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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07화 (207/300)

207화

끼룩, 끼룩.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아오, 피곤하다.”

창 너머로 보이는 항만.

전북에서 유일한 대외무역 항구인 군산항이다.

굳이 비행기를 안 타고 배로 입국한 이유가 뭐냐고?

혹시라도 꼬리가 붙었을지 몰라서 한국으로 오는 길을 얼마나 꼬아 놨는지 모른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들불의 화로와 관련된 정보를 접한 후.

근 한 달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침투해서 화로만 가져오면 될 것을.

닉스는 영체 상태로 어깨에 걸터앉아서 재잘댔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호오, 그대의 고견을 듣고 싶구나.

“정보의 출처. 그리고 흔적을 쫓는 데 특화된 플레이어들을 고려하면 물건만 슬쩍 할 수 없어.”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지.

난 그 신조대로 들불의 화로를 입수한 두 카르텔을 뿌리 뽑았다.

결과만 놓고 말하니까 쉬워 보이지만.

지난 3주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었느냐?

“어, 그래야만 했어.”

악 계열 성좌들이 하계에 뿌린 재앙의 씨앗.

회귀 전에는 들불의 화로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우간다에서 일어난 피의 호수 사태와 멕시코 정부 전복 사건은 엄청난 여파를 불러일으켰으니까.

하지만.

“이유는 나중에 알려 줄게.”

내가 회귀를 했다는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 한.

말해 줄 수 없는 이유다.

-그때가 오기를 자비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마.

닉스는 빙그레 웃었다.

으, 괜히 미안해지는군.

예정에 없던 마약 카르텔 소탕.

나름대로 소득이 있다면…….

[불 꺼진 재의 화로]

등급: ★★★★

분류: 액티브

마력이 깃든 물건을 태워서 사용자의 힘으로 전환한다.

태운 물건의 등급에 따라 힘 일부가 영구적으로 부여되기도 한다.

이 스킬을 얻었다는 거다.

-흐응.

“뭐야, 그 못마땅한 듯한 반응은?”

-그 고생을 한 것 치고는 보상이 크지 않은 것 같구나.

“고생은 내가 했지. 여신님이 안 했잖아.”

두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는 동안에는 평소처럼 생활할 수 없었다.

흔적을 지우랴.

먹는 것도 움직일 힘이 날 정도로만 최소한으로 챙겼으니.

“영체로 있었으면서 왜 그래?”

-혀를 휘감는 단맛도, 기름진 음식도 맛보지 못하였도다. 그것도 3주 동안이나!

닉스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에휴, 수천 년 이상 산 양반이면서 애처럼 왜 이런대.

“나름대로 쓸 곳이 있어.”

-하면 묻겠노라. 일시적인 상승효과로 만족하느냐.

들불의 화로는 가짜 성유물.

여러 성좌들이 영성을 조금씩 소모해서 섞은 잡탕이다.

그렇기에, 화로에 깃든 정수도 온전하지는 않다.

포식으로 정수를 100% 채우자, 불을 태우기 위해 제물을 요구하는 스킬로 정착.

사용 조건이 제법 까다로워졌다.

“반대로 생각해 봐. 아이템만 있으면 도핑이 가능하단 거지.”

-도핑?

“버프 스킬은 겹칠수록 효과가 떨어지는데 이 화로는 아니니까.”

예를 들어 ‘축복’ 관련 버프를 동시에 사용할 경우에는 뒤에 전개한 주문의 효과가 감소한다.

성향이 반대인 축복을 걸면 역효과가 나기도 하고.

내가 이제까지 흡수한 정수들은 서로 겹치거나 충돌하는 분야가 거의 없기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더 많은 정수를 포식하면 개중에 사용해야 할 버프를 상황에 맞춰 취사 선택해야 한다.

-그런 부분이 있었구나. 전혀 몰랐도다.

“여신님의 축복을 받은 뒤에 아폴론의 가호를 받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 아이의 불꽃이 여의 어둠에 잡아먹히겠지.

