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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16화 (216/300)

216화

[왕자의 바람]

[폭류]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세트의 가호와 달리, 은밀하게 자신을 숨긴 바람의 흐름.

지척에 다가왔을 때쯤에야 겨우 알아챘다.

발밑에서 솟구친 물은 모래를 적시면서 전신을 감쌌다.

“이대로 잡혀라.”

“멈춰!”

물의 흐름을 붙잡은 바람.

두 가호가 절묘하게 섞이면서 전신을 짓눌렀다.

-제법이로구나.

“감탄만 하고 있을 때야?”

-후훗, 그대야말로 궁지에 몰린 것 치곤 너무 여유롭지 않느냐.

발밑에서 솟구친 극야가 다섯 갈래로 나누어진다.

총 40스텟에 달하는 출력.

어둠의 육체를 사용했을 때에 비해서는 작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

다섯으로 나뉘어진 극야의 힘이 칼날로 변해서 물을 헤집었다.

물과 바람을 결합시킨 소용돌이가 낱낱이 해체된다.

“우리의 연계가 이렇게 쉽게 파훼된다고?”

“이익! 웃기지 마라!”

큭.

나는 입술을 비죽였다.

세트가 주관하는 영역은 사막.

둘의 연계 자체는 훌륭했지만, 고갈 영역에서 힘이 줄어드는 물 속성에 바람을 엮어 냈으니 제 살을 깎아 먹은 셈이다

느슨해진 힘을 극야로 베는 건 일도 아니지.

오히려 깨진 속박을 붙들려고 힘을 주는 게 나한테 이득이다.

“어리석은 것들! 나의 주인께서 지배하는 영역 안에서는 물의 힘이 반감되지 않느냐!”

한발 늦게 쏟아진 호통소리에 힘의 결합을 해제하는 두 사람.

근데 어쩌냐.

압둘은 이미 지척이었다.

“어리석은 건 너다.”

“뭣이라?”

“세트의 힘은 단독으로 사용할 때 극대화되는 법. 영역까지 선포해 놓고 협공을 하니 잘될 리 없잖아.”

“이, 이이이…….”

“준비한 게 다 떨어졌다면 이만 끝내자.”

경신법도, 전력 질주도 사용하지 않았다.

압둘이 펼친 공세를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묵묵히 전진했다.

네게 줄 건 완벽한 패배.

무기력감을 느껴 봐라.

꽉 말아 쥔 주먹으로 압둘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퍼어어어엉-!

주먹이 머리에 닿는 순간, 가루로 변해 버렸다.

-꽤 손속이 잔인하구나.

“이런.”

난 피식 웃었다.

잔인한 게 아니야.

압둘, 이 녀석 아직 포기를 안 했군.

주먹으로 가격하자마자 느꼈다.

내가 부순 건 놈의 머리가 아니라 세트의 가호로 만든 ‘더미’라는 것을.

무너진 압둘의 육체가 셀 수 없는 모래 알갱이로 변하더니 출수했던 오른팔을 휘감는다.

우드드득!

어떤 것이든지 분쇄해 버리는 압착기처럼.

촘촘하게 붙은 모래가 팔을 짓누른다.

“이럴 줄 알았다.”

붙들리지 않은 왼손으로 모래를 뜯어냈다.

모래 한 알갱이, 알갱이마다 스며들은 세트의 가호.

큼지막한 건 완력으로 뜯어내고, 몸에 들러붙은 일부는 극야를 사용했다.

[신의 모래 폭풍이 해제됩니다.]

거세게 휘날리던 모래가 땅으로 추락한다.

원래대로 돌아온 시야.

농밀한 살기가 주위를 가득 메운다.

“이런 거였군.”

잦아든 모래 폭풍 사이로 비치는 실루엣.

한둘이 아니었다.

“영광으로 알아라, 유진호.”

“뭐가?”

“너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레드 데저트의 9위신이 한자리에 모였으니까.”

압둘은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한 번에 3인까지만 팀을 맺을 수 있는 미션.

레드 데저트는 탑의 규칙을 교묘하게 회피, 아홉이나 팀을 맺었다.

지영이네 팀이 허무하게 당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

-그런 이야기는 못 듣지 않았느냐?

