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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25화 (225/300)

225화

둔황 사막에서 벌어진 혈투.

구룡방에서 동원한 100명 중 반 이상이 죽었고, 남은 이들 중에서도 몸을 가누기 힘든 중상자가 다수다.

두 다리를 딛고 멀쩡하게 서 있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

반면 우리 길드는 전원 생존했다.

“으, 으으으.”

“조금만 참게.”

부상당한 팀원에게 포션을 사용하는 신준석.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지만, 한 명도 안 죽었다는 게 중요했다.

아무렴.

개똥밭에서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잖아?

-의외구나.

“뭐가?”

-그대가 손속에 자비를 둘 줄이야.

“자비 같은 게 아니야. 거래지.”

구룡방 생존자들은 혈도를 눌러서 제압해 두었다.

이렇게까지 크게 사고를 쳤는데, 중국에서 무사히 벗어나려면 거래 재료가 있어야지.

플레이어의 수 = 치안 유지력이 된 현실.

중국 정부에서 30명이 넘는 플래티넘 등급 플레이어를 못 본 척 넘어가지는 못할 거다.

“뭐,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릇 위정자란 자국의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더냐.

“여신님은 신이잖아. 그런 것도 관심 있어?”

-후훗, 깨어 있을 땐 필멸자들을 꽤 관찰했던 몸이니라.

“일반적으로는 여신님의 말이 맞지만…… 꼭 그러라는 보장은 없거든.”

중국은 나라의 체면을 중요시한다.

이번 사태를 구룡방과 나, 둘 사이의 은원 관계로 해석하면 좋겠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국가 간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마음을 놓을 수는 없겠구나.

“그걸 대비해서 플랜 B도 준비해 뒀으니까 괜찮아.”

멸망의 시대 때는 이보다 더한 일도 얼마든지 있었다.

블랙 네트워크와 끈을 만들어 두길 잘했지.

아니었으면 이번 중국행을 크게 고려했을 거다.

“스승님, 괜찮으세요?”

“난 멀쩡해. 그나저나…….”

말끝을 흐리면서 지영이의 안색을 살폈다.

잘게 떨리는 입술.

늘 맑았던 눈동자 위로 탁기가 감돈다.

그래. 나한테는 일상과도 같지만, 지영이한테 누군가의 목숨을 앗는 행위는 처음이니 그럴 만도 했다.

“걱정을 해야 할 건 나 같은데?”

“무, 무슨 말씀이세요. 전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 지으면서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어.”

난 지영이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

바벨탑이 시시각각 지구와 동기화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젠가 겪을 일이라고 해서 무심하게 넘길 수는 없지.

“너무 참지 마. 힘들 땐 말하는 게 나아.”

“히끅.”

지영이의 목소리가 울음기에 젖어든다.

그 모습을 못 본 척, 다른 일행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너희는 괜찮나?”

“사부, 구룡방에 뽑히고 훈련을 받을 때 이런 일이 없었을 걸로 보입니까.”

“가족을 지키려고 싸웠어. 누굴 죽이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고.”

핑 레이와 엔리케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카를라는 큰 동요가 없어 보이고.

영수 형님만 감정을 제어하느라 시선을 돌리는군.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

지영이가 울고 있는데 할 말이냐!

“사부가 할 말이오?”

-그건 좀 아닌 것 같구나.

와, 세상에나.

닉스와 핑 레이가 의견을 모아서 타박하는 날이 오다니.

“억울하네.”

세상이 다 내 적인 것 같은 기분이군.

* * *

사막에서 돌아오는 길.

포로로 잡은 구룡방 길드원들을 앞장세웠다.

“스승님, 드론들이에요.”

“중국 정부에서 뿌려 놓은 거겠지.”

게이트 공략 의뢰를 정부 차원에서 한 것부터가 구룡방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다.

흔적 은폐용으로 띄워 놓은 감시 드론.

부상을 입은 구룡방 플레이어에게 다가가서 어깨동무를 했다.

“야, 웃어.”

“에, 예?”

“그냥 웃으라고.”

겁에 질린 채 벌벌 떨면서 억지로 히죽거리는 구룡방 플레이어.

비행 중인 드론을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정도면 내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겠지.

“스승님, 양아치세요?”

“그게 무슨 말이야. 효과적인 의사 표현 수단이잖아.”

“와, 진짜.”

금세 활기를 되찾은 지영이가 날 보며 힐난했다.

“중국 정부는 생각보다 집요하오, 사부.”

“걱정하지 마. 알고 있다.”

핑 레이는 은연중에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자식, 평소처럼 허세나 부리지.

네 걱정이야 알고 있지만, 이미 대책을 다 마련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마라.

둔황 시 근처에 도달했을 때, 맞은편에서 앰뷸런스 여러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유진호 플레이어 계십니까?”

“접니다만.”

“이,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게이트에 진입하려는 순간, 브레이크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마침 지원으로 나온 구룡방 분들이 휘말려서…….”

말끝을 흐리면서 중국 정부 관계자의 안색을 살폈다.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

거짓이라는 건 너희가 더 잘 알고 있겠지.

슬쩍 구룡방 플레이어들에게 다가가서는 히죽 웃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보입니다?”

중국 정부 측 관계자는 몸을 돌려서 작게 중얼거렸다.

청각을 키워 봤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써 대(對)플레이어 대책을 세우고 있을 줄이야.