닉스는 아,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제 알겠어?”

-지불해야 할 값이 비싸지만 어느 상황에서든 능력을 증대시키는 게 가능하겠구나.

“비장의 패 하나가 생긴 거다.”

닉스가 말한 대로 값이 꽤 비싸긴 하지만 말이야.

높은 등급의 아이템을 태우면 능력치 일부가 영구적으로 상승하긴 해도, 포식보다 효율이 떨어졌다.

이왕이면 화로의 능력을 쓸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군.

잡담을 나누고 있는 동안, 배가 항만에 도달했다.

* * *

“스승니이이이임!!!!”

아이고, 귀청 떨어지겠네.

약 한 달 만에 돌아온 길드 하우스.

처음으로 날 발견한 지영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어허허헝, 스승님!!”

“넌 또 왜 그러는데.”

“말씀도 없이 한 달 가까이 사라지셨잖아요!!”

“연락할 상황이 아니었다.”

마약 카르텔을 상대하는 건 작은 전쟁 같았다.

통신을 추적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길드원들에게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와, 진짜 정 없어. 동네 사람들! 우리 스승님이 이래요!”

하아-. 오자마자 아주 성대하게 환영해주는군.

어떻게 하면 지영이의 입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러니까 화는 여기까지 낼게요.”

갑자기 말을 뚝 끊었다.

“음?”

“스승님이시니까. 다 이유가 있겠죠.”

“갑자기 납득하니까 불안한데.”

“그러니까 약속 하나만 해 주세요. 어딜 다녀오실 땐 한마디 말이라도 남기기로.”

흔들리는 지영이의 눈빛.

이러니 꼭 죄지은 사람 같구먼.

-후훗, 이번 건에 한해서는 그대가 심하였느니라.

닉스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타박했다.

누군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나.

시니스터의 꼬리를 잡는다는 게, 생각보다 일정이 길어져 버렸다.

“약속할게.”

“고맙습니다, 스승님.”

이제야 진정하는군.

휴, 회귀 전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는데.

지영이가 감성적인 모습을 보일 때마다 적응이 안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음, 안 그래도 모여서 훈련 중이었어요.”

길드원들에게 인사 두 번 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군.

길드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의외의 인물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후배님, 얼굴 보기가 힘들어.”

“아니, 선배님은 왜 여기에 계십니까?”

“나도 역천의 길드원이라네. 이상할 게 뭐 있나.”

신준석은 훗, 하고 낮게 웃었다.

“팀원은 어쩌시고요?”

“위로 올라가는 중이라네. 나 혼자만 빠졌지.”

“공교롭게도 분석관의 부탁을 받아서 말입니다, 길드장님.”

홍윤수가 그 말에 동조했다.

팀 옐로우 스톰의 리더.

바벨탑 공략에 열중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길드 하우스에 있으니 당황스럽군.

“다른 후배님들 키우는 재미가 쏠쏠해서 말이지.”

“팀원들과 같이 움직인다는 목표를 내려놓을 정도입니까?”

“잠시뿐이지 않는가. 그리고 남의 일도 아닌 것을.”

이야, 지영이만 바뀐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완전히 달라졌구나.

권성 신준석.

무공의 끝과 탑을 올라가는 것에만 집중했던 인물이었지만.

이젠 무공 외의 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며 이끌어 주었다.

복수에 미쳐서 법을 어기면서까지 악인을 단죄했던 홍윤수는 어쩌고?

하나하나, 미래가 바뀌어 간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오셨습니까, 마스터.”

“토마스 분석관, 저 없는 동안 고생했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분들이 모두 제 말에 잘 따라 주셔서.”

그러게요.

타고난 수련광인 카를라야 그렇다 쳐도, 핑 레이와 엔리케가 독기 어린 눈빛으로 보는 걸 봐라.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토마스가 얼마나 굴려 댔으면 저렇게 바라볼까.

