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끼이이익-!
지프가 길가에 멈춰 섰다.
“어떻게 할까요?”
운전석에 앉은 한수창이 나를 흘겨본다.
고민할 것도 없지.
“전진하죠.”
“알겠습니다.”
다시 비포장도로를 타고 나아가는 지프.
길 양쪽에 비치된 총구가 일제히 차량을 겨누었다.
“한수창 팀장님, 협회는 산재 처리 되죠?”
“그야 당연히 됩니다만.”
“공격이 날아오면 제가 보호는 해드릴 건데, 혹시 모르잖아요.”
“지금이라도 브레이크 밟을까요?”
나는 큭, 하고 웃음을 참았다.
총구가 지프를 겨누는 것과 달리, 막상 공격이 날아오진 않았다.
얼마 정도를 전진했을까.
어설프게 세워 놓은 돌 벽과 철문이 길을 막았다.
“너, 내 말을 무시해?”
아까 우리를 멈추게 했던 앳된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꼬맹이. 얼굴이라도 비추고 인사하는 게 예의 아닌가?”
“꼬, 꼬맹이라고!!”
발끈한 목소리와 함께 아이 하나가 벽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피부에 살짝 말려 있는 곱슬머리의 소년.
눈가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으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기계 군주와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소년은 눈에 쌍심지를 켠 채, 다짜고짜 삿대질을 했다.
“너희 갱단에게 협조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꺼져!”
“무언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차량 문을 열고 길가로 나서는 순간.
타아앙!
총탄 하나가 발가락 앞에 박혔다.
“경고는 이번 한 번뿐이야.”
“진호 님!”
한수창이 새파래진 안색으로 나를 불렀다.
이 정도 가지고 놀라긴.
“꼬맹아, 너무 무른 거 아니냐?”
“뭐, 뭐야?!”
“내가 정말로 네 적이었다면 위협사격을 할 틈도 없이 죽였어야지.”
스스슷!
발밑에서 솟구친 극야가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열 갈래로 흩어진 극야를 칼날로 구현.
길가에 배치된 총들을 한순간에 파괴했다.
“아니면 네가 위험할걸?”
“가만 안 둬!”
[메카닉 컨트롤]
[일제 공격]
투다다다다!!
벽 위에 설치된 기관총.
그리고 미처 박살 내지 못한 총들이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닉스.”
“여기는 맡기어라.”
검은 막이 지프를 감싼다.
저쪽이야 여신님한테 맡겨 두면 되겠고.
나도 [메탈 반사 장갑]으로 전신을 꼼꼼하게 감쌌다.
현대 병기가 게이트의 괴물들에게 통하지 않는 이유는 ‘마나’ 때문이다.
게이트 브레이크 때 플레이어의 힘이 절대적인 이유.
하지만 메카닉 능력자가 다루는 총기는 이야기가 다르다.
빗발치는 총탄.
마나를 함유한 공격은 플레이어나 몬스터를 막론하고 위협적이다.
기계 군주 녀석.
이맘때에도 막 나갔구나?
여차하면 갱생이고 나발이고 제거해서 후환을 없애버리든 해야지.
“죽어라, 갱단의 히트맨 녀석!”
“누가 히트맨이래?”
난 태연하게 총탄 세례를 받아 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파르르 떨리는 소년의 눈동자.
“그 공격을 받아 내고도 멀쩡하다고!?”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오해는 무슨. 너희 갱단에는 죽어도 협조 안 해.”
소년의 눈가에서 살의가 번뜩였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준비한 무기가 더 있으면 당장 꺼내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일부러 느긋하게 걸어갔다.
저렇게 눈이 뒤집힌 놈하고는 대화가 안 통한다.
그렇다면.
압도적인 무력으로 꺾어 주는 수밖에.
[메카닉 컨트롤]
[오버로드(Overload)]
[마그네틱 웹]
총탄의 연사 속도가 더 빨라지고, 머리 위에서는 둥근 철 여러 개가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들었다.
스스스슷!
어둠 지배로 구현해 낸 극야가 회전하던 철을 베어 낸다.
극야의 출력이 늘어난 덕에 벌일 수 있는 퍼포먼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든 공격을 무효화시키자, 소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준비한 게 이 정도라면…….”
파팟!
엉성하게 만든 벽 위에 올라타는 건 스킬을 쓸 필요도 없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소년.
내가 한 수 더 빨랐다.
