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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00화 (200/300)

200화

어둠이 걷힌 통로.

그 안은 바깥과 견주어도 손색없는 화려함을 품고 있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슬롯머신.

딜러가 능숙한 손동작으로 카드를 섞고.

“5번!”

“12번!”

쇠구슬이 회전하는 판 위에서 춤을 추었다.

“호오, 이 무대가 욕망의 근원이로구나.”

“뭐, 그렇지.”

“필멸자들이란. 운 하나에 인생을 걸다니, 참으로 재미있도다.”

“누군가는 인생을 걸겠지만, 어떤 이한테는 스릴 넘치는 유흥이겠지.”

카지노에서 인생을 역전하려고 오는 사람들.

혹은 그런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쾌락을 느끼는 이들.

그 외에도 온갖 인간 군상이 모인 게 바로 카지노다.

“한데, 다른 곳도 흡사해 보인다만. 꼭 이곳을 와야 할 이유가 있었더냐?”

“여기는 플레이어 전용이거든.”

나는 막 카드 뭉치를 잡은 딜러를 가리켰다.

카드를 섞고 있는 딜러의 손이 한순간 붉게 물들었다.

저건 손재주 같은 게 아니다.

마력을 카드에 부여, 딜러의 의지대로 내용물이 바뀌면서 생긴 잔상.

빛이 아른거린 건 한순간이라서 마나 감응력이 부족하면 알아채지도 못할 만큼 절묘했다.

“궁금한 것이 하나 있구나.”

“뭐가?”

“스킬을 사용하면 딜러가 반드시 이기는 구조일 터. 그럼 도박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느냐.”

“에이, 당연히 들키면 안 되지.”

참여자가 스킬을 사용했다는 게 드러나면 자동적으로 패배한다.

테이블 곳곳에 배치해 놓은 가드.

모두 감지와 관련된 고유 능력을 획득한 이들이다.

“여신님도 좀 놀아 볼래?”

“인간의 유흥이라. 꽤 흥미가 동하는구나.”

환전소에서 칩을 교환.

한화로 20억에 해당하는 칩을 주었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더냐?”

“괜찮아. 지갑은 두둑해.”

바벨탑에서 얻은 보상.

그리고 게이트 공략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과 포상금 덕분에 제법 잔고가 쌓였다.

물론 버리는 돈으로 쓰기에는 엄청난 액수이지만.

“누군가가 벌면, 잃는 사람도 있어야 하잖아?”

“참으로 교만하구나. 여의 실력을 보고 놀라지나 말거라.”

“예예.”

“후회할 것이니라.”

닉스는 씩씩대면서 테이블에 앉았다.

하나둘씩 모여드는 시선.

블랙 카지노를 친절하게 설명해준 건, 닉스에게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름다운 여인.

거기에 도박의 디귿 자도 모르는 초짜.

도박장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요소다.

자, 그럼 이쪽도 행동을 개시해 볼까.

느긋한 발걸음으로 카지노를 빙글빙글 돌다가 빈 테이블에 앉았다.

“블랙 카지노는 처음이십니까?”

“응. 설명은 필요 없어.”

“하핫, 그러다가 후회하실지도 모릅니다.”

눈앞의 호구(?)를 두고 입맛을 다시는 딜러.

“패나 돌리시지.”

“알겠습니다.”

오늘 건물 기둥 하나만 뽑아서 가자.

* * *

“……졌습니다.”

하얗게 질린 채 고개를 떨구는 딜러.

내 앞에는 칩이 수북하게 쌓였다.

닉스와 마찬가지로 20억으로 시작한 자본금.

칩은 도박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10배인 200억까지 불어나 있었다.

“그러니까 정직하게 게임하셨어야지.”

난 딜러의 어깨를 두드렸다.

방금 전의 딜러도 수작을 벌이려다가 들켜서 역으로 패배했다.

차라리 순수하게 운을 걸고 승부할 것이지.

블랙 카지노의 딜러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

결과는?

내 앞에 쌓인 칩들이 말해 주잖아.

