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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50화 (150/300)

150화

진호가 이과수 폭포를 공략하고 있을 무렵.

태양 문신을 왼쪽 어깨에 새긴 이들이 엔리케의 마을로 다가왔다.

먼 거리에서 [메카닉] 능력으로 감시 중이던 엔리케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켰다.

“왔구나, 이 빌어먹을 놈들!”

“작은 아이야. 무슨 일이더냐?”

“아까 말한 갱단이 왔다고. 쉬고 있을 틈이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엔리케가 곧바로 벽 위로 올라탔다.

투다다다!

여러 총구에서 불꽃과 함께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빗발치는 총탄.

산타페 갱 단원들은 방어 스킬을 활성화하고는 힘겹게 전진했다.

“엔리케, 더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에게 협조해라.”

“내 무기는 사람한테 쓰는 게 아니야!”

“어린 새끼가 형들한테 말대꾸하고 있네.”

“네놈이 언제까지 그 좁은 곳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갱단 소속 플레이어들은 으르렁댈 뿐,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엔리케의 재능은 전 세계 메카닉 능력 플레이어 중에서 최상급.

강화된 총탄들은 실버 등급 플레이어들도 무시하지 못할 위력을 지녔다.

이미 몇 번이나 유혈 사태를 경험한 갱단.

평소에는 경계선 주위를 둘며 엔리케의 마력을 소진시켰지만, 오늘은 기세가 달랐다.

탕! 탕!

빗발치는 총탄의 막을 뚫으면서 전진.

길 좌우에 배치된 총들을 하나씩 파괴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크윽!”

“컥!”

총탄에 노출되어서 쓰러지는 갱단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안 죽었으면 됐어.”

“전진한다.”

산타페 갱단은 엔리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흥. 와 봐라, 개자식들!”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엔리케.

몇 시간 전, 진호의 침입을 허용한 후로 고장 난 장비를 모두 수리해두었다.

그뿐이랴.

남겨 둔 여유 총기까지 배치해서 화력을 증대시켰다.

‘저 정도로는 뚫을 수 없어.’

엔리케는 승리를 자신했다.

그가 전방의 플레이어 무리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벽 뒤쪽의 풍경이 살짝 굴절되면서 사람의 형태와 비슷하게 일렁거렸다.

[스텔스]

주위 풍경에 동화되는 은신 스킬.

어깨에 태양 문신을 찍어 놓은 플레이어 몇 명이 [스텔스]를 사용한 채, 벽을 넘었다.

산타페 갱단이 엔리케 영입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수단이다.

‘일부러 은신 스킬을 아껴 왔지. 이건 생각도 못 했을 거다.’

‘감지 계열 스킬도 있는 것 같은데. 정면에 신경 쓰느라 알지도 못할 테니.’

침투한 갱단 단원은 다섯.

엔리케는 여전히 정면을 바라보느라 불청객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인질부터 확보한다.”

침투한 이들은 스텔스를 유지하면서 마을을 뒤졌다.

주민들은 산타페 갱단의 횡포로 떠나간 지 오래.

휑한 마을을 뒤지던 중.

“쥐새끼가 있구나.”

한기 섞인 목소리가 단원의 귓가에 아른거렸다.

이질감을 느끼고 단원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검은 파도가 휘몰아치면서 팔과 다리, 그리고 목덜미를 감는다.

“악! 아아아악!”

“밤은 모든 것을 포용하나, 너희 같은 비겁자들은 예외이니라.”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

닉스가 차가운 눈빛으로 산타페 단원을 오시했다.

[크리티컬 스로잉 대거]

극야에 휘감긴 상태에서도 단검을 던지는 산타페 단원.

손을 떠난 단검이 평소의 3배 이상이나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날 끝이 목덜미에 다다르는 순간.

드레스를 구성하던 극야가 위로 올라오면서 단검을 튕겨 냈다.

“뭐, 뭣이?!”

