뚝 위에 솟구치는 혈관.
비익대붕장의 공능으로 틀어진 방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투투툭! 근육 일부와 혈관이 파열되었지만, 엘렌은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호의 옆구리에 꽂힌 팔뚝.
암흑 투기와 메탈 반사 장갑이 충격을 완화시켰지만, 강화된 엘렌의 힘을 감당하진 못했다.
왼쪽으로 튕겨 나는 진호의 신형.
“이게 내 도주 경로다.”
입가에 피를 머금으면서도, 진호는 환하게 웃었다.
손에 느껴지는 선명한 타격 감각.
앱솔루트 파워 프레임의 효과로 능력치가 반감되어서 피해가 더 컸다.
엘렌은 그 상황에서도 웃고 있는 진호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아……!’
그녀가 두 눈을 부릅떴을 땐.
오른팔에 실린 힘으로 튕겨 난 진호의 신형이 창을 든 플레이어, 존에게 가까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