“진정해라.”
빠아악!
사심 조금 담아서 뒤통수를 어루만져 주었다.
휘청거리는 소년의 몸뚱이.
연신 불을 뿜어 대던 총구들이 아래로 젖혀졌다.
“누구를 때려?!”
“그러니까 오해가 있다고 했잖아.”
스스스슷!
극야로 소년의 몸을 감싼 후에야 얌전해졌다.
놈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은 채로 태연하게 입을 떼었다.
“이름.”
“……엔리케 델토로.”
“말이 좀 짧다?”
“입니다.”
과연.
훗날 기계 군주로 불리게 될 사내를 이렇게 만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보자마자 총질을 한 이유는?”
“경고했는데 너희가 안 물러났잖아!”
“아?”
“……요.”
핑 레이처럼 혀가 짧은 녀석이군.
하기야, 회귀 전에 마주쳤을 때도 자존심 하나만큼은 엄청난 녀석이었다.
내 손에 죽기 직전까지도 고개를 빳빳하게 세웠었지.
벽에서 엔리케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이보시오!”
중년 부부가 겁에 질린 기색으로 벽으로 다가왔다.
휘둥그레지는 엔리케의 눈동자.
“아빠! 엄마! 이리로 오지 말라고 했잖아!”
찢어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엔리케의 외침에도 물러서기는커녕 더 가까이 다가왔다.
“산타페 갱에서 원하는 건 다 해줄 테니. 아이 목숨만은 살려 주시오!”
예? 자동차 갱단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떨떠름한 투로 대꾸하자, 중년 부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내 얼굴을 빤히 훑어보았다.
잠시 후.
“혹시 향신료 제도의 영웅 아니시오?”
부부의 말에 엔리케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 * *
‘성스러운 신앙’이라는 의미를 지닌 스페인어, 산타페.
하지만 푸에르토이과수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본래의 뜻보다 갱단을 먼저 떠올린다.
푸에르토이과수에서 순위권에 드는 갱단.
“난 또. 자동차를 말하는 줄 알았네.”
“자동차?”
“그런 게 있어.”
“아무튼 당신, 산타페 갱이 아니란 말이지?”
“내가 그 갱단 소속이었으면 이렇게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엔리케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양손을 위로 번쩍 올렸다.
“알았어. 진 건 나니까 마음대로 해.”
“말이 짧다고 했을 텐데.”
“……요.”
“갱에서 너를 왜 노리는 거지?”
“내 능력이 병기를 만드는 거니까요.”
메카닉 능력.
여러 기계 장비와 교감할 수 있으며, 무기에 마력을 심는 것도 가능하다.
길가나 벽 위에 설치해 둔 총들처럼 말이야.
플레이어나 괴물한테도 유용한 무기.
총기 자체의 한계가 명확하기에, 현시대에서는 크게 두각을 받지 못한 재능이지만.
아르헨티나 같은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는 이야기가 다른 듯했다.
“난 그런 곳에 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다짜고짜 총을 쏴 대는 건 괜찮고?”
“그거야 당신들이 갱단인 줄 알아서 그런 거였죠.”
의기소침해하는 엔리케.
이 녀석도 어릴 때랑 나중이랑 조금 차이가 있군.
“제안 하나 하지.”
“갑자기 뭐죠?”
“내 길드에 들어와라.”
엔리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남한테 머리 숙이는 건 싫어서, 사양하죠.”
하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자식.
어릴 때도 오만한 성정은 그대로구나.
뭐, 엔리케가 내 제안을 거절하리란 것도 예상 범위 안의 일이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게 하나 있지.
바벨탑 어플을 켜서 상인 모르스를 호출했다.
-고객님, 부르셨습니까요?
“저번에 맡긴 거.”
-흐흐, 안 그래도 완성된 지 꽤 됐는데 왜 말씀이 없으시나 했죠.
“이쪽으로 전송해 줘.”
-알겠습니다요.
우우웅!
휴대전화 화면이 번쩍이더니, 주먹 크기의 광물이 툭 튀어나왔다.
[고대의 마나 코어]
등급: 레전드
분류: 엔진
내구도: 99/100
고대의 핑크 다이아몬드를 가공해서 만든 강력한 마나 엔진입니다.
병기 제작이나 마법진의 중추를 조율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공 과정에서 조금 손상된 탓에 엔진 성능이 저하되었지만, 제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합니다.
