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무지개의 휘광석]
등급: 레전드
분류: 촉매
내구도: 50/50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의 파편입니다.
여러 힘을 동시에 투영할 수 있는 촉매입니다.
차원 간 이동에서 좌표를 고정시키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주먹보다 조금 큰 돌.
여러 빛을 품고 있어서 휘광석이라는 표현이 참 어울렸다.
“아름답고, 또한 복잡하구나.”
닉스가 흥미롭다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지혜의 탐구자가 아쉬운 기색을 드러냅니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박장대소합니다.』
『하늘의 악이 지켜봅니다.』
『화과산의 미후왕이 팝콘을 뜯습니다.』
…….
무수한 성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오딘 놈. 겉만 번지르르한 보상을 넘겨 놓고 아쉬운 척하긴.
비프로스트의 조각.
차원 간 이동에서 좌표를 고정시켜주는 옵션이야, 현재의 지구에서 쓸 일이 없고.
휘광석의 핵심인 ‘여러 힘’을 투영하게 해 준다는 기능도 굉장히 모호하다.
‘촉매’는 일반적으로 특정한 마력을 강화시켜 주는 용도.
근데 휘광석은 여러 파장을 품는 데 특화되어 있지, 증폭이나 강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좋아.”
날 골탕 먹이려는 의도로 준 것 같은데.
잘못 생각한 거야.
무지개의 휘광석을 이렇게 빨리 입수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완성의 경지.
필멸자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하늘에 역사를 새긴 성좌들과 같은 영역으로 나아가는 교두보.
그 첫 단계를 이렇게 빨리 밟을 수 있을 줄이야.
역시.
난이도 상승을 받아들이기를 잘했어.
“웬일로 크게 기뻐하는구나.”
“내가?”
“그대의 얼굴만 봐도 아느니라.”
나름대로 표정 관리 한 건데.
연신 씰룩이는 입술을 매만지면서 탑 접속을 종료했다.
* * *
나는 무지개의 휘광석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뒤따라온 닉스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탑 도전 횟수가 아직 한 번 남지 않았느냐.”
“그것보다 급한 일이 있어서.”
“호오, 그 보상과 관련된 일이겠구나.”
“척하면 척이야.”
“후훗, 이번에도 여가 그대를 지켜 주겠노라.”
안 그래도 호법을 부탁하려던 참인데, 말 안 해도 척척 알고 있다.
『화과산의 미후왕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천리안 계약이 있었지.
다른 성좌들한테는 무지개의 휘광석을 어디에 쓸지 보여 주기 싫어서 지구로 돌아온 건데.
선법을 배운 건 좋지만 손해 보는 기분인걸.
“다른 성좌한테 말하지 마라.”
허공에 삿대질을 하니.
『화과산의 미후왕은 입을 꾹 다뭅니다.』
『화과산의 미후왕은 흥미 있는 일을 타인에게 알릴 정도로 친절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즉각적으로 답이 왔다.
뭐, 관음증 환자가 손오공만 있는 것도 아니고.
손등에 달린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도 있는데, 더 신경 쓰지 말아야지.
“한데 그건 언제까지 달고 다녀야 하느냐?”
“내 능력으로는 못 떼.”
흐음- 하고 신음을 흘리는 닉스.
요그 소토스의 기운이 불길하기는 하지.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해결 방법이 없진 않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는 제우스의 성유물인 번개의 돌처럼 권능을 담은 돌이다.
포식했다가는 탈이 날 게 분명해서 손을 못 대는 거지.
“아무리 그대라고 하여도 그걸 포식하는 건 위험해 보인다만.”
“다 적당한 때가 있어.”
공허의 보석.
20층 미션에서 레이드 몬스터로 출몰하는 내샨 대공한테서 얻은 아이템이다.
원래는 공허 관련 정수와 교환용으로 얻어 둔 건데.
요그 소토스의 기행 덕분에 다른 활용 방법이 생겨 버렸다.
“그것보다, 지금은 이걸 먹어야지.”
무지개의 휘광석.
과거 내가 완성의 영역으로 향하기 위해 사용했던 촉매다.
“완성의 영역?”
“그래. 고신들과 싸우려면 먼저 시스템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해.”
플레이어.
탑의 가호를 받고 강해지는 자들.
한편으로는 바벨탑의 질서에 얽매여 있기도 하다.
탑의 시스템을 구축한 이들.
고신족들 앞에서 플레이어들이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힘의 근원에게 달려들어도 흡수될 뿐이니.”
“완성의 영역에 도달하면 시스템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어.”
“하면 그대의 능력인 포식도 사용할 수 없지 않느냐?”
“영향에서 벗어나는 거지. 못 쓴다는 건 아니야.”
탑 시스템의 보조가 아닌.
스스로의 능력과 ‘업’으로 오롯이 선다는 것.
완성의 영역에 들어서야 하는 이유다.
“과연. 이해하였도다.”
“그러니까 잘 좀 지켜 줘.”
“후후훗, 그대의 안위는 여에게 맡기어라.”
나는 무지개의 휘광석을 꽉 쥐었다.
완성의 경지로 올라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마법으로 치면 위계를 완성하는 것.
무공은 깨달음을 얻어서 심검, 그러니까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경지.
그 외에도 힘의 갈래만큼 ‘완성’으로 향하는 길은 많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난 저 길을 모두 고를 수 없다는 거지.
포식으로 온갖 힘을 받아들였기에, 어느 한 분야를 대성한다고 해서 완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단순히 깨달음만 있다고 해서 심검을 펼치거나 하지 못한다는 거지.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
그 답은 역시 포식에 있다.
“이걸 어떻게 얻나 싶었는데. 운이 좋았어.”
무지개의 휘광석.
여러 힘을 담아 주는 촉매.
