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우르칸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비행이 추가됩니다.]
[비행]
등급: ★★
분류: 액티브
마력으로 하늘을 천천히 날아다닌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비행 스킬.
이제야 손에 넣었네.
-묘하구나.
“왜?”
-그대는 이미 바람을 걸을 수 있지 않느냐.
“바람 타는 게 얼마나 조건을 많이 타는지 몰라서 그래.”
난 가볍게 핀잔했다.
바람길은 계곡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미풍, 혹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면 바람을 밟는 순간 땅으로 추락한다.
“비행은 언제든 사용이 가능하거든.”
-하면 바람길보다 더 효용성이 높겠구나.
“속도가 느려.”
비행 스킬의 이동속도는 평범한 사람이 걷는 것과 비슷했다.
급박한 전투 중에 사용하면 움직이는 과녁이 되겠지.
바람길과 비행 스킬.
둘은 사용처가 완전히 달랐다.
“가시거리 확보, 혹은 고도에서 마법 폭격. 이런 쪽에 쓸 수가 있어.”
-호오, 전략의 선택지가 늘었다는 말이로구나.
“이해가 빠르시군.”
-여가 그대를 따라다닌 것만 반년이니라. 그 정도쯤은 기본 아니겠느냐?
닉스가 턱을 추켜올렸다.
으, 영체로 저러니까 너무 귀엽네.
“마침 시험해 볼 것도 있고.”
[공허의 거울을 사용합니다.]
[거울이 사용자의 혼을 비춥니다.]
[우르칸의 흔적이 거울에 비칩니다.]
등에 날개가 달린 짐승.
우르칸의 정수를 내 몸에 투영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드드득! 드득!
견갑골이 팽창하면서 살갗을 찢고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쭉 늘어난 뼈.
근육과 살이 길게 늘어난 견갑골을 감싸고, 그 위로 하얀 깃털이 자라나면서 전체를 뒤덮었다.
-마치 이카로스의 날개 같구나.
“불길한 소리 하지 마. 그건 떨어지잖아.”
미궁에서 벗어나려고 밀랍으로 날개를 만든 이카로스.
햇볕에 닿은 밀랍이 녹아내리면서 추락했다는 일화를 여기에 갖다 붙이면 어떻게 해?
-오래전의 일을 잘도 아는구나.
매섭게 닉스를 째려보곤 날개를 천천히 움직여 봤다.
손가락이 하나 늘어난 것 같은 감각.
이미 꼬리를 다뤄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날개가 위아래로 퍼덕였다.
“오, 오오.”
날개에 힘을 더 주자 몸이 떠오른다.
비행 스킬과는 다른 감각.
회귀 전에도 허공을 박차거나 마력으로 밀어내는 등, 공중을 날아다닌 경험은 많다.
하지만 등 뒤에 날개를 단 경험은 처음이라고.
시험 삼아서 크게 홰를 치자, 묘한 해방감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날개에 실린 힘이 장난 아닌데?
두 날개를 움직이며 비행을 해보니 생각보다 쓸 만했다.
안정성은 비행 스킬에 버금갔고.
속도는 바람길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
우르칸의 정수는 강하지 않은 편이라서 1시간도 유지가 가능했다.
“틈틈이 연습해 봐야겠네.”
중력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는 유용하게 쓸 수 있겠어.
“여신님은 구릉으로 가 줘.”
-왜 그러느냐?
“공물 바치고 올 때쯤이면 저쪽도 부활할 거거든.”
-후후훗, 그대의 빈자리는 여가 확실히 채워 주마. 대신…….
“예. 케이크 하나.”
-콜.
실체화한 닉스는 극야로 몸을 감싼 후, 산자락을 가볍게 뛰어올랐다.
그럼 돌아가는 길에 비행 연습이나 좀 해 볼까?
* * *
태양의 부족은 달의 부족과 마찬가지로 정상 바로 아래에 위치했다.
번쩍! 번쩍!
공터에서 빛이 깜빡이더니, 사망했던 플레이어가 순차적으로 전장에 돌아왔다.
“미친. 실버 등급이 맞긴 한 거야?”
