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원시종의 정수를 기반 삼아 재구성한 육체.
흡수한 정수 여럿이 신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후- 속으로 한숨을 내뱉고는 막 흡수한 뱀 신상의 정수를 움켜쥐었다.
용의 총통, 발라크의 정수는 ‘마룡’의 인자를 품고 있다.
내가 육체를 재구성하는 베이스로 삼았던 원시종의 다른 이름은 ‘고대 용족’.
태곳적에 존재했던 용이 자신의 가능성을 둘로 나눈 것이다.
그중 이능을 모두 포기하고 육체적인 진화만을 지향점으로 둔 게 원시종.
용종과 워낙 방향성이 달라진 탓에 시너지 효과도 일어나지 않는다만.
근데 말이야.
두 정수를 강제로라도 섞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친 짓이었지만 성공했지.”
이제부터 원시종의 정수로 재구성한 육체에 막 흡수한 뱀 신상의 정수를 순환시킬 것이다.
회귀 전에도 해 본 일.
갈라진 두 정수의 본래 모습을 되돌리는 행위다.
뭐, 조금 아프고 말겠지.
나는 발라크의 정수를 혈도로 흘려보냈다.
툭, 투투툭.
바늘이 혈도를 타고 흐르는 것 같다.
운기행공을 하는 게 아닌데도 전신세맥의 위치와 흐름이 다 느껴진다.
“크아아!”
방금 말은 철회다.
조금이 아니라 죽을 것처럼 아팠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바깥으로는 새어 나가지 않는 내면의 외침.
정신 속에서야 얼마든지 비명을 지를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발라크의 정수를 혈도로 밀어 넣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기가 흐르는 통로.
수라마령심공의 구결대로 발라크의 정수를 운용, 조금씩 몸에 녹이기 시작했다.
내공하고는 확연하게 다른 성질.
굳이 수라마령심공의 구결대로 움직이는 건 내공으로 만드는 게 아닌, 정수가 원시종이 힘으로 개변한 육체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쿠콰콰콰!
점점 더 거세지는 정수의 흐름.
육체가 파르르 떨린다.
발라크의 정수가 날뛰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몸뚱이.
나는 그 본능을 꾹꾹 누르면서 정수가 순환하는 것을 계속해서 도왔다.
폭주 기관차처럼 내부를 순환하던 발라크의 정수.
어느 순간 움직임이 안정화되면서 원시종의 정수로 재구성한 몸뚱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나기 시작했다.
[원시종의 정수가 발라크의 정수에 공명합니다.]
[고대 용종과 마룡의 정수에 심어진 용의 인자가 반응합니다.]
[두 정수가 합쳐지면서 ‘시초룡의 인자’가 추가됩니다.]
[시초룡의 인자]
등급: ★★★★★
분류: 패시브
모든 용종의 기원이 되는 존재, 시초룡의 정수를 일부 복원한 상태다.
원시종과 용종의 정수가 부족하여 능력 상당수를 발현할 수 없다.
용종 제약이 붙은 스킬을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용종과 관련된 스킬의 효과가 20% 추가된다.
시초룡.
원시종과 현대의 용종이 갈라지기 전의 형태를 말한다.
육체와 정신, 그리고 마력을 다루는 것 모두 완전했던 최초의 드래곤.
그 존재는 제 몸뚱이를 스스로 찢어서 후손을 만듦으로써 흔적 하나 남지 않았지만.
나는 두 정수를 인위적으로 합쳐서 시초의 존재의 그림자를 복원해냈다.
구현해 낸 시초룡의 힘은 아주 적지만, 그것만으로도 용종 관련 정수들에게 시너지 효과가 추가되었다.
우드득!
시초룡의 정수가 육체를 변화시킨다.
보다 더 완벽한 존재로.
그리고 시초의 모습에 가깝게.
원시종의 정수로 개변했던 육신이 다시 한번 변화를 겪었다.
* * *
두 눈을 뜨자, 여지없이 걱정 섞인 닉스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보였다.
“괜찮다니까.”
“그럼 경련이나 떨지 말려무나.”
“육체를 뜯어고치는 건데 그게 되겠나.”
나는 가볍게 웃은 후, 손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전신에 녹아든 ‘시초룡’의 인자.
원시종의 정수처럼 육체를 개변할 정도는 안 된다.
