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옐로우 스톰, 그리고 무극 팀원들의 마음을 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둘의 협공을 받아 내면서도 밀리기는커녕 압도하니, 어떤 설득도 필요 없었다.
“진호 님, 어떻게 1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런 힘을……!”
“부탁입니다. 저희에게 알려 달라곤 안 할 테니 훈련이라도 시켜 주십쇼!”
“저희도 길드장님을 따르면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경악.
그리고 감탄.
신준석이 으쓱해했다.
“내가 후배님 덕에 깨달음을 얻었다니까?”
주먹에 아른거리는 강기.
“그 속도로는 실전에서 못 씁니다, 선배님.”
“노력 중이지만 마음처럼 안 되는군.”
“기의 발출 문제니까요.”
“매번 후배님에게 깨달음을 얻어 가네, 허허.”
“길드장님, 저는 피드백 안 해 주십니까?”
홍윤수가 옆에 달라붙었다.
“제가 그쪽에는 조예가 없어서. 나중에 다시 붙어 보시죠.”
“중국, 아니 구룡방과 매듭을 지은 후 말씀이십니까.”
난 빙그레 웃었다.
폭풍의 지배자라더니, 바람 넣는 솜씨 한번 대단하군.
경외 섞인 팀원들의 눈빛.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른 분들은 중국을 다녀온 뒤에 봐드리겠습니다. 토마스 분석관도 도와주시죠.”
“후후후, 저만 믿어 주시죠.”
길드원들의 의견을 조율한 후, 곧바로 중국 대사관의 의뢰를 수락했다.
자, 떡밥을 던졌으니 어떻게 반응할지 두고 볼까?
중국 대사관에서는 금방 답신을 했다.
둔황 공항은 중국 내부선만 있어서 접근성이 안 좋으니 전용기를 보내준다는 것.
“몸이 달아올랐군.”
-왜 그리 생각하느냐?
“정부에서 그런 걸 내줄 리 없잖아.”
전용기는 돈을 산처럼 높이 쌓아 놓은 갑부들이나 운용한다.
공무원들이 잘도 전용기를 내주겠다.
처리해야 할 서류만 한가득일 걸?
“구룡방이 뒤에 있는 게 확실하다는 거다.”
-호오, 그대의 말대로 함정이 맞는 모양이구나.
둔황 사막에 생긴 고난이도 게이트.
회귀 전의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 봐도, 둔황 지역에서 브레이크 사태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
그곳에 정말 게이트가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
“이 정도의 전력이면 괜찮아.”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구룡방.
무슨 함정을 파 놓은지는 모르겠지만 철저하게 준비하는 게 좋을 거다.
어설프게 준비하면 잡아먹는 게 아닌, 잡아먹히게 될 거니까.
* * *
둔황 공항에 내리자마자, 정장을 입은 사내가 인사를 건넸다.
“유진호 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내역을 맡은 리우입니다.”
“정부에서 나오셨습니까?”
“예. 이번 게이트 공략에 힘을 빌려주시니 어찌나 감사한지…….”
“시간이 아까우니 게이트로 가죠.”
난 사내의 말을 잘랐다.
공치사도 적당히 해야지.
혀에 기름칠을 많이 했다는 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거다.
회귀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진리지.
-그대가 여를 찬양한 것도 꿍꿍이가 있어서더냐?
“설마, 그건 진심이야.”
-흐으응.
닉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휴, 이래서 눈치 빠른 여신님이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네.
미리 준비된 버스를 타고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적막감이 감도는 차량 내부.
20명 가까이 되는 길드원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만리타향.
그것도 적진 한가운데라고 생각하니 다들 긴장한 듯했다.
평소 재잘거리기를 좋아하는 지영이마저도 입을 다문 채 창밖을 흘겨봤다.
“둔황 사막은 오래전 실크로드의 주요 루트로…….”
안내를 나온 사내가 떠드는 말이 공허하게 차량 내부를 울렸다.
