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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21화 (221/300)

221화

적막감으로 물든 인공 게이트.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전투의 소음과 비명 소리로 가득했지만.

소음의 근원인 이들은 모두 숨이 끊어졌다.

-처음으로 사람을 해하였구나.

“바벨탑에서는 수천 번을 해 본 일이잖아.”

-하나 이 살업은 가짜가 아니니라.

난 조소를 삼켰다.

말은 퉁명스럽지만, 닉스의 음성에는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솔직하게 위로해 줘도 되는데.

그리고 말이야.

회귀 전에는 이 환경이 천국이라고 느껴질 만한 상황까지 내몰렸었어.

이 정도쯤이야.

“꺼억, 컥.”

무거운 침묵을 깨트리는 숨소리.

“아, 아직 숨이 붙어 있었냐?”

압둘 하마드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자식 보소. 함정에 빠진 내가 억울해야지, 왜 네가 그런 표정을 짓냐?”

“괴, 괴물.”

“그런 이야기는 지겹도록 들었어.”

오른발을 살짝 들었다.

힘을 주어 내려찍으면 끝.

압둘의 얼굴 위로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 살려 주십쇼.”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부탁입니다. 살려 주시기만 하면 뭐든 드리겠습니다!”

나는 압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면 뭘 줄 수 있는데?”

“제가 당신의 종복이 되겠습니다. 모시는 성좌께 맹세할 수도 있습니다!”

“오호, 그래?”

“시니스터 성좌들께서는 당신을 눈여겨보고 계십니다.”

“그거 참 영광스러운 이야기군.”

“또…….”

“관심 없어.”

“예?”

“네가 미래에 저지를 일들을 생각하면 죽는 게 나아.”

압둘의 눈동자 위로 의구심이 감돌았다.

그래.

넌 끝까지 알지 못하겠지.

시니스터의 장기말이 되어 전 세계에 혼돈을 흩뿌렸던 앞잡이.

핑 레이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면, 이 녀석은 시니스터의 무질서를 신봉한 위험 분자다.

갱생?

광신자에게 갱생 같은 게 가능할 리가.

그러니까.

“여기서 끝내자.”

콰직-!

압둘 하마드는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대로 사망했다.

-그대여.

“조금 이따 설명해 줄게. 그러니까 시간을 줘.”

-여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말거라.

닉스는 핀잔하듯 조용히 말했다.

회귀 전과 달라진 미래.

시니스터 소속 성좌들이 지구에 개입하는 걸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장기짝을 찾아서 혼란을 불러일으키겠지.

혼란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디스트니까.

이후의 역사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수작질을 파훼할 ‘힘’이 생겼다.

멸망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을 막으려면, 이젠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할 시기.

“그러고 보니 20분이 지났나.”

-이 게이트에 들어온 시각을 말한다면, 막 지났구나.

후욱, 깊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자잘한 상처는 모두 [재생]과 [변이]로 치유.

전투 중에 마나와 내공을 꽤 소모했지만 [진여의주]와 [혼원룡의 심장]의 효과로 대부분 회복했다.

만전에 가까운 상태.

-싸움은 끝나지 않았느냐?

“바깥쪽도 슬슬 시작했을걸.”

-시작?

닉스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대신, 게이트 출구로 발을 디뎠다.

몸이 붕 뜨는 감각과 함께 멀어진 시야.

감았던 눈을 떴을 땐 모래로 뒤덮인 사막으로 돌아와 있었다.

단지 차이점 하나가 있다면…….

20분 전과 달리, 게이트 주위에는 붉은 띠를 맨 플레이어들이 주위를 포위했다는 것?

-이, 이 무슨!

닉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긴. 함정은 하나가 아니었단 거지.”

난 앞으로 나섰다.

모래로 된 언덕 아래에서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사내.

장 우페이에게로.

* * *

장 우페이는 압둘을 깊이 신뢰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압둘의 배후에 있는 성좌들을 믿지 않았다.

