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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70화 (170/300)

170화

길드 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열린 게이트를 수배.

협회에 공략 선언을 하고 들어왔다.

난이도는 실버 이하.

들어서자마자 괴물들이 반겨 주었지만 극야의 힘으로 어렵지 않게 정리했다.

“영수 형님.”

“네. 길드장님.”

“지영이랑 핑 레이 데리고 주변 정리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영수 형님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질문하지 않았다.

갑자기 대련을 벌인답시고 게이트에 들어온 상황.

묻고 싶은 게 많을 텐데 아무 말 없이 넘어가 줘서 고마웠다.

50미터 간격을 두고 카를라와 마주 섰다.

“이번 대련은 실전처럼 할 거다.”

“실전요?”

“팔이나 다리가 날아가도 멈추지 않을 거다.”

트레이닝 센터에서는 실전 같은 대련을 할 수 없다.

그만한 충격량이 발생하면 내부의 결계가 막아 주기 때문.

“목숨을 노려도 된다는 것 같은데요.”

“맞아. 살기를 담아 공격해.”

나도 그렇게 할 거니까.

뒷말을 생략하고는 피오르의 축복과 뇌신을 번갈아 가며 펼쳤다.

내가 버프를 하나둘 걸자, 카를라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중심으로 일그러지는 풍경.

[공간 압축]

[액셀러레이트]

굳이 천안(千眼)을 쓰지 않아도 낫의 궤도가 훤히 읽힌다.

무수한 진동을 일으키는 낫.

공격 대상이 된 내 움직임을 제약하는 효과가 있기에, 회피는 불가능했다.

“늘 같은 패턴이군.”

알면서도 못 피하는 공격.

붉게 물든 왼손을 아래쪽으로 당겼다.

핏빛 도취,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는 스킬이다.

비틀리는 낫의 궤도.

거의 동시에 오른손으로 비익대붕장을 펼쳤다.

쩌어어엉!

공간을 압축시켜서 증폭시킨 힘이 손바닥에 실린 내공에 상쇄되었다.

유(流)의 묘리를 담은 장법으로도 흘려 낼 수 없는 공격.

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카를라의 간격 안으로 파고들자, 공간이 다시 일렁였다.

선제공격이 실패하니까 거리를 벌리시겠다?

“어딜 도망가.”

[어둠의 육체를 사용합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120에 해당하는 극야가 한꺼번에 구현되었다.

어둠으로 물드는 주변 공간.

반경 36미터가 내 영역으로 변했다.

“그 능력도 무적은 아니야.”

공간 사이에 얽혀 든 카를라의 마력 파동.

어둠의 육체로 극야와 동기화가 되니 선명하게 인지가 되었다.

스스스슷!

극야의 힘으로 공간에 개입한 마력을 차단.

흐릿해졌던 카를라의 육신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암흑 칼날에 내공을 불어넣으면서 휘두르는 순간.

서걱-.

암영추혼검 위에 아른거리는 검기가 낫을 붙든 카를라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

한발 늦게 솟구치는 붉은 핏방울.

카를라는 입술을 질근 깨물더니 바닥에 떨어진 낫을 발로 걷어찼다.

허공에 튀어 오른 무기.

왼손으로 낫을 잡으려는 순간.

바닥에 깔린 극야가 솟구치면서 카를라의 무기를 반대로 튕겨 냈다.

목덜미에 아른거리는 흑색 창.

나선 형태로 꼬아 놓은 극야가 한 치 앞에서 멈췄다.

“받아.”

욕망의 주머니에서 꺼낸 중급 포션을 카를라에게 던졌다.

치이이이-!

잘린 단면이 소독되면서 아물기 시작했다.

“힐.”

손바닥에 아른거리는 빛이 재생 중인 카를라의 오른팔에 깃들었다.

탑 15층에서 얻은 치유 스킬.

카를라가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뭐.”

“길드장님, 치유 주문도 사용할 줄 아시나요?”

“내가 좀 다재다능해.”

말끔히 재생된 상처.

카를라는 오른팔을 흔들어 보았다.

“문제는 없나?”

“예. 덕분에. 감사합니다.”

