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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72화 (172/300)

172화

두근- 두근-.

엘렌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사용자의 감정이 크게 요동칩니다.]

[냉혈 스킬이 발동됩니다. 냉정한 마음이 유지됩니다.]

압도적인 살기.

엘렌은 내 부탁대로 ‘전력’을 다하는 중이다.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랭커가 실전처럼 살의를 품고 있으니.

그걸 정면으로 받아 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철렁거렸다.

[기간틱 펀치]

몇 배나 커진 손이 한 번 더 부풀어 올랐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주먹.

그 짧은 시간 동안 단탈리온의 환영을 꿰뚫다니.

하여간 대단하다.

-이건 위험해 보이는구나.

엘렌이 내 공격을 간파할 것을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다.

한 번쯤은 정면으로 부딪쳐 봐야,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으니.

축지로 피하는 선택지 대신 정면 승부를 골랐다.

주먹과 주먹이 충돌하는 순간.

강한 반탄력과 함께 굉음이 일어났다.

지근거리에서 대포를 발사한 것 같은 충격음.

한발 늦게 강렬한 통증이 오른팔 너머로 전해졌다.

-계약자여. 파, 팔이!

발출 때만 해도 주먹을 뒤덮었던 권기.

이제는 권기를 휘감았던 오른손까지도 큰 힘에 뭉개져서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팔꿈치의 뼈는 제 위치를 벗어나서 툭 튀어 나왔고.

충격을 모두 해소하지 못한 어깨가 덜렁거렸다.

엘렌 녀석. 진심으로 때렸군.

심장이나 머리를 맞았으면 재생이고 나발이고 즉사다.

하지만.

물러서는 대신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엘렌도 전혀 충격이 없진 않았다.

흔들리는 주먹.

눈에 띄는 상처를 내진 못했지만 권기가 스며들면서 근골을 흔들었다.

여기서 후퇴하면 더 이상 공격 기회가 없다.

나선 형태로 꼬아 놓은 극야.

암흑으로 만든 창 여러 개가 엘렌의 몸뚱이로 날아들었다.

당황한 기색 없이 왼팔로 극야의 창을 튕겨 내는 엘렌.

그래.

너라면 그렇게 행동할 줄 알았다.

축 늘어진 오른팔.

극야를 튕겨 낸다고 왼팔을 크게 휘두른 덕에 빈틈이 보였다.

[블레이징 소울을 사용합니다.]

화염을 온몸에 두른 채 엘렌의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최대치로 마나를 부여하고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 전에 불꽃과 일체화된 몸을 내던졌다.

엘렌의 품속에서 거세게 타오르는 화염.

순간적으로 마나를 확 들이부은 덕에 블레이징 소울의 위력이 상승했다.

“흐읍.”

뒷걸음질 치는 엘렌.

타격은 크지 않았지만, 기세를 물린 것으로 충분했다.

[포효를 사용합니다.]

[백 스텝을 사용합니다.]

[맹렬한 돌진을 사용합니다.]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한번 전진.

무너진 자세를 추스르던 엘렌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충돌하자마자 일어난 경련.

경직 효과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쭉 편 손가락.

내공을 일점으로 집중, 그대로 엘렌의 오른팔을 찔렀다.

푸욱!

광서지가 돌덩이보다 단단한 근육 사이로 파고든다.

딱 손가락 길이 정도.

힘을 더 주었지만 마나로 강화된 엘렌의 몸뚱이 안으로 더 들어가지 못했다.

백수제왕무로 이 정도라면…….

“남은 공격은 안 통한다고 봐야겠네.”

맹렬한 돌진의 효과로 걸어 놓은 경직이 풀리기 전에 물러났다.

변이, 그리고 재생.

두 스킬을 동시에 운용하면서 아작 난 오른팔을 회복시켰다.

“쓰읍.”

눈물 나게 아프다.

재생이야 그렇다 쳐도, 변이는 정상적인 회복 스킬이 아니다.

금단의 비술로 여러 생물을 섞어 만든 괴물.

키메라의 능력으로 뼈를 재조립하고 파손된 육체 복원 과정에서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힐 주문은 효율이 너무 떨어지고.

시간을 역행하듯, 튀어나온 뼈가 원위치로 들어간다.

짓눌렸던 피부가 쭉 늘어나고, 그 아래로 살이 돋아난다.

