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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79화 (179/300)

179화

토마스 밀러.

고유 능력인 [분석]을 갈고닦아서 최고의 육성자로 명성을 떨친, 아니 떨칠 인물이다.

상대의 기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분석 능력.

정보 분석만 놓고 보면 내 천안(千眼)보다 몇 수는 위에 있다.

뭐, 그것만 가지고는 최고의 플레이어 육성 전문가라고 불리지 않았겠지.

분석 능력에 이어, 각 플레이어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읽어 내고 최선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줄 아는 능력자!

“미국에서 분석관으로 활동 중이시지 않습니까?”

놀란 마음을 꾹 누르고는 담담한 투로 말했다.

“절 알고 계셨습니까?”

“토마스 밀러 하면 유명한 분인데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실은 거짓말이다.

미국에서도 1차 대침식 이후에나 해설자로 유명해진 인물.

길드들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있지만 일반인들까지 눈여겨 볼 정도는 아니다.

토마스 밀러가 [육성자]로 명성을 떨친 건 몇 년 후의 일.

그때쯤이면 지나가는 사람도 알아볼 정도의 유명인이 되지만.

아직은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하하핫, 감사합니다.”

시원하게 웃는 토마스 밀러.

예의상 한 말에도 리액션이 후한 아저씨군.

“밀러 해설위원.”

“편하게 토마스라고 불러 주시죠, 미스터 유.”

“알겠습니다, 토마스. 일단 앉으시죠.”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토마스 밀러.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요?”

“미스터 유의 강함을 제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이 시대만 해도 동의 없이 상대의 능력을 확인하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몰래 읽어 내는 거면 모를까.

상대를 앞에 두고 하려면 동의를 구해야지.

“좋습니다.”

그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나를 훑는다.

분석을 사용하는 모양이군.

어디, 장난이나 쳐 볼까?

난 마나와 내공을 철저하게 내부로 갈무리했다.

그리고 [신력]으로 전신을 코팅하듯 감싸면서 외부에 흘러나오는 기척을 차단했다.

흔들리는 토마스 밀러의 동공.

“잘 안 보이십니까?”

“허허, 이미 알고 계셨군요.”

“토마스 분석관의 안목이 날카로운 거야 뭐.”

“칭찬해 주시는 것과 달리 미스터 유의 능력을 읽기가 어렵더군요.”

“얼마나 파악하셨습니까?”

“스킬 개수와 대략적인 능력치 정도입니다.”

와, 신력까지 동원해서 정보 유출을 막았는데 그 정도라니.

대단한 양반이다.

“역시 듣던 대로군요.”

“과찬입니다. 미스터 유야말로, 제 능력을 일부 무효화시키실 줄은 몰랐습니다.”

환하게 웃는 토마스 밀러.

“커피 드세요.”

“고마워, 지영아.”

“환대 감사합니다, 레이디.”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님 대접도 해 주고, 참 기특하다니까.

나는 한 번에 커피를 마셨다.

진득하게 맛을 음미하는 성격도 아니고.

얼음을 씹어 먹고는 토마스 밀러를 빤히 바라봤다.

“분석관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슬슬 들려주시죠.”

“듣던 대로군요. 시원시원한 성격이라고 하더니.”

“원래부터 돌려서 말하는 걸 안 좋아합니다.”

“초면에 실례 되는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겐 좀 중요해서요.”

“분석 말입니까?”

“예. 미스터 유의 허락만 있다면 역천 길드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나는 두 눈을 껌뻑였다.

토마스 밀러가 제 발로 길드를 가입하겠다, 라.

처음 들은 생각은…….

“왜죠?”

“궁금하실 만도 합니다. 갑자기 찾아왔으니까요.”

“토마스 분석관이 합류한다면 이쪽이야 감사합니다만.”

“전 말입니다. 플레이어들을 살펴볼 때, 색채를 봅니다.”

토마스 밀러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분석]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내 안을 살펴보려는 것 같은 눈빛.

눈동자에는 뜨거운 열망이 이글거렸다.

“기운의 크기에 상관없이, 소유한 힘을 효율적으로 다루면 색이 진해집니다.”

