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토마스 밀러는 미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플레이어 분석관이다.
고유 능력 [분석].
시야에 들어온 상대를 기량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여러 길드의 인재들을 분석 및 훈련 커리큘럼을 짰다.
플레이어의 고유 능력과 스텟, 그리고 성향에 맞춘 훈련.
바벨탑을 오르는 것보다 뛰어난 인재 발굴 및 성장시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토마스는 프리랜서 분석관 중에서 가장 유명했다.
최근 들어선 플레이어 관계자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인지도가 올라갔다.
승급전 해설.
1차 대침식 이후 탑 미션을 실시간으로 중계할 수 있게 되면서 나타난 신종 직업이다.
“이번 중계는 저번 달과 마찬가지로 한국입니다.”
“왜 한국입니까? 토마스 해설위원.”
“제가 하고 싶어서인데요?”
“허허허, 너무 편파적인 것 아닙니까.”
옆에 있는 해설이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호흡을 맞추었다.
잠깐의 침묵.
토마스는 일부러 뜸을 들인 후, 재차 입을 떼었따.
“실은 골드 문에서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역천 길드의 승급전을 중계해 달라고요.”
“역천은 어디입니까?”
“아, 그 향신료 제도의 영웅 기억하시죠?”
“알다마다요. 저번 승급전도 중계하지 않았습니까. 파란이었죠.”
두 해설자 위에 비치는 자료 화면.
진호가 워 골렘을 부순 장면이 편집되어 나왔다.
“다시 봐도 장관입니다만. 길드의 승급전 중계와 관계가 있나요?”
“아, 저게 미스터 유의 길드라고 하더군요.”
“Oh my god.”
탄성을 내뱉는 해설위원.
토마스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마침 승급전이 시작되었군요.”
“상대는 프랑스. 둘 다 플레이어 강국 아닙니까?”
“예. 르네 데이비스의 나라입니다. 우리나라의 탑 랭커, 엘렌 테일러와 어깨를 견주고 있죠.”
한국과 프랑스의 대결.
승급전을 지켜보던 토마스의 눈가가 씰룩였다.
“이건…….”
“아, 무슨 일인가요! 한국 팀, 움직임이 없어요!”
동료 해설위원이 탄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빠르게 거점을 차지하는 프랑스 팀.
반면 한국 팀은 본진 주위의 거점만 차지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토마스 해설위원.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한국 팀, 실력에 자신이 있나 봅니다.”
“자신요?”
“워 골렘 제작을 노리고 있군요. 포인트 집계가 끝나면 바로 움직일 겁니다.”
1시간 후.
점령 포인트가 오르는 순간 한국 팀이 행동을 개시했다.
앞서 나가는 역천 길드원들.
핑 레이를 필두로 다섯 명이 속도를 맞춰서 공장 지대로 직진했다.
“토마스 해설위원님의 말씀대로군요!”
“거점 점령전 초기에 꽤 나왔던 전략입니다.”
“일부러 더블 스코어를 주고 공장 지대를 공략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인 것 같군요.”
“아뇨. 저 전략의 단점은 비슷한 전력이면 이길 수 없습니다.”
토마스는 고개를 저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수비 측이 유리한 공장 지대.
프랑스 플레이어들은 이미 공장지대를 점령, 방어에 전념하는 중이다.
워 골렘 생산은 불가능해도 점령 포인트는 얻을 수 있다.
또한 중심부에 있어서 어느 쪽으로 공격이 들어와도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했다.
“그러면 프랑스 측이 유리하겠군요.”
“한번 지켜봐야죠.”
직진하던 역천 길드원들이 프랑스 측 플레이어 무리와 마주쳤다.
그 순간.
핑 레이가 봉을 땅에 찍자 맨땅에서 파도가 솟구쳤다.
[수둔 - 파랑(波浪)의 술]
선법으로 만들어 낸 파도.
프랑스 측 플레이어들은 방어 마법으로 파도를 막아 내려 했지만, 진형 일부가 무너졌다.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카를라.
