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천상의 신이 진노합니다.』
『천상의 신은 이번 내기가 무효라며 분노를 터트립니다.』
『천상의 신이…….』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천상의 신을 채널에서 추방할 것을 건의합니다.』
『다른 성좌들이 동의합니다. 천상의 신을 이 채널에서 추방합니다.』
거대한 존재감 하나가 사라졌다.
킬킬거리며 웃는 바알.
신왕급 성좌만 셋이 있으니, 제우스라고 해도 별수 없을 거다.
-그대여, 중대한 문제가 생겼구나.
“뭐가?”
-그 아이가 사라졌으니 보상을 못 받는 것 아니겠느냐.
“걱정하지 마. 시스템에 등록된 이상, 어떻게든 뜯어내 줄 거니까.”
탑 시스템의 구속력은 신왕조차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시했을 때 밴을 당하는 거지.
영성 좀 아끼다가 만신전에서 추방되면 그만큼 창피한 일이 또 있을까.
“협상해서 필요한 걸 얻어 내지 못하는 건 좀 아쉽지만.”
무작위 보상.
제우스의 영성을 기반하기 때문에 번개와 관련된 보상이 나오지 않을까.
▶서브 미션 - 신의 대리자를 통과했습니다.
▶유진호 3 : 0 알렉시스 파판드레우
▶보상으로 번개의 돌을 획득합니다.
[번개의 돌]
등급: 레전드
분류: 촉매
내구도: 100/100
올림포스의 신왕 제우스의 뇌기를 고체 형태로 고정시킨 돌입니다.
자극을 주어서 뇌기를 해방시키거나 번개 마법의 촉매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탐식의 입]과 동일한 등급.
알렉시스가 승리할 걸 예상하고 이런 보상을 준비했나 보다.
번개 능력자인 녀석한테는 이만한 영약도 없을 터.
제우스 녀석, 배가 꽤 아프겠네.
-아쉽구나. 촉매라니.
“뭐가 아쉬워.”
번개의 돌을 세게 쥔 후, 포식을 발동했다.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번개의 돌에 담긴 뇌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위험할 거다.
난 조금 다르거든.
뇌기가 아닌, 제우스의 ‘정수’를 받아들이는 거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
“으갸갸갹!”
……지는 않는군.
번개의 돌의 힘이 몸으로 전해지자, 알렉시스의 공격을 받은 것처럼 몸이 찌릿거렸다.
-탈이라도 난 것이더냐?
“탈, 은 무슨.”
짧게 대꾸하면서 제우스의 신력을 꾸역꾸역 포식했다.
[제우스의 정수를 포식했습니다.]
[정수 등급: 신화]
[신력 + 2]
[제우스의 가호가 스며듭니다.]
[뇌신의 가호]
등급: EX
랭크: 1
올림포스의 신왕, 제우스의 가호다.
번개의 흐름에 간섭할 수 있으며, 번개 관련 스킬을 사용할 때 위력이 100% 증가된다.
흐흐, 이렇게 가호를 하나 더 얻다니.
“운이 좋군.”
승급전에서 알렉시스를 만난 게 천운이었다.
플레이어 선민의식에 꽉 차 있는 놈이라서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콧대를 꺾어 주고 제우스한테서 보상까지 뜯어냈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번개 능력을 강화시키는 가호라. 그대에게는 필요가 없지 않느냐?
“지금이야 그렇지.”
신왕급 성좌의 가호다.
번개와 관련된 능력이야, 탑을 오르면서 정수를 포식하다 보면 하나둘 얻게 될 것이고.
제우스의 정수를 더 삼켜서 가호를 2레벨로 올릴 경우, 추가 효과도 생성된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볼 건 없단 말이지.
“다른 성좌님도 나랑 정산할 게 있지 않던가?”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박장대소합니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은 당신이 이겼다고 인정합니다.』
▶엑스트라 미션 - 성좌와의 내기를 통과했습니다.
▶보상으로 사악한 뱀 신상이 주어집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뱀 조각.
사이한 기운이 뱀의 눈과 혀를 휘감고 있다.
-으으, 또 불길한 물건이 하나 더 늘었구나. 어서 치우거라.
“조금만 참아 줘. 여기서는 먹기가 그래.”