‘대가 없는 힘이 제일 무서운 법이지.’

장 우페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비즈니스를 우선시했다.

그가 돈을 신봉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라서다.

원인과 결과.

성좌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세계에 간섭할 힘을 내줄 리 없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압둘 하마드의 사고방식은 매우 위험했다.

‘광신자들의 눈은 가려져 있는 법. 유진호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하다.’

플래티넘 등급 길드원 20명까지 붙여 주었지만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인공 게이트에 투입한 인원들은 압둘 하마드를 부리는 고용비인 셈.

장 우페이는 둔황 사막 부근에 길드원 다수를 투입, 진호가 인공 게이트에 들어가는 순간을 노렸다.

‘모든 증거는 사막의 바람이 묻어줄 것이다.’

구룡방의 대형이자 중국 최고의 플레이어.

장 우페이 스스로가 이번 일에 나섰고, 60층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길드원들도 다수 전장에 투입했다.

완전무장을 갖춘 길드원 100명.

둔황 게이트 공략에 여러 나라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기에, 추릴 만큼 추린 길드의 핵심 전력이다.

이 정도면 진호 일행을 흔적도 없이 지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랬건만.

“준비한 건 이게 전부인가?”

일행 앞으로 나온 진호를 보는 순간, 한 줄기 불안감이 장 우페이의 마음속에 감돌았다.

“소국의 종자답지 않게 허세를 부리는구나.”

“진짜 궁금해서 묻는 건데?”

“……고작해야 소국의 작은 길드. 구룡방이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겠는가.”

“다행이네. 그 이상이면 이쪽도 조금 귀찮아졌을 거라.”

진호는 조소했다.

“감히. 건방진 한국의…….”

구룡방 간부 하나가 나서면서 삿대질을 하는 순간.

장 우페이의 눈이 부릅뜨였다.

[운류보]

모래를 차면서 앞으로 튀어나오는 진호.

푹신푹신한 바닥이라서 경공의 제 위력이 나오지 않을 텐데, 엄청난 속도였다.

장 우페이는 버릇없이 나선 간부를 제지할 새도 없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주먹에 아른거리는 붉은 비늘.

그의 성명절기인 반룡권(反龍拳)이다.

장 우페이는 손에 집중된 권기를 정면으로 방출했다.

모래언덕을 통째로 들어낼 정도의 힘.

용의 형상이 진호를 삼키려는 순간, 비어 있던 손에 나타난 암흑 칼날이 장 우페이의 기를 베어 낸다.

서거걱! 방출한 기가 반으로 잘려나가면서 양옆으로 새어 나갔다.

그 여파로 사막에 생긴 커다란 구멍.

“대, 대형!”

한발 늦게 위기를 감지한 구룡방 간부가 떨리는 눈빛으로 장 우페이를 흘겨보았다.

“구룡방의 간부라면 담대하게 맞서 싸워라.”

장 우페이는 이를 갈면서 대꾸했다.

“이야, 원거리에서 권풍이라고? 대단하네.”

진호의 비죽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시답잖은 재주 하나 믿고 겁도 없구나.”

“너야말로 중국의 톱 랭커가 숫자 하나 믿고 너무한 거 아니냐.”

장 우페이의 말문이 막혔다.

우드득-.

주먹에서 난 섬뜩한 소리.

“왜. 혼자서 안 될 거 같으니까 이렇게 몰려온 거 아니야?”

“천둥벌거숭이 같은 것. 나는 확실한 것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확실한 걸 좋아하면 싹 물리고 일대일로 겨루든지.”

“싸구려 도발이군.”

“그래. 네 말대로 싸구려지. 넘어오든 말든, 그건 당신 마음이야.”

진호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 기색.

구룡방 길드원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삼삼오오 중얼거렸다.

‘저……!’

장 우페이의 눈매가 분노로 일그러졌다.

완벽한 포위망.

