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메인 미션 - 제단 보호를 통과했습니다.
▶모든 제단을 지켜 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41층 최고 기록에 등록됩니다.
▶성좌들의 개입으로 난이도가 올라갔습니다. 보상이 상향 조정됩니다.
[최고 기록에 도달했습니다.]
[보상으로 로엔그린의 창이 주어집니다.]
[로엔그린의 창]
등급: 레전드
분류: 창
내구도: 8,000/8,000
2대 성배의 기사인 로엔그린이 사용한 창입니다.
강대한 성력을 지니고 있어 사용자의 체력을 소모하여 성광기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신성 주문이 기록되어 있어 보조용으로도 활용 가능한 만능 창입니다.
*근력 + 70
*민첩 + 20%
*성광기 사용 가능.
*홀리 크로스 사용 가능.
*큐어 사용 가능.
…….
*정화 Lv 30 상시 적용.
하얀 빛을 내포한 창.
원탁의 기사 중 한 명인 ‘붉은 기사’ 퍼시발의 아들, 로엔그린의 창이다.
-호오, 창에서 성배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성배의 수호자가 다루었던 무기라서 그럴 거야.”
-하면 성좌의 무기란 말이더냐?
“그렇지. 성유물 취급은 못 받지만.”
아이템명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창은 로엔그린이 다룬 여러 무기 중 하나다.
성유물에 이르지는 못했어도 이력 자체는 남았단 거지.
여러 성좌들이 미션에 개입한 결과, 현 층계에서 받기 힘든 엄청난 보상을 얻었다.
『지혜의 탐구자가 당신을 주목합니다.』
『하늘의 악이 아쉬움을 드러냅니다.』
『하늘의 악은 순수한 무공만이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보상으로 영약이나 주고 그러시죠?”
허공을 올려다보며 푸념했다.
내가 무공을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신준석처럼 딱히 무공 숭배자까진 아니다.
포식으로 강력해진 신체 능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게 무공이라서 그렇지.
강화된 [괴력] 빼고는 백수제왕무에 비견될 정도의 체술도 없고.
-그대에게는 양심이란 게 있느냐?
“내가 뭘 어째서.”
-대화를 말자꾸나. 어이하여 부끄러움은 여의 몫이 되었는지.
아니.
왜 여신님이 한탄을 하는 건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 * *
다음 날.
난 곧바로 블랙 네트워크의 연결책인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드 하우스 근처 카페에서 만난 영.
“이 창을 경매에 넘기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마담에게 전해 줘.”
“알겠습니다. 그분께서도 기뻐하시겠군요.”
“창의 가치가 그렇게 높나?”
“레전드 등급 중에서도 높은 스텟 증가. 그리고 정신방어 보정에 여러 보조 마법이 있지 않습니까.”
제법이군.
아이템 보는 눈은 있네.
“마담께서 전해 달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흔적은 남지 않을 것이다.”
멕시코와 이탈리아.
두 나라에서 들불의 화로를 얻는 동안 벌인 일을 말하는 것이군.
“쓸데없는 짓을.”
“마담은 불필요한 일에 손을 쓰지 않으십니다.”
영은 단언하듯 말했다.
내 휘하로 붙여 주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담의 수하.
충성심과 능력, 어느 쪽도 모자라지 않는 인물을 보내 주었다.
뒤통수를 노리지만 않으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인재.
하지만.
“그렇다고 나한테 이를 드러내면 곤란해.”
난 살기를 은근히 드러냈다.
카페 안에는 손님 몇 명이 앉아 있었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살의는 한 명에게만 향했다.
진땀을 흘리는 영.
“……명심하겠습니다.”
“로엔그린의 창, 잘 부탁하지.”
남은 커피를 한 번에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는 게냐?”
“케이크는 다 먹었잖아.”
“하나 가지고는 부족하니라.”
“그렇게 먹다간 이 상해.”
칭얼거리는 닉스를 타박하며 길드 하우스로 돌아왔다.
용산으로 이전한 길드 하우스.
총 10층, 각 층 평수는 전에 사용했던 건물보다 3배 정도 컸다.
구매하느라 들어간 돈만 100억 단위.
돈이 벌린다 싶으면 밑 깨진 독처럼 새어 나가는군.
“이제부터는 지갑 사정도 신경을 써야 하나.”
“원시종의 정수를 포식했으니 된 것 아니더냐?”
“그게, 돈 나갈 일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
티라노사우루스 말고도 포식해야 할 원시종의 정수가 여럿 있다.
각 종의 궁극에 선 원시종.
트리케라톱스나 모사사우루스, 브라키오사우루스 같은 종의 화석도 모아야 한다.
그뿐이랴.
미국행에서 떠올린 회사, 레이던 사에도 투자해야 한다.
장거리 도약 기술이 상용화되면 이동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원 역사대로라면 2036년에나 전 세계에 깔릴 공간 이동 망.
근데 그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잖아?
이미 회귀 전과는 달라진 세계의 흐름.
그렇다면.
레이던사에 투자해서 공간 도약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도 있을 거다.
“자본주의에서는 돈이 시간이니까.”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
내가 직접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대신, 금전을 지불하는 것이다.
한 가지 위안인 건 성좌들의 개입으로 미션 난이도가 확 상승했다는 점?
보상도 그만큼 올라가니, 돈을 모으기가 한결 편해졌다.
“후훗,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었구나.”
“노예가 뭡니까. 돈이 없으면 여신님이 좋아하는 케이크도 먹을 수 없어.”
“그럼 곤란하구나.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여라.”
닉스가 해 준 일을 수당으로 치환하면 케이크값을 월등히 뛰어넘지만.
그 부분은 굳이 말하지 말자.
여신님이 시급 인상을 요구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길드 하우스에 들어서는 순간.