팔을 자른 상대한테 잘도 고맙다고 하네.

하여간 정상이 아니야.

“길드장님과 대련을 해 보니 부족한 부분을 깨달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감사한지 말씀…….”

“대련은 이제 시작이잖아.”

네가 좋아하는 대련.

이제부터 실컷 하게 될 거다.

조금 많이 아프겠지만.

한발 늦게 내 말을 이해한 카를라가 낫을 다시 쥐었다.

* * *

태애앵!

쥐고 있던 낫이 마주하는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반대로 튕겨 나간다.

손바닥의 감각은 연이은 충돌 때문에 사라진 지 오래.

입술을 질근 깨문 채, 카를라는 공간을 조작해서 튕겨 나간 낫을 회수했다.

‘너무 강하다.’

게이트에서 대련을 벌인 지 1시간.

카를라는 단 한 번도 진호에게 유효타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단순한 스펙 차이가 아니었다.

[공간 조작].

카를라의 능력은 둘의 스펙 차를 엎어 버릴 만큼 강력했다.

‘내 생각을 모두 읽어 내고 있어.’

어느 곳을 노리는지.

공격에 실린 힘이 어느 정도인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격하고 역으로 몰아쳤다.

독심술 스킬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카를라는 이를 악물었다.

늪에 빠진 기분.

허우적댈수록 진호한테 더 빠져드는 것 같다.

서걱!

“윽.”

어깨 위로 기다란 고랑이 파였다.

미국에서 유명한 장인한테 주문해서 만든 갑주조차, 진호의 손톱 앞에서는 무력했다.

격통에 순간적으로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지만.

카를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낫을 휘둘렀다.

낫 끄트머리에 걸린 진호의 팔뚝.

고통을 감내하면서 휘두른 보람이 있었…….

[메탈 반사 갑주]

[암흑 투기]

지는 않았다.

카를라는 낫에 [공간 조작]의 힘을 더 부여했다.

어떤 방어막도 뚫어 버리는 관통 능력.

능력이 발동되기 직전.

진호가 한 발자국 더 전진하면서 낫의 간격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왔다.

[공간 조작]

둘 사이의 공간을 팽창.

진호를 밀어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물질이 껴 있어?’

극야.

닉스한테 부여받은 밤의 힘이 카를라의 공간 조작을 훼방했다.

미국의 탑 랭커인 엘렌도 그녀의 고유 능력에는 간섭하지 못했는데.

다시 한번 공간을 조작하려는 때.

[백수제왕무 - 7초식]

[현무제암고]

“꺄악!”

도로를 질주 중인 트럭과 충돌하면 이런 느낌일까.

카를라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널브러졌다.

온몸이 아프다.

포션으로 상처를 치유했다지만,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팔과 다리가 삐걱거리고.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은 진정될 것 같지 않다.

무엇보다 아픈 건.

짓밟혀 버린 카를라의 자존심이었다.

“괜찮나?”

“하악, 학.”

낫에 몸을 의지하면서 억지로 일어났다.

지면에 흩뿌려진 붉은 피.

모두 카를라의 상흔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안 끝났어요.”

카를라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몸에 누적된 고통 때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도.

팔다리가 후들거려도.

절대 멈춰 서지 않았다.

“더 움직이면 위험할 거다. 포션이라고 만능은 아니거든.”

“나는 멈출 수 없어요.”

“왜지?”

“그러면 내 가치가 없어지니까.”

-미안해, 아가.

-넌 쓸데가 없구나.

-기분 나빠.

-왜 아무 표정도 없어?

낳아 준 부모한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도 기분 나쁜 아이 취급을 받았다.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이 절제당한 것처럼 어떤 일에서도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지 못했고.

타인과 제대로 교류하지 못하면서 보육원에서 살던 중, 탑의 초대를 받았다.

-공간 조작? 이렇게 희귀한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라니!

-이 아이, 저희한테 맡겨 주시죠.

골드 문.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길드에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너는 최고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어. 나만 믿어.

탑 플레이어인 엘렌이 자신 있게 말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최고가 되어야 하는구나.

“그러니 멈출 수는 없어요.”

누군가에게 버림받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한다.