이 안에 깃든 정수만큼, 내 고유 능력과 어울리는 힘은 따로 없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무지개의 휘광석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전설]
미션에서 얻은 보상을 포식했다.
일곱 빛이 몸에 스며든다.
본래대로라면 흡수한 정수가 스킬로 구현되어야겠지.
그게 탑 시스템이 정해 준 ‘규칙’이다.
손바닥에 스며든 무지개의 휘광석.
나는 정수리에 깃든 신력을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환하게 빛나는 팔.
막 흡수한 정수가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고, 신력에 붙들렸다.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탑 시스템에 강제로 개입하는 요소가 발견되었습니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
내 의지가 아니다.
바벨탑 시스템이 개입.
내 신력을 파훼하고 포식 능력이 발현되게끔 정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여기서 무지개의 휘광석의 정수를 시스템에 편입시켰다간, 기회를 허무하게 날린다.
회귀 전.
완성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별의별 시도를 해 본 끝에 알아낸 방법.
이 정수를 고유 능력 자체에 충돌시킨다!
팔뚝에 응집된 신력을 그물 형태로 변형시킨다.
현생에서도 극야의 힘을 다룬 덕분에 신력 컨트롤이야 어렵지 않았다.
촤라락!
일곱 색으로 빛나는 정수를 휘감고는 시스템이 아닌, 머리 위로 옮겼다.
[탑 시스템이 사용자의 이변을 감지합니다.]
[사용자의 신변에 위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탑에서 부여한 고유 능력에 다른 힘을 충돌시켜서 시스템을 벗어나게 한다?
그래.
이 방법은 다른 길처럼 ‘깨달음’ 같은 게 아닌, 편법이다.
고신족 중 하나가 알려 준 시스템을 회피하는 기술.
탑 지하에서 그놈을 못 본 게 아쉽군.
무지개의 휘광의 정수를 고유 능력인 포식에 부딪치는 순간.
쩌저적!
나를 가두던 ‘한계’가 깨어지기 시작했다.
[고유 능력 - 포식이 무지개의 휘광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내 기원이자 고유 능력.
포식 자체를 키워 내면 탑 시스템 상 오류로 판정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주 쓸 방법은 아니다.
포식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게 아닌, 능력 자체를 진화시키는 정수가 흔한 것도 아니고.
무지개의 휘광석은 그 얼마 없는 정수 중 하나다.
[능력 - 포식]
생물이나 사물에 깃든 정수를 포식합니다.
여러 정수의 힘을 재조합할 수 있게 됩니다.
탑 시스템이 규정한 능력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규칙을 제정했습니다.
고유 능력의 설명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두 번째 문단은 [무지개의 휘광석]을 충돌시켜서 생긴 효과이고.
마지막 문단은 완성의 경지에 한 발 내디뎠다는 증거다.
“흐흐흐흐.”
웃음이 새어나온다.
오딘 녀석.
무지개의 휘광석을 이런 식으로 쓸 줄은 몰랐겠지?
탈 시스템의 첫 걸음을 무사히 디뎠다.
당장은 중요하지 않지만.
후일, 멸망의 시대 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인류의 스펙으로는 1차 대침식 이후 시작된 다른 종족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으니.
바벨탑이 세계를 침식한다는 결과는 절대로 피해 가지 못했다.
미리 보험을 걸어 둔 셈.
아쉬운 게 있다면, 일반적으로 완성의 경지에 들어서면 비약적인 스펙 상승이 이루어지는데 난 그런 게 없다는 점?
탑 시스템에서 탈피하기 위해 정수를 부딪치는 것 자체가 편법이라서 큰 변화는 없었다.
아니.
“보상이 없으면 만들어야지.”
무지개의 휘광석으로 포식 능력을 진화시켰다.
여러 정수를 재조합하는 능력.
언뜻 보기에는 거창해 보이지만, 말처럼 대단하진 않다.
신체 개변의 연장선 정도?
나는 원시종의 정수로 재구축한 육체를 관조했다.
곳곳에 배치해 둔 정수들.
근육에는 오크의 정수가, 흐르는 피는 킹 슬라임의 정수가 동화되어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정수들이 몸에 스며들어서 신체 능력을 증대시켜 주었다.
여태 포식한 정수의 개수만 100개가 넘어가지만.
육체에 동기화한 건 채 10개도 안 됐다.
이젠 다를 거야.
첫 번째 재조합 대상은 다리다.
[다리 관련 정수를 검색합니다.]
[래피드대시의 정수를 포함, 15개 정수가 다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메인 정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현 수준에서는 래피드대시의 정수가 가장 괜찮겠군.
래피드대시의 정수를 다리에 불어넣었다.
화끈거리는 감각.
[래피드대시의 정수가 다리의 메인 정수로 선택되었습니다.]
[민첩이 105 상승합니다.]
[다리 관련 정수를 하위 정수로 복속시킬 수 있습니다.]
[복속시킨 정수의 능력은 발동시킬 수 없습니다.]
[다른 스킬과의 시너지 효과는 적용됩니다.]
성질 변화에 스텟 증가야, 이미 육체를 개변하면서 경험해 본 것이다.
스텟이 더 늘어나지만 극적인 변화라고 하긴 어렵지.
여기서 중요한 건 하위 정수를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드 고블린의 정수를 하위 정수로 지정합니다.]
[스킬 - 재빠른 도주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민첩이 10 증가합니다.]
[블레이징 소울의 위력이 10% 증가합니다.]
스킬 계수 증가.
그리고 스텟까지.
스킬 사용 불가라는 페널티가 있지만, 시너지 효과가 유지되기에 큰 손해는 아니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스킬들을 하위 정수로 지정하면 주력 스킬의 위력도 늘릴 수 있다는 말씀.
이제부터는 정수를 재조립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