“아오오!!! 분해!!”
한 여인의 목소리가 로비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지영이가 또 핑 레이에게 패배했나 보구나.”
길드 훈련에서 동네북(?)인 지영이.
대련에서 질 때마다 분해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되었다.
고유 능력인 진동 결계가 기동성에서 떨어지는데다, 핑 레이와 카를라가 대(對)결계전에서 유리한 능력을 보유했으니.
지영이는 늘 울상을 지으면서도 두 사람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조금 다른데?”
오늘은 목소리에서 평소보다 더 강한 감정이 느껴졌다.
1층 로비를 지나치자 바로 훈련장이 나왔다.
눈가에 습기가 아른거리는 지영이.
영수 형님은 이를 악문 채 분기를 가라앉히는 중이었고.
카를라는 조용히 낫을 쓰다듬었다.
“저 아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 처음 보는구나.”
“그러게. 지영이가 왜 이렇게 화 났지?”
“훗, 여는 카를라를 보고 말하는 것이니라.”
닉스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무표정한 얼굴 사이로 분노가 아른거렸다.
“여기가 초상집도 아니고. 무슨 일이야?”
“스, 스승님.”
“떨지 말고 말해 봐.”
“그, 그게…… 우에에엥!!!”
지영이가 말하던 도중 닭똥처럼 굵은 눈물을 흘렸다.
와, 사람 난감하게 왜 이래?
“뚝 그치고 이리 오너라.”
“히끅, 히끅.”
닉스가 지영이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어휴, 저 상태면 무슨 설명을 듣겠나.
“영수 형님, 상황 정리 좀 부탁드립니다.”
“부끄럽게도 42층 미션에서 다른 국가의 팀에게 패배했습니다.”
“질 수도 있죠. 뭘 그런 걸로 저렇게까지.”
상투적으로 대꾸했지만, 내심 놀랐다.
영수 형님이야 해당 등급에서 조금 앞선 정도지만.
카를라와 지영이는 이미 플래티넘 급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지녔다.
조금만 더 성장하면 다이아몬드급, 다르게 말하면 랭커에도 도전할 정도의 실력인데.
미션에서 누구랑 부딪쳤기에, 패배한 거지?
“그게 말입니다. 상대는 아무래도 저희 길드를 저격한 것 같습니다.”
“저격이라면…….”
“이집트 쪽 길드인 레드 데저트라고 하더군요.”
“형님, 혹시 그쪽에 압둘 하마드라는 놈이 있었습니까?”
“맞습니다. 길드장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군요.”
알다마다.
까드득- 치아가 맞물리면서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 계열 성좌들의 모임.
시니스터에서도 중심축을 담당하는 성좌, 세트의 계약자다.
회귀 전에는 같은 배후성을 둔 핑 레이와 손을 잡고 전 세계 암흑가를 주름잡은 거물이기도 하고.
핑 레이에 버금가는 악질.
한국 플레이어 협회에 압둘 하마드 조사를 의뢰한 것도 그 이유다.
악 계열 성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세트의 계약자인 압둘 하마드도 수상한 행동을 보일 테니까.
“이런 식으로 나온다, 그거지.”
“길드장님, 짚이시는 게 있으십니까?”
“이번 미션, 형님 말씀대로 저격이 맞을 겁니다.”
“이집트 쪽 길드가 저희 길드를 왜…….”
“압둘 하마드는 오아시스의 주인, 세트의 계약자거든요.”
김영수가 놀란 듯이 입을 쩍 벌렸다.
세트 녀석, 압둘 하마드한테 얼마나 투자를 한 거야?
제우스의 계약자인 알렉시스처럼 영성을 퍼부으면서까지 압둘을 강화한 모양이다.
“한데 이상하구나. 그대의 길드원들이 언제 탑을 오를 줄 어찌 알고…….”
“골드 등급부터는 CP만 있으면 얼마든지 저격할 수 있어.”
[대결 지목 주문서]
등급: 레어
분류: 소모품
내구도: 1/1
길드, 혹은 개인을 지목해서 미션 경쟁을 할 수 있습니다.
차원 상인에게서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골드 이상에서는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수치다.
“길드장님, 그럼 앞으로도 계속 저격을 당할 수 있다는…….”
“방어는 가능해요. 개인 정보 보호 주문서라고.”
“그건 다행이군요.”
“우리는 쓸 일 없을 겁니다.”
지금 다행이라는 소리가 나옵니까, 형님!
단호하게 이야기하면서 김영수의 약한 소리를 잘랐다.
“이번 일, 갚아 줘야죠.”
바벨탑 어플을 활성화, 차원 상인 모르스를 불러냈다.
-부르셨습니까. 호오……객님.
“말이 좀 길다?”
-아닙니다요. 착각하신 겁니다.
“됐고. 대결 지목 주문서 5장 내놔.”
-한 장당 2만 cp인데. 괜찮으십니까?
“내가 cp가 모자라 보이냐?”
-요즘 주가를 올리시는 분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모르스는 내 눈치를 살피면서 둘둘 말린 종이 스크롤을 다섯 장 꺼냈다.
“가 봐.”
-언제든 불러 주십쇼. 그럼 이만!
평소처럼 떠들지 않고 접속을 끊는 모르스.
내 기분이 언짢은 걸 알아챈 듯했다.
“핑 레이랑 엔리케는?”
“히끅, 분석관님이랑 나갔어요.”
“둘 다 들어오라고 연락해.”
압둘 하마드.
안 그래도 네놈의 흔적을 쫓고 있었는데, 스스로 나와 주니 고맙구나.
나를 건드렸으면 적당히 손봐 주고 말았을 텐데.
내 사람을 건든 건 용서할 수 없다.
회귀 전의 악연도 있겠다.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