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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10화 (210/300)

210화

마르코 호프만은 독일계 이집트인이다.

탑의 초대를 받고 나서는 촉망 받는 서포터 플레이어로 알음알음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엔네아드에서 신왕 다음의 권력자인 오시리스에게 후원을 받았다.

1차 대침식 이후로 치안 유지에 필수가 된 플레이어의 존재.

마르코 호프만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는 탄탄대로의 인생.

그런 마르코에게도 동경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진호, 향신료 제도의 영웅.’

한국 출신 플레이어.

마르코가 그를 알게 된 계기는 부루 섬 사건이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공략을 포기하고 게이트 브레이크를 유도했던 지역.

진호는 길드원들과 함께 믿기지 않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진호 님에게 관심이 생긴 건.’

마르코는 진호가 처음 매스컴에 노출되었을 때부터 근황까지 모조리 찾아보았다.

갓 튜토리얼을 나온 플레이어가 몸값으로 1억 달러에 준하는 금액을 요구하지를 않나.

실버 승급전에서는 그리스의 유망주이자 신왕의 계약자인 알렉시스를 압도했다.

마르코는 비밀리에 이집트에서 유진호 팬클럽을 운영할 만큼 그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그런데.

골드 승급전에서 진호를 마주쳤다.

‘이건 가문의 영광입니다.’

마르코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답시고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죽음을 관장하는 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그리 보채셔도 진호 님한테는 이길 수 없습니다.”

마르코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투덜거렸다.

바로 1시간 전.

오시리스의 가호를 최대치로 끌어낸 진형으로도 진호의 발조차 붙잡지 못했다.

힘의 총량에서부터 압도당하는 상황.

“진호 님은 전투 스타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힘 싸움에도 밀렸으면 이미 끝난 거죠.”

마르코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죽음을 관장하는 자는 상대가 당신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합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자는 이기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오시리스는 성좌들 중에서 꽤 온화한 축에 속했다.

만신전 소속 여러 성좌들이 관심 있게 바라보는 존재.

진호의 강력함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시리스는 자신의 계약자가 승리하는 것보다, 이번 전투에서 하나라도 얻어 가는 것이 있기를 바랐다.

마르코는 뒤늦게 오시리스의 뜻을 이해하고는.

“이토록 자비로운 성좌를 섬기게 되어 영광입니다.”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 * *

초전은 싱겁게 끝났다.

마르코를 포함, 이집트 측 플레이어 태반이 첫 교전에서 사망했다.

명백한 전력 차.

“길드장님, 대련 한 번 해 주세요.”

“승급전 중이거든?”

“힘 차이가 이만큼 나는걸요.”

카를라는 불만 섞인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들 긴장감이 없구먼.

-그대도 품지 않는 감정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게냐?

“왜. 이쪽도 꽤나 바쁘다만.”

-수하들에게 모든 일을 떠맡기고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구나.

할 말 없게 만드는군.

일행은 섬에 있는 거점 중 2/3를 빠르게 차지했다.

워 골렘 생산 조건을 충족시켜줘야 이집트 측에서 빠르게 움직이겠지.

“캬오오오!”

공허 비추기로 불러낸 렉시 덕에 전선을 넓게 쓸 수 있었다.

압도적인 기동력과 시야.

섬 중앙, 팩토리 지역으로 가는 길만 열어 둔 채 남쪽이나 북쪽으로 빠지려고 하는 플레이어들을 쓰러트렸다.

얼마 정도 지났을까.

1시간 전에 쓰러트렸던 미이라 군대가 다시금 평원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진호 님!!!”

찢어질 것 같은 비명, 아니 환호가 멀찍이서 들려온다.

싸움에서 전력을 다하면 사인을 해 준다고 했지.

후-.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마르코의 명함에 사인을 남겨 주었다.

회귀하고 나서 첫 사인의 상대가 오시리스의 계약자라니.

참 얄궂은 일이로군.

“혹시라도 오해하실까 미리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섬기는 성좌께서는 진호 님과 겨루기를 원하십니다.”

“아, 오시리스의 뜻이라면야.”

“그걸 어떻게?!”

“성력을 다루는 언데드, 미이라 군대라면 짐작 가는 성좌가 얼마 없잖아.”

“역시 진호 님입니다. 통찰력도 대단하시군요.”

이러다가 화장실 가는 것도 훌륭하다고 박수 치게 생겼군.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참, 그리고 싸움이 끝나면 진호 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우리 길드에 입단시켜 달라는 거 빼고 말해 봐.”

“앗, 아앗…….”

마르코가 실망한 기색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야 뻔하지.

독일의 하이 랭커이자, 서유럽 전선에서 영수 형님과 더불어서 핵심 전력이었던 플레이어.

이 녀석을 길드에 거두면 향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했다.

회귀 전과 달라져 가는 미래.

마르코가 내 팬이 된 건 긍정적인 변수이지만.

원래의 역사에서 너무 벗어나 버리면 컨트롤을 할 수 없다.

더군다나, 영국으로 이민을 갔어야 할 영수 형님도 우리나라에 붙들어 놓은 상황.

후일 멸망의 시대 때 유럽 전선을 유지해 줘야 할 녀석이 한국으로 와 버리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진호 님, 이유라도 알 수 있습니까?”

“역천은 소수 지향이라서.”

아- 하고 마르코가 탄식하고는 뒤를 흘겨보았다.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눈빛.

더 많은 변수는 이쪽에서 사양하고 싶거든.

미안하지만 팬심은 좀 접어 둬라.

“그렇다면!”

“음?”

