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66화 (166/300)

166화

[밤의 여신의 정수가 태양을 먹는 뱀의 정수에 공명합니다.]

[어둠 지배 사용 범위가 20% 증가합니다.]

“와, 씨.”

너무 놀라서 육두문자를 내뱉을 뻔했다.

아포피스 본인의 정수도 아닌데 닉스의 힘에 반응하다니.

뜻밖의 행운에 입술이 귀 끝까지 승천했다.

“이거 봐라, 여신님.”

스스스슷!

극야의 힘을 구현하자 닉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여의 어둠에 무엇을 섞은 게냐?”

“뱀 새끼의 힘이 반응하더라고.”

“믿기지 않는구나. 온 세계를 뒤져 보아도 극야보다 더 어두운 것은 없건만.”

“같은 속성이라 그럴 거야.”

아포피스와 닉스는 위상이 다르다.

둘 다 개념신의 영역에 다다른 성좌이지만, 아포피스는 결국 라에게 패배했다.

닉스는 그 반대.

올림포스의 신왕 제우스조차 닉스의 눈치를 살펴야 할 만큼 강대한 성좌다.

빛마저도 거둬 내지 못한 밤.

그러니 모든 ‘밤’과 관련된 힘이나 개념에서 최상위에 있는 셈이다.

“뱀 새끼 덕에 좋은 걸 알았군.”

잘만 하면 극야의 힘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난 이미 비슷한 일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시간선을 되돌리는 이적, 회귀.

여러 ‘시간’과 관련된 성좌들의 정수를 모아서 수십 년 전의 과거로 돌아왔다.

시간이라는 개념에서 제일 유명한 신인 크로노스마저 못 해낸 일이다.

닉스의 힘에 모든 ‘밤’의 개념을 종속시키는 것.

회귀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기회가 되면 이놈들의 아비인 아포피스의 정수, 혹은 성유물도 찾아봐야겠어.

* * *

태양을 먹는 뱀의 정수를 포식했지만, 사냥을 멈추진 않았다.

이 사막에 온 목적은 정수 포식이 아니다.

다프네가 준 미션.

보상도 챙기고 고신족들의 전력을 조금이라도 소모시킬 수 있는 기회다.

“계약자여,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는구나.”

“이 땅의 주인. 아포피스일 거다. 아까부터 계속 노려보더라고.”

“그대가 감당하기에 어려워 보이겠다만. 괜찮겠느냐?”

“뭐, 그땐 죽기밖에 더하겠어.”

“참으로 무모한지고.”

“탑 안에서는 죽어도 튕겨 나는 게 전부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아포피스가 직접적인 제재를 걸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고신족들은 한 종족이 아니다.

투아하 데 다난에게 밀려난 포보르 종족.

올림포스 신족에게 패배한 티탄.

애시르 신족한테 학살당하고 쫓겨난 요툰.

그 외에도 여러 신화에서 현세대의 신들에게 별빛을 빼앗긴 이들이 모인 게 고신족이다.

위계질서나 규칙, 그리고 가치관이 다른 이들.

충돌은 불가피했다.

그렇기에, 고신족들은 서로 직접 충돌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아포피스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태양을 먹는 뱀 무리의 방향을 유도하는 정도.

“쉿! 쉬쉬쉿!”

“쉬이이잇!”

그 덕에 전투를 벌일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했다.

[뇌망을 사용합니다.]

[공허의 거울을 사용합니다.]

[거울이 사용자의 혼을 비춥니다.]

손오공한테 배운 선법.

공허의 거울.

그 외에도 지금까지 포식해 온 여러 능력을 모두 사용하고도 어려운 전투의 연속이었다.

“쉬이잇!”

콰득.

발버둥 치던 뱀의 목을 꺾어 버리고는 거칠어진 숨을 내뱉었다.

[바벨탑 - ???]

[서브 미션 - 군단장의 신경전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습니다.]

[???에게 가서 보상을 수령하십시오.]

이럴 때마다 대지모신의 가호가 그리워지네.

급격한 체력 소모를 포식으로 어느 정도 해결하고는 사막을 떠났다.

피부를 에는 냉기와 갈증.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1그램도 안 들었다.

절망의 평원으로 돌아가자 다프네가 잎사귀를 수거했다.

『보기보다 강하잖아, 필멸자.』

“나름 재주가 좋아서.”

『호호호, 좋아. 난 올림포스의 위선자들처럼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거든.』

툭-.

다프네의 팔에서 과일 하나가 떨어졌다.

아니, 크기가 농구공만 해서 과일인 줄 알았는데 커다란 씨였다.

『세계수의 씨앗이야. 먹든 심든 마음대로 해.』

[세계수의 씨앗]

등급: 전설[L]

분류: 잡화

내구도: 500/500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씨앗입니다.

강한 생명력이 농축되어 있지만 현재 가사 상태입니다.

이 힘을 깨우려면 특수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섭취 시 생명력 대폭 증가.

*개화시키면 세계수로 자라남.

-마치 작은 틀 안에 한 세계를 담아 놓은 것 같구나.

영체로 변한 닉스가 내 어깨에 올라탄 채로 중얼거렸다.

세계수의 씨앗이라.

다프네 녀석, 선심 쓰는 척하면서 불량품을 넘겼군.

아스가르드 및 아홉 왕국과 그 세계를 구축하는 커다란 나무, 위그드라실.

위그드라실의 열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큰 보상인 건 맞지만.

아이템 설명에 나왔듯 섭취하거나 싹을 틔우는 방법 모두 알려져 있지 않다.

세계수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애시르 신족이나 귀쟁이 엘프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하지만.

“좋은 걸 줘서 고마워.”