굳이 비교하면 신력처럼 좁쌀 정도의 크기?
뭐,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아.
회귀 전보다 시초룡의 정수를 빠르게 생성시킨 게 중요했다.
시초룡의 정수가 있으면 향후 용종과 관련된 힘을 얻을 때 추가옵션이나 능력치가 더 붙거든.
“상태 창.”
[플레이어 - 유진호]
나이: 24
능력: 포식, 천재
레벨: 76 → 150
종족: 용인(龍人)
등급: 실버
직업: 프레데터
*능력치
근력: 225.5 → 410.1(+15)
민첩: 210.3 → 406.8(+12)
체력: 204.8 → 402.9
맷집: 199.1 → 391.5(+30)
마력: 326.2 → 607.3(+28)
내력: 207.9 → 215
신력: 1 → 3
극야: 200
*보너스 스텟: 370
[능력 - 포식]
생명이나 사물에 깃든 정수를 포식합니다.
[능력 - 천재]
모든 능력치 20% 추가. 스킬의 효율 10% 증가.
*실버 등급부터는 레벨 업 시 보너스 스텟이 10씩 주어집니다.
대부분의 능력치가 400대에 도달했고, 마력 수치는 [혼원룡의 심장] 덕에 600대에 도달했다.
프레데터로 전직하면서 포식 효율이 더 좋아진 덕분.
쇼거스의 정수도 포식했지만, 그 후로는 포식을 많이 사용하지 못해서 효율 증가 혜택을 크게 보지는 못했다.
“보너스 스텟을 조금 투자해야 할까.”
“왜 그리 여유를 두었느냐?”
“이게 다 여신님의 능력 때문이잖아.”
성장을 멈춘 극야 스텟.
내력처럼 보너스 능력치로 늘릴 수 없게 되었다.
극야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면 스텟 투자 제한이 풀리지 않을까 싶은데.
“흐응, 더 분발하여라.”
“말이야 쉽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극야의 힘은 유틸성도 뛰어나고 강력했다.
호문쿨루스의 육체를 얻은 닉스만 해도 극야 하나만 다루면서 1인분, 아니 그 이상을 해내니까.
그녀의 스텟이 나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내가 극야의 힘을 닉스의 절반만큼만 다루어 내도 비약적으로 강해질 것이다.
“여의 능력을 귀히 여기는 건 알겠다만, 그대의 신체를 강화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뭐, 그것도 맞긴 한데. 아직은 좀 둬 보자.”
내공과 극야를 제외한 스텟은 포식으로 늘릴 수 있다.
실제로도 보너스 스텟을 안 찍었는데 동 레벨대의 플레이어들을 압도하니까.
저 스텟에 [천재] 효과로 20%가 추가되면 골드, 아니 플래티넘 급 플레이어와 비슷한 수치다.
“이제 선배님이랑도 해볼 만하군.”
“후후훗, 여의 도움이 또 필요하겠구나.”
“아니, 도움 안 받아도 괜찮아.”
시초룡의 인자를 생성한 덕에 [마룡의 분노] 스킬도 원할 때마다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닉스가 없으면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문제를 극복할 수 없지만.
시초룡의 정수를 복원하면서 전투 지속력이 개선되었으니 해볼 만 했다.
두근- 두근-!
혼원룡의 심장이 시초룡의 정수의 영향을 받아 더 세게 뛰었다.
따지고 보면 혼원룡도 시초룡 바로 다음 세대의 존재다.
레드, 블루, 화이트 등.
각 속성을 지닌 드래곤으로 분화하기 전의 상태이니.
하지만.
지금의 수준으로는 시초룡의 정수에 혼원룡의 힘을 섞을 수 없다.
그랬다가는 심장이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 버릴걸.
“이런 게 가능해졌거든.”
메탈 반사 장갑을 두른 후, 그 위에 [마룡의 분노]를 전개했다.
우우웅!
새빨간 빛을 띠는 금속 갑각.
은은하지만 비늘의 형태가 드리웠다.
몇 가지 정수만 더 포식하면 방어 스킬의 최종 형태인 [드래곤 스케일]을 구현할 수 있겠어.
당연하게도, 마룡의 분노와 탐욕의 가호는 중복이 되었다.
비슷한 성질을 띤 스킬을 겹쳐서 사용하면 증폭 계수가 감소하거나 아예 효과가 무효화되지만.
