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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67화 (167/300)

167화

잠깐만.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두 눈을 연신 깜빡여 봤지만 검의 생김새가 바뀌진 않았다.

흉흉한 기운을 휘감은 기다란 목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미스틸테인과 동일한 형태다.

“평범한 검이 아니군.”

『보는 눈이 있구나, 필멸자.』

“검 자랑을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테고.”

『흐하하, 역시 재미있는 놈이야. 직접 온 보람이 있어.』

우트가르트 로키의 손가락에서 떨어진 칼.

칼날이 얼마나 예리하던지 낙하하는 힘만으로 땅에 푹 박혔다.

『선물이다.』

“갑자기?”

『필멸자가 탑 지하에 나타난 건 오래간만이라서. 기념으로 주는 거다.』

초월, 어쩌면 유물급에 해당하는 무기를 그냥 준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어쩐지.

탑 지하를 돌아다니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었다.

조승철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어떻게 미스틸테인을 손에 넣었을까?

얻은 게 아니었다.

고신족들이 쥐여 준 거지.

“오히려 좋아.”

『흠, 뭐라고 했나?』

“좋다고. 이런 무기를 공짜로 얻었잖아.”

『흐흐, 필멸자에게 그냥 주기에는 과분한 무기지.』

난 미스틸테인이 박힌 곳으로 다가갔다.

-계약자여, 저 검에서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만.

닉스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알고 있어.

미스틸테인은 여신님이 어렴풋이 느끼는 것보다 더 불길한 물건이거든.

닉스만 볼 수 있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 앞에 섰다.

『집어 봐라.』

우트가르트 로키의 커다란 망막 위로 내 모습이 아른거린다.

검의 성능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네.

녀석의 기대감 섞인 눈빛을 모르는 척, 태연하게 미스틸테인의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지이이잉-!

[신의 피가 당신의 마음속에 깃든 분노를 일으킵니다.]

[멸망의 의지가 두 눈을 가립니다.]

[블러드 레이지가 상시 발동됩니다.]

음- 신음을 흘리면서 비틀거렸다.

“나리, 괜찮아?”

“괜찮으니 다가오지 마라.”

나는 미스틸테인을 크게 휘둘렀다.

파츠츠츠!

검에서 솟구친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지면을 할퀴었다.

쩍쩍 갈라지는 땅거죽.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인근 지형이 바뀌었다.

“히익.”

그 자리에 주저앉는 코니.

조금만 더 다가왔으면 오러 블레이드에 휩쓸려서 죽었을 거다.

이번에는 칼끝을 우트가르트 로키에게 겨누었다.

“엄청나잖아, 이 검.”

『미스틸테인이라고 한다.』

“좋은 곳에 쓰지.”

『크크크, 무기가 제 주인을 잘 찾은 것 같구나.』

우트가르트 로키는 그 말을 끝으로 떠나갔다.

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여태 참아왔던 격한 호흡을 몰아쉬었다.

“허으윽. 흑.”

빌어먹을.

술에 취한 것처럼 머리가 뿌옇고 지끈거린다.

미스틸테인에 스며든 사악한 의지.

목이 마르다.

아포피스의 영역에서 돌아다닐 때보다 한층 더 짙은 갈증.

수분을 섭취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피.

살육.

누군가의 생기를 앗아야 해결되는 광증이 내 정신을 지배하려고 쉼 없이 유혹했다.

하지만.

“아직 아니야.”

[냉혈]로도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정신 공격.

미스틸테인의 정신 공격을 의식하면서 쥐었는데도 칼에 깃든 광기가 날 집어삼키려 했다.

그래도 칼자루를 놓을 수는 없다.

우트가르트 로키의 시선이 떠나기 전까진.

얼마쯤 지났을까.

날 지켜보던 시선이 더 느껴지지 않자, 곧바로 칼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대여, 괜찮으냐?

닉스의 음성이 귓가를 울린다.

마치 목소리가 실체화돼서 고막을 타고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중심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중, 무언가가 팔을 붙들었다.

부드러운 느낌.

“몸을 여에게 맡기어라.”

아, 닉스였구나.