[공간 조작]
[사신의 윤무]
그녀가 쥔 낫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낫의 궤적을 따라오는 핏방울.
[공간 조작]으로 방어력 일부를 무효화, 탱커들조차도 일격에 쓰러트렸다.
“당황하지 마라. 반격 개시!”
핑 레이와 카를라의 난입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프랑스 측 플레이어들은 반격에 나섰다.
한국 팀의 노림수를 읽고 공장지대에 전력 중 반 이상을 배치한 상황.
60명에 달하는 플레이어 무리가 공격 스킬들을 사용했다.
“너무 무모해 보이는데요!”
“아니요. 반대입니다.”
토마스는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채, 중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국 팀.
정확히는 역천 길드의 전략에 혀를 찼던 것조차 잊어버렸다.
[분석].
토마스의 고유 능력이 역천 팀의 능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브론즈 등급에서 저만한 스펙이 가능하다고?’
스킬이면 스킬.
장비면 장비.
능력치도 출중했다.
여러 영약을 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스펙.
정확히는 영약을 섭취해서 끝이 아니라 그 기운을 제대로 흡수해야 가능한 압도적인 능력치다.
[메카닉 컨트롤]
[마력 방출]
엔리케는 공중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화력을 퍼부었고.
“거긴 못 가.”
지영은 결계를 다중으로 전개.
프랑스 측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전투 중 크게 부각되지 않는 건 김영수의 인형 병기뿐.
“전군 지휘. 돌격 진형.”
[부대원들의 스킬 계수에 20%가 추가됩니다.]
그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전세를 읽으면서 수시로 진형 버프를 전환.
공·방의 흐름을 조절했다.
“Unbelievable.”
토마스가 경악 섞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역천 길드. 정말 대단하군요.”
“대단하다는 말로 부족합니다. 이건 완벽한 팀플레이입니다!”
“토마스 해설위원이 놀랄 정도인가요?”
“이렇게나 완벽한 호흡은 엘렌 테일러 같은 초일류 플레이어의 팀이나 가능할 겁니다.”
“엘렌 테일러와 비견될 만한 플레이어가 저들이다, 그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단언컨대 저 플레이어들은 머지않은 시일 내에 유명해질 겁니다.”
토마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섯 명한테 괴멸적인 피해를 입은 프랑스 측.
공장을 지키던 60명 중, 전장에서 이탈한 건 다섯에 불과했다.
“한국 팀, 공장을 가동시킬 것 같죠?”
“그러겠죠. 정말 압도적인 기량 차이입니다. 프랑스 측이 불쌍하다고 느껴질 정도예요.”
“마침 CP를 투입했습니다. 공장에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데요!”
압도적인 기량 차이.
한국 팀은 큰 방해를 받지 않고 워 골렘까지 생산했다.
“아, 승부가 완전히 기울었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군요. 수준 차이가 이만큼 나는데 왜 CP까지 소모하면서 워 골렘을 만든 걸까요?”
“일리 있는 지적입니다. 짐작 가시는 게 있습니까?”
“있으면 제가 이야기를 했겠죠.”
토마스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 한 소년이 워 골렘에 탑승했습니다!”
[메카닉 컨트롤]
[동화]
워 골렘의 전신을 뒤덮는 푸른 선.
메카닉 사용자가 워 골렘을 컨트롤하는 순간, 마력 회로가 개선되면서 골렘의 성능을 강화시켰다.
「나, 이 병기에 타니까 새로운 영감이 떠올라.」
철컥- 철컥-.
워 골렘의 내부에서 금속음이 울린다.
재조립되는 병기.
엔리케는 무의식적으로 마력 회로를 개조하고 몇몇 구조를 바꾸었다.
갑주처럼 등 뒤에 생긴 부스터.
마력 핵의 출력도 50%가 상승했다.
고오오오! 등 뒤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마력이 워 골렘을 땅에서 밀어낸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토마스 해설위원!”
