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손가락에 응축된 내공이 가슴팍을 찌르는 순간.
[미러 포스 배리어]
충격 부위가 거울처럼 나를 비추었다.
피해를 반사시키는 강력한 마법 결계, 미러 포스 배리어.
내 이럴 줄 알았다.
세르게이의 몸에 새겨진 건 보조 마법만이 아니다.
비상시에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방어 및 위기 탈출 마법.
미러 포스 배리어는 그중 가장 센 마법이다.
응룡황권이나 산군파랑조처럼 위력이 강한 초식을 펼칠 수 있음에도.
세르게이의 호흡을 뺏으면서 마법까지 걷어 내려고 펼친 초식.
쭉 뻗은 손가락이 강한 반탄력에 밀려나면서 정반대로 꺾였다.
“미러 포스가?”
당황한 듯 떨리는 세르게이의 음성.
내 기억대로라면, 저 반사 마법은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을 때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결계다.
즉, 광서지가 급소를 찌르면 세르게이도 위험했다는 것.
세르게이는 당황하면서도 미러 포스 배리어가 만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내 쪽으로 밀접했다.
오른팔이 저리다.
반사 대미지로 제힘을 낼 수 없는 상황.
2초만 있으면 피해를 떨쳐 내겠는데, 그동안 세르게이가 구경만 할 일은 없겠지?
[백수제왕무 - 6초식]
[봉황각(鳳凰脚)을 사용합니다.]
다리를 휘감는 흑염.
수라마령심공의 영향으로 검어진 불꽃이 세르게이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휘청거리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는 세르게이.
족적에서 한기의 파동이 퍼져 나갔다.
진각과 프로스트 노바를 동시에 운용, 내 중심을 무너트리면서 냉기로 몸을 굳게 만들었다.
-위험하니라!
아냐.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뇌신(雷身)으로 둔해진 몸을 자극.
한기를 떨쳐 낼 때쯤에는 세르게이가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쭉 펼친 손날 위로 맺힌 기다란 칼날.
[윈드 블레이드]
[데스 촙]
처음에 내지른 정권처럼 타이밍을 끊기에는 너무나도 접근해 있었다.
봉황각을 무시하고 달려들다니.
역시 전투 감각 하나는 엄청나다니까.
오른손에 모여든 극야의 힘으로 암흑 칼날을 생성.
암영추혼검의 구결에 맞춰 움직인 내공이 어둠으로 빚어낸 칼 위에 아른거린다.
콰득!
정면에서 충돌한 검.
“큭.”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수 미터 뒤로 밀려났다.
온갖 버프와 무공 중에서 제일 강력한 암영추혼검까지 펼쳤는데도 세르게이의 공격을 다 받아 내지 못했다.
튕겨 나는 날 뒤쫓는 세르게이.
어둠의 육체를 전개.
단전 안에 모아 둔 내공을 방출했다.
암영추혼검을 동시에 다섯이나 펼치니, 내공도 내공이지만 머리가 녹아 버릴 것 같았다.
극야의 힘과 내공을 모두 다루어야 하니까.
엘렌 테일러랑 겨룰 때도 쓰지 않았던 수법인데.
[공허의 거울]이나 [데모닉 파워]를 사용하지 않을 때 내 최대 화력인 셈.
세르게이도 암영추혼검은 경시하지 못했는지, 추격을 포기하고 방어 마법과 체술로 암흑 칼날을 튕겨 냈다.
카가가각!
피부에 새겨지는 상흔들.
실드 마법과 오러를 피부에 둘렀어도 암영추혼검을 완벽하게 막아 내지는 못했다.
두두둑, 두둑.
미러 포스 배리어의 충격으로 꺾인 손가락을 재생시켰다.
“그 어두운 힘. 사거리가 길지 않지?”
반대로 거리를 벌리는 세르게이.
펼친 오른손 위로 마법진이 떠올랐다.
“플레임 캐논.”
시야를 가득 메우는 화염의 파도.
[마나 업소브]로 먹으려 했다간 오른손이 타 버리겠지?
난 운류보를 전개하면서 플레임 캐논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집요하게 등 뒤를 쫓는 화염.
파팟!
방향을 급격하게 틀면서 화염 줄기의 사각으로 파고들었지만.