“이야기랑 다르잖아!”
“분석관들은 대체 뭘 한 건지.”
바르바토스의 철퇴에 이어 연달아 폭발한 솔라 익스플로전에 휘말려서 사망한 플레이어 집단.
한 명의 마법을 막지 못해서 50명 가까이 죽었다.
“승급전 자료 화면을 보면 근접 계열이 분명했는데 어째서?!”
“빌어먹을. 같은 실버 등급이 맞긴 한 건가?”
전투 한 번 만에 확 꺾여 버린 사기.
초전에서 진호가 보여 준 퍼포먼스는 연합 길드 플레이어들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그때.
“멍청이들아, 정신 차려라!”
한 사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박종원.
과거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진호한테 포션을 뜯겼던 화랑의 유망주다.
“자료에 따르면 유진호의 마법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질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툭툭- 손에 든 서류를 치는 박종원.
연합 길드원들의 눈동자가 그의 손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플랜 B, 그리고 C가 있는데 벌써부터 우는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나!”
“맞아. 우리는 20일 동안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어.”
“이렇게 지려고 시간을 보낸 게 아니야.”
“대응 방침은 있다.”
연합 길드원들의 눈가에서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한 발 앞으로 떼면서 전진하는 박종원.
“유진호의 전력이 분석한 것보다 위지만 훈련받은 대로 하면 이길 수 있다!”
와아아-!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한번 활활 타올랐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꺾어 주마, 유진호!’
박종원은 손을 말아 쥐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
튜토리얼에서 형편없이 패배한 후, 화랑에서 얼마나 굴욕을 당했는지 모른다.
이후 진호의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책임을 지는 건 피했지만.
촉망받는 신예에서 그저 그런 길드원으로 평가가 절하되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분노했다.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었는데, 암초 하나를 잘못 만나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화랑의 훈련에 참여했고, 탑 미션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냈다.
진호가 원체 대단한 일들을 해내서 상대적으로 묻혔을 뿐.
박종원도 비슷한 시기에 플레이어가 된 이들 중에서는 손에 꼽힐 정도로 활약했다.
세 길드의 실버 등급 플레이어들을 한데 묶어서 훈련할 때, 총책임자로 선정된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데도 유진호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
튜토리얼 때 겪은 굴욕적인 패배.
중급 포션 5개를 빼앗긴 건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였다.
하지만 진호를 쫓으려고 노력해도, 서로의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졌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라도 놈을 꺾는다!’
윗니로 입술을 지그시 누르는 박종원.
무참하게 짓밟힌 자존심을 회복할 방법은 이것뿐이다.
공물로 바쳐진 10명을 제외.
남은 91명으로 다시 작전을 개시했다.
“이동속도가 빠른 근접 격수 위주로 구릉을 기습한다.”
박종원은 새로운 작전을 지시했다.
진호의 화력이 예상을 훨씬 웃도는 상황.
분석관들은 이미 플랜 B와 C도 준비를 해 두었다.
플랜 B.
진호가 개별 활동을 할 때 남은 길드원들을 먼저 쓰러트리는 것.
“신경 쓸 건 유진호뿐. 제4진은 경계를 늦추지 마라.”
“알겠습니다.”
연합 길드원들은 소규모로 재편, 10명 단위로 움직이면서 넓게 퍼졌다.
그중 3개 조, 박종원을 포함한 30명은 구릉으로 다시 진입했다.
“유진호는 없습니다.”
“정보대로군.”
박종원은 왼손에 든 방패를 추켜세운 채로 전진했다.
그 순간.
투다다다!
마력을 응축시킨 푸른 마탄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철벽]
두 발을 땅에 고정하면서 방패를 올려 들자, 간발의 차이로 마탄 세례가 방패 위에 쏟아졌다.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박종원은 마탄이 쏘아지는 방향을 흘겨봤다.
기관단총을 닮은 마도 병기.
“이야, 그걸 막네.”
한 소년이 병기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누구냐, 넌.”
“나? 엔리케 델토로.”
“이름을 묻는 게 아니잖나.”
“아저씨는 적이잖아. 그거면 충분한 거 아니야?”
