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미스터 유, 이쪽입니다.”
아르헨티나 플레이어 협회에서 파견 나온 요원 5명이 길 안내를 했다.
습기를 머금은 흙길을 밟고 걸어가던 중.
이질적인 마력의 파동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여기가 그 게이트입니다.”
협회 요원은 지면에서 살짝 떠올라있는 푸른 원반을 가리켰다.
[이과수 폭포 - 괴조의 둥지]
[조건 - 실버(10인)]
게이트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 - 172:33:04
“그럼 다녀오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협회 요원이 팔을 쑥 뻗었다.
“저희도 동행하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요.”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인데, 혼자 들여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글쎄.
내가 볼 땐 자존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안내역을 맡은 요원들의 눈빛에서 불똥이 이글거렸다.
실력은 고만고만하고만.
한수창을 흘겨보자, 그도 난감하다는 듯 어깨를 살짝 올렸다.
“그럼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쇼.”
“내가 위험하다 싶을 때 나서는 것.”
“물론입니다. 저희는 미스터 유의 게이트 공략을 방해할 마음이 1그램도 없습니다.”
그 마음, 변치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게이트에서 괴조의 먹이로 던져 줄 거거든.
협회 요원들의 다짐을 받은 후에야 게이트 안으로 진입했다.
양옆으로 쭉 뻗은 절벽.
시작 지점은 두 절벽 사이, 그러니까 협곡 아래 지점이었다.
파다닥!
큰 날개를 움직이며 절벽 사이에서 오고가는 새들.
게이트의 주민인 괴조다.
“흐음.”
“저 빌어먹을 새들.”
협회 요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괴조를 노려보았다.
가파른 절벽을 제집 삼아 날아다니는 괴조.
두 발을 땅에 딛고 사는 플레이어들한테 있어선 최악의 적이다.
[현재 당신의 위치는 안개 계곡입니다.]
[투사, 혹은 방출형 스킬의 위력 및 사거리가 50% 감소합니다.]
[바람 속성은 페널티에서 제외됩니다.]
과연.
이러니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공략을 포기했지.
마법이나 화살 같은 원거리 공격에 페널티가 덕지덕지 붙는 지형.
바람 계열 스킬이나 공격은 예외라지만, 괴조는 바람을 다루는 괴물이라서 위력이 줄어드니 사실상 전 공격에 페널티가 붙는 셈이다.
그뿐이랴.
괴조를 사냥하려면 절벽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어찌하시겠습니까?”
협회 요원들이 긴장한 눈빛으로 나를 흘겨본다.
자식들. 막상 들어오니까 쫄리나 봐?
난 대답하는 대신 마력을 재배열했다.
[솔라 익스플로전을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한계까지 응축시킨 열기를 머리 위에서 터트리자, 폭음과 함께 안개가 밀려났다.
“키루룩!”
“키룩!”
솔라 익스플로전의 범위에 들어온 괴조들이 지면으로 추락한다.
반으로 줄어든 범위와 파괴력.
그럼에도, 직격했을 때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자랑했다.
땅으로 추락한 괴조들은 어둠 지배로 마무리.
“일격으로 게이트 주변의 괴조들을 쓸어버렸다고?”
“미친. 여긴 페널티가 있는 지형이라고.”
“그 마법 공격은 랭커들이나 가능한 수준 아닌가!”
협회 요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놀라든지 말든지.
난 태연하게 괴조의 사체를 포식했다.
[괴조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윈드 서칭이 추가됩니다.]
[윈드 서칭]
등급: ★★
분류: 액티브
바람이 움직이는 길을 읽어 내어 흐름 일부를 인위적으로 제어한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바람의 흐름에 간섭하는 보조 마법.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기보다는 상대의 바람 마법을 흘려보내거나 내 공격을 강화하는 게 주 용도다.
근데 말이야.
내 노림수는 거기서 끝이 아니거든.
[블랙 페더의 정수가 괴조의 정수에 공명합니다.]
[두 정수를 융합하여 새로운 스킬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바람길 스킬이 추가됩니다.]