여기에 대지모신의 가호가 회복능력에 추가 보너스를 제공하면서 박살 났던 손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재생 능력. 보통이 아니군요.”

엘렌은 오른팔을 쥐었다 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푹 파인 구멍.

광서지로 낸 흔적이다.

피가 새어 나오진 않지만, 나처럼 회복이 되지 않았다.

엘렌의 능력인 [인크레더블]이라면 금세 복원할 수 있는 작은 상처이지만.

“왜. 뭐가 잘 안 됩니까?”

“기에 의념을 실어서 육체에 간섭하다니.”

“빨리도 알아채셨네요.”

“당신. 정말로 탑 1년 차가 맞기는 한 건가요?”

“기록을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무공 사용자들은 깨달음을 하나 얻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고 하던데…….”

플레이어 중 무공 관련 능력을 보유한 이들이 천대받는 이유.

기를 발현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과 노력, 그리고 깨달음이 필요해서다.

회귀한 덕에 그런 과정 없이 기를 발현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할 수는 없잖아.

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꿀꺽.

홍윤수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대단하구나.’

그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미국 최강의 랭커와 갓 실버에 오른 플레이어가 전력으로 붙는다?

진호가 엘렌에게 대결을 신청했다고 했을 때, 내심 말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신준석과의 대련을 지켜보면서 그의 재능을 알아보긴 했지만, 엘렌은 국내 랭커인 두 사람보다 더 강했다.

신준석을 상대할 때 보여 준 실력으로는 전력을 다한 엘렌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내 오판이었다.’

엘렌은 강했다.

직접 보니 다이아몬드 승급전 영상을 보면서 분석한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압도적인 힘.

그리고 속도.

공격 궤도는 단순하고 기교가 없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두 장점에 가려졌다.

엘렌의 전투 스타일은 섬세함 대신 직선적인 공격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방식이다.

하나 진호는 한 번도 틈을 주지 않고 대응했다.

콰아앙-!

엘렌의 주먹이 지면을 강타했다.

섬 주위에 쳐진 결계 덕에 지면이 부서지진 않았지만, 그 충격파는 진호가 선 곳으로 나아갔다.

흡사 해일이 몰아치는 것 같은 기파.

무형의 파장이 진호를 휩쓸기 직전, 발밑에서 솟구친 극야의 힘이 충격파를 해소했다.

“아이스 스피어.”

순식간에 재배열된 마나.

허공에 구현된 얼음 창이 엘렌에게로 쏘아진다.

엘렌이 날아드는 마법 공세를 무시하고 직진하자, 아이스 스피어의 궤도가 틀어졌다.

광서지가 만든 상처.

유형화된 기에 실린 염(念)이 창끝을 타고 엘렌의 상처를 찌른다.

회복을 방해하겠다는 듯 교전 초기에 만든 상처를 집요하게 노리는 진호.

충격이 누적되면서 조금씩 엘렌의 오른팔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치열하게 이어지는 공방.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진호는 금세 회복했다.

누군가에게는 치명상이겠지만.

그는 언제든 회복의 여지를 두고 미꾸라지처럼 치명상을 피해 갔다.

반면에 엘렌의 육신에는 상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크지 않은 상흔.

‘이 상황이 반복되면 또 모르지.’

무심코 생각하던 중, 홍윤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저 압도적인 강자가 진호에게 패배한다?

그런 상황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후배님 말이야. 정말 대단하지 않나?”

“네가 왜 길드장한테 빠졌는지 알 것 같아.”

허허, 신준석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진호 덕에 생긴 인연.

두 사람은 안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 빠르게 친해졌다.

그래서 홍윤수가 왜 놀라는지, 신준석은 그 속내를 알 것 같았다.

“난 엘렌 테일러를 정면으로 상대할 자신이 없군.”

“마찬가지야. 저 괴물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국내에서 정상급 플레이어로 불리는 두 사람조차 혀를 내두르는 수준.

진호는 그런 상대를 두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이어 갔다.

“우리가 나설 틈은 없을 것 같군.”

“껄껄, 난 처음부터 후배한테 맡겨 둘 생각이었다만.”

“이 사람. 속 편하기는.”

두 랭커는 잡담을 나누면서도 진호와 엘렌의 움직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편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는 당사자인 엘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기간틱 핸드 블레이드]

평소 육체 강화를 위해 근육에 녹여 놓은 오러를 외부로 방출.