“여를 상대하려면 왕도로 오거라. 그깟 잔재주는 통하지 않을지니.”

두둑, 두두둑.

단원의 몸뚱이에 스며든 극야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반대로 꺾이는 두 팔과 다리.

단원이 끄아아악- 하면서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극야가 목구멍을 틀어막아서 소리조차 내지를 수 없었다.

그저 입을 뻐끔거릴 뿐.

“여를 배알하면서 감히 짐승처럼 짖으려 하느냐?”

이번에는 단원의 두 무릎이 지면에 닿았다.

팔과 다리가 제자리에서 벗어난 채로 부복하니, 흡사 고장 난 인형 같았다.

“그대에게 허락된 것은 여를 올려다보는 것뿐.”

제 의지가 아닌, 극야의 힘에 강제로 고개가 젖혀진 단원.

닉스가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폭사시킬 수 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은 단원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닉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너희를 심판하는 것은 여의 역할이 아니니.”

마을 안으로 침투했던 다른 단원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은 몰골이 된 채로 엔리케의 부모님 앞으로 끌려 나왔다.

“이, 이자들은……”

“그대들을 노리는 벌레들이니라.”

겨울의 한풍이 닉스의 목소리에 스며들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음색.

“아무래도 구경만 할 수는 없겠구나.”

“예?”

“그대의 아이를 도와야겠다. 아니면 계약자의 부탁을 이행하는 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으니.”

닉스는 극야를 발에 집중.

폭발적인 기세로 지면을 밀어내면서 벽 위로 솟구쳤다.

검은 드레스가 바람에 휘날리고, 닉스의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

‘하마터면 계약자의 부탁을 지키지 못했을 수도 있었구나.’

벽 너머로 숨어든 플레이어 무리.

닉스의 감각이 조금만 둔했어도 큰 사달이 일어났을 것이다.

‘여가 안일했다.’

그녀는 진호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못내 분했다.

20미터 넘게 붕 떠오른 여인의 신형.

전진하던 산타페 갱단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넋이 빠졌다.

“아, 아름다워.”

“어디서 저런 사람이?”

“방심하지 마. 플레이어다.”

“어때. 잡으면 그만이지.”

그들의 역할은 엔리케의 시선을 정면에 붙들어 놓는 것.

개중 실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총에 맞아서 쓰러졌지만,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여력을 두고 전진하는 척만 했다.

닉스의 등장은 예상 외였지만, 그들의 눈동자에는 당혹감 대신 탐욕의 빛이 아른거렸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 컥!”

지면을 박차고 닉스한테 달려들던 플레이어의 머리 위로, 시커먼 철퇴가 쇄도했다.

쾅- 철퇴에 맞아서 달려오던 방향에서 정반대로 튕겨나 버린 플레이어.

“불결하구나.”

닉스는 모멸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여자, 강하다.”

“포위해서 잡…….”

투다다다!

산타페 단원들이 닉스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엔리케가 화력을 쏟아부었다.

“누님! 뒤는 맡겨 주십쇼!”

“계약자보다는 모자라지만 등을 맡길 만은 하구나.”

닉스는 오르손으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에 반응하면서 광범위하게 펼쳐지는 극야.

산타페 단원들의 얼굴 위로 긴장감이 아른거렸다.

잠시 후.

엔리케를 노리던 산타페 단원들은 하나같이 사지가 뒤틀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마을로 끌려왔다.

* * *

“……이렇게 된 겁니다.”

엔리케가 상황을 설명했다.

근데.

너, 왜 닉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고 있냐?

닉스와 엔리케를 번갈아 보던 중 아- 하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런 거였군.

포박된 산타페 단원들을 힐끗거리는 엔리케.

팔과 다리가 부러져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눈가를 살짝 떨었다.

닉스의 자비 없는 손속에 겁먹었구먼?

“내가 없는 동안 엔리케네 가족을 지켜 줘서 고마워.”

“그대의 부탁이지 않느냐. 당연한 것을.”

