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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59화 (159/300)

159화

[???로 향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유부의 열쇠가 소멸됩니다.]

눈 녹듯이 사라진 보라색 열쇠.

사아아아-!

검은 안개가 벌어진 지면 틈 사이로 솟구치면서 주위를 어둠으로 물들인다.

탑 지하.

고신족들이 유폐당한 곳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어깨 꽉 잡아.”

닉스는 극야를 사용해서 제 몸뚱이와 어깨를 연결시켰다.

자.

그럼.

“뛰어내린다!”

다아-! 다----아---!

지저로 뛰어드는 순간, 내 목소리가 메아리치면서 고막을 울렸다.

빛 한 점 없는 흑암.

옆에는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하얀 기둥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손을 뻗어 보았지만, 기둥을 만지는 순간 신기루를 본 것처럼 잡히지가 않는다.

회귀 전, 탑 지하를 들락거린 플레이어들이 말한 대로다.

한참을 낙하하던 중.

검은 안개 사이로 갈색을 띤 무언가가 발아래에 아른거린다.

드디어 지면이군.

[바람길을 사용합니다.]

[바람의 흐름을 타고 걷습니다. 흐름이 약한 곳에서는 중심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발을 디뎠다.

높이 솟아오른 파도에서 서핑 보드를 타듯.

바람의 흐름에 저항하지 않고 그 안에서 길을 달렸다.

줄어드는 낙하 속도.

바닥이 훤히 보이자 바람길을 해제했다.

쿵- 땅에 발을 딛자, 천장에 감돌던 빛이 사그라졌다.

[현재 당신의 위치는 ???입니다.]

[성좌들의 별빛이 닿지 않는 곳입니다.]

[뇌신의 가호가 무효화됩니다.]

[칠죄종 - 탐욕의 가호가 무효화됩니다.]

…….

속속들이 무효화되는 가호.

바알의 가호 빼곤 모두 포식해서 얻은 건데도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탑 지하.

빛을 잃고 영락해 버린 성좌들이 유폐된 공간.

그 어떤 별빛조차도, 이곳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다.

내가 이래서 최소 골드 등급이 아니면 못 올 거라고 말했지.

연이은 기연이 아니었으면 유부의 열쇠를 쓸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터.

[밤의 여신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회복력이 50% 증가하며, 어둠 관련 스킬의 효율이 증가합니다.]

어럽쇼?

“이럴 리가 없는데.”

시험 삼아 극야의 힘을 끌어올렸더니 가호의 효과로 더 날카로워졌다.

-무엇이 말이더냐?

“탑 지하는 성좌의 힘이 닿지 않는데, 여신님의 가호는 예외네.”

나도 이 장소를 출입하는 건 처음이다.

조승철이 탑 지하에서 미스틸테인을 가져온 후, 열쇠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 버렸거든.

억만금을 쥐여 줘도 구하기 어려운 아이템.

2차 대침식 이후에는 게이트 공략 보상으로도 나오지 않아서 탑 지하에 갈 수 없었다.

-후후훗, 여는 이유를 알 것 같구나.

“진짜?”

-여의 거처가 어디인 줄 아느냐.

“타르타로스.”

-이곳은 여의 거처와 흡사한 공간이니, 가호 또한 빛을 잃지 않겠지.

아-.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런 거였군.”

탑 지하는 여러 신화의 낙성좌들, 그러니까 고신족들이 유폐된 곳이다.

불교의 무간지옥과 동일한 개념인 타르타로스.

고신족들은 애시르 신족에게 살해당한 최초의 서리거인, 이미르의 등뼈로 타르타로스에 커다란 기둥을 세웠다.

이미르의 등뼈에서 뻗어 나온 여러 고신족들의 세계.

탑 지하는 과거 성좌들이 개입했던 26층 미션처럼 각 신화의 지옥들이 형성되어서 서로의 거처에 머물렀다.

한데 닉스는 ‘밤’이라는 성질 때문에 영락하지 않았는데도 타르타로스에 거처를 두었다.

고신족들이 깊은 잠에 빠져든 그녀의 힘을 이용할 수 있었던 이유.

이 순간만큼은 그게 역으로 도움이 되었다.

-후후훗, 여의 위대함을 찬양하여라.

“위대하신 밤의 여신이시여, 내려 주신 가호에 감사를 올립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구나. 여를 만족시키지 않으면 가호를 거두어 가마.

“공물로 케이크를 드리오니 만족하여 주시옵소서.”

미리 욕망의 주머니에 넣어 둔 케이크 한 조각을 꺼내자, 닉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대의 정성이 여의 마음에 합당하였도다.

현신해서 케이크를 바로 챙기는 닉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재빠르던지, 누가 보면 굶기는 줄 알겠다.

“미션 현황.”

