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우르칸의 정수로 구현해 낸 날개.
실전 활용은 처음이라서 생각처럼 잘되진 않았다.
-잘 날아 보지 그러느냐.
“그게 내 마음대로 되면…… 이크.”
바람의 세기, 그리고 방향.
[바람길]을 펼칠 때하고는 다른 감각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면 마나를 뭉치는 것만으로 중력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
이런 비행은 처음이란 말이야.
“끼이이이!”
“짖지 좀 마라.”
지척으로 다가온 나이트건트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괴력을 사용했다.
우득!
나이트건트의 목이 반대로 꺾였다.
비행 특성 때문에 플래티넘급 전투 능력으로 분류되지만, 육체 능력은 골드 수준이다.
무공까지 쓸 필요도 없다는 말씀.
“끼이잇!”
“끼이이이이!”
나이트건트 무리는 수적 우위를 앞세웠다.
쇄애액!
날개를 휘감는 기다란 꼬리.
촘촘하게 박힌 가시가 털과 살을 찢고 파고들었다.
좌우로 움직이면서 내 날개를 비트는 나이트건트 무리.
이래서는 비행이고 나발이고 때려쳐야겠네.
“귀찮게 하지 마.”
있는 힘껏 날개를 퍼덕이는 동시에 괴력 전개.
그 위로 암흑 투기까지 둘렀다.
강한 힘에 찢겨지는 나이트건트들의 꼬리.
가시가 어찌나 날카롭던지, 날개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암흑 투기로 마저 밀어내곤 다시 비행, 나이트건트들을 하나하나 사냥했다.
“아오, 어지러워.”
-비행 스킬을 사용하지 그러느냐?
“감 잡는 데 방해 돼.”
날개를 사용한 공중전.
회귀 전에는 다뤄 보지 않은 부위라서 힘겨웠다.
-그대의 능력이 더 상승하면 굳이 날개에 의지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맞는 말인데. 이것도 꽤 쓸 만해 보여서.”
열 마리째 사냥했을 때, 홍윤수가 바람을 타면서 올라왔다.
“끼이잇!”
도주하는 나이트건트 무리.
쩝.
아직 정수를 100% 못 모았는데 벌써 도망치냐.
“길드장, 추격합니까?”
“아뇨. 가시거리도 안 좋으니 천천히 가죠.”
드림랜드는 외부보다 시간이 늦게 간다.
탐색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말.
거기에, 난 회귀 전의 경험으로 마경의 특성을 꿰고 있었다.
급히 갈 필요는 없다는 거지.
일행은 드림랜드 안쪽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검은 잉크를 물에 풀어놓은 것처럼 몽환적인 하늘.
나이트건트 무리가 배경음처럼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
[나이트건트의 정수를 포식했습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악몽 가시가 추가됩니다.]
[악몽 가시]
등급: ★★
분류: 액티브
신체부위에 악몽 가시를 돋아나게 한다.
악몽 가시는 사용자의 마력 수치에 비례해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힌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신체 어디든지 가시를 만드는 스킬.
가시멧돼지의 정수와 차이가 있다면, 물리력이 아니라 마력에 비례해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힌다.
외우주와 현실의 중간.
드림랜드의 주민이라는 걸 감안해서 생성된 스킬이다.
[가시멧돼지의 정수가 악몽 가시와 공명합니다.]
[두 정수를 융합하여 새로운 스킬을 만들 수 있습니다.]
[쏜즈 미사일 스킬이 생성됩니다.]
[쏜즈 미사일]
등급: ★★★
분류: 액티브
피부에서 가시를 생성, 정면으로 쏘아 보낸다.
체력과 마나를 소모한다.
회귀 전에는 얻지 못했던 가시멧돼지의 정수.
두 정수가 만났을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건 알았지만.
“운이 좋군.”
기껏해야 방어 관련 시너지가 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다른 스킬이 탄생했다.
시험 삼아 팔뚝에 쏜즈 미사일을 전개했다.
엄지 굵기의 가시가 솟아나더니, 마력을 불어넣자 정면으로 튀어나갔다.