“여신님이 없었으면 큰일 났을 거야.”

“……그건 정말 고맙습니다.”

엔리케는 닉스가 두려울 텐데도 꾸벅- 인사를 했다.

정면에서 어그로를 끌고 은신 스킬로 부모님을 납치하려 했다, 라.

갱단 놈들, 머리를 제법 썼다.

계획대로 엔리케의 부모를 납치했으면 놈들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을 터.

덕분에 엔리케에게 마음의 빚도 지워 두었고, 기계 군주가 탈선하게 된 계기조차 막아 냈다.

이번 일은 케이크 한 조각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

“후후훗, 그대와의 신뢰를 지킬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이 편하구나.”

“나야 늘 여신님을 믿지.”

“진심이더냐?”

“응.”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만 빼면 대부분의 비밀을 공유한 유일한 존재.

닉스가 유일한 가족인 할아버지보다도 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거다.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구나.”

고개를 홱 돌리는 닉스.

마침 엔리케하고 할 이야기도 있으니 잘됐군.

“이놈들, 어떻게 할 거냐?”

“갱단요?”

“그래. 처분은 너한테 맡길게.”

엔리케의 눈가에 감도는 스산한 살기.

금방이라도 총을 조종해서 놈들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만들어 줄 기세다.

하지만.

“두고 갈래요.”

“네 가족을 위협한 적이잖아?”

“어차피 이 나라를 떠날 건데요. 볼 일도 없으니.”

“원한다면 산타페 갱단을 없애 줄 수도 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여긴 외국입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외국이니까요.”

한수창은 입술을 살짝 들썩이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이곳은 치안이 보장된 한국이 아니다.

공권력이 살아 있다면 엔리케가 총을 들고 갱단과 싸우는 일이 없었겠지.

“흔적만 안 남기면 됩니다.”

나한테는 [공허의 거울]이 있다.

정수로 괴물의 형태를 취하면 산타페 갱단을 몰살시켜도 나를 연관 짓기는 어려울 터.

“모든 것은 네 의사다.”

이들을 죽이거나 살리는 것도.

가족들을 괴롭혔던 갱단의 처우도.

자,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거냐?

엔리케는 한참 동안 고민하더니.

“그냥 둬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왜지?”

“저 녀석들 없애도 같은 놈들이 또 나올걸요.”

“그렇다고 해도 너를 괴롭힌 자들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이제 볼 일도 없는걸요. 굳이 제 무기로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아요.”

파르르 떨리는 엔리케의 손.

이 녀석.

살인을 한 적이 없군.

회귀 전의 기계 군주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

부모의 죽음이 그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 모양이다.

나는 웃음을 삼켰다.

오히려 좋아.

핑 레이처럼 갱생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이 강력한 아군 하나를 더 얻었다.

“초면에 총질한 것치고는 착하네.”

엔리케의 머리를 쓰다듬자, 녀석이 화를 냈다.

“꼬맹이 취급은 말아 줄래요?”

“기특해서 그래.”

“우씨.”

성을 내는 엔리케를 뒤로 물리고는 부모님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준비하시죠.”

“짐은 이미 다 싸 뒀습니다.”

갑작스러운 해외행.

엔리케의 부모님은 의외로 고향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갱단에게 시달렸다는 건가.

“팀장님.”

“이미 대사관에 연락해서 합의를 마친 상황입니다.”

게이트 공략을 마칠 때까지 반나절도 안 걸렸는데, 그걸 벌써 다 마무리해 놓을 줄이야.

“그럼 가죠.”

“좌석이 하나 부족한데요?”

한수창이 묻자, 닉스가 영체화했다.

-이러면 되지 않느냐.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군요, 허허.”

한 차례 고개를 저은 후, 한수창은 운전대를 잡았다.

뒷좌석에 앉는 엔리케 가족.

훗날 인류의 배반자가 되었을 기계 군주가 아군으로 합류한 기념비적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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