[당신은 현재 ???층, ???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는 플레이어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 ??의 효과가 사라지면 자동으로 추방됩니다.]

[?? ???의 눈에 포착되면 남은 시간에 관계없이 추방될 수 있습니다.]

[체류 시간 - 239:58:52]

10일이라.

구하기 힘든 열쇠인 만큼, 이번 기회에 뽕을 뽑아야지.

“이제 움직이자.”

“버어(벌써)?”

케이크를 오물거리는 닉스.

동면 준비하는 다람쥐도 아닐 텐데 볼이 빵빵해져 있다.

성미도 급하긴.

내 예상이 맞는다면 여기에서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거든.

그때.

아아아-!

탑 지하의 적막을 날려 버리는 음파가 인근을 요란하게 울렸다.

어둠을 뚫고 나타난 건 5미터 크기의 공작새였다.

[공작 감시관]

헤라의 애완동물이자 탑 지하의 감시자.

탑 지하를 드나든 플레이어들이 경고했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 ???의 시선에 노출되었습니다.]

[10초 이상 감시당하면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있는 감시관들을 모두 호출합니다.]

[1분 이상 감시당하면 당신의 존재가 만신전에 전해집니다.]

[만신전은 플레이어가 탑의 관리자와 접촉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발각 시 자동으로 추방됩니다.]

깃털에 달린 수많은 눈들 위로 붉은빛이 감돈다.

감시관이라는 호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군.

회귀 전의 정보와 동일했다.

“다 여신님이 케이크 먹느라 그런 거잖아.”

“헤라, 그 아이가 귀찮게 하는구나.”

어느새 입에 넣은 케이크를 모두 소화한 닉스가 작게 투덜거렸다.

공작새는 헤라의 상징.

저 ‘감시’하는 눈도 헤라의 심복인 아르고스의 힘 일부를 내려준 것이다.

“결자해지라 하였으니. 이번에는 여가 나서마.”

“아냐 여신님은 쉬어 둬.”

“그래도 되겠느냐? 저래 보여도 헤라의 애완동물이니라.”

“놈의 전투력을 알아봐야지.”

탑 지하에는 공작 감시관이 바글거린다고 했다.

나도 직접 마주한 건 회귀 전후를 통틀어서 처음이거든.

그러니 시험해 봐야지, 저 공작 새끼가 얼마나 강한지를.

발바닥으로 지면을 밀어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꼬리에 달린 눈동자 수십이 내 움직임을 빠르게 쫓더니.

[헌드레드 체이스 샷]

깃털 모양의 마력 탄을 일제히 발사했다.

전후좌우.

광범위하게 펼쳐진 화망을 피하려면 뒤로 물러나는 것뿐.

“네놈의 노림수야 뻔하지.”

그러니.

답은 정면 돌파다.

은회색 갑주를 전신에 두른 채 빗발치는 마력 탄 사이로 파고들었다.

팅! 티티팅!

메탈 반사 장갑 너머로 전해지는 충격이 꽤 컸다.

“큭.”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다리의 근육을 쥐어짜지 않으면 중심을 잃을 정도의 강력한 힘.

깃털 세례는 타락한 이무기의 뇌전에 비견될 만한 파괴력을 지녔다.

빌어먹을.

무슨 잡몹 하나가 이렇게 세?

[감시관의 깃털이 신체에 깃듭니다.]

[민첩이 3 감소합니다.]

[감시관의 깃털이…….]

몸에 부딪친 깃털은 소멸하지 않고 디버프까지 부여했다.

“와, 씨.”

진짜 너무하는구먼.

탑 지하.

난이도가 극악인 거야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초입부터 이 정도일 줄이야.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공작 감시관은 탑 지하를 누비면서 주야장천 마주칠 괴물이다.

이렇게 직접 부딪쳐 보면 공략 방법도 금방 익숙해지겠지.

빗발치는 깃털을 받아 내면서 정면으로 다가가고는 손가락을 쭉 뻗었다.

손가락 끝에서 방출되는 검은 기운.

백수제왕무 5초식, 광서지다.

공작 감시관은 쫙 펼친 꼬리를 망토처럼 휘둘렀다.

찌이이익!

꼬리 일부가 광서지에 닿자마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찢겨졌다.

“해치웠느냐?”

“그렇게 말하면 숨이 끊어진 놈도 살아나겠다.”

뭐, 닉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공작 감시관의 숨통을 끊지는 못했을 거다.

광서지가 꼬리에 닿는 순간.

백 개의 눈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기를 흘려보냈다.

태극권의 고수도 아니고.

꼬리로 유형화한 기의 방향을 틀어 버릴 줄이야.

나는 핀잔하면서 주먹을 뻗었다.