카지노가 원체 크고, 조용하게 도박을 한지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는 않았지만.

이변을 감지한 프로 도박꾼들이 하나둘 내 곁을 돌아다녔다.

제법 미끼를 뿌렸는데,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엄청난 분이 오셨군요, 허허허.”

깔끔한 흰 셔츠에 붉은 조끼를 걸친 딜러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래, 널 찾고 있었다.

다비 스미스.

이 블랙 카지노의 운영자이자, 최고의 딜러.

블랙마켓으로 향하는 길을 인도해 줄 녀석이기도 했다.

“다비다.”

“다비가 카드를 잡으면 누구도 이기지 못했는데.”

“기껏 번 돈을 잃고 가겠군.”

카지노 손님들이 동정 섞인 투로 중얼거렸다.

워낙 작은 소리였지만.

정수들을 동기화시키면서 신체 능력이 원체 올라간 터라 못 들을 수가 없었다.

닉스 덕에 이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꽤 줄여서 망정이지.

“그쪽은?”

“다비 스미스입니다. 보잘것없는 실력이지만, 여기서 딜러를 하고 있죠.”

“블랙 카지노에서 일하는 사람치고 보잘것없는 실력은 없던데.”

“허허허, 판돈의 10배를 따시고는 그리 말씀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대꾸하는 다비.

저 녀석을 불러내려고 카지노에서 깽판을 쳤었지.

평범한 카지노라면 모를까.

플레이어 능력을 활용한 ‘속임수’가 메인인 블랙 카지노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럼 뭘로 게임을 할 건가?”

“종목은 포커입니다.”

막 개봉한 새 카드 뭉치에 손을 대는 다비.

능숙한 손짓으로 카드를 빠르게 섞었다.

[천안(千眼)을 사용합니다.]

마력의 흐름을 읽어 내는 마안.

내 마안은 시각적인 변화가 없기에, 밝혀 내기가 어렵다.

마력의 흐름을 읽어 내느라 머리가 혹사당하지.

정작 마나 소모도 크지 않았다.

블랙 카지노에서는 사기급에 가까운 강력한 스킬!

그럼에도.

저 사내만큼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마안을 발동하고도 잘 보지 않으면 스킬 사용 순간을 맞추는 게 불가능했다.

사내가 능숙하게 카드를 섞던 중.

“잠깐.”

오른손을 뻗어서 딜러의 팔목을 낚아챘다.

“첫판부터 장난질이냐?”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장난을 그냥 넘어갈 만큼 자비롭지 않거든.”

“처음부터 스킬을 사용했다고요? 제가?”

“스내치 썼잖아. 카드를 섞으면서.”

스내치.

단검 같은 길이가 작은 장비를 사용하는 플레이어라면 하나쯤 익히고 있는 스킬이다.

본래의 용도는 장비 교체.

이 녀석은 그 스킬을 극한까지 연마, 카드 내용물을 바꾸는 데 사용했다.

어떻게 아냐고?

회귀 전에도 이 녀석이랑 카드 게임을 해 봤으니까.

‘다비’라고 불린 딜러는 평온한 표정으로 내 눈을 직시했다.

“증명해 보시죠.”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놈은 승부사다.

제 수작질이 들키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기에, 미동도 보이지 않는 거다.

“손님, 이곳의 룰을 잘 모르시는 것 같으니 설명해 드리죠. 여기선 스킬을 간파하지 못해도 게임에서 패배합니다.”

“당연한 말을. 블랙 카지노잖아.”

“제 트릭을 밝히려고 하신다면 판돈을 걸어야 하죠.”

“아직 게임에서 콜을 안 했으니까, 이제라도 콜을 하라?”

“맞습니다.”

“그럼 올 인 하지.”

난 환전해 놓은 칩을 모조리 내밀었다.

100억이 넘는 금액.

화석 구매 후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 그리고 골드 문에서 투자받은 금액까지 밀어 넣었다.

“저 신입, 다비한테 첫판부터 올 인을 했어!”

“이야, 제대로 돌았군.”