뱀 신상을 욕망의 주머니에 넣어두고 승급전 보상을 마저 수령했다.
* * *
1차 대침식 이후로 생겨난 변화.
바벨탑 공략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면서 해설가들이 전투 분석에 붙었다.
현재 가장 큰 이슈는 진호가 참여 중인 실버 등급 승급전.
다이아몬드 승급전은 두 번째로 밀렸다.
“토마스 캐스터도 보셨습니까?”
“예. 유진호 플레이어가 워 골렘을 유린하고 있군요.”
“알렉시스가 이렇게까지 무력하게 당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진호가 회귀를 한 지 반년 정도가 지났다.
그전에는 가족이나 동향 사람 외에는 거의 모르던 이름이지만.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오히려 ‘유진호’를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역시 향신료 제도의 영웅인가요? 압도적입니다.”
“스킬을 활용하는 타이밍, 간격 하나하나가 흠잡을 곳이 없어요.”
두 미국 해설자는 침을 튀기며 진호의 활약상을 칭찬했다.
타이탄의 프로토타입.
워 골렘을 탑승한 플레이어는 5배 이상 전투력이 향상된다.
“물론 첫 탑승 때는 증폭된 마력 운용에 난항을 겪어서 2배, 혹은 3배 정도라고 봅니다만.”
“어쨌든 알렉시스 플레이어가 손 하나 못 쓰고 당한다는 게 중요하죠!”
제우스를 배후성으로 두고 주가가 한창 상승 중이던 알렉시스.
신왕급 성좌와 계약한 플레이어는 전 세계를 뒤져 봐도 몇 없기에, 유럽과 북미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유진호 플레이어는 아직 계약한 성좌가 없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입니다. 골드 문 관계자를 통해 확인해 봤으니까요.”
“아, 골드 문과 유진호 플레이어가 꽤 긴밀한 관계라고 했었죠.”
“지금 이 순간, 워 골렘이 완전히 쓰러졌습니다!”
알렉시스가 조종 중인 워 골렘이 파괴되면서 완벽하게 기울어 버린 승부의 추.
여러 언론에서는 [유진호 대 알렉시스, 충격적인 결과] 같은 제목들로 기사를 찍어 내기 시작했다.
-제우스의 계약자라고 하더니 쪽도 못 쓰던데.
-향신료 제도의 영웅이라잖아.
-참, 그 영상 봤나? 물고기 같은 놈들이 바글바글한데 거길 휩쓸고 다니더라.
-전문가들이 분석해 보니 각 개체가 브론즈 플레이어 이상이라던데.
-이러다가 전 세계 랭킹도 바뀌는 거 아닌가 몰라.
-에이, 이제 실버인데?
전 세계가 갓 실버로 올라온 플레이어를 주목한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많은 이들이 진호의 행보를 귀 기울이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바빠진 건 한국 플레이어 협회였다.
“팀장님, 입단 지원서입니다.”
“수고했어.”
한수창은 오른손을 휘휘 저었다.
두 눈 아래에 드리운 진한 다크서클.
야근을 거듭해도 일이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다.
“지원이라, 그 말이지.”
한숨과 함께 서류를 뒤적거려 보니 얼추 봐도 100이 넘어 보이는 플레이어 명단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진호의 제안으로 신설한 부서, 특무대.
협회 소속이 아닌, 구속력이 느슨한 용병처럼 일하며 협회의 의뢰를 수행하는 부서다.
김우성 협회장의 승인을 받고 만들었을 때만 해도 한직 소리를 들었지만.
이젠 게이트 모니터링 부서 다음으로 일이 많아졌다.
‘한직이라고 투덜거리던 때가 엊그제 같네.’
후르릅-.
한수창은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면서 웃음을 지었다.
그가 협회에 입사한 가장 큰 동기는 책임감.
바벨탑과 플레이어가 나타나면서 변혁기를 맞이한 세계의 안정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몇 년 동안 발에 땀이 나도록 뛰었음에도 큰 소득이 없어서 힘들어하던 때.
진호의 제안을 받고 나서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특무대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새 부서가 출범되었고.
1차 대침식 이후 많은 플레이어들이 특무대에 발을 걸치기 시작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상황.
‘이러니까 바빠 죽을 것 같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한가해서 곰팡이가 슬어서 죽을 바에는 과로사가 낫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 상황을 만들어 준 진호에게 감사함을 늘 품었다.
