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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68화 (168/300)

168화

낯익은 천장이다.

두 눈을 감았다가 떠도 변하지 않는 풍경.

길드 하우스로 돌아왔다.

“아으으.”

손발을 쭉 뻗었다.

탑 지하에서 눈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

“후후훗, 나약한 소리를 하는 게냐?”

“여신님이야 실체화와 영체를 왔다 갔다 했잖아.”

투덜대면서 침대의 푹신함에 몸을 맡겼다.

전신에 남아 있는 피로감.

일반인이라면 1분도 못 버틸 환경에서 괴물들을 사냥했다.

종말의 마검, 미스틸테인의 정신 지배에 저항하기도 했고.

회귀 후,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을 캔다고 곡괭이질을 한 뒤로 이렇게까지 피곤한 적은 없었다.

멸망의 시대 때는 일상이었는데.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니, 닉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그대를 지켜보았노라.”

“내가 좀 잘생기기는 했지.”

“여가 나름 이 세계에 적응하지 않았더냐.”

“적응이야 했는데. 그게 왜?”

“이 세계의 미적 감각에 따르면 그대가 잘생겼다는 표현이 틀린 것 같구나.”

와, 씨.

묵직한 팩트에 할 말을 잃었다.

“남의 면전에 대놓고 욕하는 건 좀 그렇잖아?”

“어머나. 혹, 여가 그대를 모욕한 것이라면 사과하겠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열 받네.

손을 휘휘 저었다.

말할수록 내가 멍청해지는 기분이야.

“됐고. 포식이나 하자.”

“아직도 집어삼킬 정수가 더 있더냐?”

“거인 녀석이 줬잖아.”

욕망의 주머니에 보관 중인 미스틸테인을 꺼냈다.

칼날 주위에 아른거리는 검은 기류.

미스틸테인의 흉험한 기운이 방바닥에 서서히 깔렸다.

“그 흉한 것을 어찌하려고?”

“먹어야지.”

포식의 대상은 ‘정수’를 가졌는지 유무다.

지리산에서 발견한 아기장수의 이야기.

원시종의 정수.

생물이 아니지만 그 안에는 ‘정수’가 깃들어 있기에 얼마든지 포식할 수 있었다.

미스틸테인도 마찬가지.

특정 성좌의 성유물은 아니지만.

종말의 대검이라는 별칭에 알맞게 정수를 담고 있다.

“운이 좋군.”

미스틸테인의 정수는 이미 포식한 경험이 있다.

회귀 전.

조승철을 쓰러트린 후, 녀석을 홀렸던 마검의 정수를 먹어 치웠거든.

미스틸테인의 칼자루를 쥐고는 포식을 사용했다.

[미스틸테인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파르르르.

칼을 쥔 손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린다.

-분노해라.

-죽여.

-피를 바쳐라.

미스틸테인에 스며든 분노.

빛의 신 발두르의 피를 머금으면서 완성된 마검이 머릿속으로 직접 말을 걸었다.

미스틸테인의 악의마저 포식하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끄으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억누른다.

우트가르트 로키가 지켜볼 때야, 분노에 취한 척 연기를 해서 미스틸테인의 수작질을 제대로 누르지 못했지만.

눈치 볼 사람이 없는 지금은 달랐다.

[포식한 정수: 1.3 → 2.1 → 2.8 → 3.3]

[······.]

빠르게 소모되는 미스틸테인의 내구도.

칼끝에서 가루가 흘러나온다.

신화 등급 아티팩트, 그것도 성유물에 버금가는 검이 모래로 변하고 있다.

황금을 똥으로 만드는 능력.

과거 포식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했던 말이 왜 떠오르는 걸까.

아니다.

미스틸테인의 광증은 정신력으로 이길 수 없다.

우트가르트 로키가 몰래 새겨 넣은 추종의 룬도 그렇고.

후환 없이.

그리고 고신족들과 싸울 준비를 하려면 포식이 정답이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전설]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신력 + 12]

[스킬 - 디어사이드가 추가됩니다.]

[디어사이드]

등급: ★★★★★

분류: 패시브

성좌, 혹은 별빛을 지녔던 존재와 적대할 경우 모든 능력치가 200% 증가한다.

서로의 격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공격이 100% 적용된다.

디어사이드, 일명 신 죽이기.

대(對)고신족 용 패시브 스킬이다.