도시에서 1시간 정도 이동했을 때, 차량이 멈춰 섰다.
모래 언덕 위에 아른거리는 푸른 빛.
게이트다.
“여기입니다, 유진호 님.”
안내자의 뒤를 따라 내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래로 뒤덮인 사막.
천안(千眼)을 최대치로 사용했지만 근처에 마나의 유동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른손을 뒤로 빼고는 검지와 중지를 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등 뒤를 바라보는 길드원들.
태연한 목소리로 안내원에게 말을 걸었다.
“길드원들도 이번 게이트 공략에 참여시키고 싶습니다만.”
“저런, 이 게이트는 최대 입장 인원이 한 명뿐입니다. 본국에서도 플레이어 몇 명을 잃은 상황이죠.”
“그러면 어쩔 수 없군요.”
난 희미하게 웃으면서 게이트 앞에 섰다.
[둔황 사막 - 모래 속으로]
[조건 - 골드(1인)]
게이트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 - 107:34:25
이야, 참 노골적인 입장 조건이다.
슬쩍 옆을 보니 안내역을 맡은 사내가 침을 삼켰다.
-저치, 긴장한 티가 역력하구나.
“그러게.”
내가 게이트를 공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걸까.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할까 봐 떠는 걸까.
어느 쪽이든, 게이트에 들어가 보면 답이 나오겠지.
망설임 없이 푸른빛으로 물든 게이트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육감이 살기를 감지합니다.]
머리, 목, 심장, 사타구니 등.
살기가 급소 위주로 쏟아졌다.
-그대여!
걱정하지 마.
이미 예상했던 거니까.
사막에 함정을 파 놓지 않았다면, 남은 건 게이트뿐.
메탈 반사 장갑과 암흑 투기, 그리고 극야의 힘으로 전신을 감쌌다.
게이트 너머로 완전히 이동되는 순간.
콰콰콰쾅!
큰 충격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파이어 익스플로전]
폭발의 진원지는 게이트 입구에 설치해둔 마법진.
솔라 익스플로전에 버금가는 강력한 폭발 마법이다.
암흑 투기와 메탈 반사 장갑으로 충격 대부분을 흡수했지만.
달궈진 공기를 마셨다간 폐에 이상이 생길 거라서 호흡을 꾹 참았다.
역시, 날 겨냥한 함정이었군.
매캐한 연기 사이로 게이트 내부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 주위는 푹 꺼진 분지.
무장을 갖춘 플레이어 무리가 반구 형태로 파인 분지 주위를 감싸고 있다.
약 30명.
게이트 출입 가능 인원이 1명이라고 한 게 우스운 숫자다.
“방금 공격에 죽었으면 고통을 짧게 느꼈을 건데. 안타깝군.”
며칠 전에 들어 본 목소리.
세트의 계약자, 압둘 하마드가 분지 끄트머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 아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이더냐?
“놈한테는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이 있거든.”
난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압둘 하마드는 회귀 전에도 게이트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각종 테러에 활용했다.
시니스터 소속 성좌와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 중 극히 일부만이 다룰 수 있는 강력한 이능.
“오히려 좋아.”
난 미소를 지었다.
압둘 하마드와 구룡방이 손을 잡은 걸 알아챘을 뿐만 아니라.
탑에서는 고통을 주는 게 전부였던 녀석이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제 발로.
“여기에서 죽이면 더 CP를 쓸 필요가 없지.”
“네놈. 여유를 부리는 것도 여기까지다!”
압둘 하마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공격 신호를 내렸다.
* * *
압둘은 승리를 자신했다.
레드 데저트 9영신.
그리고 구룡방에서 지원해 준 플래티넘급 플레이어 20명.
탑에서 진호에게 연거푸 패배했기에, 구룡방에서 눈치를 줄 만큼 준비를 철저하게 마쳤다.
‘저자의 시체를 주인에게 바치겠다!’