핑 레이나 엔리케, 그리고 지영이보다도 앞서지 않으면…….

풀썩.

카를라는 그 생각을 끝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 * *

낫에 몸을 의지하다가 쓰러진 카를라.

“큰일이로구나!”

“걱정 마. 탈진한 것뿐이야.”

흥분하는 닉스를 진정시키고는 카를라에게 다가갔다.

여태까지 기절 안 한 게 용했지.

팔이나 다리가 몇 번이나 잘려 나갔다.

포션으로 치유를 해 줘도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출혈도 무시할 수 없었고.

[힐을 사용합니다.]

카를라의 원기를 북돋아 준 후 게이트를 마저 클리어, 현실로 돌아왔다.

길드 하우스로 돌아가는 길.

다들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이는 눈빛이지만, 입술을 떼지 않았다.

“으음.”

신음을 흘리는 카를라.

대련 중에 생긴 부상은 모두 포션으로 치유를 해 놨기에, 외관상으로는 멀쩡했다.

찢어진 갑주와 곳곳에 묻은 피를 빼곤 말이지.

-혹독하게 손을 썼구나.

닉스가 힐난조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잖아.

카를라가 품고 있는 마음의 어둠이라는 게 뭔지 알아내려면 이 방법뿐이었다.

타인의 인정이라.

삶의 가치를 그런 식으로 규정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다.

결자해지라고.

문제를 만든 사람이 해결하게 만들어야지.

“부축 좀 맡길게.”

“알겠어요, 스승님.”

지영이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의문과 신뢰.

서로 대조를 이루는 감정이 느껴진다.

건물에 도착했을 때, 엘렌이 로비에 있었다.

탑 공략을 마치고 돌아온 모양.

마침 잘됐어.

엘렌은 나를 보자마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미스터 유, 이건 대체…….”

안색이 하얗게 질린 카를라.

너덜너덜해진 방어구와 곳곳에 묻은 피,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나랑 카를라를 번갈아보던 엘렌이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우리는 길드 하우스 옥상으로 향했다.

꽤 따뜻해진 봄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둘 사이에는 냉랭한 공기가 감돌았다.

“미스터 유의 솜씨더군요.”

“용케 알아보셨네요.”

“파괴된 갑주에서 무공의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눈썰미 하나는 좋군.

역시 미국 랭킹 1위라는 호칭은 그냥 딴 게 아니야.

“그리고 카를라에게 저만한 상처를 입힐 만한 게이트는 없어요.”

“틀린 말은 아니네요.”

“합당한 이유가 아니라면 조금 화가 날 것 같네요.”

엘렌은 싱긋 웃었다.

와, 이 녀석 진짜 화났네.

분노가 한계에 달했을 때 나오는 싱그러운 웃음.

회귀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카를라가 왜 우리 길드에 들겠다고 했는지 알아보려고 그랬습니다.”

“그래요?”

엘렌의 눈가에 아른거리는 노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난 대련 말미에 들은 카를라의 사연을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엘렌의 표정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강해지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그렇게 생각한 듯합니다.”

“내가 그때 한 말 때문에…….”

“지금이라도 알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꼬인 매듭은 풀면 그만이다.

회귀 전의 엘렌은 카를라의 가치관이 비틀린 것을 알지 못했고, 결국 틀어졌다.

이제는 다르다.

둘 사이에 자리 잡은 불협화음을 알려 주었으니,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겠어?

“카를라한테 다녀올게요.”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엘렌.

다음 날.

그녀는 눈 아래가 붉어진 채로 나를 찾아왔다.

“큰 빚을 졌네요, 미스터 유.”

“이야기는 잘했습니까?”

“그럼요. 덕분에 카를라의 마음을 잘 알게 되었어요.”

“다행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회귀 전의 빚은 갚은 거다, 엘렌.

“카를라는 역천 길드에 남아 있는답니까?”

“당분간은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으니까요.”

대화 한 번으로 카를라의 가치관을 바꿀 수는 없을 거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마음을 터놔야겠지.

“개인적으로 미스터 유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요.”

“은혜요?”

“네. 그러니까 앞으로…….”

이어지는 엘렌의 말.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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