“제 색은 분석관이 볼 때 어떻습니까?”

“다섯 가지 색. 그것도 세상을 진하게 물들일 만큼 진한 색채를 지녔습니다.”

다섯이라.

마나 / 암흑 마나 / 극야 / 내공 / 선기.

내가 다루는 다섯 가지 기운을 가리키는 모양이다.

“미스터 유를 처음 본 건 실버 등급 승급전 때였습니다.”

“아, 그때 이슈가 좀 됐었죠.”

“정말이지. 미스터 유를 보는 순간 황홀하더군요.”

눈을 반짝이는 토마스.

40대 중반 정도 되는 아저씨가 저런 눈빛을 띠니 부담스러웠다.

“비교해서 죄송하지만 미국 1위 랭커인 엘렌 테일러도 미스터 유처럼 빛나진 않습니다.”

“감사한 말씀이군요.”

“장차 최고가 될 플레이어의 곁에서 분석하는 것. 역천 길드에 가입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토마스 밀러는 비장한 기색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이 시점에서도 안목 하나만큼은 엄청났군.

중계 화면으로 내 능력 계통을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뛰어난 안목.

그리고 분석력.

회귀 전에도 육성 전문가로 이름을 떨친 사람이다.

거기에 조직 관리나 데이터베이스 정리에도 빛을 발했고.

역천 길드의 관리를 맡길 만한 인물이 제 발로 품에 안겨 왔다.

난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럼 앞으로 부탁드립니다.”

“받아 주시는 겁니까?”

“토마스 분석관이면 거절할 이유가 없죠.”

“가,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암요. 최선을 다하셔야죠.

이제부터 숨 쉴 틈도 없이 부려 먹을 건데.

나는 토마스를 마주보면서 진하게 웃었다.

* * *

1차 대침식 이후 4개월이 지났다.

각지에서 생성된 게이트 때문에 세계 정국이 혼란했지만.

플레이어들의 활약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일어난 게이트 브레이크까지는 다 막아 내지 못했기에, 영토 일부를 상실하는 나라도 발생했지만 극히 일부일 뿐.

전 세계는 1차 대침식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가는 중이었다.

햇볕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5월의 어느 날.

[탑과 세계의 1차 동기화가 안정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10대 마경이 인적이 드문 험지에 생성됩니다.]

[선정 기준은 차원 전역에서 게이트 브레이크가 가장 많이 일어나거나 특정 원소의 파장이 강력한 지역입니다.]

구구구궁-!

전 세계 각지에서 이상 현상이 관측되었다.

남극과 북극의 온도가 영하 80도 이하로 떨어지고.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세인트 헬렌스 화산에서는 펄펄 끓는 용암이 하늘 위로 솟구치면서 땅에 불비를 흩뿌렸다.

시베리아 중부를 가로지르는 강, 퉁구스카 상류에서는 보라색 기운이 일렁거리더니 주위를 침식했고.

그 외에도 여러 이변들이 각 장소에서 관측되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기상이변.

남극과 북극에서 불어오는 한파는 인근 바다를 얼려 버렸다.

강추위에 휩쓸린 어선이 통째로 얼어 버리는 건 큰일도 아니었다.

화산 폭발이 일어난 워싱턴 주에서는 그 여파로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 2차·3차 피해가 벌어졌다.

“플레이어 협회는 이번에 벌어진 재난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

“골드 문에서는 사태가 안정될 때까지 탑 공략을 중단…….”

천재지변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플레이어들.

재난을 피한 국가들도 인적·물적 자원을 지원해서 피해를 입은 나라들을 도왔다.

그럼에도 피해는 엄청났다.

남극이나 북극은 원래부터 접근이 어려웠다지만, 퉁구스카나 세인트 헬렌스 화산 주위는 달랐다.

반경 200킬로미터가 화산, 혹은 이계화가 진행되었기에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다.

특히 세인트 헬렌스 화산의 경우, 영역 끄트머리에 시애틀이 걸려 있어서 피해가 더 심했다.

“안 돼.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

“어르신, 용암이 밀려오고 있다고요. 어서 떠나셔야 해요.”

