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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81화 (181/300)

181화

사건의 발단은 한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햇살이 강해지는 5월.

시베리아의 공기는 여전히 차다.

햇볕을 쐬고 있어도 한기가 피부에 들러붙었고, 입가 주위로 하얀 김이 아른거린다.

“에, 에취.”

“토마스 분석관, 괜찮으십니까?”

“초여름이라고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실수한 것 같습니다.”

골드 등급인 토마스.

원거리 공격 계열 직업군을 선택했기에, 신체 능력은 높지 않다.

장비라도 착용했으면 모를까, 반팔 차림으로는 버티기가 힘들겠지.

“여분의 옷이라도 입으시죠.”

“그래야겠습니다. 이러다 탈이라도 나면…….”

토마스가 몸을 돌이키려는 순간.

“이 산들바람이 춥다고?”

“나약하군. 이래서 외지인들은 안 된다.”

스킨헤드, 그러니까 민머리를 한 이들이 다가온다.

남녀 할 거 없이 시원하게 머리를 밀고, 그 위로 이상한 문신을 새겨 놓은 자들.

신준석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앞에 나섰다.

“당신들은 누구요?”

“러시아 수호 기사단도 못 알아보나!”

“이래서 동양인들은.”

“고작 이 정도 추위도 못 버티면서 우리나라를 도우러 왔다고?”

“네 나라로 꺼져라!”

스킨헤드 무리의 눈가에 아른거리는 살기.

아, 기억났다.

1차 대침식 때는 이 녀석들도 활개를 치고 있었구나.

“네오 나치 새끼들.”

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앞으로 나섰다.

“네오 나치?”

“슬라브 민족의 우월성 어쩌고 하는 등신들이에요.”

“허허.”

신준석이 난감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러시아는 이런 곳이었지.

소련이 무너진 후, 잠갔던 문을 개방하면서 여러 문제가 산재한 나라다.

그중 하나가 극단적인 민족주의, 네오 나치의 발호다.

“나치는 독일 아니었습니까?”

“히틀러가 제창하긴 했지만, 나치즘도 하나의 정치 성향이니까요.”

“좀 거북하군요. 정치 성향이라니.”

홍윤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분류상으로 그렇다는 거지, 저 놈들이 쓰레기라는 건 똑같으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극단적인 성향은 어딜 가든 환영받기가 어렵다.

네오 나치도 마찬가지.

머리를 밀어 버린 남녀들, 자칭 수호 기사단이라는 작자들도 사회의 비주류 세력이었다.

바벨탑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야.

탑 이전의 세계는 돈이 힘의 척도였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하지만.

탑이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뿌리면서 플레이어가 힘의 척도로 변했다.

“근본도 없는 놈들이 우쭐댈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거죠.”

“너, 지금 우릴 보고 욕한 거냐?”

“말귀는 알아듣네.”

“이……!”

스킨헤드 남자 하나가 방망이를 휘둘렀다.

[메가 배시]

방망이 위를 뒤덮는 주황색 빛.

내 정수리와 충돌하기 직전.

발밑에서 솟구친 극야가 방망이를 휘감았다.

“한수창 팀장님.”

“ㅇ, 예?”

한발 늦게 몽둥이를 본 한수창이 화들짝 놀란 기색으로 대꾸했다.

그는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

평범한 사람의 몇 배를 상회한 신체 능력을 지닌 스킨헤드의 공격을 제대로 볼 리 없었다.

이럴 땐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상기시켜 줘야지.

“선제공격을 당했습니다.”

“그, 그렇군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대꾸한 한수창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몽둥이를 붙들린 스킨헤드 녀석이 안간힘을 썼다.

“놔! 놓으란 말이다!”

흔들림 없는 극야.

천안(千眼)으로 훑어보니 평범한 브론즈 등급 플레이어 수준이다.

쥐고 있는 몽둥이를 놓을 생각도 못 하는 걸 보면 애송이군.

“그러니까 이후의 행동은 정당방위라는 거죠.”

“외교적으로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저희의 행보는 모두 기록으로 남겨 두고 있으니까요.”