“모습을 직접 드러내진 않고 몰래 도와줬을 거다.”

-간악한지고. 당당하지 못한 이들은 밤 자락으로도 가리지 못할지니.

닉스가 투덜거렸다.

9 대 1.

하나같이 배후성 계약을 한 성좌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낸 놈들이다.

오래간만에 전력을 다할 수 있겠군.

[공허 비추기를 사용합니다.]

[원시종의 정수를 구현합니다.]

쭉 늘어난 그림자에서 수십 미터 크기의 티라노사우루스가 튀어나왔다.

“카오오오!!!”

“저 후안무치한 자들은 용서할 수 없구나.”

닉스는 호문쿨루스의 육체로 현신, 렉시의 등 위에 올라탔다.

“공룡이다!”

“적이 늘어났습니다, 길드장님.”

“소문으로 들었던 그 소환수입니다!”

“그래 봐야 소환수. 전투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기는 건 우리다!”

글쎄, 여신님한테 소환수라고 하면 화낼지도 모르는데?

“저치들이 겁도 없이 망발을! 계약자여, 본때를 보여 주자꾸나!”

“예예.”

안 그래도 호되게 박살 내 줄 생각이었습니다.

9명으로 늘어난 적.

숫자가 많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는 걸 알려 주마.

* * *

『오아시스의 주인은 당신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늘 마음을 충만하게 했던 성좌의 시선.

오늘만큼은 세트의 관심이 압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럴 리가 없는데!’

신의 모래 폭풍.

압둘이 세트의 가호를 최대로 받으면서 다룰 수 있게 된 스킬이다.

다른 성좌와의 연결을 끊어 내고 모든 능력치를 깎아 낼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대미지까지 입히는 강력한 영역.

거기에 압둘 자신은 충만해진 세트의 가호로 버프까지 입어, 실질적으로 전투력을 두 배 이상 강화했다.

‘무슨 수로 신의 모래 폭풍에서 버틴 것이냐!’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진호.

압둘은 그가 정면으로 걸어오는 것조차 저지하지 못했다.

“위대하신 성좌들께서 저 자의 죽음을 원하신다. 목숨을 아끼지 마라!”

두려움을 떨쳐 내려는 듯, 압둘은 고함을 치면서 나아갔다.

[크리에이트 샌드 스태츄]

세트의 권능으로 빚어낸 모래 거인들이 앞서 나간다.

압둘 하마드가 선출한 플레이어들, 일명 9위신도 저마다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성스러운 나무의 속박]

[왕자의 패도]

[붉은 황혼]

…….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태고의 불꽃은 지면을 불사른다.

별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성좌들의 힘이 반쯤 무너진 신전에 쏟아졌다.

“아이야, 저곳으로 가자꾸나.”

쏟아지는 화망을 뚫고 나오는 렉시.

닉스의 손짓에 맞춰 극야가 커튼처럼 넓게 펼쳐진다.

하늘거리는 어둠 자락은 성좌들의 공세를 흡수, 렉시를 보호했다.

“소환수 따위보다는 유진호가 먼저다. 두 위신만 저 공룡을 막아라.”

라시드와 하밀.

아까 진호를 붙들었던 콤비가 렉시 앞을 막아섰다.

두 사람은 공격력이 높지 않지만 대상을 속박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유했다.

압둘이 둘을 스쿼드로 포함시킨 것도 진호의 발을 붙들기 위함이었다.

“맡겨 주십시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두 위신은 물과 바람의 힘을 재조합, 렉시를 막아섰다.

압둘은 렉시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티라노사우루스.

진호가 공룡을 소환수로 다룬다는 건 이미 꽤 알려져 있었다.

최근에는 골드 승급전에서 소환하기까지 했으니.

렉시가 소환되었을 때를 대비한 계책은 이미 세워 두었다.

‘두 위신으로는 발을 묶는 동안 유진호를 쓰러트린다!’

자신을 포함한 7위신.

이 정도 화력이면 진호를 쓰러트리기에 충분했다.

“쉬지 말고 밀어붙여라!”

쾅! 콰쾅!

폭음이 연신 울려 퍼지고.