성좌, 혹은 성좌였던 이들을 상대할 때 능력치가 3배로 늘어나는 효과.

거기에 더 높은 격을 지닌 상대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이제 시작점에 섰네.”

“그대는 정말로 해낼 셈이로구나.”

“여신님과 계약도 했잖아.”

닉스의 목표를 이루려면 고신족들과의 충돌이 필연적이다.

힘의 근원인 ‘밤’을 바벨탑에 묶어 둔 게 그들이니.

“무리하지는 말거라.”

“뭘, 무리까지야.”

나는 가볍게 웃었다.

『화과산의 미후왕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화과산의 미후왕은 무효화된 천리안에 당황합니다.』

『화과산의 미후왕이…….』

“아, 겁나게 시끄럽네.”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성좌들조차 내다볼 수 없는 탑 지하.

기껏 천리안 계약까지 했는데도 아무것도 못 보자, 손오공이 꽤 화가 난 듯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설명할 테니까 조금만 있어 봐.”

손오공아.

내가 이제부터 개쩌는 이야기를 들려주마.

* * *

[성역 - 발할라]

탑 100층, 만신전에 세워진 애시르 신족의 거처다.

광대 가면을 쓴 사내.

로키는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이상하군.’

새끼손가락 끝에 매여 있는 실.

어딘가로 이어지던 실이 중간에 툭 끊어져 있었다.

로키가 손가락을 연신 까딱여 봤지만, 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가 끊은 것도 아닌데.’

얼마 전.

로키는 그와 동명이인의 낙성좌, 우트가르트 로키에게 미스틸테인을 전해 줬다.

빛의 신 발두르를 해하려고 만든 종말의 마검.

애시르 신족들의 눈을 피해서 힘들게 벼려 냈지만, 발두르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그쳤다.

신왕 오딘은 과한 장난질의 대가로 로키에게 근신을 명했다.

미스틸테인도 처분해야 했고.

하지만.

로키는 공들여 만든 장난감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버리기는 아깝잖아?’

탑의 규칙을 우회.

우트가르트 로키에게 미스틸테인을 전해 주면서 한 가지 장난을 쳐 놨다.

검의 주인을 관찰하는 마법.

손가락에 묶인 실은 로키와 미스틸테인을 연결해 주는 의식 도구였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마도구.

누가 잘라 낸 게 아니라면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미스틸테인이 소멸했다고?”

로키는 결론을 내리고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발두르는 신왕 오딘의 적법한 후계자.

올림포스의 망나니인 아레스와 달리 두터운 인망과 강력한 권능, 그리고 찬란한 별빛을 지닌 성좌이기도 했다.

그런 성좌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힌 데다 피까지 흡수한 마검.

로키의 입가가 씰룩였다.

“재밌겠어.”

새끼손가락에 남은 마법의 실.

이걸 조사하다 보면 미스틸테인이 왜 파괴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변수.

트릭스터 로키는 예상외의 상황을 아주 좋아했다.

그에게 불리하든, 유리하든.

“벌써 흥미로운 일이 생겼잖아?”

로키는 히죽거리면서 끊어진 실을 거두었다.

* * *

일주일 만에 돌아온 길드 하우스.

나는 승급전을 준비 중인 길드원들을 소집했다.

“스승니이이이임!”

“멈춰.”

손바닥을 펼쳐서 지영이가 다가오는 것을 막았다.

통곡의 벽 시절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보니 가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스승님이 안 계시는 동안 엄청 힘들었다고요.”

“무슨 일이 있었나?”

“게이트를 얼마나 들락날락했는데요!”

“별일 없었네.”

승급전을 치르려면 등급 한계 레벨인 150을 달성해야 한다.

나랑 같은 시기에 브론즈로 승급했으니, 두 달 동안 레벨을 한계까지 올려야 했다.

평범하게 탑 미션만 치러서는 달성 불가능한 수치.

길드원들은 한 달 전의 내가 그랬듯이 게이트를 무수히 공략했다고 한다.

“봐 봐요. 우리 엔리케는 이렇게 눈이 퀭해졌잖아요.”

“난 어린애가 아니다. 마음대로 우리라고 부르지 마라.”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 귀염성 있는 아이가 이렇게 삭막하게 변했을까.”

“놔라!”

엔리케를 보듬는 지영이.

그러지 마라.