-이대로 시간을 줘서 괜찮겠느냐.

“나도 놀고 있는 건 아니야.”

초음파와 감지.

두 스킬의 시너지 효과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반경 500미터에 숨어 있는 플레이어는 30명가량이고, 그중 반수는 플래티넘급이다.

언제라도 기습에 대응할 수 있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상황.

중국 정부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저들의 운명도 결정될 것이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유진호 님, 구룡방 소속 플레이어들의 치료를 우선해도 되겠습니까?”

“우린 급한 일이 생겨서 한국으로 바로 돌아가야 하는데요.”

“둔황을 게이트 브레이크의 위기에서 구해 주신 대가로 만찬을 준비했습니다만.”

“정중하게 사양하죠.”

만찬은 무슨, 밥에 독이나 안 풀면 다행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객기로 모시겠습니다.”

“참, 이 친구들은 치료 전에 우리를 배웅해 주고 싶다고 하더군요.”

다시 한번 구룡방 플레이어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이 녀석들을 치료한답시고 보내주면 그 뒤에 어찌 될지 모르잖아?

까득, 중국 측 관계자가 이를 갈았다.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신경전이 이어졌지만, 둔황 사막을 떠날 때까지 큰 일이 벌어지진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서야 긴장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예상보다는 쉽게 보내 주네.”

-무력 충돌을 대비한 계획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있기야 하지. 고생할 게 뻔해서 쓰기 싫었지만.”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벌였던 때랑은 차원이 다르다.

한 국가의 정부와 척을 진 상황.

무사히 돌아갈 자신이야 있지만, 여러 루트를 경유해야 했다.

-하면 저번처럼 솜사탕이나 케이크도 먹지 못했겠구나.

“배부른 소리 마시죠, 여신님.”

-훗, 아무래도 여를 공경하는 방법부터 다시 교육시켜야 할 것 같도다.

“예예. 뜻대로 하시죠.”

닉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넘기면서 좌석을 뒤로 젖혔다.

등받이에 기대는 순간 몰려오는 피로감.

나는 수마를 거부하지 않고 두 눈을 꼭 감았다.

* * *

『둔황 사막에서 벌어진 게이트 브레이크, 엄청난 인명 피해를 유발하다.』

『구룡방과 역천의 공동 공략, 인명 피해를 막다.』

『랭커 장 우페이의 사망. 중국에 큰 충격을…….』

둔황 사막에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금세 기사가 쏟아졌다.

플레이어 랭킹은 실시간으로 갱신된다.

장 우페이의 사망 소식을 숨기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

중국 정부는 소식을 은폐하기보다 그를 순교자로 만들어서 찬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의외로구나. 이리 되면 그대에게 책임 전가할 방법이 없지 않느냐?

“잃을 게 더 많은 건 중국 정부니까 그래.”

구룡방이 한국의 플레이어들에게 박살 났다는 것보단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다가 전사했다는 게 그림이 낫다.

우리를 무사히 보내준 것은 연극에 입을 맞추라는 무언의 압박인 셈.

그런데 말이야.

“녀석들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 필요는 없지.”

중국 정부를 압박할 카드를 스스로 헌납해 주다니. 고마워서 어쩌나?

둔황 사막에서 혈전을 치른 이후, 길드원들도 한 단계 더 성장했다.

게이트에서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인간을 상대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두 선배님은 괜찮으십니까?”

“각오하고 간 것 아니겠나. 어쩔 수 없지.”

“길드장님께는 받은 은혜가 있습니다. 마음에 걸리면 지도를 더 해 주십쇼.”

두 랭커, 그리고 팀원들은 생각보다 큰 반향이 없었다.

속마음이야 모르겠지만 당장 길드를 떠날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그뿐이랴.

사막의 전투에서 서로의 등을 맡겨서 그런지, 한결 더 친근해졌다.

내부적으로는 결속을 단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외부적인 측면으로 보면 길드의 위상을 한 단계 더 올리게 되었다.

“진호 특무대원 덕에 내 말년이 이렇게 폈구먼.”

김우성 협회장은 직접 길드 하우스에 찾아와서 공치사를 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 덕에 우리나라의 플레이어 수준이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려지게 되었고, 외교적으로도 이득을 많이 보았다나.

“대통령께서도 자네를 보고 싶어 하신다네.”

“제가 높으신 분들을 뵈면 긴장하는 버릇이 있어서요.”

“껄껄껄! 재미있는 농담이구먼.”

난 재미없는데요.

“걱정 말게. 다른 부처에서 손을 벌리려는 건 내 선에서 다 쳐 낼 터이니.”

“감사합니다.”

플레이어 협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협조.

한수창 팀장을 통해 미리 협회를 삶아 놓은 효과가 톡톡히 발휘되었다.

대외적인 일 처리를 모두 마무리하니 며칠이 훌쩍 지나갔다.

“분석관님, 저 오늘은 휴가 쓸 겁니다.”

“길드 일은 맡겨 주시죠.”

토마스 분석관에게 모든 일을 일임하고는 개인 방으로 돌아왔다.

-조용하구나.

“그러게. 최근에는 늘 시끌벅적했지.”

나는 닉스를 빤히 바라봤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녀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둔황 사막의 혈투를 치르면서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떼어지지 않는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여신님, 사실 난 회귀자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

아무렇지 않은 척, 가벼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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