[멀티플 스펠]
[라이트닝 블래스트]
[에너지 트랩]
[아이시클 애로]
다중 연산으로 발동된 마법들이 접근을 막았다.
세르게이의 비장의 패인 미러 포스 배리어도 싸게 뺐겠다.
근접전을 벌이면 아슬아슬하게 동수를 이루겠지만.
“쉽지 않네.”
세르게이도 내 의도를 읽고는 거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마투사.
마법 그리고 체술에 모두 능한 직업.
세르게이 녀석은 굳이 체술을 쓰지 않아도 마법만으로 일류, 아니 그 이상이다.
능력치 배분을 고르게 해야 해서 마법의 위력이 조금 모자라지만.
모든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신기에 가까운 마력 연산 덕에 마법 전투만으로도 동일 등급의 마법 계열 플레이어를 압도했다.
“그 어둠을 다루는 능력을 써 보지 그러냐!”
“사정거리 제한이 있는 걸 간파해놓고 그런 이야기를.”
쳇, 사람 귀찮게 하는군.
전투를 오래 끌수록 내가 유리하다.
하이브리드 유형.
근접과 원거리 모두 커버가 가능하다는 건, 반대로 어느 쪽이든 궁극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거다.
세르게이도 마찬가지.
마법과 체술을 결합해도 궁극의 경지에 다다른 무공에 미치지 못했고.
마력 보유량도 모자라서 원거리 마법전에서는 지속력이 부족했다.
세르게이의 약점이야.
회귀 전에도 여러 번 싸워 봐서 잘 알고 있거든.
문제는 여기가 외국이라는 점.
한수창한테 핑곗거리를 미리 만들어 주긴 했지만 오래 날뛰는 건 부담스럽다.
-그대도 원거리에서 마법전을 벌이는 게 어떻겠느냐?
“에이, 저걸 어떻게 이겨.”
볼멘소리로 대꾸하던 중.
닉스의 말을 곱씹다 보니 의외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해 볼까.”
-여의 힘이 필요하느냐?
내 극야에 동기화를 하겠다는 말.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아직 여유는 있어.”
세르게이와 마법전이라.
이길 순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수련이 되겠어.
포식한 정수로 익힌 마법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중 에너지 볼트 같은 1성급 스킬은 세르게이의 털끝도 못 건드릴 테니 제외.
놈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마법이라고 하면…….
“거리를 벌려야겠군.”
“흥.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마법 공격.
나는 [메탈 반사 장갑]으로 전면을 감싸곤 앞으로 돌진했다.
“거리를 허용해 준다곤 안 했다.”
세르게이가 양손으로 크게 박수를 쳤다.
몰아치는 강풍.
바람의 흐름에 저항하는 대신 운류보의 공능을 활용, 반대 방향으로 뛰었다.
살상력이 없으니 바람길도 사용할 수 있잖아?
강풍 덕에 100미터 이상 멀어졌다.
일그러지는 세르게이의 얼굴.
“거리를 벌렸다?”
“그래. 나도 하고 싶은 게 있거든.”
마력을 재배열.
융합기공으로 엮어 낸 두 스킬이 한데 엮인다.
솔라 익스플로전.
위력이 강한 만큼, 재배열에 시간이 필요했다.
“감히…… 나랑 마법 대결이라도 펼쳐 보자는 거냐!”
“들켰네.”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세르게이는 마법을 연달아 전개했다.
허공을 격하면서 날아드는 바람의 칼날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암영추혼검을 사용합니다.]
이제 [어둠의 육체]를 사용하지 않아도, 한 자루 정도는 원격으로 암영추혼검을 펼칠 수 있었다.
티티팅!
공중에서 격추되는 마법들.
-후훗, 제법이지 않느냐.
“다 여신님 덕분이지.”
닉스와 대화를 나눌 만큼 여유도 있었다.
이글거리는 화염.
솔라 익스플로전이 완성되자, 세르게이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마법은?”
“선물이야.”
나는 탐욕의 가호로 강화시킨 솔라 익스플로전을 정면으로 투척했다.
* * *
구체 안에 억눌러 놓은 에너지가 한번에 방출된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퍼져 나가면서 시베리아 벌판의 추위를 몰아내고.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선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감히 마법으로 나한테 피해를 입히다니.”
