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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45화 (145/300)

145화

첫 번째 영입 대상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스승님, 첫 길드원이 되는 영광은 누구한테도 양보할 수 없어요.”

협회에서 돌아오자마자 지영이가 내 손을 꽉 잡았다.

“그, 그래.”

“설마 저 말고 다른 사람을 먼저 영입하려고 하신 건 아니죠?”

“닉스.”

“아, 스승니이이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후훗, 여는 이미 그대와 계약을 했으니 그 영광을 양보하마.”

“아니면 영수 형님?”

“으그그그.”

“자, 계약서나 받아.”

길드 설립을 염두하고 미리 작성해 둔 계약서.

지영이는 글귀 하나 읽어 보지 않고는 다짜고짜 서명을 휘갈겼다.

“야, 노예 계약이면 어쩌려고 그러냐?”

“스승님 아래에서 노예로 좀 있어도 되죠!”

“꼭 저런 애들이 사기당하고는 땅 치면서 후회하지.”

어휴.

멸망의 시대 때 적들을 굴복시켰던 통곡의 벽은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다.

“다음 차례는 접니까?”

김영수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계약서를 받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눈동자.

잠시 후, 음-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나를 바라보았다.

“길드장님, 항목이 조금 이상한데요.”

“벌써 길드장이 된 겁니까?”

“계약서만 놓고 보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이상하다고 하신 건지.”

“이 계약서에 쓰인 내용대로라면 구속력이 거의 없으니까요.”

보통은 길드 소속이 되면 여러 행동에서 제약을 받는다.

탑 등반 타이밍을 맞추거나.

게이트 공략 때 포지션을 제한당하거나, 혹은 스킬이나 직업 가이드 등 여러 가지 독소조항이 있다.

“에이, 해 준 것도 없는데 무슨 독소 조항을 걸어요?”

“투자라도 하셨으면 거실 생각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나중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나름대로 투자를 할 생각이니, 그래야죠?”

“전 이미 길드장님께 많은 투자를 받은 입장입니다만.”

“그거야 길드 만들기 전이잖아요.”

김영수는 짧게 웃더니 계약서에 서명했다.

벌써 두 명 확보했고요.

“너희도 들어올래?”

장난 가득한 기색으로 핑 레이와 카를라에게 계약서를 내밀자.

“유진호 길드장, 이건 좀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핑 레이의 사범이자 감시역으로 따라온 사내, 주이션이 강하게 반발했다.

“에이, 권유는 할 수 있잖아요?”

“핑 레이는 우리 자랑스러운 구룡문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입니다!”

주이션의 목에서 핏대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린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옆에 있던 핑 레이가 입술을 떼었다.

“사범, 진정하십시오.”

“핑 레이,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나요?”

“대형의 지시를 잊으셨습니까.”

움찔거리는 주이션.

장 우페이의 이름을 대서 잘도 피해 가는군.

눈동자를 굴리던 주이션은 이내.

“구룡방 길드는 유진호 길드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로비를 벗어났다.

“이렇게 됐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장님.”

“뭘 잘 부탁해? 해결된 게 하나도 없고만.”

“나름대로 제 각오를 표현했는데 마음에 안 드십니까?”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 하네.”

소심하게 반항하면서 뭔 이야기야.

구룡방 길드에서 투자받은 1억 달러를 해결할 방법도 마땅찮고만.

“역천 길드에 가입할게요.”

“핑 레이야, 부끄럽다고 장난치지 말…… 응?”

대충 넘기던 중, 핑 레이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카를라.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넌 골드 문 소속이잖아.”

“아까 중국 사람도 소속 길드가 있었죠.”

“그거야, 후.”

핑 레이와의 뒷거래 이야기를 할 수 없으니, 탄식만 삼켰다.

아니.

얘는 무슨 생각으로 내 말을 딱 물어 버렸는지 모르겠네.

“엘렌은 어떻게 하고?”

“상무님께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골드 문에서 투자받은 게 있을 거잖아.”

