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야타 까마귀가 해당 미션에 강림합니다.]
[태양신의 사자는 강력한 조력자입니다. 악마 추종자들과의 싸움에서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발 하나 달린 커다란 까마귀가 부리를 벌렸다.
-하늘에 맞닿은 새의 알이라. 훌륭한 공물이로구나.
품위 있는 목소리가 부리 사이로 흘러나왔다.
야타가라스, 일본 신화에서 태양신으로 군림하는 아마테라스의 사자다.
태양의 의지를 지상에 전달하는 환상종이자 성좌.
-필멸자야, 네 정성이 갸륵하여 저 악한 무리를 퇴치하는 데 힘을 보태 주마.
[괴조의 알]은 41층 클리어의 조력자인 야타 까마귀를 불러낼 제물이다.
7년 후에나 밝혀질 ‘주인 잃은 제단’의 사용법.
뭐, 내가 저 녀석을 소환한 목적은 조금 다르지만.
“협조는 필요 없다.”
-이미 대가는 받았다. 다른 걸 줄 수는 없으니 서비스라고 생각해라.
“아니. 네가 줄 수 있는 게 하나 더 있지.”
쭉 늘어나는 손톱.
[날카로운 손톱]을 발동한 채, 야타 까마귀에게 다가갔다.
“그 몸뚱이.”
미션에서 등장하는 야타 까마귀는 튜토리얼에서 마주한 [늪의 마왕]처럼 그 개념을 빌려 온 열화판 복제품이다.
거기에 40층대 난이도 보정이 역으로 들어가서 약화되기까지.
이런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
원본인 ‘야타가라스’ 성좌의 정수에 비해서야 모자라지만 그래도 환상종의 정수다.
야타 까마귀가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까악, 기개는 좋지만 넌 나를 해할 수 없다.
“왜. 격의 차이가 나서?”
-그걸 아는 놈이 겁도 없구나.
[신성한 빛이 내리쬡니다.]
[야타 까마귀에게 향하는 공격이 모두 무효화됩니다.]
[성 속성과 빛 속성 공격의 위력이 100% 증가합니다.]
난 암흑 마나를 끌어올렸다.
손가락에 모인 음차원의 에너지를 재배열.
일렁이는 검은 기류를 손끝에 집중, 야타 까마귀에게 가리켰다.
놈의 이마에 새겨지는 역십자 문장.
[위계 추락을 사용합니다.]
[대상의 격이 한 단계 하락합니다.]
야타 까마귀의 날개에서 솟구치던 빛이 사그라졌다.
타락 천사의 정수에서 추출한 능력.
야타 까마귀처럼 높은 격을 띤 상대에게는 제격이다.
-고작해야 필멸자 주제에, 내 격에 간섭한다고?
“이 정도면 해볼 생각이 드나.”
-좋다. 건방진 필멸자. 제물도 받았으니, 목숨만은 붙여 주겠다.
날개를 활짝 편 야타 까마귀가 환상종으로서 보유한 힘을 정면으로 해방했다.
야타 까마귀의 전신이 환하게 물든다.
검은색 깃털을 틈새 없이 하얀색으로 뒤덮어 버린 강렬한 빛.
아마테라스의 힘을 빌린 태양의 힘이다.
[격이 높은 존재를 마주합니다.]
[디어사이드가 활성화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200% 증가합니다.]
[격 차이가 무효화됩니다. 모든 공격이 100%로 적용됩니다.]
크크크.
회귀 전에는 얻지 못했던 정수.
신살의 검인 [미스틸테인]에서 추출한 대(對)성좌 전용으로 발동하는 능력이 눈을 떴다.
전신에서 솟구치는 용력.
끓어오르는 힘에 웃음을 흘리면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태양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자처하다니. 목숨은 붙여 주려 했으나 어쩔 수 없군!
“말 많기는. 주둥이로 싸우냐?”
-이놈이!!
야타 까마귀가 두 날개로 크게 홰를 치며 날아들었다.
정면 궤도.
휘감은 열기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주위의 풍경이 일그러진다.
솔라 익스플로전에 버금가는 열기를 감은 셈.
