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46화 (146/300)

146화

엘렌은 휴대전화를 들었다.

골드 문의 길드 마스터, 윌리엄 록펠러한테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직통 전화.

물끄러미 전화기를 바라보던 엘렌이 버튼을 꾹 눌렀다.

뚜- 뚜- 뚜-.

-이야기가 잘 안 되었나 봐?

“여기에 사람이라도 심어 두셨어요?”

-나한테 급히 전화를 걸 이유야 분명하지 않나.

현 상황을 전달하는 엘렌.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윌리엄이 입술을 떼었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더니.

“네?”

-그렇잖아. 우리 제안이 이런 식으로 뒷덜미를 잡을 줄 알았나.

“그건…….”

-아, 미안. 책임을 언급하는 건 아니었어. 상황이 웃겨서.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윌리엄의 웃음소리.

엘렌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카를라의 계약 조건은 간단했다.

‘자신을 최강의 플레이어로 양성해 줄 것.’

고아 출신으로 선악의 개념보다 힘의 논리에 맨몸으로 노출되어서 타인과 다른 윤리관을 가지고 있는 게 카를라다.

그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섭외한 게 골드 문.

골드 문 최강의 플레이어이자, 미국 랭킹 1위인 엘렌은 카를라의 스승이 될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카를라한테 그 조건을 제시한 건 나야. 널 타박하는 게 아니라고.

“제 능력이 부족한 탓이에요, 마스터.”

-에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윌리엄은 한참 동안 웃더니 돌연 목소리에서 웃음기를 쫙 뺐다.

-역천 길드라고 했던가.

“네.”

-우리가 인수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미스터 유, 꽤 야망 있는 사내였네요. 이미 한국 소속 랭커를 둘이나 섭외했어요.”

-미스터 홍, 그리고 신?

“이미 알고 계셨군요.”

-두 사람이 미스터 유와 친분이 있다는 것 정도는.

“카를라는 당분간 설득이 어려울 것 같아요.”

-오히려 이쪽 길드원을 뺏기게 생기다니. 아이러니군.

침묵하는 윌리엄.

툭, 툭,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전화 너머로 울려 퍼진다.

엘렌은 숨소리마저 죽이고는 길드 마스터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기다렸다.

잠시 후.

-역천 길드를 통으로 인수할 수는 없겠지?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길드를 설립하지 않았겠죠.”

-미스터 유에게 전해 줘. 골드 문에서는 역천 길드에 투자를 하고 싶다고.

“투자 관련으로 제가 붙어 있으면서 카를라를 설득하면 되겠네요.”

-겸사겸사 좋은 이미지도 심어 주면 좋잖아?

엘렌은 금세 윌리엄의 뜻을 읽었다.

1차 대침식 이후, 플레이어의 가치는 한층 더 상승했다.

카를라는 골드 문에서 공을 들여 키운 인재인 만큼 바로 놓아줄 수는 없었다.

진호를 섭외하려다가 오히려 골드 문의 인재를 빼앗길 상황.

카를라를 설득할 시간과 진호에게 호감을 산다는 두 가지 노림수였다.

‘대단하군, 미스터 유.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잘 알고 있어.’

지구 맞은편.

엘렌과 통화를 나누던 윌리엄은 입맛을 다시면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는 이미 길드 내 전력 분석가들을 통해 진호의 전투 능력을 살펴보았다.

‘골드에서 플래티넘 사이라고 했지만, 그 이상일 거다.’

분석가들의 안목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워 골렘을 상대하는 내내 여유가 넘쳤던 진호의 태도.

윌리엄은 표정과 숨의 간격, 그리고 말투를 보며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미스터 유가 다이아몬드 등급에 도달하면 전 세계 랭킹이 바뀔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확신!

윌리엄은 자신의 예감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길드를 바로 설립했다는 건, 진호 스스로도 가치를 잘 인지한다는 의미이니.

-하나만 묻지, 엘렌 상무.

“예.”

-미스터 유가 내 앞길을 막을 것 같은 사람인가?