진입로 주위를 푹 파 놓아서 수적 우위를 최대로 끌어올렸고.
구룡방에서 실력 있는 술자들을 동원해서 파괴 마법, 파이어 익스플로전까지 설치했다.
죽음의 함정!
이 정도 전력이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랭커, 장 우페이라도 쓰러트릴 수 있다.
진호가 파이어 익스플로전을 정면으로 맞았을 때만 해도 승리를 확신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왜, 준비한 건 이게 전부야?”
콰직!
구룡방 측 플레이어 하나가 목이 꺾인 채, 분지 아래로 떨어졌다.
양손으로 깍지를 끼는 라시드와 하밀.
솟구친 모래 위로 물이 적셔지더니 강한 바람과 결합해서 진호의 발목을 붙들었다.
[백수제왕무 - 10초식]
[백택군림각]
게이트 전체가 흔들린다.
고작 한 걸음을 떼었을 뿐인데.
진호를 붙들어 놓았던 온갖 가호가 지워졌다.
“이얍!”
“대형께 하사받은 무공의 힘을 보여 주마!”
진호가 성좌들의 가호를 해소하는 동안, 주위를 포위한 플레이어 무리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창, 검, 주먹 등.
무공 사용자들을 우대하는 중국답게 하나같이 일류 이상 무공을 익혔다.
“이러니까 무공 가격이 비싸지.”
진호는 짧게 투덜거렸다.
회귀 직후, 무공을 구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쓴웃음을 머금었던 때가 떠올라서다.
[어둠의 육체]
[어둠 지배]
[암영추혼검]
톱니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칼날들.
암흑 칼날 위에 생성된 검기가 무인들의 병기를 쳐 내려 했다.
“거, 검기라고?”
“우리 중화민국의 진짜 무공보다 질이 떨어질 거다. 두려워 말고 공격!”
채채챙!
유형화된 기가 허공에서 충돌한다.
일류로 불릴 만한 실력을 지닌 무인들.
중국 내 수많은 플레이어들 중에서도 상위 0.1% 안에 드는 실력자들이지만.
태앵! 진호의 검기 앞에서는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밤이라는 성질과 결합하면서 한 단계 더 강해진 암영추혼검.
강기에 비해서는 한 수 모자랐지만, 집중을 해야 무기에 기를 불어넣는 무인들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이럴 리…….”
“다음에는 검을 쥐는 방법부터 제대로 배워 와라.”
서걱!
토막 난 병기를 허무하게 보던 무인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순식간에 1/3에 해당하는 전력이 사라졌다.
“마, 말도 안 돼.”
뒷걸음치는 압둘.
구룡방 소속 무인들은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둔황 사막에 함정을 판 후, 장 우페이가 보내 준 이들과 합을 몇 번이나 맞춰 봐서 잘 알았다.
진호가 막 베어 버린 사내만 해도 이집트에서라면 유명세를 떨칠 정도로 강했다.
그런 이들이 손 한 번 제대로 섞지 못하고 진호에게 압살당하는 모습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압둘, 네놈에게 한 가지는 고마워해야겠군.”
“히이이이익!”
“네 덕분에 귀찮은 일을 덜었다.”
“웃기지 마라. 위대한 분들께서 함께하시는 한, 꼴사나운 패배는 없다!”
“나한테는 위대한 밤의 여신님이 함께하는데?”
“감히, 나를 능멸하려 들어!”
압둘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그때.
“여를 배알하는 영광을 주었건만, 참으로 품위가 없는 자들이로고.”
닉스가 호문쿨루스의 육체로 현신했다.
“입구는 여에게 맡기어라.”
“한 놈도 놓치지 마.”
“후훗, 그대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그 말을 끝으로.
압둘 일행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진호가 게이트에 들어가고 20분이 지난 뒤.
압둘 하마드를 포함, 일행 중 게이트 안에서 숨을 쉬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