마룡의 분노를 더해서 발출한 응룡황권.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띤 기가 공작 감시관의 몸뚱이를 짓이겼다.

“아아ㅇ…….”

퍼엉-!

산산조각 나는 공작 감시관의 몸뚱이.

흡사 대포를 맞은 것처럼, 놈의 사체는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여신님, 이제부터 해치웠나, 같은 말은 하지 마.”

“지영이는 자주 하지 않더냐?”

“걔도 그래서 혼나잖아.”

“흐으으음. 알았도다.”

닉스는 탐탁잖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 감시관의 정수를 포식하려고 할 때.

아아아-!!

아아-!!

다른 감시관들의 울음소리가 사이렌처럼 요란하게 울렸다.

“큰일이구나. 여기서 발이 붙들릴 줄이야.”

11초.

공작 감시관을 쓰러트리는 데 걸린 시간이다.

1킬로미터 안에 있는 감시관들이 이변을 감지했을 터.

아니, 그렇지 않으면 곤란했다.

“일부러 모은 거야.”

“호오, 그대는 다 계획이 있구나.”

“이번에는 암살을 할 거다.”

공작 감시관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 확인했다.

다음으로 알아볼 건 감지 능력.

탑 지하의 주적인 만큼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

“여신님도 영체화해.”

닉스가 영체로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몸을 숨겼다.

[어둠의 육체를 사용합니다.]

[밤의 장막 - 내장 스킬: 밤의 걸음을 사용합니다.]

잠시 후, 공작 감시관 네 마리가 나타나더니 서로를 보며 “꾸륵?”거렸다.

내 위치는 못 발견한 것 같군.

은신 효과는 검증되었고.

발소리를 최대한 줄인 채 감시관의 등 뒤로 돌았다.

스스슷!

극야로 구현해 낸 칼에 내공을 불어넣고는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어둠의 육체]를 사용 중에 유일하게 전개 가능한 무공, 암영추혼검이다.

솟구치는 피.

공작 감시관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졌다.

연이어 칼을 휘두르자 감시관 둘이 더 쓰러졌다.

아아아아-!!

이변을 공작 감시관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붉게 물들었다.

[백안(百眼)의 감시에 노출되었습니다.]

[3초 후 은신이 자동으로 해제됩니다.]

3초를 기다릴 필요도 없지.

어둠의 육체를 해제.

놈이 반응하기 전에 응룡황권을 펼쳤다.

꼬리로 흘려 내지도 못한 채 용의 머리에 삼켜진 공작 감시관.

“이게 정녕 암살이긴 한 것이더냐?”

“목격자만 없으면 암살이지.”

넷으로 늘어난 감시관의 사체도 모조리 포식했다.

먼저 기습을 걸면 다섯 마리까지는 허용 범위 안이군.

후- 짧은 한숨과 함께 달아오른 공기를 폐부에서 배출했다.

“더럽게 힘드네.”

회귀 전에 들었던 것보다 더 악랄했다.

깃털 모양을 띤 마력탄.

위력도 상당한데 맞으면 디버프까지 걸린다.

공작 감시관 여러 마리가 깃털 마력탄을 발사하면 접근조차 힘들 것이다.

내 능력을 모두 짜내면 대응이야 가능하겠지.

문제는 공작 감시관의 시선에 오래 노출되면 탑 지하에서 추방된다는 것.

온갖 가호가 무효화된 탓에 체력 소모도 컸다.

그나마 [밤의 여신의 가호]가 적용되어서 망정이지.

“여러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그대에게도 위험하겠구나.”

“암살이라면 최대 7마리. 정면으로는 3마리. 그 이상은 피해야지.”

“후훗, 이곳은 그대에게도 쉽지 않겠어.”

“이 정도 난관쯤은 예상했어.”

“과연, 여의 계약자로구나.”

“여신님이 말했잖아? 나는 계획이 다 있다고.”

닉스야 입버릇처럼 한 말이지만.

난 이번 탑 지하 여행에 많은 것을 걸었다.

일회용인 유부의 열쇠.

두 번째 열쇠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얻을 만한 건 모조리 포식해야 한다.

인근의 공작 감시관들을 한자리에 불러들인 이유.

감지 능력을 파악하려는 것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과감한 보폭으로 탑 지하를 걸었다.

1킬로미터 안에 있는 감시관들은 모두 쓰러트렸으니, 거칠 게 뭐가 있어?

탑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기둥으로 향하던 중.

캉! 캉!

날카로운 금속음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찾았다.”

금속음의 진원지.

주황빛 피부의 난쟁이가 곡괭이로 기둥을 두드리고 있다.

케나즈 드베르그, 이미르의 사체에서 태어난 드워프의 사촌이자 이 저주받은 땅에 속한 주민.

이번 탑 지하행의 안내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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