‘진호 님이 준 기회. 놓치지 않고 우리나라를 위해 잘 사용하겠습니다.’
한수창은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는 다시 지원서에 시선을 옮겼다.
* * *
“스승님, 실버 등급으로 올라가신 걸 축하드려요!”
파앙-!
지영이가 폭죽을 터트렸다.
팀 숙소 로비에 놓인 케이크.
나머지 팀원들은 작은 케이크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아 있었다.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해 둔 건지 원.”
“그리스 유망주를 꺾으셨잖아요. 역시 스승님이세요.”
“알렉시스라고 했던가. 선민의식으로 가득 찼던데 팀장님의 상대는 아니더군요.”
핑 레이의 말에 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야, 네가 선민의식 운운하다니. 이건 좀 충격인데.”
“갑자기 도발하시는 겁니까?”
“아니. 전에도 중화민족 어쩌고 운운했잖아.”
새빨개진 핑 레이의 얼굴.
이래서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남이 하는 거 보니까 되게 꼴 보기 싫지?”
“다음부터는 자제하겠습니다.”
핑 레이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팀원들과 함께하는 파티.
준비한 거라고 해 봐야 케이크랑 작은 폭죽 하나밖에 없지만,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회귀 전에는 각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동료 혹은 적으로 만났거나 아예 역이지 않았던 인연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이제 내 곁에 있으면서 파멸의 미래를 막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당사자들이 모르고 있을 뿐.
육체로 현현한 닉스는 케이크를 한입 집어먹더니.
“으으으음!!”
하고는 기묘한 감탄사를 냈다.
“훌륭하구나. 입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는 크림과 빵의 조화라니. 정말이지 환상적이도다.”
“뭐야. 설마 케이크 처음 먹어 보는 거야?”
“그러하니라.”
지영이가 나를 째려보았다.
야, 제발 좀 참아 주라.
먹깨비 여신님이 식도락에 눈을 뜨면 내가 곤란해진다고.
작은 파티를 즐긴 후, 방으로 들어왔다.
“피곤하군.”
“그대도 피로함을 느끼는구나. 하긴, 그 워 골렘은 강대한 적이었지.”
“지영이가 호들갑을 떨어서 그러는 건데?”
[대지모신의 가호] 덕에 어지간해서는 체력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고는 욕망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뱀 조각이 새겨진 상.
용의 총통, 발라크의 성유물인 사악한 뱀 신상이다.
“이제야 이걸 포식하네.”
“그 불길한 것도 먹어 치워야 성에 차겠느냐?”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거든.”
가볍게 너스레를 떨고는 사악한 뱀 신상을 꽉 쥐었다.
[사악한 뱀 신상을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전설]
[마력 + 100]
[스킬 - 마룡의 분노가 추가됩니다.]
[마룡의 분노]
등급: ★★★★★
분류: 액티브
사용자의 암흑 마나를 육체에 둘러서 파괴력을 강화시킨다.
용종 형태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
발라크는 72 마신 중에서도 꽤 강한 축에 속했지만, 신력을 내뱉진 않았다.
역시 신력은 쉽게 얻을 수가 없구먼.
“용종일 때만 사용 가능하다면, 그대한테는 소용없지 않느냐?”
“지금이야 그렇지.”
내 종족은 인간.
포식으로 반 정도는 사람의 틀을 벗어나긴 했어도 용종과 비교하긴 어렵다.
드래곤, 용, 마룡 등.
여러 신화에서 모습을 드러낸 용종은 신들의 계보에 버금가는 금수저거든.
하지만.
“이 정수를 몸에 일체화시키면 이야기가 달라질걸?”
“후우, 또 위험한 짓을 하려는 셈이로구나.”
“다 여신님 믿고 하는 거지.”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었다.
원시종의 정수를 그릇 삼아서 재구성한 육체.
여기에 마룡을 대표하는 마신, 발라크의 정수를 일체화할 거다.
무슨 결과가 나올지는 이미 알고 있다.
회귀 전에 해 본 일이거든.
저번에도 그랬듯, 더럽게 아프겠지만.
“그럼 잘 부탁해.”
닉스에게 호법을 맡기고는 내면을 들여다보았다.