‘탐욕’이라는 본질은 침식이라서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이 정도 속도라면 회귀 전의 경지까지 금방 도달할 수 있겠는걸?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승급전 다음 날.
오래간만에 플레이어 협회를 찾아갔다.
“협회장님께서 진호 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를 마중 나온 한수창.
오늘따라 그의 눈가 아래의 다크서클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눈 화장이라도 하셨습니까?”
“그게 무슨, 아…….”
한수창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크게 쉬었다.
“다 진호 님 덕분이죠.”
“미안합니다.”
아니. 다크서클이 원체 진하니까 화장이라도 한 줄 알았지.
“전 일반인이라서 체력이 평범합니다.”
“일이 많이 늘었나 봅니다.”
“다 진호 님이 활약해 주신 덕분이죠.”
“화나신 거 아니죠?”
“에이, 진심으로 감사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왜 말투 끝에서 묘한 분노가 느껴지는 걸까.
이번 생에서 두 번째로 방문하는 협회장실.
김우성은 나를 보자마자 자리를 박차더니 꽉 끌어안았다.
“허허, 우리 복덩이가 왔구먼!”
꽈아악-!
김우성도 국내에서 꽤 강한 플레이어다.
내 능력을 모두 발휘하면 뿌리치지 못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반가워서 안는 걸 쳐 내기도 그렇잖아?
근데 좀 아프네.
한수창이 다급하게 입을 떼었다.
“협회장님. 반가움의 표현도 좋지만 너무 과하신 것 같습니다.”
“아, 미안하군.”
허허허, 하고 웃던 협회장은 옆 좌석을 권했다.
“오래간만에 보는구먼. 우선 목이나 축이는 것이 어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립니다.”
“패기가 넘치는 젊은이답구먼. 한수창 팀장도 같은 메뉴지?”
“아, 전 이미 커피 마시고 왔습니…….”
“정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 내주게.”
한수창이 원망 섞인 눈빛으로 협회장을 흘겨보았다.
저 두 사람이 격의 없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모르는 척하자.
“내가 말이에요. 요새 우리 특무대원 덕에 힘을 쫙 주고 다닌다니까.”
김우성 협회장은 내 이름에 기름칠을 쉴 새 없이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국가 차원으로 한국에 감사를 표했느니.
특무대 규모가 나날이 늘어난다느니.
국회에서는 플레이어 협회의 권한 강화 및 예산 재편에서 후한 반응을 보인다는 등.
“다 진호 플레이어 덕분 아니겠는가, 껄껄!”
“맞습니다, 협회장님.”
한수창이 그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틀린 말은 아닌데 다른 사람 입으로 들으니까 좀 낯간지럽군.
협회장과 한수창이 입을 모아 칭찬을 이어 가던 중, 비서가 커피를 들고 왔다.
“자, 어서 드시게.”
빨대에 힘을 살짝 주니 커피가 위로 말려 올라온다.
아메리카노 특유의 쓴 향과 풍미.
정신을 일깨우는 맛이다.
“오늘 찾아뵌 건 협회에 부탁드릴 게 있어서입니다.”
“허허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호 군인데, 뭐든 말하게.”
“길드 창설을 허락해 주십시오.”
플레이어 길드.
탑 시스템 일부를 양도받은 국가에서 ‘공인’한 플레이어 집단이다.
“플레이어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길드를 창설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켰는가?”
“협회장님, 진호 특무대원이 이번에 실버 등급을 통과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렇구먼. 불사조가 탑 3년 차에 세워진 걸 생각하면 엄청난 속도야.”
나는 허리를 살짝 숙이며 협회장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승인해 주실 겁니까?”
“안 할 이유가 있던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호 플레이어인데.”
김우성 협회장은 흔쾌히 대답했다.
“협회장님, 그럼 길드 설립 절차와 평가를 바로…….”
“복잡한 절차는 다 치우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진호 특무대원이잖나.”
“알겠습니다.”
협회장은 도장을 쿵, 하고 찍었다.
원래 몇 가지 검증과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길드 설립.
협회장과 대담을 나눈 후, 바로 설립이 완료되었다.
[역천 길드 설립이 완료되었습니다.]
[길드 레벨 - 1]
[길드 하우스 - 없음]
[길드원 - 1/20]
자, 이제 저 숫자부터 채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