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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99화 (199/300)

199화

-안내 말씀 드립니다. 우리 비행기는 네바다주, 네바다주에 진입했습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이제야 네바다주라니.

비행기에서 10시간 넘게 머물렀는데.

아르헨티나행 때도 느꼈지만, 비행기는 속도가 느리다.

그러고 보니 ‘레이던’이라는 미국 회사가 워프 기술을 재해석했었지?

전 세계에 깔린 공간이동 망.

2036년, 아니면 2037년 정도인 걸로 기억하는데.

잠깐.

레이던에 투자를 해 놓으면 공간이동 기술의 상용화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좀 더 고민을 해 봐야겠군.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닉스가 유리창을 빤히 바라보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볼 만해?”

“참으로 황량한 곳이구나.”

“사막은 여신님의 취향에 안 맞나.”

“흐응, 나쁘지는 아니하나 그대의 말과는 다른 듯하구나.”

밤 자락으로 뒤덮인 사막.

밤의 여신인 닉스야 어둠이 시야를 방해하지 않았지만, 바깥 풍경 자체가 문제였다.

어디를 봐도 모래뿐인 사막.

“그대가 말한 것과는 다르지 않느냐?”

“화려한 건 좀 기다려 봐.”

“자연의 신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만, 여의 심미안에는 맞지 않는구나.”

목적지인 라스베이거스를 보면 눈이 휘둥그레질 텐데.

하여간 참을성이 없어요.

나는 타박하듯 약간 목소리를 높였다.

“엔네아드가 다스리는 지역도 사막이잖아. 그래도 익숙하지 않아?”

엔네아드.

이집트 신화의 신족들, 그러니까 올림포스 신족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태양신 라의 일족을 일컫는 단어다.

“그 신들을 섬긴 나라, 이집트도 사막이 많으니까.”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구나.”

“뭔데?”

“그 당시의 이집트는 매우 풍요롭고 푸른 초목으로 뒤덮인 나라였느니라.”

이집트 국토가 처음부터 사막이 아니라니.

오랜 세월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소모된 지기 때문에 사막화가 된 거란다.

“그대는 상식이 모자라구나.”

엔네아드 이야기를 괜히 꺼내서 혼나는군.

“저기 좀 봐 봐.”

“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여도 소용없…….”

닉스가 돌연 말을 멈추었다.

창 너머에 아른거리는 화려한 조명.

불야성의 도시가 먼 거리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빛 사이로 마천루의 형상이 드문드문 비친다.

“어때.”

“참으로 아름답구나. 밤 자락 사이로 솟아오른 보석이도다.”

“유흥과 쾌락의 도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여신님.”

나는 싱글거리며 대답했다.

* * *

입국 심사를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슬롯머신의 향연.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빈자리에 앉아서 슬롯을 당겼다.

회귀 전에도 놀러 온 적 있지만, 다시 봐도 문화 충격이네.

“역시 죄악의 도시는 달라도 달라.”

“이 아름다운 도시에 그리 죄를 짓는 이들이 많느냐?”

“여기서 말하는 죄란,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거야.”

미국, 그리고 유럽은 기독교 중심의 문화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간의 욕망을 죄악으로 여겼던 중세 종교관.

판데모니엄의 72 마신 중에서 위계가 높은 악마들은 필멸자들의 욕망들을 주관하기도 했다.

칠죄종.

일곱 가지의 죄.

신 시티(Sin City)란, 마신들이 주관하는 ‘원죄’를 자극한다는 의미다.

“과연. 이해가 가는구나.”

“……이런 설명을 듣고 이해가 간다고?”

“보아라. 필멸자들의 욕망이 도시 곳곳에 들끓고 있지 않느냐.”

닉스의 손이 우아하게 궤적을 그린다.

그 순간.

도시에 깃든 빛과 어둠이 여러 파장을 흩뿌렸다.

콘크리트로 세워진 도시가 빛과 어둠의 파장에 녹아내렸고.