역시.

내 의도를 금방 파악하는군.

“정당방위라는 말, 확실하게 들었지?”

“뭔 말이냐!”

“직접 겪어 보면 알 거다.”

무공이나 체술, 혹은 마법은 쓸 수 없다.

이놈들은 너무 약했다.

피를 봤다가는 국제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잖아?

대신.

“죽고 싶을 만큼 아플 거다.”

[어둠의 육체를 사용합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극야를 최대치로 방출.

스킨헤드 무리 전체가 극야의 범위 안에 들어왔다.

“이 검은 건 뭐야?”

“떨쳐 내!”

“제길, 무슨 짓거리를…….”

열심히 발버둥 쳐 봐라.

밤의 여신의 권능, 극야를 떨쳐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의지만으로 극야를 컨트롤, 스킨헤드 무리의 다리를 휘감았다.

우득-!

기괴한 각도로 틀어지는 다리.

한발 늦게 찾아온 격통에 스킨헤드 무리가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

“너희들의 실력, 잘 알았다.”

다리가 부러지면서 휘청거리는 스킨헤드 무리.

극야는 수십 갈래로 흩어지면서 그들의 전신을 휘감았다.

“시시하군.”

무공이나 체술, 그리고 마법은 쓰지 않았다.

저 스킨헤드 무리는 너무 약해서 섬세하게 힘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응룡황권을 펼치면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 버릴걸?

내친김에 극야로 힘 조절이나 수련해야지.

“러시아 수호 기사단은 우, 우리가 끝이 아니…….”

“짖지 마라. 시끄러우니까.”

극야가 나불대는 스킨헤드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반이 당했다.”

“저 외지인들이 보리스도!”

“네놈들, 러시아 수호 기사단이 두렵지도 않냐!”

우르르 몰려드는 스킨헤드 무리.

“선배님들은 나서지 마십쇼. 제 선에서 정리할 테니.”

“우리가 나서는 게 더 자비로워 보인다만?”

신준석이 혀를 내둘렀다.

예리하구먼.

저런 놈들은 약간이라도 틈을 보이면 곧바로 목을 꼿꼿하게 세운다.

한번 밟을 땐 자비 없이 눌러 놔야지.

놈들에게 여지를 주면 안 된다.

포션, 혹은 치료 스킬로 어지간한 부상을 다 회복할 수 있는 시대라지만.

뇌리에 심어진 공포까지는 떨쳐내기 어려울 거다.

자칭 ‘수호 기사단’이라는 놈들은 수십을 넘어 백 단위로 몰려왔다.

대부분은 실버에서 브론즈 사이.

간간히 골드 등급 플레이어도 섞여 있었다.

“오히려 좋아.”

골드 정도만 되어도 툭 쳤는데 죽을 만큼 약하지 않거든.

쉼 없이 몰려오던 스킨헤드 무리를 박살 내던 중.

세르게이가 나타났다.

나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붙어 있는 신장의 사내.

살기 섞인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코와 귀에 뚫어 놓은 피어싱.

피부가 드러난 곳에는 알 수 없는 문신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이 시절에도 저렇게 몸을 학대(?)했었군.

“겁도 없군. 동양인! 실력이라도 자랑할 셈인가본데, 그 정도로는 안 되니까 꺼져!”

세르게이가 두 눈을 부라린다.

하아-.

난 짧게 한숨을 쉬었다.

“러시아의 붉은 곰, 이건 오해가…….”

홍윤수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면서 앞으로 나섰지만.

“오해는 무슨!”

부웅-!

세르게이의 정권이 홍윤수의 이마 앞에서 멈췄다.

휘날리는 머리카락.

한 치 앞에서 멈춰선 주먹을 보며, 홍윤수가 뺨을 일그러트렸다.

“이야기 정도는 들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주먹으로 머리통을 으스러트리지 않은 게 자비라고 생각해라.”

말이 안 통하는군.

회귀 전에도 저런 태도였지.

난 홍윤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뒤로 물렸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대화를 해야 하나.”