“역천 길드원과 겨루게 해 주십쇼. 진호 님의 충복으로 어울리는 사람이 저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어럽쇼.

마르코가 뜻밖의 제안을 던졌다.

이렇게까지 날 추종할 줄은 몰랐는데.

그 말을 듣던 길드원들도 하나둘 호승심을 드러냈다.

-후훗, 일이 재미있게 흘러가는구나.

난 하나도 재미없는데요.

『죽음을 관장하는 자가 당신에게 제안합니다.』

『죽음을 관장하는 자는 계약자의 발전에 도움을 준다면 합당한 보상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서브 미션 - 성좌의 제안]

성좌 - 죽음을 관장하는 자.

오시리스는 계약자인 마르코가 당신의 길드원 중 한 명과 대련을 벌이기를 원합니다.

▶목표: 역천 길드원 한 명을 지목.

“미친.”

당혹감에 욕지거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엔네아드 출신 성좌들이 세트 빼곤 대부분 온건한 성향인 거야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영성을 소모하면서까지 계약자를 강하게 만들 줄이야.

제 몸을 보전하는 게 최우선인 올림포스나 무슨 생각인지 모르는 애시르 신족한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토록 필멸자를 생각해 주는 성좌라니. 마음씀씀이가 아름답구나.

멸망의 시대 때 마르코가 오시리스를 따라 지구를 떠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군.

“그럼 우리 막내랑 붙어 봐.”

“막내라면 저 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신! 누굴 보고 짜리몽땅한 애라고 하는 거야!!!”

엔리케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아니, 그런 말은 애초에 한 적도…….”

“아저씨, 나 말리지 마요. 아주 박살을 내 줄 테니까!”

응. 안 말렸어.

분위기도 달아올랐겠다.

나는 전선에서 뒤로 물러났다.

S급 성좌를 배후성으로 둔 두 사람.

엔리케는 군주의 재목이요.

마르코 또한 회귀 전, 군주를 막아설 만큼 재능이 뛰어난 플레이어다.

오시리스가 판도 깔아 줬겠다.

원역사의 흐름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려면 이게 최선이다.

아니지.

오시리스가 필멸자에게 이 정도로 우호적인 성좌라는 걸 알았으니, 적당히 이용해도 되겠어.

『죽음을 관장하는 자가 당신의 아량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효과 확실하네.

-그대여, 음흉한 생각은 그만 하거라.

“내가 뭘 어쨌다고?”

-얼굴을 보면 다 아느니라.

“생사람 잡긴.”

제길.

표정 관리를 연습해야 하나.

* * *

엔리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수백 구의 미이라.

한번 겨뤄 봤지만, 얕볼 수 없는 상대다.

‘아저씨한테 내 힘을 보여 줄 절호의 기회야.’

산타페 갱단의 마수에서 부모님과 자신을 구해 준 진호.

마음속으로는 늘 감사를 품고 있지만, 막상 입으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한국에서 부모님과 걱정 없는 나날을 보낼 수 있는 것도 모두 진호가 손을 내밀어 준 덕분.

그가 다른 길드원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이유였다.

“미안하지만 당신 자리는 없을 거야!”

[메카닉 컨트롤]

[동조]

전신을 감싼 갑주를 마력 회로와 동조시켰다.

각 부위에 심어 둔 코어가 엔리케의 제어를 따르면서 증폭된다.

아르헨티나 때처럼 총기를 다루진 않지만.

맞춤으로 제작된 갑주를 마력 회로에 동기화시키니 훨씬 효율이 올라갔다.

지면을 차면서 발바닥에 마력을 방출.

터어어엉-! 수십 미터 위로 치솟은 엔리케가 손바닥을 펼쳤다.

[메카닉 컨트롤]

[마력 방출 증폭]

에너지 탄이 지상으로 빗발친다.

각 마탄의 위력은 진호가 사용하는 [파이어볼]급.

미이라 군대 일부가 파괴되었지만, 마르코가 성력을 불어넣자 금세 복원되었다.

“그 정도 화력으로는 나한테 피해를 줄 수 없다, 소년.”

“그러니까 땅꼬마가 아니라고 했잖아!!!”

“아니. 난 그런 말을…….”

엔리케의 눈동자에서 불똥이 일렁였다.

소년, 그러니까 덜 자란 남자.

마르코의 무심한 발언은 엔리케의 분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메카닉 컨트롤]

[크리에이트 메카닉]

엔리케가 손을 휘젓자, 공간이 일그러졌다.

불쑥 튀어나오는 커다란 팔.

금속으로 된 주먹이 미이라 군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앙-!

차례차례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미이라들.

한계를 넘어선 충격에 수십 구나 소멸해 버렸다.

“이, 이건 워 골렘의 팔!”

마르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진호가 엔리케에게 워 골렘을 탑승해 보라고 한 이유.

그의 능력인 [메카닉]은 해당 메카의 구조를 이해하기만 하면 이런 식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메카닉 능력자라고 다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엔리케처럼 뛰어난 이해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

그가 여섯 군주 중 하나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봐요, 멀대같이 크기만 한 아저씨.”

“날 보고 멀대라고?”

“키가 너무 작아서 고개를 숙여야 보일까 말까 한 땅꼬마보다는 낫잖아.”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내가 역천 길드 막내거든? 나이든, 들어온 순서든.”

“그런데?”

“나도 못 넘어오면 역천 길드에 들어오는 건 꿈도 꾸지 말라고!”

엔리케는 30층에서 이해한 워 골렘의 구조를 해독, 쉼 없이 일부를 구현했다.

전투 개시로부터 반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마르코는 승급전에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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