-위력은 강해 보이지 않는다만.
“체술 취급이라 마력을 재배열할 때도 사용할 수 있어.”
메탈 반사 장갑과 포지션이 겹치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근, 중거리에서 쓸 만한 견제기가 추가되었다.
드림랜드에서 얻을 정수는 나이트건트만 있는 게 아닌데.
시작이 좋군.
-참으로 끔찍한 혼종이로구나.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후후훗. 그대의 제자인 지영이가 아니면 누구겠느냐.
빌어먹을.
가서 두고 보자, 지영아.
* * *
첫날 탐사는 큰 사고 없이 끝났다.
나이트건트 무리가 틈틈이 습격해 오긴 했지만, 일행 중 랭커가 둘이나 있어서 위협이 되진 않았다.
비행 연습도 꽤 했고.
[바람길]이나 [비행] 스킬을 배제한 채, 공허의 거울로 구현해 낸 날개만을 활용했다.
“역시 실전이 최고야.”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해도 설득력이 없느니라.
“어지러우니까 두드리지…… 욱.”
몸에 익지 않은 날개를 컨트롤하랴, 나이트건트를 사냥하랴.
[공허의 거울]의 지속 시간이 다할 때까지 날아다닌 탓에 헛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아, 그럭저럭요.”
“정말이지, 길드장님의 능력은 한계가 없어 보이는군요.”
홍윤수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칭찬해 주는 건 고마운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나눌 정신이 아니라고.
속마음을 꾹 누른 채, 고개를 들었다.
“그건 제가 할 말인걸요. 바람의 지배자의 실력, 잘 봤습니다.”
“바람을 다루는 건 제 특기니까 요.”
후우우웅-!
한 줄기 바람이 불자, 홍윤수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오히려 고유 능력 없이 공중전을 능숙하게 치르는 게 더 대단한 겁니다.”
“뭐, 대단까지야.”
“길드장님께 배울 게 참 많군요.”
원래부터 저렇게 말이 긴 사람이었나?
동생을 구해 준 보답이랍시고 처음에 봤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근은 탐사를 마친 것 같으니 베이스캠프를 마련하죠.”
“알겠습니다.”
“준석 선배님. 베이스캠프를 맡아 주시겠습니까?”
“어렵지 않은 부탁이군.”
베이스캠프에는 신준석과 토마스, 그리고 한수창을.
나랑 홍윤수는 각자 동, 서를 맡아서 탐색을 이어 가기로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맡겨 주시죠.”
베이스캠프를 사이에 두고 찢어진 일행.
혼자가 되니 운신이 훨씬 편해졌다.
드림랜드의 구성은 머릿속에 대충 들어 있으니까.
깊이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이니, 주변을 돌면서 우선적으로 포식해야 할 정수부터 노려 줘야겠다.
첫 번째 삶에서는 얻지 못했던 내샨 대공의 정수와 시너지가 될 만 한 놈들 위주로.
산맥을 지나치자, 넓은 평야가 나타났다.
음에에에-!
양이 우는 소리가 메아리치듯 귓가에 아른거린다.
[염소의 종자]
머리는 염소, 그 아래로는 근육질의 거한인 괴물.
외신 중 하나인 슈브 니구라스의 피조물인 염소의 종자다.
“음메에에에?”
고개를 45도로 꺾는 염소의 종자.
노란 눈동자가 기괴한 각도로 움직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풀을 뜯어 먹고 있던 염소의 종자가 지면을 세게 박차면서 높이 도약했다.
[리프 어택]
손에 든 도끼를 추켜세운 염소의 종자.
반응 속도만 놓고 보면 핑 레이보다도 위인걸?
염소의 종자는 수십 미터나 치솟은 후에 아래로 추락했다.
날이 시퍼렇게 선 도끼가 내 머리를 노리지만.
“그 정도로는 안 되지.”
재배열한 마력이 허공에 맺힌다.
허공을 격하며 날아가는 아이스 스피어.
얼음으로 된 창끝이 염소의 종자에게 날아들자, 놈이 도끼를 휘둘렀다.