“저도 모르지만 엄청나군요!”
토마스는 역천 길드를 보면서 열광했다.
여태 익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선법을 다루지를 않나.
워 골렘을 마개조하는 플레이어도 튀어나왔다.
‘저런 플레이어들이 모여 있는 길드라니!’
플레이어 육성에 진심인 남자.
토마스 밀러의 마음속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 * *
완벽한 승리를 거둔 한국 진형.
길드원들은 상기된 표정을 드러내며 현실로 돌아왔다.
“다들 고생했어.”
“스승님, 하실 말씀은 그것뿐이에요?”
“기념 파티라도 하자는 건 아니겠지.”
“파티를 하실 거면 미리 준비해 두셨어야죠!”
지영이가 혀를 찼다.
얘한테 센스를 지적당하다니.
왠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로 파티가 필요한 건 아니지?”
“와, 이렇게 말했는데도 선 긋는 건 너무하시네.”
“……좋아. 내일 파티 한번 하자.”
“야호!”
지영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누굴 위한 파티인지 모르겠구먼.
“참, 엔리케야. 워 골렘의 구조가 바뀌던데, 어떻게 한 거냐?”
모르는 척 질문을 던졌다.
회귀 전에는 워 골렘의 발전형인 타이탄도 원격으로 여러 대 조종하던 놈이다.
워 골렘을 타면 변화가 생길 줄 알았지.
“길드장님! 완전 대박이었어요!”
“뭐가?”
“막 골렘의 회로가 선명하게 읽히고 불필요한 구조가 딱딱 보이는 거 있죠?”
엔리케는 흥분한 기색으로 이야기했다.
마력 회로가 어쩌네.
마력 핵 에너지 운용 방법이 어쩌네.
어떻게 해야 메카닉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겠네.
처음에는 그럭저럭 알아들을 만했지만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전문적인 분야로 파고들었다.
“음, 피곤해 보이는데 나중에 이야기할까?”
“아니에요! 아차, 지금 생각난 영감을 정리하러 가야지!”
자리를 벗어나는 엔리케.
넘쳐나는 의욕을 다른 곳에 발산하니 다행이야.
“그대도 난감할 때가 있구나.”
“티 났어?”
“후훗, 여는 그대의 목소리만 들어도 다 아느니라.”
싱그러운 미소가 닉스의 입가를 물들였다.
“길드장님.”
감정이 절제된 목소리.
카를라가 가까이 다가왔다.
“너도 애썼다.”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
“파티 같은 건 아니지?”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저랑 대련해 주세요.”
응?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지영이가 둘 사이로 파고들었다.
“카를라야, 오늘은 좀 쉬어.”
“이게 더 중요한 문제야.”
“그래도 그렇지.”
지영이가 더 말을 꺼내려 하자, 손을 휘휘 저었다.
“스승님?”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잖아. 내버려 둬.”
갑작스러운 대련 신청.
여태 주먹을 맞댄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승급전에서 뭔가를 느꼈나?”
카를라는 대꾸하는 대신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눈동자 너머로 아른거리는 감정.
강한 호승심, 그리고 조바심이 비쳐졌다.
-또 저 눈빛이로구나.
뇌리에 직접 꽂히는 닉스의 음성.
생각하는 척하며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 아이는 위험하니라. 혼이 불안정하여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구나.
슬쩍 닉스를 바라봤다.
카를라가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걸 해결해 줄 순 없잖아.
-저 아이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마음에 품은 어둠을 드러낼 것이니라.
하아, 귀찮게 되었군.
엘렌 녀석이 한탄하던 모습을 안 봤으면 모를까.
녀석한테 은혜를 진 것도 있으니, 이번 한번은 여신님 말대로 해볼까.
“좋아. 상대해 주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대련을 할 거다.”
“네?”
“게이트 안에서. 목숨을 걸고.”
새살이 될지.
아니면 고름이 되어서 도려내야 할지.
이번 기회에 판단해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