승산이라고는 1그램도 없는 주제에, 자신만만했다.

덩달아 어수선해진 분위기.

포위망을 갖추었을 때와 달리, 진호가 나서자마자 전장의 흐름이 그에게로 넘어갔다.

‘건방진 놈.’

장 우페이는 모래 위로 한 발 내디뎠다.

“대형! 저 천둥벌거숭이의 도발에 넘어가시면 안 됩니다.”

“지금은 포위망을 구축하고 확실하게…….”

“멍청한 것들. 내가, 이 장 우페이가 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내공을 실은 호통이 사막 인근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빠르게 가라앉는다.

“덤벼라, 유진호. 내 오늘 너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마.”

그 순간.

진호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 * *

역시.

장 우페이, 도발에 응할 줄 알았다.

나는 참아 왔던 웃음을 드러냈다.

압도적인 숫자 차이.

구룡방 정예 100명이 상대여도 이기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길드원들이 입을 피해지.

한데 장 우페이와 일대일 대결을 이끌어 내면 피해를 훨씬 줄일 수 있다.

-참으로 겁이 없는 자로구나.

“믿는 수가 있을걸?”

-호오, 그대가 그리 말할 정도라니.

반룡권.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장 우페이를 상징하는 절정 무공이다.

무공을 펼칠 때마다 용처럼 생긴 기가 형상화된다는 특징이 있는데.

한 가지 문제점은 형상화된 기가 붉다는 것이다.

핏빛 하늘의 주인, 혈마.

S급 성좌이자 천마에 비하지 못하지만 무공 관련 성좌 중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다.

언젠가는 핑 레이도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

장 우페이는 회귀 전에도 혈마를 배후성으로 두었었다.

붉은 내공은 혈천마공(血天魔功)의 특성.

202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년 뒤에 혈마의 계약자들이 폭주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중 하나가 저 녀석이거든.

-하면 위험하지 않겠느냐.

“그래 봐야 내 상대는 아니야.”

닉스와 잡담을 나눌 때.

장 우페이의 눈동자에서 붉은 광망이 번뜩였다.

투쾅!

모래를 차면서 허공 위로 도약하는 신형.

붉은 비늘을 전신에 두른 채, 주먹을 쭉 뻗으면서 하강했다.

전광석화 같은 기세.

육감이 살의에 반응해서 경고음을 울렸다.

혈천마공은 사용자의 생명력을 불태워서 내공을 강화시킬 수 있다.

주먹 위로 이글거리는 강렬한 붉은 기.

혈천마공의 묘리를 이용, 일시적으로 권기상인의 경지를 넘어서서 강기를 구현한 것이다.

“편법으로 일으킨 강기라.”

-그건 좀 위험해 보이는구나.

“뭐, 그럼 이쪽도 편법을 사용해야지.”

신준석과 대련할 때는 펼치지 않은 수법.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다르지.

[어둠의 육체]

[어둠 지배]

[암영추혼검]

열 가닥으로 만든 암흑 칼날 위로 새카만 기가 형상화된다.

검기상인의 경지.

이 정도로는 장 우페이의 공격을 받아치기에 모자란다.

그렇다면.

나는 열 가닥으로 구현한 칼날을 하나로 합쳤다.

분리했던 극야를 합치는 건 간단한 일이지만, 그 위로 형상화된 검기를 한데 엮어 내는 것은 어려웠다.

강하게 반발하는 검기.

난 그 기운을 꽈배기처럼 한데 묶어 냈다.

파르르르!

하나로 뭉쳐진 암흑 칼날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린다.

강기를 못 일으킨다면.

단순하게 출력을 10배로 올려 버려서 강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주마.

원래는 기를 형상화한 수준으로는 강기에 닿을 수 없지만.

극야와 일체화된 상태라면 가능했다.

남은 건 출력 차이뿐.

황혼빛이 밤과 충돌하는 순간.

붉은 비늘이 깨어지면서 마른 비명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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