“부채로 전환이 되면 플레이어 활동으로 천천히 갚아가죠.”

“그렇게까지 해서 역천 길드에 들어올 필요가 있나?”

카를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장님만이 나를 강하게 단련시켜 줄 수 있어요.”

“고작 그 이유가 전부라면.”

“그 이유면 저한테는 충분해요.”

거짓은 없는 표정이군.

흠- 나는 신음을 삼켰다.

회귀 전에 카를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들어 놓을걸.

멸망의 시대에 성좌의 부름을 받고 떠나간 것 말고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저 ‘힘’에 대한 집착 때문일까.

그나저나.

회귀 전의 전우한테 거하게 엿을 먹이게 생겼군.

“아무튼 골드 문에는 네가 이야기를 전해 줘.”

“네.”

카를라는 간결하게 답했다.

이미 문제는 내 손을 떠난 것 같으니, 골드 문에서 해결하겠지.

* * *

팀원들 다음으로 길드에 영입할 인재는 이미 정해져 있다.

“후, 약속한 기한이 반년 넘게 남았는데.”

대놓고 한숨을 쉬는 홍윤수.

그 옆에 앉은 신준석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우리 후배님이 좀 대단하지.”

“대단한 후배 둬서 아주 좋겠다.”

“흐흐, 안 그래도 후배님과 대련하면서 얻은 깨달음으로 무공을 재정립하지 않았던가.”

파아앙!

가볍게 내지른 정권에 공기가 일그러진다.

내공 하나 싣지 않았는데도 저 정도라니.

저 정도면 권기상인의 다음 단계인 권기성강(拳氣成罡) 초입 단계인 것 같은데?

하여간 무공에 대한 재능 하나만큼은 대단한 양반이야.

“두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계약서를 홍윤수와 신준석에게 내밀었다.

꼼꼼히 계약 내용을 살피는 두 사람.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 계약 조건이 맞나?”

“그렇습니다, 선배님.”

“후배님이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말이야.”

“동감이군요. 사실상 이름만 길드원인 거지, 강제력이 거의 없다라.”

홍윤수도 의구심을 표했다.

“제가 하늘 같은 선배님들께 뭘 요구할 수는 없잖습니까?”

난 일반적인 길드 활동을 꾸릴 생각이 없었다.

역천 길드는 말 그대로 울타리.

멸망의 시대를 대비해서 여러 인재들을 확보할 터전이다.

이제까지는 국내에 한정되어 있지만.

길드에 속한 랭커가 많아질수록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떨치게 될 테니, 타국 인재 영입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도 없는 일.”

“남아일언중천금이니.”

두 사람은 의아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계약서에 서명했다.

“길드장, 그럼 우리 팀원들은 굳이 길드에 들어올 필요가 없는 겁니까?”

“예. 그건 홍윤수 님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판단이라고 해도.”

홍윤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야 난감하겠지.

바벨탑 정상만을 바라보며 앞장섰던 팀이다.

개인적인 내기의 결과로 팀원들까지 길드에 끌어들이긴 부끄러울 터.

“역천 길드를 추천하고 싶으면 말씀해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허 참.”

홍윤수가 알 수 없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두 랭커 영입.

역천 길드는 순식간에 유명세를 탔다.

국내에서 가장 센 플레이어 10명을 가리키는 용어, ‘랭커’.

그중 어느 길드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두 사람이 역천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한국을 뒤흔들었다.

“모두 그대의 이름을 부르짖는구나.”

“시작이 좋아.”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에서도 광고 제안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인기 있는 플레이어는 연예인에 버금가는 파급력을 지녔다.

“당분간은 탑을 오르는 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난 여러 기업에서 보낸 광고 섭외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기업들의 후원은 길드 운영자금의 핵심.

하지만, 길드가 막 세워진 시점에서 광고를 진행하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길드 규모와 내실을 다진 후에 광고를 받아도 충분하니.

지영이와 영수 형님의 기량을 더 키워 내고, 유망주들을 더 영입한 후에도 충분했다.