단전에 축적된 내공이 내 의지에 따라 팔뚝으로 전달된다.
피부 위를 뒤덮는 흑색 비늘.
‘용’의 개념을 흉내 낸 응룡황권을 펼치려 하자, 시초룡의 개념을 일부나마 구현한 몸이 그에 반응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주먹을 뻗었다.
소용돌이치는 권기.
하늘 위로 승천하는 흑룡의 형상이 태양 빛을 물어뜯었다.
여의주를 문 용의 모습이 이러할까.
-피, 필멸자의 조악한 기술이 내 격에 닿는다고?!
“조악한지 아닌지는 봐야지.”
무공도 깨달음의 극에 닿으면 성좌에게 닿을 수 있다.
회귀 후, 아직 그 정도 성취에 닿지는 않았지만.
[디어사이드]의 보정으로 그 경지를 흉내 내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쩌저적- 딛고 있는 지면이 수 갈래로 갈라진다.
두 힘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여파를 감당하지 못한 것.
야타 까마귀가 내뿜던 빛이 꽤 약해졌지만 백수제왕무를 후속으로 펼치진 못했다.
-까아악! 그래 봐야 필멸자의 수준은 이 정도까지구나!
그건 네 생각이고.
백수제왕무를 펼치는 동안, 이미 두 번째 수는 준비되어 있었다.
[뇌둔의 술 - 뇌망을 사용합니다.]
수십 미터를 뒤덮는 번개 그물.
촘촘히 짜인 뇌전이 야타 까마귀를 휘감는다.
-크가가각!
“어때. 이제 정신이 좀 들어?”
-건방진 필멸자가!
-이, 이런 데서 쓰러지면 내가 얼마나 비웃음을 당할지 모른다!
두 날개를 힘차게 휘젓는 야타 까마귀.
선법으로 빚어낸 뇌전의 기운이 태양의 힘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뭐, 움직임을 묶는 걸로 충분하지.
[공허의 거울을 사용합니다.]
[우르칸의 흔적이 거울에 비칩니다.]
[혼에 기록된 상태로 변합니다.]
등 뒤에서 솟구친 날개.
우르칸의 날개를 이용,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시끄럽게 울지 말고 그만 퇴장해라.”
-이, 이대로 쓰러질쏘냐!
쾅! 쾅!
연신 터지는 폭음.
회피를 선택한 야타 까마귀는 태양의 기운을 방출하는 대신, 방어용으로 전개했다.
비행 중에는 백수제왕무의 위력이 100% 나지 않는 상황.
야타 까마귀와의 전투는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어째서냐. 고작 필멸자 따위가 이렇게나 능숙하게!
“이거 연습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이트건트한테 침 맞아 가면서 익숙해진 비행이다.
연습한 보람이 있구먼.
그뿐이랴.
[바람길을 사용합니다.]
단순 속도만 놓고 보면 비행보다 바람길을 이용한 질주가 더 빠른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허공에서 비행과 뛰기를 반복.
야타 까마귀의 기운을 조금씩 소모시켰다.
조금씩 탁해지는 태양 빛.
전투 개시 후 1시간이 지나자, 야타 까마귀가 게거품을 물었다.
-끄으으으…….
땅으로 추락하는 야타 까마귀.
[막대한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세등등했던 놈은 바닥을 나뒹굴면서 흙먼지 범벅이 되었다.
“이게 되네.”
고양감이 마음을 충족시킨다.
상대는 환상종.
탑 시스템의 여파로 약화되었다지만, 그래도 급수 차이가 월등하게 났다.
[위계 추락]으로 격을 떨어트렸다지만, 그래도 차이가 엄청난 상황.
미스틸테인을 포식하지 않았더라면 몇 시간 동안 소모전을 벌여도 쉽게 승기를 잡지 못했으리라.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분전에 감탄합니다.』
『천상의 신은 당신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지혜의 탐구자가 신성을 격하시킨 능력에 호기심을 드러냅니다.』
『하늘의 악이…….』
디어사이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능력.
타락 천사에게서 획득한 [위계 추락]이라면 모를까.
