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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61화 (161/300)

161화

[현재 당신의 위치는 ??의 ??입니다.]

[열기 Lv 50]

[탈수 Lv 75]

[편집증 Lv 82]

탑 천장에 떠오른 검은 태양.

일식 현상처럼 중심부가 시커멓고, 둥근 원 주위로 하얀 불꽃이 이글거린다.

머리가 익을 것 같은 더위.

빛이 없는데도 뙤약볕을 쬐는 느낌이다.

그 아래로 넓게 펼쳐진 땅.

곳곳에는 잎이 풍성한 월계수가 무리를 이루어 서 있다.

“여긴 왜 절망이라고 불리는 거지?”

“히히히, 다프네의 영역이거든.”

“다프네라면 아폴론의 구애를 받았던 요정인가?”

“몰라. 이 영역을 지배하는 나무가 다프네라는것만 알지.”

“그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다.”

아폴론의 끈질긴 구애를 피해서 스스로 나무가 되어 버린 요정, 다프네.

여기 있었구나.

빌어먹을 것.

제3 군단장 다프네.

엔트 군대로 유럽을 휩쓸었던 타락한 요정왕이다.

네 안타까운 사연 따위는 관심 없어.

나무에 흡수되어서 껍데기만 남은 사람들의 사체를 본 기억이 떠오르자, 마음이 끓어올랐다.

-진정하여라.

“아, 미안. 잠깐 안 좋은 생각이 나서.”

닉스의 충고가 아니었으면 분노에 휩쓸릴 뻔했다.

[사용자의 감정이 크게 요동칩니다.]

[냉혈 스킬이 발동됩니다. 냉정한 마음이 유지됩니다.]

평소에는 잘도 발동되더니.

마음을 진정시키자 냉혈의 효과가 한발 늦게 적용되었다.

“편집증이라. 귀찮게 하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평원에 적용되는 정신 착란 효과는 아폴론의 집착에서 비롯되었을 터.

다프네와 아폴론의 ‘신화’에서 비롯된 지역이기에 냉혈 스킬로는 완벽하게 방어할 수 없었다.

최대한 집중해야겠어.

“근데 말이야, 나리. 여기는 왜 온 거야?”

“웬 나리.”

“언제까지 외지인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뭐, 호칭이 중요한 건 아니지.

“절망의 평원은 정신병 말고 얻어갈 게 하나도 없는 곳이라고.”

“저놈들을 사냥하러 왔다.”

나는 평원 곳곳에 무리 지어 있는 월계수를 가리켰다.

“나리가 센 건 알겠지만 관두는 게 좋을걸?”

-그럴 연유가 있느냐.

“감시관보다 세단 말이야. 우리 일족은 나무 근처에도 안 가.”

저 월계수들이 얼마나 센지는 잘 알고 있다.

유럽 전선에서 지겹도록 봤거든.

그러니까.

[솔라 익스플로전을 사용합니다.]

“걱정할 것 없어.”

승산 없는 싸움이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 했다.

월계수 근처까지 날아간 구체가 폭발.

강한 빛이 근방의 어둠을 모조리 날려 버렸다.

「가아아아아악!」

폭발의 진원지에 서 있던 월계수 셋이 지면 아래에 박힌 뿌리를 뽑아 올렸다.

[버림받은 엔트]

-호오, 저 나무들이 모두 괴물이었구나.

“더러운 놈들이지.”

나무 코스프레를 하다가 먹잇감이 지나가면 나뭇가지를 뻗어서 낚아챈다.

멸망의 시대에는 저 나무 새끼들의 위장술에 속아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그뿐이랴.

저놈들은 생물체의 양분을 빨아먹고는 그 껍데기에 씨를 심어 둔다.

시신이라도 건지려고 접근하면 발아해서 사람들을 포식.

그 양분을 기반 삼아 번식까지 한다.

“여신님의 도움이 필요해.”

-저 나무가 그렇게 강한 적이더냐?

“꽤나.”

솔라 익스플로전에 휩쓸려서 깨어난 엔트는 셋.

[바르바로스의 철퇴] 다음으로 강력한 마법이지만, 놈들은 잎사귀가 탄 것 말고는 멀쩡했다.

-머리만 벗겨진 셈이로구나.

“아, 그건 좀…….”

잔인하시네, 이 여신님.

쿵! 쿵!

엔트 셋이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20미터에 달하는 거체.

