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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90화 (190/300)

190화

평원을 뒤흔드는 충격.

기어 다니는 존재와 전투에 돌입하고 반나절 정도가 지났다.

「……!」

눈에 띄게 줄어든 검은 물결.

첫 등장 때와 비교하면 1/4 정도로 작아졌다.

-얼마 안 남았느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인걸?”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그래.

지금까지는 할 만했다.

기어 다니는 존재에게 ‘먹히지만’ 않으면 되니까.

시시때때로 정신을 좀먹으려 하는 광기.

이따금 촉수나 마법에 직격당하기도 했지만 치명타까진 아니었다.

「……」

촤라라락!

넓게 퍼졌던 검은 파도가 한 점으로 뭉쳐진다.

“2페이즈 시작이군.”

기어 다니는 존재가 여러 영혼들이 뭉쳐진 괴물이라지만, 그래도 축을 맡은 혼도 존재한다.

시커먼 격랑의 축인 영혼은 의지를 잃고 울부짖는 잡령들보다 훨씬 강력했다.

“검은 파라오, 네프렌-카.”

기어드는 혼돈.

아우터 갓 니알라토텝을 섬긴 필멸자.

그 대가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고 때가 될 때까지 드림랜드를 방황하는 괴물.

놈의 의지가 강해지자, 그저 몰아치기만 했던 검은 파도가 인간의 형태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변신 중에는 방해하는 게 규칙이지.”

아르스 게티아를 도로 들었다.

놈이 한 ‘객체’로 읽힌다면.

지금까지 아껴 둔 주문을 사용할 때가 되었군.

[암두시아스의 선율을 사용합니다.]

[단탈리온의 환영을 사용합니다.]

72마신.

판데모니엄 소속 성좌들의 힘을 온전히 구현한 저주가 발동되었다.

변신 중에 휘청거리는 기어 다니는 존재.

아니지.

검은 파라오가 미처 완성되지 않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꼬나보면 어쩔 건데?”

「…….」

-부끄러움은 여의 몫이로구나.

닉스의 한탄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이 여신님이 속 편한 소리 하긴.

기어 다니는 존재는 아우터 갓의 일부다.

정확히 말하면 땀이나 때, 찌꺼기 같은 이물질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얕볼 정도는 아니야.”

땀으로 젖은 몸.

기어 다니는 존재와 대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신 오염도 심해졌다.

육체에 가해지는 피해야, [변이] · [재생] · [대지모신의 가호]로 어떻게든 회복이 가능하다만.

외우주의 존재와 겨루면서 누적되는 정신적인 피로감은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래도 저 흉측한 것의 기운도 많이 줄어들지 않았느냐.

“말했잖아. 그게 더 위험하다니까.”

1페이즈는 인내와의 싸움.

그리고.

진짜 위협은 2페이즈다.

“여차하면 도망칠 거야.”

-후훗, 너무 엄살 부리는 거 아니더냐?

“진심이다.”

-……그만큼 위험하느냐?

“내 예상보다 강하다면.”

검은 파라오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건 놈의 ‘경험’이다.

한 번 간을 보고 못 이길 것 같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쳐야 한다.

저 녀석은 내 상위 호환급 괴물이니까.

변신을 마친 검은 파라오.

긴 지팡이와 부활의 상징인 앙크(☥)를 양손에 쥐고, 머리에는 기다란 모자를 썼다.

이집트 특별 전시관에서 볼 법한 이미지.

놈은 샛노란 눈동자를 번들거렸다.

「지평선 너머에서 짐을 일깨운 자가 너로구나.」

“야, 저주 한 번 썼다고 노려봐 놓고서 폼 잡는 건 추하지 않냐?”

「필멸의 존재여. 감히 기어드는 혼돈의 대변자를 모욕하다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해 주마.」

“제 이름도 아니고 주인 이름 팔아먹기는.”

「일어나라. 짐의 수하들이여!」

검은 파라오가 앙크를 휘둘렀다.

평원을 물들이는 검은 기류.

드라이아이스처럼 바닥에 깔린 안개 위로, 모래 병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부하들 만들어 내는 거 기다려 준대?

어둠의 육체를 전개, 최대로 끌어낸 극야의 힘으로 모래 병사들을 뎅겅뎅겅 썰었다.

「하찮도다. 그 정도로 짐의 행사를 방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응. 가능해.”

「갈!」

놈의 지팡이가 땅에 닿는 순간.

막 생성된 모래 병사들이 일제히 폭발했다.

어둠의 육체로는 흘려보낼 수 없는 강력한 위력.

곧장 원래대로 돌아와서 메탈 반사 장갑과 암흑 투기로 전신을 감쌌다.