[바람길]
등급: ★★★
분류: 액티브
바람이 움직이는 길을 읽어 내서 걷는다.
마나를 소모한다.
운이 좋았다.
엔리케 델토로를 섭외할 핑곗거리로 공략한 게이트에서 괴조를 만날 줄이야.
[검은 선풍]과 [윈드 서칭], 둘은 바람을 읽는 데 특화된 정수다.
바람의 결을 완벽하게 읽으면 걷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씀.
땅을 밟는 게 아니기에 상당한 감각과 마력 운용 능력을 필요로 하지만.
[바람길을 사용합니다.]
[바람의 흐름을 타고 걷습니다. 흐름이 약한 곳에서는 중심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
나는 회귀 전의 경험을 살려서 한걸음에 바람을 타고 올라갔다.
“미, 미스터 유가 하늘을 걷고 있어!”
“비행 마법인가?”
“아니야. 비행 마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공중을 걷지는 않는다고.”
지상에서 얼마쯤 떨어졌을까.
“키루루루룩!”
솔라 익스플로전에 휘말리지 않은 괴조 하나가 부리를 쫙 벌린 채로 날아들었다.
발바닥 아래를 흐르는 기류를 그대로 박차면서 도약.
날아들던 괴조의 입안으로 응룡황권을 먹였다.
퍼어엉!
응룡황권에 실린 힘이 괴조의 몸뚱이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지면으로 떨어지는 고깃덩이와 피.
나를 따라온 협회 요원들은 졸지에 괴조의 피를 뒤집어썼다.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괜히 따라오지 말고.”
[바람길]도 만능은 아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을 타고 공중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뿐.
내 마음대로 허공을 뛰어다닐 수는 없다.
그러려면 비행 마법이나 허공답보를 펼쳐야지.
“저, 저희도 도움이…….”
“따라오다 죽으면 산재 처리도 안 될걸요?”
나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요원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못 알아들으면 어쩔 수 없지.
기세에 눌린 요원들은 입을 뻐끔거리더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 *
후우우웅!
강한 바람이 협곡 사이를 누빈다.
바람길을 사용할 최적인 환경.
난 거침없이 바람의 길을 타고 협곡 위로 나아갔다.
“키루룩!”
협곡에 자리를 잡은 괴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무리 지어서 돌진하는 새들.
소형 버스 크기의 괴조가 수십이나 몰려드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대상이 나라는 게 문제일 뿐.
바람을 차고 도약.
두 발을 겨우 디딜 수 있을 정도의 절벽에 안착했다.
바람을 밟고 선 상태에서는 수십이나 되는 괴조들을 정면으로 맞설 수 없다.
“키루루룩!”
선두의 괴조들이 발톱을 추켜세운 채로 돌진하는 순간.
[마룡의 분노]를 덧씌운 응룡황권이 허공을 격하면서 수 미터 떨어진 괴조에게로 들이닥쳤다.
콰드드득!
괴조의 발이 부러진 데 이어 몸통도 새빨간 기운에 짓이겨졌다.
환상종인 ‘용’의 기운을 담아서 만든 초식.
용종 계열 스킬의 힘을 증대시켜주는 [마룡의 분노]가 더해지니, 권기의 응용 형태인 권풍(拳風)과 비슷한 형태로 방출이 가능했다.
원래는 초식과 심법의 성취가 부족해서 발현 불가능한 경지.
편법으로 펼친 만큼 일반적인 권기 방출보다 내공 소모가 2배 정도 들었지만.
후욱-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면서 진(眞)여의주의 공능을 사용했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가 여의주로 스며든다.
마나를 내공으로 치환시키는 진여의주.
치환 과정에서 3할이라는 마나가 손실되지만, 원체 마력 스텟이 높은 터라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연달아 응룡황권을 펼치자 정면으로 쇄도하던 괴조 여럿이 권풍에 휩쓸려서 찢겨졌다.
[포식을 사용합니다.]
[체력과 마력을 회복합니다.]