박종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코흘리개의 공격을 알아채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겁 없이 도발까지 했다.
저벅- 저벅-.
“스승님이 없을 때 노릴 줄 알았지.”
“우릴 얕본 대가를 알려 주마.”
두둑-.
핑 레이와 지영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후훗, 여가 모두 상대해 주마.”
닉스는 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김영수의 인형 병기들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투태세를 갖추었고.
카를라는 말 대신 낫을 겨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허.”
박종원의 입에서 한 줄기 웃음이 흘러나왔다.
“누님, 저 새끼 웃는데요?”
“내버려 두려무나.”
닉스는 손사래를 쳤다.
‘유진호도 이 자리에 없으면서, 고작 여섯으로 우리를 막아 보시겠다?’
박종원은 헛웃음을 내뱉은 후, 전의를 불태웠다.
진호 같은 규격 외 플레이어라면 모르겠지만.
동급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역천. 이번 기회에 밟아 주마.’
그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2, 3, 4팀. 포메이션 C.”
차징(C), 돌진 대형.
근접격수 위주로 재구성한 길드원들은 지면을 박차면서 최대 속력으로 돌진했다.
-역천 길드에는 제대로 된 원거리 마법 계열이 없다.
분석관들의 판단은 옳았다.
근접 계열 플레이어 30명이 일제히 달려드는데, 결계로 앞을 막는 것 말고는 반응이 없었다.
마탄을 총처럼 쏘는 병기가 신경 쓰였지만.
이 순간은 진호가 없다는 변수를 최대한 이용해야 할 때다.
그때.
“숫자가 답은 아니다, 멍청아!”
[분신]
핑 레이의 전신이 흐릿해지더니 열 사람으로 분리되었다.
본체의 30%에 해당하는 능력치를 지닌 분신.
손오공과 계약하고 난 뒤에는 고유 능력의 효과가 60%까지 늘어났다.
단순 수치로는 2배.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 유지할 수 있는 숫자도 늘어났기에, 핑 레이의 전투력은 구룡방 시절의 데이터와 비교가 불가능했다.
챙! 채앵!
구릉 여기저기에서 병장기가 부딪쳤다.
핑 레이의 분신들은 연합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진동 결계 x 5]
상대적으로 발이 느린 탱커가 진동 결계에 붙들렸다.
결계가 겹쳐지는 순간.
우우우웅-!
증폭된 진동이 탱커의 갑주 안으로 파고들면서 내부를 진탕시켰다.
“커, 커흑.”
반항 한번 못 하고 짓눌려 버린 탱커.
단단한 방어력도 지영이의 결계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공간 압축]
[액셀러레이트]
눈 깜짝할 사이에 거리를 좁힌 후, 낫을 휘두르는 카를라.
일격에 한 명씩.
연합 길드의 플레이어들이 반응조차 못 할 정도의 속도였다.
빠르게 무너지는 진형.
박종원의 눈동자가 분노로 뒤덮였다.
“여기서 또 질 수는 없다!”
[열렬한 돌격]
널찍한 타워 실드를 앞에 추켜세운 채 돌진하는 박종원.
“에이, 아저씨는 나랑 놀아 줘야지.”
엔리케가 그 앞을 막아섰다.
“꺼져라, 꼬마. 너 따위한테 쓸 시간은 없어!”
“날 보고 꼬마라고?”
“그래. 당장 비키지 않으면 너부터 쓰러트리겠다.”
키가 작아서 늘 불만인 엔리케.
박종원의 폭언(?)은 그의 콤플렉스를 자극했다.
“아저씨, 일단 한번 죽자.”
[메카닉 컨트롤]
[메카 구현]
지이잉!
엔리케의 옆에 생긴 마법진에서 강철로 된 팔이 튀어나오더니 박종원을 후려쳤다.
“컥!”
숨이 막히는 통증.
박종원은 주먹이 날아드는 것에 반응조차 못 하고 수십 미터 뒤로 날아가 버렸다.
“까불고 있어.”
히히덕거리는 엔리케.
그가 구현한 건 탑 30층에서 조종했던 병기, 워 골렘의 오른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