“상대는 다비잖아. 누구도 못 밝힌 트릭을 무슨 수로 알아내겠다는 거야?”

늘어나는 관객들.

딜러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이거야 원. 조금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뭐가?”

“이목을 끄는 건 안 좋아해서요.”

“그건 카지노 딜러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이렇게 되면 거절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손님을 위해서라도 이번은 물러 드리고 싶지만, 죽을 수가 없군요.”

“누굴 위한 건지는 두고 보자고.”

“콜, 받겠습니다.”

혀가 긴 건 이때도 마찬가지였군.

트릭이 절대로 들통나지 않으리라는 확신.

그 자존심을 박살 내 주마.

“오른쪽 포켓. 투 페어, K와 Q.”

내가 입을 떼자, 시종일관 침착하던 딜러의 눈이 처음으로 휘둥그레졌다.

* * *

다비 스미스.

블랙 카지노의 운영자이자, 최고의 딜러이기도 한 플레이어.

셀 수도 없이 카드를 섞었고.

어느 누구도 자신의 술수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지만.

쿵! 쿵! 쿵!

지금만큼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고막을 흔드는 심장 소리.

‘어떻게 안 거냐!’

조금이라도 얼굴에서 힘을 풀면 그대로 울상을 지을 것 같다.

그만큼 다비가 받는 압박감은 엄청났다.

0.03초.

다비 스미스가 스내치를 사용해서 카드를 바꿔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평범한 사람은 인지할 수조차 없는 찰나.

소모되는 마나도 미량이라 감지 계열 능력자들도 알아채지 못했다.

한데.

“안 까고 뭐 해?”

처음 보는 동양인은 자신의 트릭을 간파했다.

아니지.

바꿔치기하려고 준비해 둔 카드들도 알아챘다.

진호가 그의 손목을 잡은 건 스내치를 사용해서 품속의 카드에 손을 대는 순간이었다.

스내치를 사용한 걸 알아챈 건 둘째치고.

카드 내용물까지 알 수는 없었다.

‘투시 능력? 아니야. 내 옷에는 관찰을 막는 마법이 걸려 있다.’

마인드 리딩.

미래 예지.

그 외에도 온갖 경우의 수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럴 리 없잖아. 저런 스킬들은 마력 소모가 엄청나다고.’

투시나 마인드 리딩도 고등급 마법으로 분류된다.

최소 3성 이상.

사용했으면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았을 거다.

고유 능력인 미래 예지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 예지도 만능은 아니다.’

기껏해야 몇 초 앞을 내다보는 정도.

품속에 숨겨 둔 카드를 알아채는 건 예지의 영역에서 한참 벗어났다.

다비 스미스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관중들의 눈초리가 조금씩 식어갔다.

“진짜야?”

“에이, 그 다비가 지겠어.”

“그런데 반응을 안 하잖아. 진즉에 패를 까야지.”

외통수다.

다비는 패배를 직감했다.

콜을 외친 이상.

승부를 미루거나 무효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잠깐, 딜러 양반.”

“예?”

“판돈 말이야. 다른 걸로 걸어도 되나 해서.”

“말씀하시죠. 칩에 상응하는 거라면 대신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기신다면 말이죠.”

다비는 궁지에 몰린 순간에도 여유를 가장했다.

프로 딜러의 자존심.

승부에서 지더라도, 마음만큼은 패배자가 되면 안 된다.

그게 지금까지 다비가 도박꾼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미소를 짓는 진호.

다비에게는 그 웃음이 사신의 손짓처럼 느껴졌다.

이 상황에서 제안이라니.

그때.

진호의 입이 천천히 움직였다.

-블랙마켓.

음성이 들리지 않았는데도, 무슨 말을 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블랙 카지노 손님에게도 알릴 수 없는 비밀 사항.

블랙마켓의 존재가 진호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

이미 콜을 받아 버린 상황.

블랙마켓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저 금액을 모두 토해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비의 입지도 흔들리니.

“졌습니다.”

다비는 깔끔하게 패배를 선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걷는 진호.

올 인을 한답시고 모아 놓은 칩만 덩그러니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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