용암처럼 흘러내리고 해체된 도시 사이로, 무수한 욕망의 색깔이 꽃처럼 피어났다.

“이건 대체…….”

“후후훗, 여가 보는 풍경을 그대에게도 보여 주는 것이니라.”

인간의 욕망을 시각화하다니.

개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라는 게 이런 건가.

난 단순히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야경을 보여 주려고 했던 것뿐인데.

닉스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는 중이었다.

지끈거리는 머리.

칠죄종 중 하나, 탐욕의 가호가 한층 선명해진 인간의 욕망에 반응했다.

발아래로 퍼지는 검붉은 마력.

죄악의 도시에 넘쳐흐르는 감정의 파도에 휘말린 [탐욕]의 힘이 조금씩 제어를 벗어났다.

그 순간.

“진정하여라.”

서늘한 감각이 손을 감싸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손을 꼭 잡은 닉스.

머리를 괴롭히던 두통이 가라앉았다.

곧장 탐욕의 가호를 거두고는 심호흡을 내쉬었다.

“미안하구나. 여가 그 가호를 잊고 실수를 벌였느니라.”

“아, 아니야. 덕분에 좋은 경험 했네.”

두 눈을 감았다가 뜨자, 무너졌던 세계의 경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했군.

완성의 영역 너머.

그러니까 성좌가 될 정도의 경지에도 발을 디뎌 본 몸이다.

하지만.

여러 성유물의 정수를 포식하면서 격을 늘렸어도 ‘감정’ 자체를 본 적은 없었다.

프로토게노이.

자연의 성질 그 자체인 [개념신]이 보는 세계는 이런 식이었군.

난 턱을 만지작거렸다.

닉스가 보여 준 상위 개념.

감정이라는 파장마저도 보는 경지라.

마침 바알한테서 죄악과 관련된 가호도 받았겠다. 방금 전의 감각에 익숙해지면 탐욕의 진정한 힘을 일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배후성 핑계를 대고 칠죄종을 주관하는 마신과 접촉해야 하나?

“무슨 생각을 그리하느냐.”

“아, 아니야.”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곧장 상념을 지우고는 닉스와 두 눈을 마주쳤다.

“여신님은 이걸 보고도 괜찮아?”

“무엇이 말이더냐.”

“필멸자들의 욕망. 그 눈에는 추악하게 보이지 않을까 해서.”

“후훗, 여는 필멸자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느니라. 도리어 어둠으로 덮어 주지 않느냐?”

만물의 형태를 가리는 밤.

그래.

닉스는 어둠을 주관하는 존재이자, 밤 그 자체인 성좌다.

“여의 치맛자락이 인간을 솔직하게 만든다면, 그 또한 즐거운 일 아니겠느냐.”

“그렇게 말하니까 되게 여신 같다.”

“후훗, 여는 자연을 주관하는 프로토게노이 일족이니라.”

닉스가 콧대를 높이 세웠다.

방금 전에 본 풍경.

칠죄종의 가호에 대해서는 나중에 고민해 봐야겠어.

나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풍경을 애써 지우고는 앞서 나갔다.

나란히 걷는 닉스.

“이곳에 온 이유를 슬슬 듣고 싶구나.”

“블랙마켓을 찾아왔어.”

“블랙마켓?”

“응. 블랙 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암시장이야.”

블랙 네트워크.

전 세계를 아우르는 범죄 단체 연합이다.

중국 삼합회.

이탈리아 마피아.

멕시코 마약 카르텔.

그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범죄 조직들을 한데 묶어 놓은 조직이다.

“엔리케라는 아이를 데려올 때 만났던 자들도?”

“자동차인지 뭔지 하는 애들은 피라미지.”

고작해야 지역 갱.

블랙 네트워크에 발을 들이밀려면 적어도 전국구의 조직이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범죄 조직들은 활동 범위를 전 세계로 하는 유명 조직들이다.