북쪽 신전 바닥은 원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압둘이 선출한 9위신.

둘이 빠졌지만, 그들은 이미 서로의 특성을 잘 이해한 덕에 연계공격을 능숙하게 펼쳤다.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집트 1위 랭커인 아흐메드 가뎀조차 위신들의 연계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자욱한 흙먼지.

피아 식별조차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세의 끈이 늦춰지는 일은 없었다.

약 5분 간 이어진 공격.

마력 대부분을 쏟아 낸 위신 중 하나가 주저앉았다.

“훅, 후욱.”

위신들이 쏟아 낸 공격은 신전 일대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한숨도 쉬지 않고 스킬을 사용한 결과.

레드 데저트의 리더이자 성좌의 대변인인 압둘조차 땀을 훔칠 정도였다.

“해치웠나?”

“그걸 정면으로 맞으면서 버틸 수 있는 건 없어.”

“랭커조차 못 버틴 공격이다. 놈은 이미 죽은 게 분명해.”

승리를 자신하는 9위신.

압둘조차 미소를 지으면서 진호가 죽었다고 확신했다.

그때.

『오아시스의 주인이 당신에게 경고합니다.』

『오아시스의 주인이 강하게 경고합니다.』

『오아시스의…….』

뇌가 쪼개질 것 같은 압박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세트와의 동조가 최대치에 다다른 탓에 강렬한 의념을 받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흔들렸다.

압둘은 그 와중에도 세트의 메시지가 뜻하는 바를 읽어 냈다.

“모두 전투태세! 놈은 아직 죽지 않…….”

서거걱!

압둘의 외침이 퍼지기 직전.

검은 칼날이 흙먼지로 꽉 찬 크레이터에서 튀어나와 9영신 중 한 명을 베어 냈다.

“커흑!”

마른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9영신 중 한 명.

거미신 아난시를 배후성으로 삼은 유능한 플레이어였다.

한발 늦게 태세를 가다듬는 압둘 무리.

“이게 끝이야?”

진호가 온몸을 검게 물들인 채, 흙먼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 * *

9영신.

벌써 그 재목들을 모았을 줄이야.

확실히 회귀 전보다 빨라.

압둘 하마드의 직속인 9영신은 시니스터 소속 성좌들과 계약한 이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들이다.

원역사대로라면 이 녀석들이 두각을 드러낸 게 2030년 정도거든?

“오히려 잘됐나.”

압둘 하마드가 긁어모은 인재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 있었다.

미래를 위해서는 밟아 놔야 할 놈들.

핑 레이처럼 시간을 들여서 갱생시킬 만큼 거물은 아니다.

압둘을 상대했을 때처럼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 내느라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닉스, 그리고 렉시를 상대한다고 두 위신을 더 빼놓지 않았으면 버티기 힘들었겠지.

하지만.

“어떻게 그걸 맞고도 버텨 낸 거지?!”

“골드 등급이 다이아몬드급 랭커보다 더 강하다고?”

“이,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

무리한 만큼.

압둘 하마드를 포함한 9영신의 전의를 박살 내기에는 충분했다.

“끝을 내자.”

스스스슷!

극야와 동기화하면서 상승한 출력.

수라마령심공으로 축적시킨 내공을 불어넣었다.

밑 빠진 독처럼 쉼 없이 빠져나가는 내공.

암영추혼검을 다섯이나 동시에 전개하니, 정신력과 내공 모두 빠르게 줄어들었다.

손을 휘두르는 순간.

서거거걱!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 칼날이 플레이어들의 몸뚱이를 반으로 갈랐다.

성좌의 힘을 빌린 기술로 버티려 했지만.

그 무엇보다도 정순한 어둠, 극야 앞에서는 버티지 못했다.

하나만 빼고.

“대장이라고 한 번은 버티네?”

“큭, 크으윽.”

가슴팍에 기다란 자상을 남긴 채로 선 압둘 하마드.

놈이 입을 뻥긋거리면서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뒤이어 들이닥친 암흑 칼날이 놈의 몸통과 머리를 분리시켰다.

“또 보게 될 거다.”

난 허공으로 비산한 머리를 보며 짧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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