티티티팅!

콩을 프라이팬에 볶듯,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와, 더럽게 아프네.

-제 발로 폭발의 진원지에 뛰어든 모양새로구나.

알아.

그렇다고 놈한테 병사들을 일으켜 세울 시간을 주면 절대 못 이긴다고.

「잔재주는 있구나. 그러니 짐의 의식을 일깨웠겠지.」

우드득-!

검은 파라오의 어깨가 부풀어 올랐다.

볼링공 크기로 커진 어깨 위에 인간과 비슷한 입이 맺힌다.

고어(古語)를 중얼대는 두 입.

시대의 흐름에 잊힌 옛 술법들이 발동된다.

콰르르릉!

마른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

이글거리는 화염이 몸을 휘감는다.

“제길. 이래서 시간을 주면 안 되는데.”

-그대도 받아치면 되지 않느냐?

“옛 주문은 일반 마법보다 상성에서 위야.”

마법은 세계의 질서를 비트는 거지만, 검은 파라오의 어깨에 들러붙은 놈들은 신의 이적을 흉내 냈다.

고대 주술사들이 주문만으로 이적을 내렸던 시절.

격으로만 놓고 보면 마법보다 위라서, 같은 위력이라도 한 단계 윗줄의 마법으로 방어해야 한다.

[뇌둔의 술 - 뇌망을 사용합니다.]

넓게 펼쳐지는 번개 그물.

주술사들의 고대 주문과 충돌하더니, 그 자리에서 상쇄되었다.

돌진 중에 준비해 둔 선법이 먹혀서 다행이군.

운류보를 재차 전개.

검은 파라오의 지척에 도달하는 순간, 놈의 앙크가 다시 한번 빛났다.

「짐이 근접전에서 약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나?」

뱃가죽에서 튀어 나온 악어의 입.

검은 악어는 아가리를 크게 벌리더니 그대로 깨물었다.

쾅!

허공을 무는 악어의 입.

「이걸 피했다고?」

악어에게 물리기 전, 운류보를 전력으로 운용해서 이동 방향을 틀었다.

그래.

내가 검은 파라오와 이미 겨루어보지 않았으면 그대로 물렸겠지.

“더러운 입 치워라.”

봉황각으로 악어의 입을 걷어차자 크게 휘청거렸다.

내공까지 담았는데 중심을 잃게 하는 게 고작.

-의외로 단단하구나.

“저 녀석, 생긴 것과 다르게 강골이야.”

원거리 마법사 유형처럼 보이지만 실은 올라운더 타입이다.

기어 다니는 존재로 지내면서 삼켜온 이들의 특성을 모두 보유한 괴물.

저 군체의 중심인 ‘검은 파라오’가 깨어나면서 그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래 병사를 다루는 건 본연의 능력이지만. 나머지는 아니거든.”

「태평하구나. 짐을 앞에 두고도 떠들 여유가 있다니!」

검은 파라오의 팔 한쪽이 길게 늘어났다.

맨티스의 팔.

낫을 닮은 왼팔이 공간을 벤다.

이번에는 피할 수 없군.

비익대붕장으로 낫의 옆면을 툭 쳐 내자, 목을 노리던 궤적이 홱 틀어졌다.

[고대의 어둠이 시야를 물들입니다.]

[고대의 열병이 몸을 잠식합니다.]

검어지는 눈가.

열병이 신경계통에 간섭하면서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검은 파라오의 양 어깨에 달라붙은 고대의 주술사들.

그 저주는 신력을 회전시켜도 쉽게 무효화시킬 수 없었다.

-위험하도다!

이건 위험 축에도 못 껴.

눈 조금 멀었다고 해서 싸움을 못 하는 건 아니잖아!

육감에 의지.

몽롱해진 감각 대신 여태 쌓아올린 경험만으로 몸을 움직였다.

“여신님, 잠깐 동안만 내 눈이 되어 줘.”

-알겠도다. 전방에 거대한 주먹!

참 직관적인 설명이군.

육감으로 느껴지는 건 커다란 벽이 다가오는 것 같은데.

검은 파라오가 오우거나 거인의 손을 구현한 모양이다.

피하는 건 간단하지만.

“물러나서는 답이 없어.”

극야의 힘을 응축시킨 암흑 칼날을 추켜세웠다.

서걱!

암영추혼검을 펼치자, 뜨거운 액체가 온몸에 튀었다.

[검은 오염이 스며듭니다.]

[당신의 피가 혼탁해집니다. 저주를 해제하지 못하면 마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드래곤의 피를 뒤집어쓰면 불사의 저주에라도 걸리지.