윌리엄의 목소리에서 한기가 감돌았다.

그의 목표는 골드 문을 세계 최고의 길드로 세우는 것.

엘렌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술을 떼었다.

“미스터 유는 마스터가 바라보는 것과는 다른 방향을 보는 것 같더군요.”

-그 정도면 됐다.

윌리엄이 가벼운 투로 대꾸했다.

-이왕 투자하기로 했으니 5천만 달러든, 1억 달러든 부르는 대로 주게. 지분 10% 정도는 달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엘렌은 통화를 종료한 후, 결연한 표정으로 진호를 찾았다.

* * *

“투자를 하시겠다고요?”

“예. 골드 문의 길드 마스터인 윌리엄 록펠러 님의 제안입니다.”

의외군.

그 아저씨가 이렇게 순순히 날 영입하는 걸 포기할 줄이야.

역천에 투자한다는 의미란, 그런 거다.

“투자 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안 궁금하십니까?”

“만약에 진호 길드장님이 투자 제안을 받아들이시면, 제가 당분간 머물러야겠죠.”

“감독역이라는 것이군요.”

“네.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엘렌은 방긋 웃음을 지었다.

길드 운영에 간섭하겠다는 건 아니니, 거기까지는 이해할 만하군.

정확히는 여기에 머무르면서 카를라를 설득하려고 하겠지.

내 입장에서야, 카를라를 섭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동료인 엘렌과 척을 안 지고 싶었다.

그녀의 올바른 성정은 멸망의 시대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았으니까.

자, 그럼…….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나는 손을 비볐다.

안 그래도 돈 쓸 데가 많은데, 잘됐어.

“길드 마스터께서는 1억 달러를 말씀하셨습니다만. 더 가능도 할 거예요.”

“딱 필요한 만큼이군요.”

“이제 막 설립된 길드에서 그만한 거액이 필요하나요?”

“길드원 하나를 영입하려고 합니다.”

나는 핑 레이와 나눈 밀담을 엘렌에게 이야기했다.

“1억 달러는 유망주 하나 영입하는 것 치고는 과한 금액이네요.”

“구룡방의 주요 전력이 될 사람을 하나 뺀다고 생각하시죠.”

중국 제일의 길드로 자리매김한 구룡방.

전 세계에서 우뚝 서는 것을 원하는 윌리엄이라면, 이 제안을 제법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나는 곧바로 핑 레이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팀장님.”

“이적 준비해라.”

“예, 예?”

“1억 달러 준비했다.”

핑 레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냥 이적비로 주는 거 아니다. 절반은 네 몸값으로 달아 둘 거야.”

이쪽의 패를 먼저 깠으니, 너도 상응하는 무언가를 보여 줘야지?

느긋하게 핑 레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놈은 결정을 내린 듯, 한 번 눈을 지그시 감더니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미후왕과의 계약 건도 기억하고 계십니까?”

“약속은 지킨다.”

“팀장님을 따르겠습니다.”

자식.

1억 달러에 신왕급 성좌랑 다리를 놔준다는데 뜸 들이기는.

투자한 것 이상으로 뽕을 뽑아내 주마.

“가족들부터 모셔와.”

“아. 그래야죠.”

구룡방, 혹은 중국 정부 차원에서 보복을 할 수도 있으니까.

“계약자여, 저 아이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당연히 안 믿지.”

“한데 용케도 보내 주는구나.”

“이쪽도 나름대로 정보망이 있어.”

한국플레이어협회.

정보력은 구룡방은커녕, 국내 3대 길드보다도 한 수 뒤처지지만 그래도 쓸 만했다.

핑 레이의 부모님 인적 사항 정도 파악하는 것쯤은 이미 끝냈단 말이지.

“빈틈이 없는 자로다.”

닉스는 가볍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길드도 설립했겠다.

미래의 랭커들을 하나씩 포섭해야겠는데.

당장 한국에는 섭외할 정도로 눈에 띄는 플레이어가 없었다.

외국으로 시야를 돌리자니, 회귀 전의 기억만 가지고는 제한적이란 말이지.