“꽤 위험한 자들이겠구나.”

“그들도 나름의 규칙이 있어. 그것만 넘지 않으면 돼.”

거대 범죄 조직들을 연결시킨 망.

아이러니하게도, 블랙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건 신용이다.

김우성 협회장이 블랙마켓 이용 카드를 지니고 있는 이유도 그거거든.

블랙 네트워크는 범죄 조직들을 붙드는 필요악 같은 거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택시의 행렬.

가까이에 있는 차량 문을 열고는 “파라다이스.”라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도로를 달리는 택시.

차량은 라스베이거스를 ‘죄악’의 도시라고 이름 붙게 한 도박의 거리에서 멈췄다.

“이제부터 한눈팔면 안 돼.”

“아이 취급하지 말거라. 여는 그대보다 훨씬 긴 시간을 영유하였느니라.”

“나이가 많으셔서 좋겠네요, 닉스 할머니.”

“고얀 것. 한마디를 지지 않는구나.”

닉스가 눈을 흘겼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날 보는 게 아니라, 뒤따라 내린 닉스를 바라보는 거였다.

연예인들조차도 빛을 잃게 할 정도의 아름다운 외모.

말 그대로 여신이니까.

세상의 미(美)를 사람이라는 모습으로 빚어서 만든 것 같은 모습이다.

“Wow.”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딘가의 유명인이 분명해.”

사진을 찍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는 이들.

좀 더 머무르면 직접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도 나올 거다.

“후후훗, 여를 찬양하는 이들이 많구나.”

“어떤 의미로는 찬양이 맞긴 하지.”

난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타인의 이목을 끄는 건 귀찮지만,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닉스의 존재감이 필요했다.

굳이 닉스를 실체화한 상태로 둔 것도 그 까닭.

[천안(千眼)을 사용합니다.]

여러 마력의 파장이 시각화되어 망막에 비친다.

실체화된 감정의 격랑에 비할 바는 아니군.

“잘 따라와.”

나는 마력의 파장이 일그러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천루 사이에 자리를 잡은 도박장.

합법적으로 도박이 가능한 라스베이거스답게, 카지노 같은 도박장들이 대놓고 영업을 했다.

“여기군.”

발걸음을 멈춘 곳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낡은 쇠로 된 문이 나타났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정장을 입은 사내 둘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여긴 출입 금지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못 들어가는 곳이 있나?”

“그걸 정하는 건…….”

사내가 말을 하던 중, 옆에 선 닉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뚝 끊긴 대화.

닉스의 아름다움에 말문이 막힌 듯했다.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가?”

“아니오.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야, 요즘 블랙 카지노 참 편하게 돌아가네. 모르면 다야?”

내 입에서 나온 ‘블랙’라는 단어에 움찔대는 사내들.

그래.

여기는 일반적인 카지노가 아니다.

블랙 네트워크에서 플레이어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든 불법 매장.

천안(千眼)을 사용한 건 카지노 특유의 마력 패턴을 읽어 내기 위함이었다.

당연하게도, 느와르 카지노를 방문하는 이들은 신분을 가린 상태.

두 사내는 닉스와 나를 번갈아 가면서 보다가.

“알겠습니다.”

낮게 한숨을 쉬고는 양옆으로 물러났다.

끼이이익-.

우리는 허름한 문 사이로 들어갔다.

“이리 강짜를 부려도 되느냐?”

“이 방법이 아니면 좀 귀찮아졌을 거라.”

“호오, 두 번째 방법은 무엇이었느냐.”

“강행 돌파.”

첫 번째 방법으로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다.

닉스의 빛나는 외모 덕분에 블랙 카지노에 무사 입성했다.

이 자리에서 블랙카드를 사용했다가는 내 행적이 읽힐 가능성이 높거든.

암흑으로 물든 통로 끝.

그곳은 여태 본 것보다 더 화려한 빛,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여긴 더 재미있을 거야.”

난 닉스에게 약속하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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