호문쿨루스의 육체로 언제 돌아온 건지 모르겠네.

내 몸을 부축한 닉스는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추었다.

“지금 뭐 하는…….”

“가만히 있어 보아라. 여에게 몸을 맡기라 하지 않았더냐?”

박력 있는 닉스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여신님은 자세를 낮추더니 자기 무릎 위에 내 머리를 두었다.

땅에서 솟구치는 밤의 장막.

닉스의 극야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빛을 완전히 차단했다.

극대화된 [밤의 여신의 가호].

서서히 진정되는 호흡.

정수리를 콕콕 찌르던 두통이 잦아든다.

“고마워, 여신님.”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닉스의 가느다란 손이 내 팔을 붙들었다.

“좀 더 쉬어라.”

“아니. 이젠 괜찮은데.”

“거울이 있으면 보여 주고 싶구나. 그대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다면 태평하게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을.”

“그렇게까지 엉망이야?”

“핏발 선 눈. 입에는 침이 흐르고 있도다. 그야말로 목불인견이로구나.”

“말씀이 심하시네.”

“후훗, 여는 그대의 계약자이니 모자란 것마저도 이해해 주마.”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경고하지 않았느냐. 평범한 검이 아니라고 하였거늘.”

“알고 있었어. 나름 대비한다고 했는데도 검에게 휘둘릴 뻔했네.”

아니지.

검의 정신 간섭에 대놓고 저항해서 더 심한 반응이 나왔다고 하는 게 맞겠구나.

난 미스틸테인의 정보를 띄웠다.

[미스틸테인]

등급: 신화

분류: 검

내구도: 12500/12500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겨우살이의 가지를 끊어서 벼려 낸 목검입니다.

빛의 신 발두르를 살해하기 위해 만든 강력한 마검으로, 실제로 그의 목숨을 해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스며든 신의 피가 미스틸테인의 힘을 증대시켜서 신화의 자락까지 올라섰습니다.

종말의 대검은 사용자에게 막대한 힘을 부여하지만, 이성을 앗아갑니다.

*근력 + 30%

*민첩 + 30%

*오러 블레이드 사용 가능.

*블러드 레이지 상시 적용.

*분노 Lv 80 상시 적용

*성좌에게 타격 가능.

[블러드 레이지]

등급: ★★★

분류: 액티브

분노로 육체의 잠재 능력을 일깨운다.

근력과 민첩이 20% 상승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마력을 조금만 불어넣어도 오러 블레이드를 마구 펼칠 수 있는 마검.

페널티가 심하지만 누구라도 혹할 만한 옵션이다.

하지만.

그 아래에 덕지덕지 달린 페널티가 문제다.

“어때. 머리 아플 만했지?”

“두통을 유발하는 효과는 없지 않느냐.”

“저 검의 수작질에 안 휩쓸리려고 저항했으니까 그렇지.”

미스틸테인의 속삭임에 몸을 맡겼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을 거다.

사용자의 영혼을 증오로 물들이려는 마검.

기본적으로 분노 상태를 유발하는데다, [블러드 레이지] 버프를 상시발동시킨다.

미스틸테인을 휘두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광인이 될걸?

“한데 왜 이리 검을 오래 들고 있었느냐.”

“저 거인 녀석이 멀찍이서 간 보고 있어서 그랬지.”

우트가르트 로키.

언뜻 보기에는 호탕해 보이지만 심계가 아주 깊은 놈이다.

미스틸테인의 효과가 잘 먹히는지 확인하려고 거리를 둔 채 나를 관찰하더라고.

빌어먹을 놈.

덕분에 머리 깨질 것 같네.

“이상하구나. 그대의 말대로라면 이 검은 굉장히 귀한 아티팩트일진대.”

“성유물급 물건을 그냥 넘겨준 이유가 뭐냐고?”

고개를 끄덕이는 닉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미스틸테인의 칼날 위에 손을 갖다 대었다.

“위험하니라.”

“아, 지금은 안 만질 거야.”

손에 아른거리는 검붉은 기.

유형화시킨 수라마령심공의 내공으로 칼자루와 칼날이 맞닿은 부분을 건드렸다.