[탐욕의 가호로 침식한 대상을 조종합니다.]
허공에서 궤도를 홱 튼 아이스 스피어가 비어 있는 염소의 종자의 뒤통수에 박혔다.
그대로 추락하는 괴물.
-해치웠느냐?
“설마.”
지면에 처박힌 염소의 종자가 금세 몸을 일으킨다.
흙먼지가 묻은 게 전부.
아이스 스피어가 닿은 부위조차 멀쩡했다.
“음메에에에!!”
우렁차게 소리 지르는 염소의 종자.
넓은 평원에 흩어져 있던 다른 동족들도 몰려들기 시작한다.
-문제가 생긴 듯하구나.
“아니, 계획대로인데.”
-저 염소들을 불러들이는 것이 계획이었느냐?
“많이 상대하면 좋잖아.”
닉스는 하아, 하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슈브 니구라스의 피조물.
염소의 종자는 ‘풍요’의 신이 만든 이들답게 엄청난 숫자를 자랑한다.
이 평야는 염소의 종자의 영역.
초입부터 정리를 해 놔야 편했다.
정수도 100% 포식할 겸.
-그런 사실은 또 어찌 알았느냐?
“네크로노미콘 사본.”
심해인의 거처를 클리어하면서 얻은 보상.
-그 내용을 해석했나 보구나.
“조금은?”
실제로는 네크로노미콘의 내용을 해석한 게 아니라 회귀 전의 지식이지만.
대충 둘러대고는 염소의 종자들을 둘러보았다.
“음메에에에에!”
염소 머리에 우락부락한 거한의 몸체를 한 놈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놈들의 도약력은 이미 확인했으니까.
[도약을 사용합니다.]
[윈드 밤을 사용합니다.]
[바람길을 사용합니다.]
지면을 차면서 발밑에 윈드 밤을 전개.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도약하고는 바람길을 사용했다.
한발 늦게 도약을 알아챈 염소의 종자들도 뒤따라 지면을 박찼다.
“응. 다 계산했어.”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땅으로 추락하는 염소의 종자들.
놈들의 도약력은 엄청나지만, 지형이 평야다 보니 한계가 명확했다.
이제 위치도 잡았겠다.
바람길을 해제하곤 비행으로 고도를 유지했다.
“이게 몰이사냥의 묘미지.”
[솔라 익스플로전을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확실하게 마무리하려고 솔라 익스플로전을 두 개나 전개했다.
탐욕의 가호로 침식시켜서 위력을 증대시키는 건 덤.
염소의 종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떨어진 솔라 익스플로전.
한껏 압축시킨 열기가 해방되는 순간, 시야가 멀 정도의 빛이 평야를 뒤덮었다.
버섯구름이 솟구치고, 폭발의 여파로 나온 뜨거운 기류가 내 피부에 달라붙는다.
“으, 더럽게 뜨겁네.”
-참으로 무모하구나. 폭발 반경에서 벗어나서 사용할 것이지.
“그럼 저 염소들이 가만히 있겠다.”
나이트건트의 주 서식지인 산은 염소의 종자들에게도 유리한 지형이다.
도약력을 살리면 100미터의 거리쯤이야 금방 좁힐 테니까.
연기가 걷히자, 혀를 내밀고 쓰러진 염소의 종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솔라 익스플로전을 둘이나 터트렸는데도 형태가 남아 있다니.
마법 저항력 하나는 끝내주네.
고도를 서서히 낮췄다.
-이 정도면 정수를 100% 채울 수 있겠구나.
“글쎄…….”
난 말끝을 흐렸다.
천천히 내려가고 있을 때.
음메에에에!!
염소의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다산 그리고 풍요의 상징.
염소의 종자는 슈브 니구라스의 피조물답게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했다.
영역 안에서 벌어진 이변을 알아채자마자, 추가 증원이 들어왔다.
-그대여, 저 흉측한 피조물들이 또 오느니라!
“쉴 틈이 없겠어.”
나는 미소를 삼켰다.
진정한 몰이사냥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