기어 다니는 존재, 아니 검은 파라오의 혈액은 상대를 외우주의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저주를 지녔다.

「크크크, 걸려들었구나! 짐의 혈액에 깃든 저주를 풀려면…….」

“엘더 갓, 그러니까 성좌급 존재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네놈, 그걸 어찌?」

“컨닝 페이퍼가 있거든.”

회귀 전의 지식.

이만한 공략집이 또 있을까.

「안다 한들 소용없다. 짐의 피를 뒤집어쓴 이상, 짐과 하나가 되는 걸 피할 수 없도다.」

“그러니까 소용없대도.”

[산성 피가 외부의 간섭을 인식합니다.]

[당신의 육체와 동화된 피가 저주의 기운을 태웁니다.]

치이이익!

저주의 기운이 불타서 사라진다.

「불가능하다. 어찌 이런 일이!」

“안 알려 줌.”

적어도 ‘피’의 성질을 바꾸는 저주는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이미 고대종의 육체를 기반삼아 킹 슬라임의 정수를 몸에 동기화시켜 놨거든.

한 줄기 빛이 시커멓게 물들었던 시야를 밝혀 준다.

빌어먹을 고대의 저주.

신력을 동원했는데도 몇 초나 걸리네.

「짐의 이름을 걸고 네놈을 파멸시켜 주마.」

“보증은 함부로 서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주지.”

기어 다니는 존재와의 2차전.

역시나 쉽지 않겠어.

* * *

콰앙! 쾅!

연달아서 울려 퍼지는 폭음.

평원 일부의 형태가 완전히 바뀌었다.

네프렌-카.

검은 파라오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저렇게나 끔찍한 혼종을 누가 만든 건지.”

-그대가 할 말은 아니로구나.

“말장난을 할 때가……. 어이쿠야.”

서걱!

한 치 차이로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 낫.

맨티스의 팔을 구현한 공격이 살갗을 베고 지나갔다.

조금이라도 늦게 반응했으면 목이 썰렸겠어.

검은 파라오는 본신의 능력인 모래 병사 소환에 이어, 흡수해 온 생물체들의 능력도 다루었다.

셀 수조차 없는 세월 동안 드림랜드 서부를 배회한 괴물.

놈이 흡수한 생물의 숫자는 회귀 후 포식해 온 정수보다 더 많았다.

공격 패턴.

능력치.

어느 것 하나 검은 파라오를 앞설 수 없었다.

“커흑.”

정면으로 충돌한 팔이 부러졌다.

나는 이를 악물면서 [변이]로 부러진 뼈를 복원시켰다.

「일어나라.」

한순간이라도 틈을 주면 모래 병사들을 소환.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였다.

레이즈 데드를 사용하고 싶지만 시체가 있어야지.

-여태 그대를 상대한 이들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느끼는구나.

“내가 저 정도는 아니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느냐?

허 참, 사람을 뭘로 보고.

기어 다니는 존재랑 비교하는 건 심하잖아.

내 상위 호환 격 상대였지만.

지금까지 아껴 둔 스킬들을 모두 사용하자, 전세가 역전되었다.

[악귀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정신 간섭 차단 및 능력치를 배가해 주는 버프.

[공허의 거울을 사용합니다.]

흡수해온 정수를 비추어서 원본의 형태로 구현하는 스킬도 일부러 아껴 두었다.

다 검은 파라오를 상대하려고!

“여신님.”

-알았도다.

극야에 동화한 닉스.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정교해진 솜씨로 극야를 다루면서 검은 파라오를 압박했다.

“놈에게 시간을 주면 안 돼.”

검은 파라오에게 부족한 것은 ‘경험’이다.

수많은 능력을 흡수했지만, 정작 그 능력을 100% 활용하진 못한다.

유일하게 나랑 다른 부분이지.

전투가 길어질수록.

놈은 제 능력에 익숙해진다.

그러니까.

“모든 능력을 퍼부어서 끝낸다.”

검은 파라오의 손과 발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승부를 낼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는 거지.

이 순간에도, 검은 파라오는 내 공격에 적응하면서 능력 운용에 익숙해지고 있다.

시간을 줄수록 불리해지는 건 나다.

티라노사우루스와 오크의 정수를 동시에 구현.

약간이나마 길어진 팔로 무공을 펼쳤다.

「이, 이만한 힘을 숨겨 두다니!」

검은 파라오가 당황한 기색으로 뒷걸음쳤지만.

“어딜 도망가?”

백택군림각으로 지축을 흔들면서 도주로를 차단.

콰드드득!

검은 파라오를 그대로 씹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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