-흠집이 조금 갔습니다만. CP로 변상해 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됐어. 첫술에 배부를 수 없잖아.”
-아! 감사합니다, 고객님!
“다음에는 좀 더 빨리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군.”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CP를 안 뜯어낸다고 하니 기뻐 날뛰기는.
고대의 핑크 다이아몬드는 가공 난이도가 매우 높은 광물이다.
외부에는 마법진을 직접 새기고, 다이아몬드 안쪽은 마력을 투사하여 가공했을 텐데.
마력을 증폭시키는 핑크 다이아몬드의 특성상 내부에 마력 회로를 새기는 게 꽤 힘겨웠을 거다.
나는 가공을 마친 [고대의 마나 코어]를 엔리케에게 슬쩍 내밀었다.
“이게 뭔 줄 알겠나?”
“강력한 마나 엔진이군요.”
꿀꺽.
엔리케가 침을 삼켰다.
무기 제작이 특기인 메카닉 능력 플레이어.
그중에서도 전 세계 플레이어 중 정점에 올랐던 녀석답게, 고대의 마나 코어가 뭔지 바로 알아보았다.
“이 녀석으로 병기를 만들면 쓸만하겠지?”
“쓸 만요? 고작 그렇게 표현할 만한 물건이 아니라고요!”
엔리케가 눈을 반짝이면서 고대의 마나 엔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과연.
내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잖아.
웃음을 삼킨 채, 손에 쥐고 있던 마나 엔진을 엔리케에게 넘겼다.
“이 정도면 증폭률이 3.27, 아니 그 이상이야.”
매료된 눈빛으로 마나 엔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엔리케.
“야, 꼬맹아.”
“여기에 기관총 10문을 연결하면…… 아니지. 그건 너무 아까워.”
놈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효과가 너무 좋아도 문제인데?
엔리케의 어깨를 툭 치자, 그제야 나를 바라봤다.
“가지고 싶나?”
“흥.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고대의 마나 엔진에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솔직한 녀석 같으니라고.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뭔데요?”
“갱단에게 협조하지 않는 이유.”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만든 병기가 사람을 해치는 데 쓰이는 건 질색이에요.”
이야, 고신족들에게 붙어서 인류를 배반했던 녀석이 이렇게 말하니 기묘하네.
엔리케의 답변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내 길드에 들어오면 그런 물건들을 마음껏 만질 수 있을 거다.”
“진심이에요?”
“그래. 여차하면 계약금으로 그 물건을 주지.”
“당신은 한국인이잖아요. 길드에 소속된다는 건 이민을 가야 한다는 거 아니야?”
“맞아. 네가 결정만 하면 수속은 이쪽에서 다 밟아 줄 거다.”
한수창 팀장도 같이 있으니, 문제가 될 건 없다.
빠르게 움직이는 엔리케의 두 눈동자.
이 정도면 구미가 당기지?
“조건이 있어요.”
“뭐지?”
“부모님도 같이 가는 거야.”
나는 한수창을 살짝 흘겨보았다.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들었지?”
화색이 된 엔리케.
중년 부부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아이만이라도 데려가 주셨으면 했는데.”
“우리 가족 모두를 챙겨주시다니.”
“효자를 두셨네요.”
진심이다.
엔리케 녀석이 비뚤어진 계기가 부모님의 사망이라고 했으니.
아까 언급했던 갱단과 연관이 있었겠지.
차라리 안전한 한국에 부모님을 모셔 와서 같이 사는 게 나을 거다.
“근데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그 사람들은 이미 떠났어. 내가 무섭다고.”
어쩐지, 마을이 휑하다 싶더니.
“그럼 짐 싸고 계시죠.”
“우리를 놓고 어디를 가려고요?”
바로 존댓말을 붙이는 엔리케 녀석.
눈치는 빠르구먼.
“아르헨티나 정부에 의뢰받은 게 있어서. 그걸 해결해야 해.”
“알겠어요.”
순순히 납득하는 엔리케.
“여신님은 여기에 남아 줄래?”
“이 가족을 보호해 달라는 말이로구나.”
“케이크 한 조각 줄게.”
“계약 성립이니라.”
닉스의 전투 능력은 엔리케보다도 한 수 위.
그 정도면 만약의 사태가 벌어져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팀장님, 그럼 목적지로 가시죠.”
“알겠습니다.”
둘로 줄어든 일행은 이과수 폭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