즈아아아앗!

미스틸테인에서 솟구친 밝은 빛.

빛의 진원지는 칼날에 숨겨진 작은 룬(Rune)어였다.

“글자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구나.”

“룬어. 애시르 신족의 수장, 오딘이 만든 마법 체계야.”

“어이하여 저 글자를 숨겨 놓았을꼬?”

“나한테 검을 준 이유.”

추종의 룬.

미스틸테인의 광포한 기운을 비집어서 고신족들에게 따르는 마법을 걸어놓았다.

칼을 휘두를수록 마비되는 이성.

분노에 몸을 맡겼을 때 발동되는 숨겨진 수.

미스틸테인의 광기에 휩쓸려서 이성이 흐려지면, 우트가르트 로키가 새겨 놓은 추종의 룬이 발동된다.

닉스의 표정 위로 그늘이 졌다.

“참으로 고약한 술수로구나.”

“저 거인 녀석은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려고 했을 거다.”

“하나, 그대는 저항했고.”

“정신을 안 차렸으면 검의 광증에 휘말렸을 거야.”

우트가르트 로키의 속셈은 이미 간파했었다.

회귀 전의 조승철이 그랬으니까.

경계하면서 칼을 쥐었는데도 이 모양이라 그렇지.

나는 슬며시 머리를 뺐다.

“일어나려느냐?”

“응. 여신님 덕분에 기운을 차렸어. 고마워.”

“후훗, 친구라면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

닉스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미소.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환기되는 것 같다.

난 그 미소를 흘겨보고는 미스틸테인을 쥐었다.

이번에는 우트가르트 로키를 속일 필요도 없으니, 칼을 욕망의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 * *

탑 지하에 머무는 괴물들의 정수.

세계수의 씨앗.

그리고 미스틸테인까지.

유부의 열쇠 덕에 많은 것을 얻었다.

특히 미스틸테인은 조승철이 입수 과정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저절로 굴러들어 왔으니 운이 좋았다.

“이제 돌아가야겠어.”

“체류 기간이 조금 남지 않았느냐?”

“주목받는 건 안 좋으니까.”

탑의 관리자의 주목을 받은 건 마냥 긍정적이진 않았다.

놈들의 목적은 차원 침식.

히페리온이나 루레인 같은 고신들은 두각을 드러낸 플레이어를 경계한다.

우트가르트 로키야 그렇다 쳐도, 탑 지하에 머무르다가 다른 관리자들의 시선을 끄는 건 좋지 않았다.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더 얻을 것도 마땅치 않고.

“네 덕에 지하에서 활동하기가 편했다.”

“히히, 이쪽이야말로 나리 덕분에 즐거웠다.”

이빨을 드러내면서 웃는 코니.

“다음에도 올 일이 있으면 그때 부탁하지.”

“꼭 와라. 내 인생에서 최고의 일주일이었다.”

조승철만 유부의 열쇠를 얻은 게 아니다.

전 세계에 열리는 게이트.

회귀 전, 경매에 풀린 유부의 열쇠만 8개였으니까.

자본을 확보해 두면 탑 지하에 다시 들어올 수도 있다.

타르타로스 곳곳에 숨겨져 있는 고신들의 성유물.

게이트나 탑 미션에서 마주치기 힘든 괴물들의 정수.

언제 경매에서 풀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니 미리 자본을 확보하는 수밖에.

난 이미르의 등뼈를 만졌다.

이번에는 숫자가 아닌, 지상을 떠올렸다.

각 층을 이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빨아들이는 등뼈.

이미르의 등뼈는 날 그대로 천장까지 밀어냈다.

유부의 열쇠를 사용했을 때와 정반대의 상황.

위로 솟구치는 감각이 수십 분이나 지속되었다.

화아아악-!

강렬한 빛이 망막을 두드리고, 잠시 후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바벨탑 - 33층]

[아스란 암벽에 입장했습니다.]

[이미 클리어한 미션입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

눈앞에 펼쳐진 가파른 절벽.

며칠간의 모험을 마치고 원래 층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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