“내 고향을 두고 어딜 가? 죽어도 여기서 죽을 거여.”

순조롭지 않은 피난 과정.

그 와중에 발생한 인적, 물적 피해는 집계가 안 될 정도다.

며칠 동안 전 세계를 강타한 이상 기후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하지만.

[10대 마경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경은 게이트 브레이크와 동일한 현상입니다.]

[해당 지역을 원래대로 돌리려면 마경의 핵을 부숴야 합니다.]

기상 이변의 중심부는 현실과 이계가 뒤섞인 형태로 변했다.

푸른 웜홀 너머에 존재하는 곳.

게이트처럼.

화산 지대에서는 용암으로 된 생물들이 하늘을 누비거나 지면에 발자국을 새겨 놓았고.

극한의 추위가 감도는 지역에서는 피부가 푸른 거인들이 얼음 방벽을 쌓아서 영역을 표시했다.

“일시적인 게 아니라고?”

“그 현상이 모두 게이트 브레이크의 여파라니.”

“원래대로 돌리려면 공략해야 한다.”

분석관들은 10대 마경에 나타난 괴물들의 전력을 파악했다.

특히 미국은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시애틀을 상실했기에, 10대 마경을 분석하는 데 진심으로 임했다.

“맙소사. 최소가 다이아몬드 등급이라고?”

“핵 제거는커녕 접근조차 어려워.”

“지형 페널티는 어떻고? 괴물이 아니라도 문제다.”

“일시적인 것도 아니야.”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각국 랭커, 혹은 그에 준하는 플레이어로 팀을 이루어야 내부 탐색이 가능한 상황.

마경의 중심지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 파장 때문에 인공위성으로도 들여다볼 수 없었다.

“핵을 사용하는 건 어떨까?”

“안 된다. 마력이 섞이지 않은 병기의 위력이 떨어져.”

인류 최강의 병기.

핵미사일도 마경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마경의 중심부를 지키는 보스 몬스터들은 핵폭발로도 제거할 수 없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마경이 확산되지 않는다는 것.

각국에서는 10대 마경을 두고 대응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와앙-.

케이크 조각이 닉스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맛있구나, 맛있어!”

“태평하구먼. 전 세계가 난리인데도.”

“원래 신은 필멸자들의 삶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니라.”

“제우스는 인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홍수로 쓸어버리기도 했는데?”

“그 아이는 성숙하지가 않아서 문제였느니라.”

빠르게 제우스를 손절하는 닉스.

난 뒤통수를 긁었다.

그나저나 10대 마경이 나타난 시점이 회귀 전보다 빨라졌군.

1차 대침식도 원래의 역사보다 3개월 정도 앞당겨졌으니, 그에 따른 반작용이라고 봐야겠지.

쩝.

쓴웃음이 입가에 감돌았다.

“왜 그리 울상을 짓고 있느냐?”

“아니. 아무것도 아닌데.”

“후후훗, 다른 이는 몰라도 여는 아느니라.”

예리하긴.

회귀 전에도 10대 마경이 나타났을 때 피해가 심했다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조금 더 높았으니까.

몇 개월 차이라지만, 회귀 전보다 피해 규모가 조금 더 컸다.

내가 역사의 톱니바퀴를 빠르게 움직이면서 생긴 나비효과.

이 경우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지.

“그대에게 책임이 있는 게 아닌데, 어이하여 슬퍼하느냐?”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렇다면 근심을 내려놓아라.”

“알겠어.”

여신님한테 이길 수가 없구먼.

난 상념을 털어 내고는 케이크를 집었다.

이미 벌어진 상황.

10대 마경이 더 빨리 출현했다면, 이쪽도 그걸 이용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고 보니.

“퉁구스카였던가.”

“거긴 어디더냐?”

“이번에 10대 마경으로 변한 지역.”

10대 마경 중에서도 가장 흉악한 곳으로 유명한 곳.

거기라면.

“그걸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뜸들이지 말고 한번에 말하거라. 왜 그리 빙빙 돌리느냐?”

“공허와 관련된 정수.”

나는 회귀 전의 기억을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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