무슨 수로 야타 까마귀에게 유효 타격을 입혔는지 궁금할 거다.
그나저나 오딘은 조금 신경 쓰이는군.
디어사이드의 근원은 신살검 미스틸테인이다.
발두르를 해할 뻔한 이력이 있는 만큼, 오딘의 관심은 주의해야겠어.
야타 까마귀를 쓰러트렸지만 서브 미션에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주인 잃은 제단]은 제물을 바쳐서 다른 물질로 교환하는 용도.
41층의 조력자인 야타 까마귀를 쓰러트린다고 해서 특별한 보상을 주진 않는다.
굳이 따지면 기획자의 의도를 벗어난 버그 같은 거니까.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환상종은 죽으면서 가죽을 남기는 법.”
히죽 웃고는 흙먼지 범벅이 된 야타 까마귀의 사체에 손을 얹었다.
[야타 까마귀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전설]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태양의 화신이 추가됩니다.]
[태양의 화신]
등급: ★★★★
분류: 액티브
태양의 힘을 전신으로 방출한다.
시스템의 설명만 들으면 감이 오지 않는 스킬.
하지만.
난 이미 야타 까마귀의 능력을 다룰 줄 알고 있었다.
심장에 깃든 태양의 힘을 구현하자.
콰아아아!
야타 까마귀가 그러했듯, 태양의 힘이 피부 너머로 솟구쳤다.
“운이 좋군.”
충만한 힘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 * *
잊힌 자들의 회랑.
주기적으로 재조립되는 탑 지하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장소다.
바벨탑의 근간인 ‘시스템’이 머무는 공간.
고신족들은 잊힌 자들의 회랑을 통해 탑의 운영에 개입했다.
“이상하군요.”
루레인.
탑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고신족이자, 한때는 마법의 신으로 불렸던 존재.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시스템에 비쳐진 수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마법의 신께서 무슨 일로 인상을 쓰고 있나?”
“히페리온, 지금은 일하는 중입니다.”
“하여간 딱딱하긴.”
“당신의 흑심에 놀아날 시간이 없습니다.”
최초의 태양신 히페리온.
그는 루레인의 곁으로 다가와서 히죽거렸다.
“너무 그러지 말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잖아?”
루레인은 한숨을 쉬었다.
히페리온이 고신족 중에서도 유독 염문을 많이 뿌리는 자라는 걸 생각하면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태양신의 고견을 여쭤보죠.”
생각과 달리, 루레인은 히페리온의 말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웬일이야? 매번 내 말을 칼처럼 쳐 내더니.”
“지금은 당신의 의견이라도 구하고 싶은 마음이라서요.”
“호오, 천하의 마법의 신이 약한 소리를 하는군.”
“이 플레이어, 어떤가요?”
루레인은 못 들은 척 바로 본론을 꺼냈다.
허공에 아른거리는 플레이어의 상태 창.
[플레이어 - 유진호]
나이: 24
능력: 포식, 천재
…….
바로 진호의 능력치였다.
“이상할 게 있나? 1차 대침식도 마쳤으니 다이아몬드 등급 플레이어가 나오는 건 당연하잖아.”
“이자, 갓 골드 등급으로 승급했답니다.”
“잠깐만. 골드라고?”
히페리온은 다시 한번 진호의 상태 창을 훑어보더니, 두 눈을 부릅떴다.
“뭐야, 오류라도 일어난 건가.”
“설마요. 탑 시스템은 오류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건 과한데.”
“유진호. 지구 차원을 탑으로 흡수하는 데 있어 변수가 될지도 몰라요.”
루레인은 경계 섞인 눈빛으로 진호를 노려보았다.
여러 차원에 뿌리를 내린 바벨탑.
그중에는 [흡수 후보]인 차원들도 있었다.
지구는 다른 차원과의 경쟁에서 밀려 탑으로 흡수될 유력한 후보.
“그 녀석이 신경 쓰이면 내가 손 좀 쓸까?”
“히페리온, 저희는 3차 대침식 때까진 외부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걸 잊으셨습니까?”
“큭, 이래서 모범생들이란. 조금만 기다려 봐.”
히페리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