쟤 눈빛 봐, 진짜로 싫어하잖아.

닉스를 봤을 땐 누님이라고 하더니, 지영이한테는 서슴없이 반말을 내뱉었다.

쯧.

“장비를 다루는 건 익숙해졌나?”

“길드장님 덕분에. 조금 나아졌어요.”

엔리케는 존댓말을 꼬박꼬박 붙였다.

핑 레이 녀석보다는 학습 능력이 뛰어나네.

“너는 잘 배우고 있냐?”

“길드장님.”

말문이 막힌 핑 레이.

얘는 또 왜 이래.

빨갛게 충혈된 눈, 며칠이나 안 깎은 것처럼 제멋대로 자란 수염.

핑 레이는 초췌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렵습니다.”

“뭐가.”

“성좌의 가르침이요.”

손오공이 선법이나 무공을 알려 주면서 엄청나게 갈군 모양이다.

“다 뼈가 되고 살이 될 거다. 힘내라.”

“으으으.”

신음을 흘리는 핑 레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성좌와 연결해 주는 거지, 성좌가 가르침을 사사하는 것까진 간섭할 수 없다.

“대련이나 하든지. 그럼 이해가 빠를 거야.”

“저를 죽이실 셈입니까?”

“사람은 쉽게 안 죽어. 그걸 알려 줄게.”

핑 레이가 뒷걸음쳤다.

배운 걸 체화하는 건 실전이나 그에 준하는 대련이 정답인데.

여유가 되면 핑 레이의 수련을 제대로 봐줘야겠어.

“길드장님, 대련은 언제?”

“아, 카를라. 그건 조금 이따가 하자.”

카를라는 별반 차이가 없었고.

“엔리케 덕분에 인형 병기의 전투 능력이 상승했습니다.”

영수 형님은 어쩐지 신이 나 보였다.

자리를 비우고 있는 동안에도 다들 꽤 노력했구나.

내 길드원이라면 이래야지.

“엘렌 상무는?”

“바벨탑에 접속하셨어요.”

“아직 미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나 보네.”

카를라에 대한 미련.

엘렌의 성격상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회귀 전의 기억대로라면 그녀가 달라붙어 있어도 카를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문제지.

“승급전까지 얼마나 남았지?”

“1주일요.”

“좋아. 남은 기간은 나도 함께한다.”

35층에서 세 길드와 정면으로 붙으려면 길드원들을 조금이라도 더 단련시켜야 한다.

승급전까지 남은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게이트 공략.

그리고 훈련.

“으아아아!”

핑 레이가 분신을 여럿 만들어서 달려들었지만.

내가 손을 휘두르자 모조리 터져 나갔다.

“이거나 먹으세요!”

[메카닉 컨트롤]

[마력 방출]

[마력 응집]

엔리케의 갑주 등 뒤에서 푸른 마력이 분출되었다.

분신이 터지는 동안 내 등 뒤를 순식간에 점하더니 양손을 펼쳤다.

손바닥에 응집된 마력이 일거에 방출.

푸른 구체가 날아들었지만 극야의 힘으로 해소했다.

“그 정도로는 느려. 아직 갑주의 위력을 다 못 끌어내고 있다.”

콰앙!

가볍게 쳤는데도 엔리케의 몸뚱이가 수 미터 뒤로 튕겨 났다.

일대일.

혹은 일 대 다수.

난 대련에서 길드원들의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내도록 몰아붙였다.

하나같이 출중한 재능을 지닌 이들.

길드원들은 훈련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를 몇 번이고 뛰어넘었다.

승급전 당일.

독한 눈빛을 띤 길드원들을 가볍게 둘러보았다.

“참, 부탁할 게 하나 있다.”

“길드장님, 뭡니까?”

“승급전 초기부터 밀지 말고 적당히 밀려 줘.”

“밀려 달라니. 그게 무슨…….”

핑 레이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더블스코어 정도까지.”

“워 골렘을 만들란 말씀이군요.”

“CP는 내가 줄 테니까. 그리고 엔리케를 태워.”

메카닉 능력자.

엔리케가 워 골렘에 탑승하면 이전보다 훨씬 마도 공학의 이해도가 올라갈 것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스승님, 우리만 참여하는 건 아니잖아요.”

“양해를 구해 봐야지.”

말이 안 되면 실력으로라도.

난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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