길드를 창설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미스터 유?”

빌어먹을.

올 게 왔군.

금발의 미인이 나를 부르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엘렌 테일러, 미국의 랭커는 방긋 웃었다.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있지만.

저 표정은 진짜 화났을 때만 나타나는 건데.

“오래간만이군요, 엘렌.”

“그러게요.”

“탑 등반 때문에 바쁘신 줄 알았습니다만.”

“누구 덕분에 휴가를 얻어서요. 오래간만에 쉴 수 있어서 좋네요.”

눈가에 감도는 한기가 더 진해졌다.

더 뜸을 들였다가는 불호령이라도 떨어지겠군.

“카를라 때문에 오셨습니까?”

“상도덕이 없으시군요, 미스터 유는.”

“제가 설득한 게 아닙니다만.”

“뭐, 카를라와 이야기를 해 보면 답이 나오겠죠.”

본론을 꺼내자 여태 억눌러 왔던 한기가 얼굴 전체에 드러났다.

“지영아, 카를라 좀 불러 줘.”

“네.”

눈치 보면서 물러난 지영이가 금방 카를라를 데리고 왔다.

“상무님.”

“으음, 난 그것보단 스승님이라는 표현이 더 좋은데.”

“스승이라는 단어는 길드장님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록펠러 길드장님?”

“아뇨. 유진호 길드장님요.”

엘렌이 나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본다.

야, 억울한 건 내 쪽이거든!?

“카를라야. 미스터 유가 무슨 제안을 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상무님, 이건 누구의 설득도 아닌, 제 의지입니다.”

카를라는 여전히 고저 없는 투로, 그럼에도 강하게 말했다.

미간을 찌푸리는 엘렌.

그녀의 입술이 다시 떼어지려는 찰나.

카를라가 먼저 말을 이었다.

“기억하세요? 절 만났을 때요.”

“응. 가장 강한 사람으로 키워 달라고 했었지.”

“저는 그 답을 진호 길드장님하테서 발견했습니다.”

아- 하고는 입을 벌린 엘렌이 입술을 몇 번이나 뻥끗거렸다.

뭐야. 엘렌 녀석, 진심으로 곤란해하고 있네?

두 사람이 과거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카를라를 설득하는 게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저, 엘렌 상무님.”

“미스터 유, 무슨 일이시죠?”

“카를라의 뜻도 존중하지만, 전 골드 문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나는 말을 짧게 끊었다.

엘렌의 주의를 이쪽으로 돌리는 데는 성공.

“그러니까 당분간 지켜보시죠.”

“탑 공략에 전념해야 할 시기라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만.”

“아니면 팀원들도 다 부르시든 지요. 한국에서는 얼마든지 접속 권한을 내줄 겁니다.”

내 입장에서는 카를라를 곁에 두는 것도, 회귀 전의 동료인 엘렌도 중요했다.

미래를 바꿀 열쇠.

또한,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

엘렌도 곁에 두면 지영이처럼 그녀의 능력을 조금 더 일찍 일깨워 줄 수도 있으니.

“당장 카를라를 길드원으로 받지는 않겠습니다. 옆에서 설득하시죠.”

엘렌은 신중한 표정으로 내 말을 곱씹더니.

“거절하기가 어려운 제안이네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골드 문과 엘렌, 그리고 카를라의 입장을 모두 아우르는 제안.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양보한 셈이다.

“마스터의 재가를 받고 올게요.”

자리를 뜨는 엘렌.

카를라의 비이상적인 힘에 대한 집착.

멸망의 시대 때 엘렌과 사이가 틀어지고, 성좌들의 곁으로 떠난 이유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내 곁에 있는 동안 갈등요소를 해결할 수 있다면.

엘렌에게도, 인류에게도 큰 힘이 되겠지.

핑 레이와는 다른 의미로 지켜볼 만한 상황이다.

골드 문의 길드 마스터인 윌리엄 록펠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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