나는 입가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세계수의 씨앗을 다루는 방법이야 이미 알고 있거든.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세계수의 씨앗에 담긴 강력한 정수를 포식할 수 있다.

이렇게 귀한 걸 탑 지하에서 얻다니.

“운이 좋군.”

『호호호,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든 모양이네.』

다프네도 환하게 웃었다.

그래, 지금은 그렇게 웃고 있어라.

그 웃음이 통곡으로 바뀔 날이 머지않았으니까.

네가 쥐여 준 불량품이 날카로운 칼로 벼려질 날을 기다리라고.

『필멸자, 언제까지 지하를 들쑤시고 다닐 생각이지?』

“아이템의 효력이 다하는 날까지.”

『내 부탁도 들어줬으니. 다른 고신족들이 너를 노리지 않게 해 줄게.』

미션 성과를 확인한답시고 회수했던 잎사귀가 다시 가슴팍에 붙었다.

다프네의 힘이 깃든 잎.

탑 지하의 척박한 환경에 굴하면 모를까, 고신족들이 나서는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뒤로도 탑 지하 여기저기를 돌며 정수를 포식했다.

망각의 우리에서는 나태에 빠진 괴물, 슬로스를.

가시 삼림에선 유니콘의 대척점에 선 영물, 바이콘을 사냥했다.

[슬로스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무한 호흡이 추가됩니다.]

[무한 호흡]

등급: ★★

분류: 패시브

숨쉬기의 효율이 늘어난다. 체력 소모가 20% 줄어든다.

슬로스는 설명이 우습지만, 조건 없이 체력 소모를 줄여 주는 우수한 패시브 스킬을 주었고.

[바이콘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고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타락의 인장이 추가됩니다.]

[타락의 인장]

등급: ★★★

분류: 액티브

대상의 이마에 각종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타락의 인장을 찍는다.

재사용 시 대상의 곁으로 이동한다.

순수한 여인을 따르는 유니콘과 달리 타락한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는 종.

바이콘의 성질과 흡사한 기술도 추가되었다.

두 괴물의 정수에서 추출한 스킬도 나쁘지 않지만.

내가 이 괴물들의 정수를 노린 진정한 목적은 따로 있다.

[슬로스의 정수가 포식 능력에 공명합니다.]

[포식 시 체력 스텟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바이콘의 정수가 포식 능력에 공명합니다.]

[포식 시 민첩 스텟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내 스텟 중 마력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유가 뭔데?

용아병의 정수가 포식 능력에 끼친 시너지 효과 덕분이다.

이제 기본 스텟은 포식을 사용할 때마다 추가 보너스가 주어지니.

능력치의 불균형도 이젠 해소되겠지.

유부의 열쇠 덕분에 과거의 경지를 되찾기까지의 시간을 10년 이상 단축할 수 있겠어.

쿵! 쿵!

갑자기 흔들리는 지면.

“크, 큰일이야!”

난쟁이 코니는 바닥에 엎드렸다.

“여긴 원래 지진이 일어나는 지역인가?”

“아니야.”

“근데 왜 엎드리는 거야?”

“서리거인의 영역도 아닌데 흔들리는 걸 보면 고신족인 게 분명하다고.”

하여간 겁 많기는.

다프네의 표식이 있는데 엎드릴 건 없잖아.

난 팔짱을 낀 채 지면을 흔드는 존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가시 삼림에 드리운 커다란 그림자.

지진의 진원지는 푸른 피부의 거인이었다.

약 200미터 크기의 거인.

다프네보다 2배 정도 큰 놈은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여기 있었구나, 필멸자.』

“당신은 누구지?”

『음, 탑의 규칙 때문에 알려 줄 수 없어.』

다프네와 달리, 서리거인은 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 녀석.

탑의 관리자군.

고신족 모두가 탑의 운영에 개입하진 않는다.

히페리온이나 루레인처럼 세계의 이치에 통달하였으며 법칙 구축에도 어느 정도 지혜를 지녀야 탑의 관리자가 될 수 있었다.

여러 신들의 사회에서는 관리자에게 몇 가지 제약을 걸어 놓았다.

그중 하나가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것.

플레이어들과 접촉, 그들의 마음을 사서 성좌가 될 자격을 얻지 못하게 하는 제약이다.

서리거인 출신 관리자라고 하면…….

“짐작이 가는군.”

『필멸자, 지금 뭐라고 했나?』

“혼잣말이다.”

우트가르트 로키.

아프리카 대륙을 빙하기로 만들었던 고신족이다.

놈은 아프리카의 모든 생물을 멸절하고는 자취를 감추었다.

회귀 전에는 보지 못하고 이야기만 들었었는데, 이렇게 보게 되는군.

“왜 나를 찾아온 거지?”

『누군가가 지하를 들쑤신다고 해서. 궁금했거든.』

“해결됐으면 갈 길 가시지.”

『그 잎사귀를 믿고 건방지게 말하는 건가?』

우트가르트 로키는 껄껄대며 박장대소했다.

가시 삼림을 뒤흔드는 커다란 소리.

메아리치는 소리에 귀가 울렸다.

“아니, 믿는 건 내 힘이다.”

『나를 보고 두려움을 품지도 않다니. 필멸자 주제에 제법이잖아.』

우트가르트 로키는 상체를 숙였다.

안 그래도 어두운 공간이 더 어두침침하게 느껴진다.

신명을 잃은 거인의 막대한 존재감.

숨이 막히지만 참아 냈다.

『오래간만에 나타난 필멸자를 보고 싶어서 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잖아.』

놈이 손을 뻗었다.

손톱에 매달린 기다란 칼.

잠깐, 저 검…… 설마 미스틸테인 아니야?!

회귀 전, 조승철이 얻었던 희대의 마검이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