“아.”

불현듯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그 녀석이 이름을 날리던 게 이쯤이었을 건데.

한수창 팀장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르헨티나 쪽 한번 알아봐 주실 수 있습니까?”

-가능은 합니다만.

“메카닉 계열 플레이어로 최근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 좀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기계 군주 엔리케 델토로.

인류의 여섯 군주 중, 나와 마찬가지로 후발 주자로 정점에 오른 플레이어다.

그 녀석이 활동을 개시한 게 이쯤일 테니.

운이 좋으면 녀석도 갱생(?)시켜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겠어.

“오늘도 게이트를 공략하러 가느냐?”

“설마. 당분간은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설치된 대형 텐트.

매번 개인 수련을 할 때마다 훈련장 전체를 쓰는 게 미안해서 임시로 만든 공간이다.

[융합기공을 사용합니다.]

[융합 대상을 선택해 주십시오.]

“어둠 지배와 액화를 융합한다.”

본래대로라면 융합이 불가능한 신의 가호.

하지만.

닉스가 불어넣어 주면서 ‘가호’가 아닌, ‘스킬’로 분류된 어둠 지배는 얼마든지 융합할 수가 있었다.

쇼거스의 정수와 닉스의 힘이 이리저리 얽혀 든다.

[어둠의 육체가 융합기공에 등록됩니다.]

[융합 스킬 - 3/5]

[168시간 후, 융합 스킬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스킬 목록이 차 있으면 하나를 삭제해야 합니다. 이미 등록해 둔 스킬을 삭제할 때도 동일한 대기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둠의 육체]

등급: ★★★★

분류: 액티브

극야의 힘으로 육체를 재구성한다. 물리력을 투과할 수 있다.

어둠의 육체를 사용하면 빛을 차단하기에 늘 밤을 거니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소량의 극야를 소모한다.

“그대여, 이토록 불결한 행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느뇨?”

“언짢아도 조금만 기다려 봐.”

레벨 업 보너스를 언제까지 묵혀 둘 수는 없잖아.

극야의 힘은 ‘밤’이라는 개념을 주관하는 여신, 닉스의 힘이다.

내가 그걸 온전하게 다루어 내려면 꽤 오래 걸린단 말이지.

처음에는 제법 빠르게 숙달했지만, 회귀 전에 다루지 않은 힘이 늘어나면서 훈련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럼 꼼수라도 써야 하지 않겠어?

“이렇게 극야를 실체화하면 감이 올지도 모르잖아.”

“흐응.”

못마땅한 듯 닉스가 콧소리를 냈다.

하여간 까다로운 여신님 같으니라고.

[어둠의 육체를 사용합니다.]

스아아앗!

머리카락과 피부, 그리고 몸에 걸치고 있던 옷가지들이 검어진다.

내 의지가 아닌, 스킬의 효과로 방출되는 극야.

정수리에서 퍼져 나온 힘이 온몸을 감싸고는 육체 구성 요소를 바꾼다.

[밤의 여신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회복력이 50% 상승합니다.]

대지모신의 가호와 중복으로 적용되는 효과.

그뿐이랴.

어둠에 거하고 있다는 판정 덕에 은신 스킬인 [밤의 걸음]도 펼칠 수 있다.

“융합기공 한 칸을 차지할 정도는 아니지만.”

솔라 익스플로전이나 축지와 비교해 보면 부족한 성능.

하지만.

나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스스슷!

극야와 일체화를 이룬 내 몸뚱이를 관조한다.

세포, 핏방울, 근육, 그리고 뼈.

육체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극야와 일체화되어 있다.

난 전신에 동기화된 극야 자체를 받아들였다.

“밤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깨달음이라는 건 작은 계기 하나로도 생기는 법.

과거 신준석이 대련에서 약점을 공략당하자 그에 맞설 방법을 깨쳤듯.

나 또한 밤이라는 본질을 이해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극야의 본질을 일부 깨쳤습니다.]

[극야 스텟에 보너스 스텟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어?

극야를 다루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게, 이렇게나 쉽게 풀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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