굼뜬 움직임이지만 보폭이 원체 넓다 보니 금세 거리가 좁혀졌다.

[화염 영혼의 낙인을 사용합니다.]

[분노의 족쇄를 사용합니다.]

[포효를 사용합니다.]

…….

엔트 무리에게는 온갖 디버프를.

“여신님.”

“맡기어라.”

현현한 닉스가 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접촉면으로 스며드는 강한 힘.

피오르의 가호에 뇌신(雷身)까지 사용했다.

「가아아아아아!」

선두의 엔트가 팔 역할을 하는 가지를 채찍처럼 길게 휘둘렀다.

흡사 1톤 트럭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것 같은 압박감.

피했다가는 저 팔을 곡선으로 움직이면서 내 움직임을 쫓아올 거다.

오른팔을 뒤덮는 새빨간 기운.

마룡의 분노를 휘감은 채로 응룡황권을 펼쳤다.

우지지직!

길게 늘어난 나뭇가지가 수백 조각으로 쪼개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후들거리는 팔.

저 덩치와 정면으로 부딪쳤더니 팔이 욱신거린다.

“별것 아니로구나.”

“이건 시작이야.”

백 스텝을 사용.

10미터 뒤로 물러났다.

쾅! 쾅!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빗발치는 잔가지들.

꽤 굵직한 가지를 날려 버렸지만 엔트한테는 큰 타격도 아니다.

본체의 핵만 남아 있으면 잃어버린 몸도 금방 복구해 버리는 괴물.

재생력으로 유명한 트롤조차도 엔트 앞에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다.

스스슷!

발밑에서 솟구친 극야가 잔가지들을 묶는다.

엔트의 핵이 있는 몸뚱이까지 열린 길.

땅을 박차면서 나뭇가지에 올라타는 순간.

[육감이 위험을 감지합니다.]

머리 위로 기다란 그림자가 드리운다.

뒤따라온 엔트 두 마리.

여러 디버프로 발을 묶어 놨지만, 엔트의 팔을 날려 버리는 동안 거리를 좁혔다.

쭉 늘어난 나뭇가지, 아니 팔이 날아든다.

“아쉽군.”

한 놈을 쉽게 처리하나 했더니.

접전 초기에 엔트의 핵을 찌르지 못하면 소모전으로 가야 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한 놈을 먼저 쓰러트릴 생각이었다만.

[어둠 지배]

[암영추혼검]

둘로 나누어진 극야가 두 엔트의 팔을 잘라 낸다.

“앞으로 나아가거라. 여의 계약자여.”

여신님이 만들어 준 기회.

헛되이 날릴 순 없지.

잔가지들을 밟고 엔트의 가슴팍까지 뛰어갔다.

놈이 팔을 재생시키면서 발생하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접근.

핵 근처에 다다르자 꼿꼿하게 선 나뭇가지들이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엔트를 사냥할 때 가장 위험한 순간.

“알고 있으면 함정이 아니지.”

극야의 힘을 최대치로 방출.

다각도로 쏟아지는 나뭇가지들을 막아냈다.

엔트의 공세를 못 이기고 순식간에 깨어지는 극야의 벽.

1초에서 2초 사이.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블레이징 소울을 사용합니다.]

화염을 휘감은 채로 엔트에게 돌진한다.

콰아아앙! 소용돌이 자국이 엔트의 가슴팍에 새겨졌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괴물.

낙인처럼 찍힌 소용돌이 자국 위로 광서지를 펼쳤다.

공중에 비산하는 나무의 체액.

심장 역할을 하던 엔트의 핵이 검은 기에 꿰뚫려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막대한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헤에, 레벨도 오를 줄은 몰랐는데.

“아낌없이 주는 나무네.”

올라온 김에 엔트의 정수까지 포식했다.

포식 페널티로 가루가 되는 몸뚱이를 걷어차면서 다음 엔트를 향해 내달렸다.

여신님이나 안내역한테 시선이 끌리면 곤란하니까.

“기다리던 포식 시간이다.”

나는 히죽 웃었다.

* * *

서유럽의 재앙.

엔트를 가리키는 말이다.

둘만 있어도 플래티넘급 플레이어의 운신에 제약을 줄 만한 강력한 괴물.

그러면서 번식력도 뛰어났다.

아니.

적당한 숙주, 그리고 시간.