“성과를 확인하는 건 나중에 하고,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알겠습니다, 마스터.”

나는 토마스와 독대, 지난 1달간의 성과를 보고받았다.

“두 랭커가 협조해 주신 덕에 더 효과적으로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파일로 정리된 훈련 진행 사항.

각 길드원의 정보가 데이터 화 되어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란 단순히 스텟 수치가 아니라 반응 속도나 스킬 발동 타이밍, 그리고 파괴력 등을 정리한 것이다.

“역시 분석관에게 맡기기를 잘했군요.”

급격한 스텟 상승은 없었다.

그렇지만.

토마스의 훈련 커리큘럼 덕분에 길드원 개개인의 기량이 하루가 지날수록 빠르게 올라왔다.

내가 직접 훈련시킨 것과 비슷한 효과.

회귀 전, 온갖 수라장을 다 겪어본 내 훈련에 뒤처지지 않는 페이스라니.

“아닙니다. 모두 길드장님께서 훌륭한 인재들을 발탁한 덕이죠.”

“굴리는 맛은 있습니까?”

“예. 미국에서도 이만한 인재들을 거의 못 봤습니다.”

“크크.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참, 그리고 길드 하우스 이전 건에 대해서입니다만…….”

토마스에게서 모든 보고를 받은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딜 가려느냐?

“볼일이 있어서.”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거늘.

“이 일만 해결하고 오늘은 쉴 거야.”

본래의 역사보다 수년이나 빠르게 풀린 들불의 화로.

운명에서 벗어나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 인물들.

내가 회귀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역사는 바뀌기 시작했다.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주위를 둘러봤을 때는 긍정적인 면이 강했다.

플레이어 협회는 특무대 시스템을 더 빠르게 구축하면서 영향력을 키웠고.

핑 레이나 홍윤수, 엔리케처럼 그릇된 길을 걸었던 이들이 미래의 초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놓고 봤을 때도 그럴까.

“변수가 얼마나 생겼는지 알아봐야 해.”

-변수?

“성좌들의 개입.”

한 가지는 확실했다.

들불의 화로가 이른 시점에 풀렸다는 건, 여러 성좌들이 지구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길드 하우스에서 나온 후, 정처없이 길을 걸었다.

으슥한 골목길을 전전하던 중.

“지부장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그림자에서 사람의 형태가 불쑥 튀어나왔다.

“날 얼마나 기다린 거지?”

“오늘 즈음에 도착하실 거라 예상하고 맞춰서 왔습니다.”

“밖에서 기다리느라 고생했군.”

검은 천으로 전신을 동여맨 인물은 묵묵부답이었다.

블랙 네트워크의 전령.

허울뿐이지만 명색이 블랙 네트워크 지부장이 되었다.

마담이 연결책 하나 정도는 붙여 준다고 했으니.

내 움직임에 맞춰서 어떻게든 접촉할 거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뭐라고 부르면 되나?”

“……영, 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좋아. 그럼 한국 지부장 취임 기념으로 첫 번째 지시를 내리겠다.”

검은 천 사이로 드러난 두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최근 1년 간 성좌와 계약한 플레이어의 숫자를 조사해.”

“성좌와 계약한 이들을 말입니까?”

“신상까지는 필요 없고. 숫자만 알아도 충분하다.”

“알겠습니다.”

성좌는 고고한 존재.

기준에서 뒤떨어지는 플레이어하고는 후원 계약을 맺지 않는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수준이 낮은 편이라 배후성 계약에 성공한 이들이 적은 편.

하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최근 들어서 숫자가 꽤 늘어났을 거다.

그렇게 되면…….

플레이어들끼리 본격적으로 세력전을 벌이겠지.

“경쟁이 과해지는 건 곤란하니.”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진정한 적은 탑 지하에서 입맛을 다시는 고신족들.

회귀 전보다 가속화되는 흐름을 유용하게 활용하려면 정보가 더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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