쭉 편 손날 위를 푸른 마나로 감싸고는 크게 휘둘렀다.

콰콰콰콰!

그 기세만으로 대기가 진동하면서 커다란 바람이 불었다.

진호의 눈 위에 드리우는 강렬한 빛.

온갖 흐름을 읽어 내는 마안의 일종인 천안(千眼)이 발동되었다.

[백수제왕무 - 8초식]

[비익대붕장]

쭉 뻗은 진호의 손.

엘렌이 휘두른 손날과 부딪치더니 교묘하게 힘의 방향을 틀었다.

땅바닥을 긋는 엘렌의 손.

콰콰콰!

손날에 실린 오러와 결계가 충돌하면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내 공격을 어떻게 다 읽고 있는 거지?’

엘렌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유령를 쫓는 기분.

몇 달 전.

신준석이 진호에게 빈틈을 찔렸을 때 느낀 것처럼, 엘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저 마안 때문이라고? 아니야.’

진호의 눈에 아른거리는 묘한 기운.

그가 마안을 사용하는 것쯤은 진즉에 파악했다.

미국에서 정상의 자리에 올라서기까지 여러 상대를 마주했다.

그중에는 마안 사용자도 있었다.

하지만.

전투 내내 진호가 보여 준 움직임은 조금 달랐다.

그녀의 마음을 읽어 내는 것처럼 빈틈을 절묘하게 노리니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내 움직임도 둔해지고 있어.’

몸에 이물질을 끼워 넣는 것 같은 감각.

진호의 공격이 엘렌에게 큰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어느 순간에 뒤돌아보니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까끌거리거나 버벅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연이은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다 보니 충격이 꽤 누적되었다.

‘정말 놀랍구나. 미스터 유의 기량이 이 정도일 줄이야.’

엘렌은 진호가 탑 1년 차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당장 그녀와 합을 맞추며 탑을 올라가는 다이아몬드 등급 플레이어 팀원과 싸움을 붙여 봐도, 진호가 이길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사람. 길드로 섭외는 못 하더라도 아군으로 만들어야 해.’

엘렌은 골드 문의 길드 마스터, 윌리엄 록펠러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진호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리며 싸우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도 이기는 건 나야.’

누적되는 피해.

하지만.

진호는 상태가 훨씬 심각했다.

마력 보유량이 엄청났지만, 체력이 떨어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부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체력.

다른 변수가 없다면 엘렌의 승리로 끝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카를라를 남겨 두는 게 좋겠어.’

진호의 곁에 있으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또한, 골드 문의 동맹으로 두기에도 용이할 테고.

엘렌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진호를 연신 몰아붙였다.

* * *

제길.

뒈질 것처럼 아프다.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타는 것처럼 뜨겁고, 폐부는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여가 나서야겠구나.

“여신님은 나서지 마.”

이번 대련.

아니지, 대결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싸울 생각이었다.

내 기량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엘렌이 준 ‘부탁’까지 써먹었는데, 이런 찬스를 흘려보낼 수 없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랭커에 한 끗 못 미치는 수준.

하지만.

이대로 항복하기는 아쉽잖아?

나는 마지막까지 아껴 두었던 비장의 수를 꺼냈다.

[공허의 거울을 사용합니다.]

[거울이 사용자의 혼을 비춥니다.]

[사용자의 혼에서 여러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공허의 거울로 구현 가능한 정수 중, 가장 강력한 건 티라노사우루스다.

대신 손이 짧아져서 무공 대다수가 봉인된다는 페널티가 생긴다는 게 문제지.

무난하게 오크의 형태를 취해도 되지만 그 정도로는 엘렌을 이길 수 없다.

잠깐.

둘 이상의 정수를 비춰 보면 어떨까?

극한으로 몰아 붙여지자, 이전에는 하지 못한 생각이 떠올랐다.

시도해 볼 만하겠어.

[원시종의 흔적이 거울에 비칩니다.]

[오크의 흔적이 거울에 비칩니다.]

[혼에 기록된 형태로 변환됩니다.]

[사용자의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구현도입니다. 지속 시간이 3분으로 설정됩니다.]

잠깐.

이게 된다고……?

난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엘렌아.

마지막이니까 화려하게 불태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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