싹을 틔우기만 하면 지면의 양분을 빨아들여서 금세 성장하기에, 금세 숫자가 늘어났다.

강하면서 제 동료들을 늘리는 속도조차 빠르니.

물론.

지금은 내 밥이다.

[뇌망(雷網)을 사용합니다.]

번개 그물이 엔트의 상반신을 휘감는다.

갖가지 디버프가 적용된 상황.

번개 그물에 갇힌 엔트가 꿈틀거렸다.

“닉스.”

“여에게 맡기어라.”

옆에 선 앤트의 발을 휘감는 극야.

대상의 근력 수치가 원체 높아서 움직임을 봉쇄하진 못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목표는 엔트의 핵.

발을 묶는 거면 충분했다.

내 의도를 눈치채고 나뭇가지들을 바짝 끌어모아서 핵을 보호했지만.

날카롭게 벼린 극야로 펼친 암영추혼검 앞에서는 겹겹이 둘러싼 가지도 스티로폼처럼 부서졌다.

번개 그물로 휘감은 엔트까지 쓰러트린 후.

하- 짧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좀 쉬자.”

“후후훗, 그대도 앓는 소리를 할 줄 아는구나.”

“나도 사람이거든요?”

가볍게 투덜대고는 막 쓰러트린 엔트의 정수를 포식했다.

[버림받은 엔트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고대]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정수 갈취가 추가됩니다.]

[정수 갈취]

등급: ★★★

분류: 액티브

접촉한 상대의 정수를 빼앗는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엔트가 땅에 뿌리를 내려서 양분을 섭취하는 스킬.

‘정수’라는 범위가 굉장히 모호하지만 사실 체력이나 생명력, 그리고 마력까지도 강탈 범위 안에 들어간다.

말만 들어 보면 범용성이 엄청난 것 같지만 실은 반대다.

[라이프 드레인]이나 [마나 드레인]과 비교하면 강탈 비율이 너무 낮다.

그러니까.

설명만 번지르르하지 실전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거지.

내가 ‘버림받은 엔트’의 정수를 얻으려는 건 다른 노림수 때문이다.

[버림받은 엔트의 정수가 포식 능력에 공명합니다.]

[포식 사용 시 근력 스텟을 추가로 획득합니다.]

“이거지.”

두 손을 꽉 말아 쥐었다.

무리하면서까지 탑 지하에 내려온 이유.

포식 능력의 시너지 효과다.

내 스텟 중 마력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가 무엇이냐?

튜토리얼에서 포식한 용아병의 정수 덕분이다.

그런데 포식에 시너지를 주는 정수가 고작 용아병의 정수뿐일 리가 없잖아.

“원하는 것을 얻은 모양이구나.”

“다 여신님 덕분이지.”

“여에게 진상할 공물을 잊지 말거라.”

“물론입죠.”

나는 과장되게 고개를 숙였다.

“저, 저 나무들을 이렇게나 쉽게 쓰러트리다니.”

“그럼 내가 질 줄 알았나?”

“나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이야 했지. 공작 감시관도 척척 쓰러트리는 양반인데.”

“그런데?”

“이 정도로 쉬울 줄은 몰랐어.”

코니가 혀를 내둘렀다.

회귀 전의 경험이 없었으면 엔트 사냥이 이렇게 수월하지도 않았을 거다.

저놈들이 괜히 서유럽의 재앙이라고 불렸겠나.

“다음 지역은…….”

지도로 탑 1계층의 구조를 확인하려는 찰나.

평원 너머에서 강렬한 존재감이 내 감각을 마구 자극했다.

두근- 두근-.

위험하다.

육감이 맹렬하게 경고하고 있지만 그 ‘위협’의 원인이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무슨 일이더냐?”

“영체화해.”

군말 없이 영체로 변한 닉스.

호문쿨루스의 육체가 부서지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야 탑 지하에서 죽는다고 해도 원래 세계로 튕겨 나는 게 전부지만.

닉스한테 피해가 가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쿵! 쿵!

작은 산이 다가온다.

“마, 말도 안 돼.”

뒷걸음질 치는 코니.

나도 저 녀석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내 영역이 시끌벅적한 이유가 여기 있었네?』

작은 산으로 보였던 것은 100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나무.

이 평원의 주인이자 고대신 군단 3군단장, 다프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빌어먹을.

열쇠를 하나 더 얻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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