그 와중에 괴조들의 사체를 포식하면서 소모된 마력을 회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자, 정면 대결을 회피하는 괴조들.
급히 날개를 퍼덕이며 급선회를 하려고 했지만.
“어딜 도망가?”
바람길에 전력 질주를 응용.
제자리에서 홰를 치던 괴조들 사이에 파고들고는 [어둠의 육체]를 사용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암영추혼검을 사용합니다.]
120에 해당하는 극야를 일거에 방출.
내공을 흘려보내서 열 갈래로 흩어진 칼날로 남은 괴조들을 베어 버렸다.
극야와 일체화되면서 비약적으로 상승한 컨트롤 능력.
닉스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더럽게 힘드네.”
나는 절벽에 붙어서 숨을 내쉬었다.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
높은 마력 스텟과 [혼원룡의 심장]이 있다고 해도, 단기간에 막대한 마나를 소모하니 피곤했다.
난 협곡 여기저기를 누비며 괴조들을 쓰러트렸다.
보스 몬스터가 없을 뿐이지.
괴조는 각 개체가 지형 버프까지 힘입어서 네임드 몬스터라고 봐도 될 정도로 강력했다.
아르헨티나가 괜히 공략을 포기했겠나.
내 상대는 아니었지만.
[경험치 0.7%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주 만에 처음으로 보는 메시지.
보너스 스텟은 모두 극야에 투자했다.
[괴조의 둥지 게이트의 모든 괴물을 쓰러트렸습니다.]
[게이트를 닫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괴조의 알이 주어집니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모든 괴조들을 퇴치.
성공적으로 게이트를 폐쇄했다.
“정말로 그 많은 괴조들을 혼자 쓰러트리다니.”
“역시 향신료 제도의 영웅이라는 건가?”
“우리가 짐이 되다니.”
“죄송합니다, 미스터 유!”
아르헨티나 협회 요원들은 허리를 수직으로 접으면서 사과했다.
녀석들.
자존심을 더 부렸으면 괴조의 먹이로 던져 주려고 했는데, 근본은 나쁘지 않았구나.
“참, 푸에르토이과수에서 개인적인 볼일이 있습니다만.”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모쪼록 편안하게 관광을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협회 요원들은 게이트에 진입할 때와는 달리 고분고분해졌다.
게이트 공략을 기다리며 대기 중이던 한수창마저 황당하다는 듯 요원들을 흘겨보았다.
“진호 님,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것도요.”
나는 픽, 웃었다.
그나저나 괴조의 알이라.
테이밍에 특화된 플레이어에게 맡기면 대박일 텐데.
2026년 인근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테이밍 관련 능력 보유자가 누구인지 기억을 되짚어 봐야겠다.
게이트 공략을 마치고는 엔리케의 집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따라 나아가던 중, 묘한 냄새가 코에 아른거렸다.
“팀장님, 잠깐만요.”
“예?”
“저쪽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예비군이라면 절대로 모를 수 없는 그 향이자, 아까 엔리케와 대화(?)를 할 때 지긋지긋하게 맡은 냄새.
화약이 타면서 나는 향이다.
“먼저 가죠.”
지프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운류보를 전력으로 운용, 지면을 차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쏜살같이 바뀌는 풍경.
이 순간에 처음으로 떠오른 건 엔리케가 아닌, 닉스였다.
빌어먹을.
혹시나 해서 여신님을 남겨두었는데.
그 틈을 못 참고 갱단이 습격을 한 게 분명했다.
호문쿨루스의 육체로 현현한 닉스.
몸뚱이가 파괴되어도 본체에 영향이 가지는 않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상황을 보고 싶진 않았다.
“제길.”
길가에 배치된 총들은 모두 박살 나 있었고.
엉성하게 세운 벽도 커다란 충격을 받고 허물어졌다.
“닉스!!”
급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마을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왔느냐, 여의 계약자여.”
닉스는 침입자들을 극야로 포박해 둔 채,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겼다.
……응?
굉장히 위험한 상황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