“뭐라고 중얼거렸나, 동양인.”

“대화하자고, 대머리야.”

“……이건 패션이지, 대머리가 아니다!!!”

훤히 드러난 두피가 빨개졌다.

세르게이가 분노 섞인 포효를 외치는 순간.

[백수제왕무 - 1초식]

[응룡황권을 사용합니다.]

내공을 실은 주먹으로 놈을 가격했다.

수십 미터 뒤로 날아가더니 벽에 꽂혀 버리는 세르게이의 몸뚱이.

“저, 길드장님, 이건…….”

“말씀드렸잖아요. 여긴 제가 처리한다고.”

“세르게이는 러시아 1위 랭커입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다 계획이 있어요.”

회귀 전에도 겪어 본 상황.

저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귀부터 열어 줘야 한다.

그러려면 달아오른 머리를 식혀 줘야지.

“오냐, 동양인, 한판 해보자 그거지?”

벽에 파묻힌 세르게이가 소리를 질렀다.

“그 공격을 받고도 멀쩡하다니.”

“반응을 했단 말인가.”

두 랭커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팔뚝에 아른거리는 주먹 자국.

세르게이는 기습적으로 펼친 응룡황권에 반응했다.

“덤벼.”

“후회할 거다.”

2미터의 거한, 세르게이가 위협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찌이익!

세르게이는 오른손으로 상의를 찢어 버렸다.

훤히 드러난 상체.

가슴팍에는 여러 문신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보기에 흉하구나.

“저게 다 마법진이야.”

마법과 근접전 양쪽을 모두 섭렵한 [마투사].

세르게이의 직업이다.

고유 능력도 마투사와 관련이 있는 [이중 재능].

“피부에 새긴 문신으로 보조 마법이나 디버프를 사용하지.”

[파워 오브 오우거]

[윈드워크]

[실드]

[대미지 콘댄서]

…….

숨 한 번 내뱉을 정도의 시간 동안 보조 마법 10개가 적용되었다.

폼으로 문신을 새겨 놓은 건 아니란 말이지.

세르게이가 전투를 준비하는 동안 나도 가만있지 않았다.

“여신님.”

-알겠도다.

밤의 여신의 가호와 피오르의 축복.

그리고 세르게이에게 분노의 족쇄를 사용했다.

차릉-!

발목을 붙드는 암흑 마나.

“잔재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세르게이의 몸이 흐릿해진다.

[점멸 x 2]

연속으로 점멸을 사용.

응룡황권으로 벌렸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분노의 족쇄에 붙은 돌진 불가 페널티를 이런 식으로 상쇄하다니.

역시 세르게이야.

“동양인! 아까 주먹의 보답이다.”

팔뚝 위에서 칼날 형태로 회전하는 강력한 바람.

[레이징 스톰]

[괴력]

[오러]

마법과 체술, 그리고 오러를 결합한 스킬.

마투사만 부릴 수 있는 신묘한 기예다.

르네 데이비스의 [융합기공]에 버금가는 강력한 연계기.

하지만.

“이때도 똑같았네.”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한테는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녀석이 점멸을 연속으로 쓰고 있을 때.

이미 반격은 시작되었으니까.

오른발을 축 삼아서 전신을 회전.

스스로 거리를 좁힌 세르게이를 현무제암고로 밀쳐 냈다.

놈의 마투기가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기 전의 타이밍을 노린 공격.

회전하던 바람과 오러가 뒤엉키면서 위력이 감소되었다.

“이, 이.”

신음을 흘리면서 밀려나는 세르게이.

다시 한번 점멸로 자리를 이탈할 생각이겠지만.

난 극야로 인근의 좌표축에 간섭했다.

공간을 조작하는 마법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기에, 이 정도만 해도 방해가 가능했다.

“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백수제왕무 - 5초식]

[광서지를 사용합니다.]

백수제왕무 전반부 12초식 중, 가장 빠르게 펼칠 수 있는 기예.

“나갈 때는 아니란다.”

광서지로 훤히 드러난 세르게이의 몸통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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