이를 가는 세르게이.
“엄살도 적당히 피워야지. 가루 좀 묻은 걸로 거창하게 말하네.”
“너, 마법이 전문도 아닌 것 같은데 내 결계를 무슨 수로 뚫어 낸 거냐?”
“마찬가지잖아. 체술이랑 마법을 같이 쓰는 주제에.”
쏘아붙이면서도 내심 아쉬웠다.
솔라 익스플로전은 [아르스 게티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마법.
내 마력 수치는 골드, 아니 플래티넘급이기에 세르게이의 방어막을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껏 10초 가까이 마력을 재배열해서 발사했는데도 세르게이에게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다.
피부에 새겨 놓은 마법진.
또한, 솔라 익스플로전이 폭발하기 직전에 냉기 계열 마법으로 주위를 감싸서 위력을 약화시켰다.
하여간 센스가 넘치는군.
솔라 익스플로전의 폭발을 받아 낸 후.
세르게이는 이전처럼 마력을 재배열하는 대신, 차분해진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 실력자가 왜 러시아 플레이어들에게 횡포를 벌인 거지?”
“나는 실버 등급인데.”
“웃기지도 않은 소리. 이름을 밝혀라.”
“너, 누구냐?”
“유진호. 한국에서 왔다.”
“어딘가에서 들어 본 이름이군. 잠깐, 향신로 제도의?”
“맞아.”
“영웅이라고 불린 것과 다르군. 이유를 들어 보고 싶다.”
빌어먹을 녀석.
눈 뒤집히면 앞뒤 안 보는 건 이때나 회귀 전이나 마찬가지군.
세르게이를 진정시키려면 저 혈기를 쏟아 내게끔 해야 한다.
저 성격 때문에 고신족의 함정에 빠진 적만 몇 번인지 기억도 안 나는군.
나는 스킨헤드 무리와 충돌했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새빨개지는 세르게이의 두피.
“정말인가?”
“네가 원한다면 증거를 보여 주지.”
“영상은 이미 다 찍혀 있습니다.”
한수창이 옆에서 보조했다.
“동양인이라고 비하해서 미안하군. 내 불찰이다.”
처음 달려들었던 것과 달리, 금방 잘못을 뉘우치는 세르게이.
성격이 단순한 것도 회귀 전과 동일했다.
쳇, 아쉽군.
세르게이의 기를 꺾어 놓으려면 더 싸워야 하는데.
장소와 상황 모두 안 좋아서 전투를 더 끌고 갈 수 없다.
현재 내 수준으로는 세르게이를 꺾으려면 죽일 각오로 싸워야 한다.
그렇게 해도 승리를 100% 장담할 수 없는 상대.
기를 좀 꺾는 걸로 만족해야겠어.
“참, 세르게이, 마경 진입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지?”
“러시아 수호 기사단에 대해 알고 있나.”
“몰라. 들어 본 것 같긴 한데 관심이 있어야지.”
“우리한테 시비를 건 놈들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다. 네오 나치더군.”
“네오 나치라고?!”
세르게이의 눈동자가 분노로 일렁였다.
러시아 국민들에게는 ‘나치’란 금지어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2차세계대전 때 큰 피해를 입은 것에 아직까지도 응어리가 매어 있으니.
러시아 수호 기사단은 스스로를 나치라고 부르진 않지만, 그들의 정치 성향은 나치즘을 계승했다.
“한번 알아보는 게 좋을 거야. 세력이 꽤 커 보이거든.”
“알았다. 좋은 정보 알려 줘서 고맙다.”
회귀 전.
세르게이한테 네오 나치 성향의 길드들이 러시아에서 큰 세력을 구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들었다’냐면, 세르게이와 동맹을 맺었을 땐 이미 뿌리가 뽑혀서다.
그 당사자가 저 녀석이고.
“세르게이, 당신이 이 마경 탐사의 책임자인가?”
“그렇다.”
“일정 안내 좀 받고 싶은데.”
“내 실책도 있으니, 직접 안내하지.”
세르게이는 흉흉한 살기를 드러낸 게 언제냐는 듯, 정중한 자세로 일행을 안내했다.
역시.
이놈하고는 육체의 대화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